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 제8회

귀싸대기를 쳐라

이 병 천

 



 

근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뺨을 얻어맞았다는 신고가 들어온 건 장마가 한창이던 6월 중순의 일이었다. 서너 명의 괴한들에게 둘러싸인 채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행을 당했는데 그 일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는 신고였다. 그렇다고 뭇매를 맞은 게 아니었고 집단폭행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피해자는 그 중 한 사람에게 딱 한 차례 뺨을 얻어맞았을 뿐이었다.

이 해괴한 사건을 담당한 사람은 수사계 민 형사였다. 그는 일선 파출소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대충 검토한 뒤에 피해자 정병억을 경찰서로 소환했다. 20대 후반으로 그 나이에 벌써부터 무슨 사업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내였다. 아닌게아니라 얼굴이 약간 까무잡잡하고 눈이 좀 작은 걸 제외한다면 정말이지 그냥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랄 수도 있었다. 물론 얼굴색이 십구공탄도 못 되는 구공탄처럼 까맣다거나 뱁새눈을 하고 있다고 해서 사람의 양심을 의심할 일은 아니었다. 옛 시조 한 가락에서도 이미 그 점을 경계하라고 충분히 이르지 않았던가? 까마귀 검다 하여 백로야 웃지 마라……. 다만 민 형사는 사건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직감할 수 있었다.

한쪽이 효모가 과다하게 첨가된 찐빵처럼 잔뜩 부풀어오른 정의 뺨은 볼수록 우스꽝스러웠다. 본래 새우젓처럼 인색하고 작았을 그의 왼쪽 눈은 밀려 올라간 근육 때문에 완전히 감겨져 있었다. 그런데다가 되게 얻어맞은 뺨은 아주 거무죽죽할 정도로 멍이 들어서 양쪽 뺨이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 형상을 창조했다는 조물주가 그 작업 중간에 얼굴에다가 진흙을 붙이다 말고 용변이라도 보러 갔다면 영락없이 그 꼴이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멍든 뺨이 아예 진흙빛이었는데 고막이 터지거나 이가 부러지지 않은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천만다행이었다.

“그 사람들이 정말 아무런 말도 없이 뺨만 때리고 내뺐다는 거요?”

웃음기가 좀 가신 듯 싶어지자 민 형사가 담배를 빼어 물며 거듭 확인했다. 그는 담배 맛을 제대로 찾아 음미할 줄 아는 남자가 분명했다. 입 안에 신 침이 아직 남아 있을 때 피워야 담배는 나름대로 화학반응을 거쳐 비로소 단맛을 내는 법이다. 웃음이란 게 신맛을 띠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예, 말은커녕 웃지도 않고, 그 새끼들이 꼭 저승사자 마냥…….”

정은 아직도 분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숨을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귀담아 들어보니 그의 음성 역시 지게를 어느 한쪽으로 찜들게 지고 가는 것처럼 자꾸 기우는 느낌이었다.

물어보나마나 뻔했지만, 민 형사는 그 밖에도 혹시 놈들 중에 아는 얼굴은 없었는지, 남에게 원한 살 일이나 치정관계의 일은 없는지 하나하나 캐물었다. 원한이든 치정이든 범행동기가 그 중 하나에 있다면 범인들도 불과 열 손가락 안에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캐봐야 할 일이긴 해도, 정이 실토하는 내용 중에는 특별히 혐의를 둘 만한 게 없었다. 민 형사는 담당자에게 범인들의 몽타주 초안을 그리도록 의뢰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런 뒤에 민 형사는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비록 진흙을 한 꺼풀 입힌 것처럼 피해자의 얼굴이 된통 부어오르긴 했지만 기껏해야 뺨 한 대에 지나지 않는 싱거운 사건인 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병억을 후련하게 응징했던 그날 밤, 우리는 어느 한갓진 삼겹살 집에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짜릿하고 은밀한 감동을 즐겼다. 벌써 두번째 맛보는 자리였다. 물론 그까짓 삼겹살 맛을 들먹이는 게 아니라 뺨을 때린 손맛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손맛이 틀림없다면, 그 ‘짜릿함’을 피부로 직접 맛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정의 뺨을 올려붙인 사람이야말로 나였기 때문이다. 빗물에 적당히 젖어 있어서 생고무처럼 찰싹 달라붙던 뺨의 감촉은 정말이지 좋았다. 그러니 다른 세 명의 내 동료들이 대리만족을 얻는데 그쳤을 짜릿함과는 아무래도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옳겠다.

“그나저나 우리 모임에 뭔 이름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박씨가 그때 뜬금 없는 제안을 했다. 이른바 구조조정이라는 해괴한 그물에 걸려 다니던 직장에서 떨려난 뒤 결국 우리가 일하는 곳까지 흘러 들어온 동료였다. 일의 귀천을 따질 필요도 없이, 그야말로 김이박최유정(金李朴崔柳鄭)이 고루 무리 지어 일하는 직장에서 귀동냥이라도 적잖이 한 이력 때문인지 박씨는 우리들과는 무엇이 달라도 확실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 이라는 뜻으로 ‘금니 박은 최유정’ 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처음 우리에게 퍼뜨린 것도 그였다. 그런 그가 지금에 와서는 우수(牛)나 마발(馬勃)이나 그게 그거라고는 하지만, 건질 것은 없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만 가랑이가 찢어지게 기다린다는 시내 도심 거리를 맡고 있었다. 물론 서열이 그렇게 정하는 일이라서 찬물도 위아래가 있고 도토리도 선후가 없을 수 없으며 우리와 같은 환경미화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이가 서로 다른 판에 ‘갑계(甲契)’라고 붙이기도 그렇잖아?”

우리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이씨가 말을 받았다. 누군가가 ‘갑계’로 정하자고 앞서 의견이라도 낸 듯한 어투였다.

“의열단(義烈團)은?”

그렇게 말한 건 최씨였다. 어디서 값지게 주워온 말인지는 몰라도 항일 의병활동이라도 펼치는 듯한 비장한 각오가 서린 제안이었다. 하기야 우리가 새벽마다 주어 모으는 쓰레기들 중에는 귀하고 값나가는 물건들도 아주 없지는 않다. 1캐럿이 넘는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나 자수정 목걸이만 말하는 건 아니다. 아직 얼마든지 두고 써도 좋을 휴대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가전제품으로 생각지 않게 횡재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매양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칠칠치 못한 것들이 봉투에도 넣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쑤셔 박은 서답 쪼가리만 줍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내친 김에 계속하는 말이지만, 비록 더럽기는 할망정 정당하게 쓰고 버린 생리대 정도는 우리가 함부로 탓할 성질의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인간 말종들이 숨어서 사정하고 내뱉은 추악하고 역겹고 냄새나는 찌꺼기들은 세상에 얼마나 지천으로 널렸던가?

‘의열단’이라는 명칭을 두고 우리는 잠시 설왕설래했다. 우리들 낮은 어깨를 잠시나마 으쓱거리게 만드는 그럴싸한 말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발설은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개 발에 주석(朱錫) 편자처럼 아무래도 주제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때 박씨가 잘 구워진 삼겹살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들다 말고 불쑥 입을 열었다.

“그냥, ‘귀싸대기과(課)’는 어떨까요?”

“……?”

한동안 우리는 그 말의 의미와 또한 그 의미가 안겨주는 묘한 울림에 잠겼다. 우선 귀싸대기라는 말부터 그랬다. 그냥 놈들의 뺨을 때린다고 했을 때는 구두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것처럼 영 개운치가 못했는데 그걸 귀싸대기라고 바꾸는 순간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다가 직장의 조직체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슨무슨 ‘과’라는 별칭이 우리를 사로잡았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직장인 출신의 박씨다운 빛나는 아이디어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기껏 시청 청소계(係)에 소속된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 아니던가?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과’라면 ‘계’의 상급 직위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귀싸대기는 귀와 뺨의 어름을 가리키는 말로 아마 속어일 것이다. 우리는 그때부터 그 부근을 일컫는 비슷한 단어들을 떠올려가며 한동안 뜻하지 않은 입씨름을 했던 게 사실이다. 사투리인 ‘귀볼테기’도 언급됐지만 뺨의 아래쪽만을 지칭하는 듯했고, 마찬가지로 귀퉁배기나 귀퉁머리, 귓방멩이 같은 방언도 어감이 몹시 강하긴 하지만 너무 귀 쪽으로 쏠리는 듯하다고 해서 논외로 했다. ‘귀뺨’이나 ‘귀쌈’이란 말도 있긴 했지만 그냥 뺨이라고 하는 단순한 표현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서 역시 성에 차지 않았다. 그것들에 비하면 귀싸대기는 우선 이 말이 지칭하는 부위가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고루 넓었으며 어감 또한 강하면서도 포용력이 있어 보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 일부 젊은 일꾼들 사이에서 난데없는 ‘귀싸대기과’가 신설됐으니, 실제로는 ‘계’라는 단위의 하급조직원 축에도 끼지 못하는 주제일망정 비록 비밀 결사에 지나지 않았으나 우리 나름대로는 엄연히 ‘과’ 부서원으로 승급하는 일석이조의 큰 쾌거를 이룬 셈이다. 시청 청소계 귀싸대기과!……

“그건 좋은데, 싸대기를 올려 부치는 일은…….”

“쉬잇!”

다혈질인 데다가 목소리가 우렁우렁 큰 최씨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운을 떼자 연장자 이씨가 사위를 둘러보며 바람소리를 냈다. 자리를 오가는 손님도 없고 주인 내외는 멀리서 모기를 쫓느라 정신이 없긴 했다. 그러고 보니 재수 없이 밖에서 날뛰다가 굵은 빗줄기에 맞아 죽을까 봐 한사코 술청으로 피난을 오는 모기떼들이 사방에 솜먼지처럼 자욱했다. 최씨가 다시 모기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때리는 일은 아무래도 유씨가 도맡는 게 좋겠죠?”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내가 바로 유씨였다. 동료들이, 아니 우리 과 부서원들이 잠시 내 눈치를 살폈다. 어쩌면 그건 새삼스런 확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가 때릴 것인지는 무슨 제비뽑기 따위로 결정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처음 일을 앞두고 우리는 각자의 손을 내밀어 서로 비교해 본 적이 있었다. 쓰레기 임시 하치장에서의 일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동료들의 손은 하나같이 크고 우악살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자나깨나 칼질을 받아온 부엌 나무도마처럼 거친 데다가 온통 상처투성이기도 했다. 눈에 빤히 내려다보이던 거친 손들이라는 그 공통점은 한순간 독한 담배 연기처럼 우리들 폐부를 싸하게 훑고 지나간 게 사실이지만 그걸 신경 쓸 계제는 아니었다. 물론 처음부터 비교해 볼 가치조차 없이, 키나 덩치도 그렇지만, 손바닥은 단연 내 것이 압도적으로 컸다. 하기야 조무래기 아이들까지 잘도 주워섬기는 미국의 프로 농구 선수들처럼 나도 한 손만으로 농구공을 수월하게 들어올릴 수 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당분간은 그대로 밀고 나갑시다. 최씨도 손바닥이 근질거리거든 연습을 좀 하시든지…….”

진짜 연습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라도 하듯, 때마침 박씨가 자기 손목을 탁 소리나게 쳐서 모기를 잡아가며 아주 실감나는 말을 했다. 그 바람에 우리는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사람들과 원수 척질 일도 아니라서 정확하게 딱 한 대씩만 때리기로 약속했잖소? 그러니 그 한 대나마 아주 제대로 맵게 때릴 수 있었으면 해서 유씨가 좋겠다는 겁니다.”

“하긴 그렇지. 그 원칙도 지킬 줄 모른다면 우리가 오히려 놈들한테 얻어터져도 싸지.”

박씨와 최씨가 서로 격려하고 확인하는 말투가 의형제라도 맺는 자리처럼 살갑게 들렸다. 실은 유비나 관우 장비처럼 역사에 드러내놓고 거창하게 의형제를 맺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그 비슷한 만큼은 제법 흉내를 냈다고도 할 수 있다. 쇳덩이나 바위처럼 굳게 비밀을 지키자고 약속하면서 그때도 구석진 삼겹살 집에 숨어서 각자 손가락에서 조금씩 짜낸 피를 소주에 섞어 나눠마셨기 때문이다.

“정통으로 때린다고 노력은 하지만 재수 없게 용코로 안 맞을 때도 있을 텐데요.”

내가 한 마디를 했다. 평소에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잘 겨눈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남의 뺨을 제대로 명중시켜 때리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반사적인 방어동작으로 손을 들어 막는다거나 그냥 순간적으로 어깨만 움츠려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때린 사람이 오히려 진땀을 흘리게 된다. 그래서 아주 극도로 흥분해져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포악해지기도 한다.

“그런 때는, 발로 그냥 배때기를 걷어차기로 합시다. 누구든지 동작 빠른 사람이…….”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듯 목소리 큰 최씨가 말을 받았다. 처음 우리들 결사(結社)의 단초를 제공해 준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최씨였다.

그 봄날, 최씨는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수레에 싣고 와서는 앉아서 땀을 식히던 우리 일행을 상대로 전에 없던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좀체 노기가 진정되지 않던 최씨의 얘기는 이러했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관내 변두리 동사무소가 새로 사무실을 신축하고 제법 멋들어지게 조경을 마친 지 벌써 석삼년인데 까닭도 없이 두어 그루 적송이 시름시름 죽어가더라고 했다. 투명하고 밝은 수피(樹皮)와 아름다운 수형이 돋보이는 참말 아까운 나무였다. 동장부터 용역까지, 동사무소가 모두 나서다시피 해서 매일 기름진 흙을 북돋워주기도 하고 영양주사를 놓았지만 나무는 끝내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원인이나 알아보자고 나무를 캐기로 했는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보통 옮겨심는 나무들은 고사 방지를 위하고 운반에도 용이하도록 뿌리를 감싸놓기 마련인데 그걸 풀어헤치지도 않고 그대로 심어놓았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자전거 튜브 같은 것으로 어찌나 칭칭 동여맸는지 뿌리가 설혹 송곳처럼 생겼더라도 밖으로 헤집고 나온 잔뿌리 한 가닥 없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큰 나무의 뿌리를 기껏 늙은 호박덩이 만하게 싹둑싹둑 잘라서 싸맨 데다가 삽이 아니라 호미로 일을 했는지 땅을 깊이 파지도 않고 묻어준 터라 수호지(水湖志)의 ‘노지심’까지 불러올 필요도 없이 작대기 같은 아이 혼자서도 너끈히 뽑을 수 있겠더라는 얘기였다.

―`죽든지 살든지 나무 값이나 받아챙기면 된다는 심뽀겠지요.

―`아니네. 오히려 죽기를 원했겠지.

―`나무가 죽으면 그 업자한테 하자보수를 요구할 텐데요?

―`그 말이 맞네. 그러니까 업자 잘못이 아니라, 현장 일꾼놈의 소행이 틀림없어.

―`딴은 그렇지!

저마다 한 마디씩 부조하는 사이에 천성적으로 심드렁하게 세상을 사는 치들은 구렁이가 한낮에 풀숲으로 미끄러지듯 하나둘 빠져나가고 남은 게 바로 우리 넷이었다. 물론 우리라고 해서 똑같은 세 끼 밥 먹고 날이면 날마다 무슨 기운이 철철 흐르고 또 남아돌 리는 없었다. 그러니 매양 사돈집 팔촌의 일까지 방아깨비 날뛰듯 열의를 내고 덤벼드는 천둥벌거숭이들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세상일이란 그처럼 묘한 것이다. 일이 제대로 되려니까 고단함도 잊은 채 우리가 우연히 그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참말이지, 나무 쪽에서 보자면 그놈이 바로 전설 속의 도척(盜拓)이네 그려.

―`경찰에 고발하지, 어쨌답디까?

―`고발하면 뾰족한 수가 나옵니까? 기껏 벌금 몇 푼일 텐데……. 할 수 있다면 그런 놈은 그저 대로변에 세워두고 귀싸대기나 한 대 속시원하게 쳐댈 수 있다면 최고죠.

최씨가 그렇게 말하며 못내 섭섭한 듯 혀를 찼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렇게 욕이나 한 바가지씩 퍼붓고는 끝낼 일이 분명했다. 그때 화제를 다시 이은 게 나였다.

―`우리가 그놈을 찾아내서 정신이 번쩍 들게 손 좀 봐줄까요?

나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반짝 하고 빛을 냈다. 그 며칠 후 우리는 그 나무를 직접 심은 작자가 김승곤이라는 인물임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40대 중반처럼 보였는데 당시에는 어느 도로공사장에서 십장 아래 오장(伍長)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일하는 모습을 가만 살펴보고 돌아온 최씨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더도 덜도 말고 꼭 처삼촌 묘에 벌초라도 하듯 매사가 그냥 시늉이거나 건성이어서 동사무소에 나무를 심은 장본인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하루를 택일해서 그의 뒤를 밟았다. 그러나 첫날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가 술에 너무도 취해 있었던 것이다.

“1인분만 더 시킬까?”

연장자 이씨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더 먹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그렇지만 나는 모기를 쫓는 척하며 딴전을 피우는데 고맙게도 박씨가 대신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1인분 더!…… 남의 이목을 피하느라 구석진 곳에 앉았더니 모기가 더 극성이었다.

“그나저나 다음에 손을 좀 봐줄 사람이 누구 없을까?”

“우리 아파트에서 매일 밤 술 처먹고 부부 싸움하는 놈!……”

“에이,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안 맞을 놈들이 어디 있소?”

박씨와 이씨가 서로 번갈아 묻고 대답했다. 하기야 우리는 처음 김승곤을 때리고 돌아온 날 밤에 조금은 께름칙한 구석도 아주 없지는 않았었다. 멀쩡한 나무를 죽인 죄가 무겁고 사기꾼도 틀림없는 사기꾼이 분명했지만 그는 사실 잡범(雜犯)에 지나지 않기도 했다. 큰 도둑들이 보면 참말 유치할 정도였고, 그 나름대로는 먹고살기 위해 요령을 피워대며 기껏 굼벵이처럼 뒹구는 재주밖에 가지지 못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밤 우리의 원칙을 거듭 확인했던 것이다. ……어차피 감옥에 가기로 한 놈들은 법에 맡긴다. 그렇지만 마땅히 감옥에 가야 할 놈이로되 아직 들키지 않고 숨어 있는 놈을 찾아낸다면 용서하지 말자. 그리고 비록 감옥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죄질이 참으로 얄미우면 반드시 귀싸대기를 치자.

“창구에 편히 앉아서 세금을 받아놓고 말이지. 다른 손으로는 그 세금을 슬쩍 도둑질하는 놈들은 어떨까?”

그렇게 말한 건 역시 큰 목소리 겸 다혈질 최씨였다. 두번째 대상자였던 정병억을 고른 건 나였지만, 첫번째 대상자 김승곤을 선정한 데 이어 최씨는 확실히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잘 짚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불쑥 되물었다.

“좋긴 한데, 그런 도둑놈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지?”

“……”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땅히 대꾸할 얘기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맛있는 포도를 따려고 해도 손이 닿지 않자 그건 신 포도일 것이라며 포기했다는 이솝의 여우처럼 잠시나마 아주 낙담을 해야만 했다. 그때 박씨가 입을 열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사장님’하고 부르면 우리 같은 놈만 빼고는 십중팔구 돌아본답디다. 최형 말처럼 앉아서 세금을 받는 놈 중에서 돈을 물 쓰듯 하는 놈 하나를 물색합시다. 까짓것, 억울하면 신고할 것이고 뒤가 구리면 얼굴을 싸쥐고 가만히 있겠지요. 시험삼아 한번 해보죠.”

“좋아! 다들 눈 부릅뜨고 부지런히 그물질을 해보자구!”

“내일 새벽일을 위해 이만 파하고, 이제 다들 돌아가서 마누라 품이나 팝시다. 우파파파!……”

내게는 의식적으로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연장자 이씨가 익살스럽게 웃었다. 넷 중에 홀아비는 나뿐이었다. 홀아비라고 내 스스로 표현은 했지만 나는 사실 노총각이었으며, 노총각이든 홀아비든 눈 밑에 코고 코 아래 입일 뿐더러 윷판의 개 걸 간(間)이라고는 해도, 노총각 행세를 하는 일이 스스로 민망하고 황송해서 나 혼자 두고 쓰는 말이 홀아비였다. 물론 이씨가 내 심사를 뒤틀자는 건 아님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두어 차례 내게 맞선을 주선하기도 했던 것이다.

동료들이, 아니 우리 과 부서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둘 흩어져 갔다. 나는 어디든 기어 들어가 독한 소주 한잔쯤 더 마시고 싶어졌다. 비는 다행히 그쳐 있었다. 거기 가로등 하나가 외눈박이처럼 허공에 달랑 매달린 채 내 눈을 아프게 쏘아보았다. 그렇지만 그 가로등 역시 자기 뒤편의 검고 아득한 밤하늘을 지키기에는 턱없이 작고 초라하기만 했다. 내가 만약 가로등이라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어둡고 막막한 내 빈 방이야말로 바로 그 밤하늘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참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지!

술 취한 사람들처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남자라는 성(性)의 족속들이 지구 북반구의 N극에 모여 산다고 가정한다면 여성들은 아마도 남반구 S극 주변에서 살아가는 족속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가정이 다시 한 번 확실하다면, 나는 북반구 중에서도 극점인 북극에서만 살 수 있는 부류라고 자부한다. 이 말은 동성끼리는 서로 거칠게 밀쳐내고 이성은 그만큼 격렬하게 끌어당기는 자성(磁性)을 내가 유독 아주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더 쉽게 말하자면 나는 누구보다 남성적인 사내라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떤가? 준 것 없고 빼앗긴 것은 없지만 나는 동성의 남자들을 뱀처럼 꺼리는 데 비해, 여자들은 여자들 대로 언제나 나를 멀리하는 것 같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내 나름대로 짐작되는 구석이 한 군데 있긴 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들 본래의 자성을 버리고 중성화했기 때문이다. 술에 물이라도 삼투된 것처럼 미지근하고 희멀건하게…… 그 바람에 나는 오늘까지 홀아비, 아니 늙은 총각으로 산다.

술 한잔을 더 할 수 있다면 눈이라도 하나 빼줄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순전히 외로움 때문이다. 빈 방으로 기어 들어갈 일이 죽는 일만큼이나 싫어진다. 그렇지만 동료들과 은밀하게 작당해서 벌여온 일들로 문득 가슴 벅찰 만큼 짜릿하고 행복해진다. 하룻밤쯤 뜬눈으로 지샌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일은 아니다. 아주 피곤해서 견딜 수 없어지면 어느 골목길에 수레를 잠시 세워두고 눈을 좀 붙이는 요령을 부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혹시 누군가에게 발각되면 나도 김승곤 그 작자처럼 귀싸대기를 얻어맞게 될까? 김승곤이나 정병억은 경찰에 신고를 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맞아야 했는지, 경찰에게 과연 곧이곧대로 실토했을까?

그날, 한적하고 어둑한 지하주차장에서 우리가 갑자기 에워싸자 정병억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제 딴에는 주먹패거리들 사이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사실을 내세우기라도 하듯 늦가을 까치독사처럼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외쳤다.

“너희들, 뭐야?”

“한마디만 여쭤봅시다.”

큰 목소리 최씨가 목청을 낮춘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넷이서 함께 에워싸고 있기는 했지만 조금은 겁이 나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따져보면 우리가 하는 일도 범죄 가운데 하나가 분명했다.

“뭘?”

“정병억 씨 맞죠? 며칠 전 새벽에 혹시 오거리 신호등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 재떨이를 꺼내 그대로 도로 위에다 탈탈 턴 적이 있지 않소?”

“그, 그건 왜?”

“있소, 없소?”

“다, 당신들 경찰인 모양인데 그, 그렇다고 해서…….”

경찰이라고 단정하면서 오히려 긴장을 풀었는지 그 순간 정은 목덜미의 힘을 스르르 풀면서 조금은 방심한 자세로 최씨 쪽을 바라보았다. 높낮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놈의 뺨이 내 뺨과 완전히 평행으로 놓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긴 팔을 뻗어 있는 힘껏 그의 뺨을 후려쳤다. 비를 맞아서 촉촉하게 젖은 탓에 습기를 머금은 진짜 천연가죽처럼 뽀독뽀독한 녀석의 뺨이 일순 내 손바닥과 강한 마찰을 일으켰다.

서너 걸음 앞으로 벌렁 나가떨어진 정병억을 최씨와 박씨가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정은 한동안 얼이 빠져버린 듯했다. ‘얼굴’은 ‘얼’이 깃드는 ‘굴(窟)’이라고 한다. 그 얼굴이 텅 비어 휑뎅그렁하게 보였다. 최씨가 그의 어깨와 잔등을 지압이라도 해주듯 가만가만 주물렀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려 처음 김승곤에게 했던 것처럼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를 그에게도 똑같이 퍼부었다.

“당장 꺼져! 쥐새끼 같은 놈아!”

정이 비척거리며 걸어가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우리도 주차장을 빠져나와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빗물에 찰박거리는 우리 네 사람의 발소리가 방금 전 정병억의 뺨을 내려치던 소리를 그대로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거칠게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 사이로 듣는 발소리야말로 그보다는 몇 배나 더 큰 소리였다.

 

 다음 페이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