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 제4회

미로

 

이미숙




"김경애 씨가 쓴 글입니다."

 아내의 담당의가 서랍에서 꺼낸 종이를 내밀었다. 영문을 몰라 나는 잠깐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글씨로 먼저 의사 표현을 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탓이었다. 그리고 보니 우리는 아내의 목소리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3개월 전에 사고를 당한 아내는 다행히 상처 회복은 빠른 편인데 말을 하지 않았다. 충격으로 인한 일종의 자폐증이라고한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아내를 집으로 퇴원시키지 않고 외과병동에서 곧장 정신과병동으로 옮겨가게 했다. 자칫하면 아내의 증상이 악화 될 수도 있다는 소리 때문이었다.

 아내는 누가 말시키는 걸 싫어하는데 남편인 내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무어라 말을 붙이면, 가령 기분은 좀 어떤지 밥은 잘 먹는지 물어보기라도 하면 느닷없이 히스테리를 일으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아파트 마당에서 아이가 노는 걸 지키고 있던 아내가 오토바이에 부딪치는 걸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은, 길을 막고 선 이삿짐 트럭 때문에 아내를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속도를 줄이며 오긴 했는데, 불쑥 나타난 아내 때문에 놀란 청년도 트럭에 부딪혀 많이 다쳤다. 이삿짐 트럭이라면 이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경비원 말로는 그 시간에 이사를 한 집이 없었다고 한다. 아마 볼일을 보러 오거나, 계약을 하러 오면서 잠깐 세워두었나 보라고 추측 할뿐이었다.

 사람이 늘 왕래하는 아파트 마당에 오토바이를 탄 청년과 아내, 그리고 뒤늦게 달려온 경비원뿐이었다는 게 나는 아내의 병명만큼이나 믿어지지가 않았다.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던 아이도 저희 엄마가 다치는 걸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글을 좀 꼼꼼히 읽어보세요."

 내가 집어든 종이를 가리키며 한마디를 더 보태고 의사는 아내의 챠트를 간호사에게 넘겼다. 그 손짓에 밀려 인사를 하고 나는 그만 밖으로 나왔다.

 눈이 부셨다. 영화관에서 나온 사람처럼 눈을 깜박거리다 고개를 꺾어 방금 내가 나온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유리창마다 햇빛이 가득한데도 나는 아주 캄캄한 곳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정원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어울려 서성이거나 나무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선가 맑은 웃음소리도 들렸다. 가벼운 우울증으로 입원한 사람도 많다고 들어서인지 일반병동 같은 분위기도 설핏 느껴지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내 고정관념으로는 추석 맞은 터미널이나 극장 앞이나 유원지가 아닌 정신과 병동이란 곳에 사람들이 이렇게 북적거린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ㄷ자 형의 오층 건물이 모두 입원실이란다. 그런데도 방이 모자라서 아내도 외과병동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병원을 상담실처럼 운영하고 있어서 정신적인 긴장을 풀기 위해 며칠씩 입원하는 사람도 많다고 그 병동을 소개한 사람은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지게 했다. 아파트 단지처럼 정신과 병동도 끝도 없이 늘어나야 될 모양이다.

 환자 수가 많은데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위안이 될 리는 없었다. 병원을 들락거리는 보호자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 나는 오히려 당혹감이 더 삭여지지 않았다.

 아내의 사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게 묻는다.

 좀 어떠세요? 퇴원 하셨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정신적인 긴장을 풀기위해 운운하지 못하고 대답이 궁해 진땀을 뺀다.

 아내도 가끔 정원으로 산책을 나오는 지 모르겠다. 아내 생각을 하자 손에 말아 쥔 종이가 쇳덩어리처럼 무거워졌다.

 정원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면 주차장이다. 차에서는 큰처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면회가 되지 않는다는 걸 듣고도 처남은 부득불 같이 오겠다고 우겨댔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동행이었을 것이다. 오는 동안 처남은 웃기는 친구 얘기도 해가며 가능한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막상 병원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많이 언짢았나보다. 차에서 나오지도 않고 의자를 뒤로 젖히며 눈부터 감아 버렸다. 그리고는 오기 전부터 했던 말을 또 했다.

 "특별히 나쁘지도 않다는데 그만 퇴원 시켜."

 큰처남과 같이 아내의 글을 읽는다는 게 내키지 않아서 나는 정원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뜸한 자리를 찾았다.

 종이를 펼쳤다. 아내의 둥근 필체가 눈에 닿는 순간 뜨거운 것이 울컥 가슴을 쳤다. 아내의 글에는 '이사하는 날'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이사 날짜를 결정하고부터 내 손엔 더욱 힘이 빠졌다. 신문지를 챙겨 들다가도 놓치기 일쑤고, 걸음걸이에도 새삼 힘이 들어갔다. 남편과 주고받는 몇 마디는 혀끝에서 종일 되새김질되었고, 머리 속에선 가끔씩 벌떼가 날았다.

 "이사 할 트럭은 알아봤어?"

 아침에 남편이 던지고 간 말이 걸레질하는 무릎 앞으로 툭 떨어졌다. 아까부터 모였다 흩어졌다 형체도 없이 생각 속을 붕붕거리며 날아다니던 말이다.

 겨우 일어나 달력 앞으로 갔다. 하나, 둘을 세는데 열 번째에 달력에 쳐 놓은 빨간 동그라미가 손가락에 닿았다. 열흘. 이사철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리 예약을 해놓는 게 좋을 것이다. 아무렴. 뭐든 미리 미리 준비를 했어야지. 나는 나를 향해 우격다짐을 해보았다.

 대답이 없는 나를 한번 힐끗 돌아보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전 같으면 내가 알아서 할텐데 무얼 그리 서두르느냐, 포장 이사를 할까 반 포장 이사를 할까 라고 한참이나 토를 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집주인의 전화를 받은 날부터 내 수다는 자취를 감추었다. 정작 해야 할 말까지도 입 속에서 빙빙 돌다 말았다.

 전에 없이 하필이면 방 타령을 하던 중이었다. 모처럼 희숙이네서 친구들이 모였던 날이다. 컴퓨터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진 희숙은 입만 벌리면 컴퓨터 얘기였다. 점치는 프로그램도 있다면서 점쟁이처럼 생년월일을 물었다. 그리고는 운세가 적힌 종이라며 서너 장을 뽑아 주었다. 먼저 받아본 영옥이가 정말 맞는다며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그냥 웃어넘기던 친구들까지 모두 생년월일을 대게 만들었다. 점치는 걸 좋아하는 친정어머니에게 싫은 표정을 잘도 했으면서도 내게 주어진 삶이 가끔 궁금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우리는 서로 돌아앉아서 각자의 운세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년의 운세가 어떻고, 말년의 재물이 어떻고 추상적인 미사여구와 한자어가 많이 섞여 있어서 현실감이 없다 싶었다. 그런데 주택부분에서, 당신만이 쉴 수 있는 방이 있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오는 게 아닌가. 비좁은 우리 집과 희숙이네의 넉넉한 공간이 비교되면서 그 구절은 유난히 내 눈에 박혔고, 집에까지 가지고 온 종이를 펼치며 방 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방이 두 개인 아파트에 시동생까지 있으니, 내 방은 고사하고 아이들 장난감 둘 곳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었다. 어디 다락방이라도 꾸밀 수 있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괜스레 입밖에 잘못 냈다가 시동생 귀에라도 들어가거나, 철모르는 아이들이 따라 할까봐 그 동안 방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점괘를 핑계 삼아 다음에 이사갈 때는 내 방이 꼭 있어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던 참이었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반갑게 인사를 하던 남편의 얼굴이 차츰 굳어졌다. 겨우 인사를 차리고 전화를 끊은 남편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창가로 가 앉았다. 아랫입술을 말아 무는 건 남편이 심각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한바탕 꺼내 놓은 투정이 민망해 컴퓨터 종이를 치우며 무슨 일인가 물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더 내라고 했단다.

 해마다 오르는 전세 값은 일년동안의 저금 액수와는 도무지 상관이 없다.

 '아파트 전세 값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해 오르는 건지 모르겠어. 전세 값이 그렇게 오 르면 월급 타서 몽땅 내놓고 굶고 앉았으라는 말인데.'

 나는 옆집에 살던 용이네가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위로랍시고 그렇게 떠들었던 걸 후회했다. 당하고 보니, 그런 소리는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용이 엄마도 그때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리고는 일반주택의 이층으로 옮겨갔다.

 방금까지 주고받았던 방 많은 집 얘기는 잔뜩 무안만 탄 채 꼬리를 감추었고, 남편은 내게 더 이상 무리할 수 없으니 복덕방에 가서 다른 집을 찾아보라고 했다.

 희망부동산, 제일부동산, 행운중개사 사무소......

 나는 광고 책자에 나오는 부동산에다 전화를 해보고, 가까운 곳은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어디든 똑같았다. 부동산에 나와 있는 아파트는 모두 백화점 물건처럼 정찰제였다. 백화점 점원에게 가격 흥정을 하는 건 소용없는 짓이다. 마네킹처럼 상품을 들고 서 있는 그들은 물건의 주인이 아닌 것이다. 가격표를 보고 내 주머니 속을 들여다보고 그리고 살 건지 말 건지 결정하면 그만이었다. 시장 골목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한 주먹이라도 더 집어 줄 수 있는 건 함지박 하나의 물건이라도 당당한 주인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부동산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으로 상품들만 죽 보여줄 뿐이었고, 컴퓨터 속 주인들은 부동산의 '시세'만 고집했다. 나는 흥정해야 할 '시세'의 정체를 만나지 못하고 여러 날을 그냥 돌아오곤 했다.

 "오늘은 좀 알아 봤어?"

 퇴근한 남편이 인사처럼 묻는 말이 차츰 나에게 고문이 되었고, 아파트를 몇 번씩 옮겨가며 평수를 늘리고 돈도 버는 여자들의 수완이 점점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흉을 보았던 그네들이 위대해 보이는 느낌은 참으로 고약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따라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잔뜩 시세만 올려놓고 그들은 이제 컴퓨터 속으로 들어앉아 나오지 않았다. 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끼리는 통하면서 나에게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건지도 몰랐다. 시댁의 방 한 칸에 짐 풀고 아이 낳고 살면서, 아파트 평수니 시세니 그런 말은 어쩐지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것처럼 마냥 둔하게 사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방은 두 개지만 거실이 좀 작은 집으로 평수를 줄여 가는 수밖에 없다고 혼자 마음을 잡아가고 있던 날 밤에 남편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무리를 하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마음이 바뀐 것이다.

 "야, 분가한 지 일 년만에 어떻게 집에 손을 벌리냐?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하니까 할 수 없 지 뭐. 그래? 인구네 전화번호 알고 있니? 응. 불러봐."

 남편의 손짓에 메모지와 볼펜을 건네주고 거실로 나온 나는 발에 밟히는 장난감을 천천히 주어 담았다.

 "당신도 김인구 알지?"

 남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동창회 가족 모임 때 아이들이 또래라서 같이 잘 어울려 지냈던 생각이 났다.

 김인구 씨네는 작년 겨울에 대전 지사로 전근을 가면서 그 곳에는 회사 사택이 있어서 서울 집은 전세를 놓고 갔다. 그 집에는 여유가 좀 있을 것 같아서 돈을 빌리려고 전화를 했더니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 살라고 했단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요?"

 "마침 그 사람들이 이사를 나간대. 복덕방에 내놓고 어쩌고 하느니 잘 됐다고 하네."

 다행이란 생각은 순간뿐이고 맥이 탁 풀리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비슷한 형편에 그 사람들은 어떻게 벌써 집까지 장만했을까? 달갑지 않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선배 언니가 집 장만을 위해 얼마나 피나게 줄이고 살았는지, 그 이야길 들으며 부끄러워했던 기억은 저만치 달아나 버리고 시댁, 친정 어느 쪽에서 도와준 걸까? 그게 아니면 어떤 기이한 방법이 동원되었을까? 등등, 은혜를 뭐로 갚는 생각만 자꾸 튀어나오는 것이다.

 김인구 씨네는 대전에 몇 년 더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서울로 올라올 때 비워주기로 하고 이사 날짜를 잡았다.

 나는 다시 광고책자를 집어들었다. 종이가 접혀져 있는 곳엔 어김없이 부동산 광고가 들어 있었다. 접혀진 종이를 하나씩 펴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다. 가슴속에서 서걱서걱 모래바람이 일었다. 종이쪽을 아무리 눌러 펴보아도 복덕방을 다니며 구겨진 내 마음은 그대로였다.

 이삿짐센터 광고도 꽤 많이 실려 있었다. 상호들이 빽빽한 책장을 건성 넘기다가 나는 도로 앞장으로 돌아왔다. 이삿짐센터도 특별한 곳이 없을 것이다. 그들도 겉으로는 모두 공정가격이라는 걸 만들어 가지고 있을 테니까.

 전화를 했다.

 "이사 할 건데요. 계약은 어떻게 하나요?"

 "네. 날짜와 시간 말씀하세요."

 "전화로도 계약이 되나요?"

 "그럼요. 필요하시면 우리가 나가서 계약서도 써드리지요."

 다른 데보다 만원은 더 싸다고 거듭 생색을 내는 전화를 끊고, 연말이라서 이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나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그 이삿짐센터에서 이사 날짜를 확인하는 전화가 왔었다.

 

 이삿날이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 살림을 묶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가지와 이불을 다 묶은 남편이 전화기를 떼도 되는가 물었다.

 "잠깐만요."

 그 동안 성가시게도 확인 전화를 해오더니 당일 날엔 어째 조용하다 싶어서 나는 이삿짐센터로 전화를 했다.

 "오늘 한시에 이사하기로 한 사람인데요."

 "어디요?"

 "908동요."

 "예."

 "한 시간 일찍 12시에 좀 오실 수 있어요?"

 짐은 대충 꾸려졌고, 12시 정도면 이사갈 집에도 짐이 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2시에 시작해도 짐 내리고 싣고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 빠른 건 아니다. 볕 짧은 오후라서 나는 서두르고 싶었다.

 "12시부터는 점심시간이라 안 돼요."

 "그래요? 그럼 한시까지는 늦지 않도록 와주세요."

 남편이 전화기를 받아 상자 속에 넣었다. 시동생 친구가 도와준다고 들렸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한참 손이 가는 세 살, 다섯 살이니 온종일 이삿짐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내 일손을 막을 것이다. 옆 동 친구에게 하루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아침에 잠깐 비추었던 햇살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하늘은 눈이 올 것처럼 무거운 얼굴이었다.

 "눈이 온다는데 미끄러우면 어쩌니. 짐도 젖을 테고."

 친정어머니는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눈 걱정을 하셨다. 어제부터 일기예보를 보고 또 보셨을 것이다.

 "비온다는 것 보다 낫잖아요."

 눈이라도 펑펑 쏟아졌으면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전화 좀 해보지."

 화분을 들고 내려가며 남편이 말했다. 자잘한 물건은 미리 옮겨 놓아야 한다며 시작한 게 벌써 짐이 아래로 꽤 많이 내려갔다. 잔디밭 앞으로 올망졸망 살림이 늘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괜스레 조바심이 나던 터였다.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서 신문을 뒤적이는 남편에게 재촉까지 해대며 일찍 돌아왔는데, 벌써 와 있을 것 같던 이삿짐 트럭은 약속시간보다 30분이 넘도록 꿩 구어 먹은 소식이었다. 전화기는 벌써 짐 속으로 들어앉았으니 공중전화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추워서 행인들 모두 종종 걸음을 쳤다. 두껍게 내려앉은 하늘이 더 걱정이었다.

 "여기 9단지인데요. 트럭이 아직 안 와서요."

 "어디라고요?"

 "9단지요. 908동요."

 "그런데요?"

 "한시가 넘었는데 트럭이 안 와서요."

 "오늘 한시 이사는 없는데."

 "네?"

 "언제 계약했습니까?"

 "언제 계약 했느냐고요? 그럼 아직 안 떠났어요?"

 그럴 리가. 아까도 통화했는데......

 "아침에도 전활 받았잖아요."

 그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노상 들락날락 하는 데라서 누가 받았는 지 알 수가 있나."

 전화기 밖으로, 아침에 908동 전화 받은 사람 있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열흘 동안 여섯 번은 더 통화를 했는데. 이사할 때 쓰라고 미리 바구니 가져다주겠다며 기다리라던 전화, 예상보다 일이 늦게 끝나서 오지 못했다는 미안하다는 전화. 그리고 또 세상에.

 "여보세요. 전화 받은 사람 없다는데요."

 "그럼, 열흘 전에 전화 계약 받은 사람은요? 그 사람을 바꿔줘요."

 나는 비명을 삼켰다. 남편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짐을 내리고 있는 시동생과 친구의 얼굴도.

 "아니, 이 아줌마가 누구하고 통화를 했다고 큰소리부터 치나. 이봐요. 내가 여기 사장인데

 오늘 계약 올라 있는 게 없단 말예요."

 "전화 받는 사람이 따로 있을 거 아녜요."

 "내가 받는다니까요. 이거 원 참."

 입안이 말랐다. 목이 따가웠다.

 "사장님이 혼자 다 해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요."

 사람들이 무어라 말참견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그 사람 지금 없어요. 말도 않고 사라져서 나도 지금 찾고 있어요. 그 놈이 여기다 안 적 어 놓았으니 내가 알 수가 있나."

 이게 무슨 일일까? 내려놓은 이삿짐은?

 "짐 싸서 내려놓고 있는 중인데 어떡해요? 지금 당장 차 보내 줘요."

 "금방은 곤란해요."

 아아. 내 꼴이 이게 뭐람.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람.

 형편에 맞는 전세 집을 구하지 못하고 부동산을 나올 때보다 더 캄캄했다.

 "와서 얘기해요! 책임지라고요."

 달리 매달릴 곳이 없었다. 비명을 지르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추웠다. 종종걸음도 치지 못하고 풍덩풍덩 느린 걸음을 떼 놓았다. 하늘은 자꾸 낮아져서 신발 코에 무겁게 달라붙었다.

 그 사이 이삿짐은 더 많이 내려와 있었다. 스탠드를 들고 오는 남편에게 휘청휘청 다가갔다. 입안이 탔다.

 "나랑 전화로 계약 한 사람이 사라지고 없어서 모른대요."

 둘러 서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한순간 멍하게 굳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사람도 없다. 내 표정만으로도 사태를 짐작하고 남을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묻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변명도 붙이지 못했다. 여섯 번도 넘게 통화했었다는 사실도 쓸모없게 된 것이다.

 자꾸만 속이 우두둑 떨렸다. 어느새 한 시간이 더 흘렀다. 나는 문득 옆 동에서 이삿짐을 내리던 트럭이 생각났다.

 옆 동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트럭이 아직 거기 있었다.

 "아저씨, 여기 다 끝냈으면 우리 짐 좀 실어줘요. 가까우니까 오래 안 걸려요. 계약을 했는 데, 이제 와서 모른 대요. 대여섯 번도 더 통화를 했는데......"

 일손을 놓고 모두 울먹이는 나를 쳐다보았다.

 "짐도 거의 다 내렸어요. 큰짐만 나오면 돼요. 늦어서 다른 데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 그래 요."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나는 계속 지껄여댔다.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게 아녜요. 회사에 전화 해봐야 돼요."

 트럭 위에서 청년이 딱하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남편이 다가왔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트럭 위에서 내려 온 청년이 남편과 얘기를 나누더니 둘이서 전화박스 쪽으로 걸어갔다.

 "됐으니까 가 있어."

 전화를 하고 돌아온 남편은, 아직도 그 빈 트럭 곁에서 주춤거리고 서 있는 나에게 곤돌라 사용증을 달라고 했다. 일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곤돌라를 타고 장롱이 내려가는데 트럭 한 대가 와서 멈추었다.

 "아줌마, 사람 오라고 해놓고 다른 곳에다 일을 하면 어떡해요?"

 두꺼운 밤색 잠바를 입은 사장이 대뜸 나를 탓했다.

 후드득 가슴이 터졌다.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장 모르게 계약을 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내가 그 수법에 걸린 거 같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이미 들은 터였다.

 내가 아까 전화했을 때라도 어떻게 처리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장은 정말 그런 일도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걸까? 금방은 곤란하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자기네 헛수고만 따지려들다니.

 "나랑 계약한 사람 데려와요. 사람을 이렇게 병신 만들어도 되는 거예요?"

 내 목소리가 허공으로 갈라졌다.

 "누가 병신을 만들었다고 이 아줌마가 생떼야?"

 사장도 언성을 높였고, 같이 온 일꾼 두 사람은 괜스레 집안을 성큼성큼 돌아 다녔다. 입씨름을 막는 사람도 없었다. 각자 자기일 하느라 바쁜 방관자들뿐이다.

 뒤늦게 올라온 남편이 이미 시작했으니 그냥 가시라고 한마디했다.

 "한창 바쁠 땐데 말예요. 일 나갔던 사람까지 불러 왔다고요."

 사장은 어쩔 수 없이 궁시렁 거리며 돌아섰다.

 그가 뒷모습을 보이자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하고 싶은 말이, 해야 할 말이 아직 남았는데 가슴만 답답하고 선뜻 입이 열리지 않았다.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 사람 찾아놔요."

 사장이 아래로 내려갔을 때에야 나는 갈라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전화 받은 사람도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사람들은 트럭을 타고 떠났다.

 "시끄러워. 일을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돼? 똑같은 사람들끼리......"

 남편이 버럭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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