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와는 달리 늦도록 눈은 내리지 않았고, 급하게 붙잡은 이삿짐센터 청년들은 손놀림이 빨랐다. 날이 아주 어둡기 전에 이사 일은 끝이 났다.

 친구네 애들과 실컷 뛰고 놀았을 아이들은 그 사이에 바뀐 집을 낯설어 할 틈도 없이 오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다. 큰 물건들이 대충 자리를 잡았으니 일을 다 끝냈다는 생각이 드는 지 남편도 TV 앞에 길게 누웠다.

 당장 내일 아침 밥 끓여 먹을 부엌살림을 풀어야 하는데 나는 구석구석 쌓인 보따리를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울고 난 끝처럼 끄윽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딜 가나 비슷한구조의 아파트라 해도 등대고 누운 잠자리가 낯설고 올려다 본 천장이 생경했다. 장롱 옆에 기대놓은 짐 보따리들이 키 작은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다시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가위에 눌려 가슴을 움켜쥔 채 일어나 앉았다. 설핏 잠이 들었었나보다. 커다란 농구화가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꿈속이 선명했다.

 남편은 여전히 TV 앞에 누워 있었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며칠을 울고 난 것처럼 목소리가 잠겨 나왔다.

 "누굴?"

 남편이 고갤 들었다.

 "이삿짐센터 사람들."

 "관둬."

 남편이 말을 끊었다. 벌써 다 지나간 일이고,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정이다. 돌아서는데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래. 내가 잘못 한 거야. 전화로만 하는 게 아니었어. 천지사방에 그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직접 갔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거야.

 뒤죽박죽 엉켜드는 생각을 밀쳐내며 나는 다시 아무 것도 없는 벽을 보며 누웠다.

 

 남편은 출근을 했고, 아이들은 책 더미 사이를 이리 저리 굴러다녔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베란다 창으로, 건너편 아파트 일층 유리창에 색종이를 접어 붙인 놀이 방이 보였다. 아이들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 손을 모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눈발이 풀풀 성기게 날았다. 어제 온다던 눈이 늦었다. 아이들은 손바닥으로 눈송이를 쫓으며 좋아했다.

 아이들을 놀이 방에 데려다 놓고 오니 열려 있던 베란다 유리창 밖으로 송이 굵은 눈송이가 가득 가득 떨어졌다. 문을 닫으러 가까이 가니 발 아래로 쏟아지는 눈발이 내 몸까지 휩싸고 떨어질 것처럼 현기증을 일구었다.

 짐 꾸러미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없어도 나는 여전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귀에서는 계속 전화벨 소리만 울렸다. 밤새 전화 거는 꿈만 꾸었다. 누군가와 다툰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계속 설명하려고 애를 쓴 것도 같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누굴까? 누굴 향해 소리를 쳐야할까?

 나는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잡았다.

 "사장님 바꿔 주세요."

 "전데요."

 "어제 이사한 사람예요. 전화 받았던 사람 찾아놓으세요. 어떻게 할건 가는 생각 해보고다시 전화 드리죠. 내일 모레면 새해라서 미리 말씀드리는데요. 운수업 하는 집에 새해부 터 재수없게스리 여자가 어쩌구 하면서 얼버무릴 생각은 하지 마세요. 나는 지금 아무 일 도 할 수가 없어요. "

 "......"

 "그리고 어제 아침에 전화 받은 사람도 분명 있을 거예요."

 "이사 잘 했잖아요?"

 "아뇨. 그 사람들 찾으세요."

 사장의 대꾸가 없다.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하고픈 말은 다 했나? 이런 세상에. 사업하는 사람들 재수까지 생각해주고 있는 꼴이라니.

 "내가 사과하죠. 한번만 참으세요."

 의외의 반응이었다. 이 사람이 어제 왔던 그 사람인가? 잠깐 혼동이 왔다. 사장의 사과는 필요에 의한 제스처일 뿐이고, 나는 여전히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보는 거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간신히 나를 다시 부추겼다.

 "아뇨. 난 그 사람들 꼭 찾아야겠어요."

 

 "얘, 이제 그만둬. 막일하는 사람들 잘못 건드려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분하지만 네 가 참아."

 어제는 소비자센터에 신고라도 해주겠다며 펄펄 뛰던 친구는 사장이 사과했다니까 됐단다.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사장을 따라왔던 두 남자의 우락부락한 모습이 떠올랐다.일부러 그런 사람들만 골라 데리고 온 걸까? 겉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 사람들이었다.

 "요즘은 도둑들이 더 당당한 거 모르니? 저번에 신문에도 났더라. 대낮에 혼자 있는 주부 를 위협해서 가진 거 다 빼앗아 간 도둑이 며칠 후에 다시 나타나서는 그 주부에게 인분 을 먹였대. 패물에 가짜가 많아서 성질 났다고."

 형식적인 사과로 나를 주저앉힐 의도였다면 사장이 이겼다. 나는 그쯤에서 또 맥이 풀렸다. 곰곰 생각해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사람을 만나면 또 무어라 할건가?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 꾸러미가 발에 걸렸다. 나는 발에 걸린 책 한 권을 툭 집어던졌다. 그 책은 눈 쏟아지는 베란다 유리창 앞으로 엎으러 졌다. 한 권을 더 던졌다. 이번엔 유리창에 부딪쳐 툭 소리가 났다. 책 더미를 우르르 쓰러트렸다.

 그래. 이 책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상적인 수식어로 가득 찬 저 책들을, 내 발목을 잡는 저 책들을 펑펑 쏟아지는 눈 속으로 집어던지는 거야. 산타할아버지가 눈썰매를 타고 온다고 꿈을 꾸는 동화책도.

 손가락에 뻣뻣하게 힘이 솟았다. 귓속에서는 스륵 사라지는 전화벨 소리 대신 쨍그랑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한참이나 거실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어느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우욱, 우욱, 속으로만 휘돌던 울음소리가 덩어리로 커져 넘어오지도 못했다. 절망이 온 몸을 감았다.

 

 새해가 되었지만 나는 전화를 다시 하지 못했다. 사장은 다시 건성으로 사과를 할 것이고,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내 속의 분노는 종종 살갗을 찌르며 솟아 나오려 했으나 또 금방 그만큼의 무력감이 따라나와 나를 가두곤 했다.

 나는 가끔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정말 있었을까? 내가 전화를 잘못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내의 글을 읽고 나자 아파트 경비원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애 엄마는 저기 넘어져 있는데, 아이는 나중에 놀이터에서 나오더라고요."

 사고가 나던 날, 아내를 병원으로 실려 보냈다고 연락을 해준 경비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했던 말이다. 모두 차 길로 나서는 아이를 막으려다가 사고가 난 걸로 추측하고 있을 때였다.

 '김경애 씨가 사고를 당했다고 하셨죠? 이 글을 좀 꼼꼼히 읽어보세요.'

 의사가 했던 말이 후드득 가슴을 쳤다.

 그럼 일부러? 아냐. 그럴 리 없어. 사고였어.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물론 사고였다. 어떻게 왜 일어난 사고인지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얼 그리 열심히 읽어?"

 큰처남이 밖에 나와 있었다. 나는 별 수 없이 아내의 글을 처남에게 건네주었다.

 큰처남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뜬금없이 정신병원에 들어앉은 동생 때문에 잔뜩 내 눈치를 보던 처남이다. 친가 외가 족보 아무리 뒤져보아도 정신 나갔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소리를 열 번쯤은 했을 것이다. 처남의 눈가가 붉어지는 걸 모르는 체 나는 발끝으로 땅을 차며 서성거렸다.

 처남도 끄윽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는 병신같이 그까짓 일로 정신을 놓느냐고 혼잣말을 했다. 허긴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 강심장 아니고는 어디 제 정신 붙들고 있겠느냐는 소리도 덧붙였다.

 "큰소리 치는 사장 놈을 그 날 경애 앞에서 좀 두들겨 패주지 그랬어. 사내들이 빙 둘러서 서 멀쩡한 앨 그렇게 만들어?"

 처남의 입에서 기어코 힐난이 터져 나왔다.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담배를 든 내 손끝이 가랑잎처럼 후둘거렸다.

 "그 날 아파트 마당에 있었다는 트럭이 그 사람들이었나?"

 처남은 아내의 사고 원인을 찾았다는 표정이었으나 그 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우선 광고책자부터 찾기 시작했다.

 서두르는 손길에 그것도 쉽게 잡혀들지 않았다. 아내가 쓰던 가계부와 전화번호부를 펼쳐 보았으나 용용 이삿짐센터의 전화번호는 없었다. 방바닥 가득 서랍을 빼어 놓다가 나는 아내의 화장대 서랍 바닥에서 그 광고 책자를 찾아냈다. 서랍 뒤로 넘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555-2424

 2424는 아내가 쳐둔 동그라미 속에서 웃고 있었다. 힘들여 찾을 필요도 없었던 쉬운 번호였다.

 "사람이 바뀌지나 않았는지 모르지. 업종도 금방금방 변하고 주인도 하도 잘 바뀌는 세상

 이라서."

 아내와 통화를 했던 전화 속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내 말에 처남은 찬성도 반대도 없이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나는 광고를 보면서 사장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전화로 위치를 물어 찾아가 만난 사장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날 건성으로 보아 넘긴 탓이었다. 나는 그에게 언제부터 이 회사를 운영했는지 물었다. 다행히 사장은 이곳에서 사 년째란다.

 "8개월 전에 이사를 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오셨느냐는 사장의 질문에 대답이라고 불쑥 그렇게 던져놓고는 입안이 썼다. 마주 앉고 보니 막상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순서가 잡히지 않았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요."

 사장은 금방 관심 밖의 얼굴이 되었다.

 "누굴......"

 일어설 차비를 차리며 건성으로 물었다.

 "아내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병동이죠. 아내의 글에서."

 설명을 늘어놓는 나를 사장은 외계인 보듯 했다. 뚱딴지 같이 정신병원이라니.

 "아내를 병원에서 나오게 하려면 그 사람부터 찾아야 합니다."

 사장도 우선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우선 발뺌할 궁리부터 했다.

 나는 다시 설명을 했다. 처남이 왔더라면 아마 설명 대신 사장의 멱살부터 잡았을 것이다.물론 사장도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정신병원에서 자신의 이삿짐센터를 기억하고 있다는 여자의 얘기에 그는 좀 겁을 먹은 듯 했다.

 "죄송합니다. 여러 사람이 들락거리다보니. 이거 원 다 뜨내기들이라서. 그때 사모님이 전 화를 하셨기에 제가 사과를 드렸죠."

 말꼬리를 잡히지 않으려는 피의자처럼 갑자기 신중해졌다. 그의 기억 속으로 아내가 떠오른 것이다. 쓴웃음이 나왔다. 그가 내게 입에 발린 사과를 할 필요는 없었다. 아내에게 했던 것처럼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게 나을 뻔했다. 남의 사업장에 와서 뚱딴지처럼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그러면 내 태도도 달라졌을 지 모른다. 처남의 말대로 사장에게 달려들어 다짜고짜 주먹이라도 날릴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짐짓 점잖게 설명만 늘어놓고 있는 내 꼴이 한심스러워 소리라도 벌컥 벌컥 지를 수 는 있을 것이다.

 사장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주소 하나를 적어 주었다. 그 이후로 유종만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으며 자신도 피해자임을 거듭 거듭 강조했다. 아내와의 통화 속에만 존재하던 사람의 이름이 유종만이란다. 사장은 그를 줄곧 유가 놈이라고 불렀다. 막일하는 사람이라 정처도 없고, 책임감이 없다며 자기 어려움을 하소연하느라 바빴다.

 

 유종만은 사장이 적어준 주소에 살고 있지 않았다. 동사무소에 들려서 그가 이사간 곳을 다시 찾아야 했다. 동사무소 직원에게 그를 왜 찾아야 하는 지를 말하면서 나는 부풀어오르는 분노를 참느라 애를 먹었다.

 낯선 동네의 입구에 서서 유종만의 주소와 약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꼭 미로게임이 그려진 종이판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동네 길을 기웃거리며 복잡한 미로의 막다른 벽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큰 사냥감을 상상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미로에 머리를 부딪치고 돌아설 때마다 꼬리를 반짝 치켜든 생쥐 그림만 자꾸 눈에 밟혔다.

 "혼자 몸이니 어디로 갔는지 아나요. 일거리를 쫓아 다닐텐데."

 겨우 찾아낸 유종만의 셋집에서 주인 여자의 심드렁한 대꾸만 듣고 말았다. 이제 더 물어 볼 곳도 없었다.

 유종만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아내의 담당의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그 사람이 꼭 필요하다면 대역이라도 쓸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대역을 쓸 수 있다는 건 그리 중요치 않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나도 문득 유종만을 찾는 일에 회의를 느꼈다.

 나는 어쩌면 아내의 마음을 병들게 한 허물을 유종만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유종만과의 계약이 확실히 있었던 일임을 확인시켜주고, 그가 아내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한다고 해서 아내의 말문이 트일 거라는 생각 또한 비겁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아내는 언제나 말을 하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아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유종만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구겨 쥐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돌아선 계단 끝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 동안 아내가 혼자 앓았던 아픔이, 아내가 입원하고 있는 병동 사람들이 아픔을 삭이는 신음소리가 내 가슴 밑바닥에서 회오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끄윽 끄윽 울기 시작했다. 아내의 목소리로.■

 ([청주문학] 1996년 여름호 수록)

 

이미숙(소설가) -------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1959년생.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모여라]가 당선되면서 등단. 이메일 lmisook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