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 제6회

깍 새

박철(시인, 소설가)

 



8 년만의 귀향, 아니 귀국에서 내가 얻은 소득은 한강물이 조금 맑아졌다는 것, 그리고 내 아버지의 별칭이 '깍새'였다는 것---, 이 두 가지였다.

 

" 깍새 아들 아녀 ? "

분명히 구멍가게에 들어선 뒤 한동안은 샤시로 된 출입문을 통해 거리를 내다볼 수 있었는데 어느샌가 유리창엔 시퍼런 커튼이 쳐져 있었다. 때문에 나는 문을 밀고 나서며 그동안 길 위에 소복히, 하얗게 내린 눈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어둠에서 대하는 하얀 세상도 그러려니와 생각해 보면 얼추 10여 년만에 대하는 눈이었다.

문을 열자 어둠과 함께 한기가 매몰차게 밀려 들어왔다. 이미 눈발은 그쳤지만 나는 취기를 가다듬으면서도 얼른 문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꿈결처럼 다가서며 하얗게 펼쳐진 골목길은 차마 범할 수가 없어서 성큼 한발작을 내딛기에도 왠지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그렇게 어중간한 몸짓으로 문밖을 가늠하고 있을 때였다. 등뒤에서, 누군가의 그런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 깍재이 아들 아녀?----- "

나는 처음 그 소리를 그렇게도 들었었다. 그러나 문밖을 나서고 설레던 마음을 다스리며 그 말이 깍쟁이가 아닌 깍새라는 발음이었다는데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구멍가게의 방안에서 속삭이는 말투였지만 작은 그 소리는 희미한 백열구 아래의 실내를 울리고 곧 하얀눈이 쌓인 바깥 세상을 온통 흔들어 놓을 만큼 은밀하고 확실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때 구멍가게를 나서는 사람은 나 혼자였으므로 그 말이 내게 던져진, 나를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알았을 뿐이었다. 깍새라는 말이 실제로 야박스런 심성의 사람을 일컽는 깍쟁이 비슷한 말이던지 아니면 어떤 이의 이름이 꺽쇠 정도 된다든지, 아니면 비슷한 발음의 조류(鳥類)의 이름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 마을이 크게 변한 것이 없네요."

비좁은 통로 옆에 마련된 간이식탁을 앞에 두고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골목길을 따라서 유리창에 하나둘 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여주인은 안으로 난 방안에서 팔베개로 텔레비젼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엉거주춤 자리를 잡은 뒤 두리번거리다가 술을 청하자 중늙은이의 그 여주인은 엉금엉금 기어 나와 맥주 두 병을 땄다. 그녀의 헐렁한 몸배바지가 진열대를 지나치면서 아이들의 과자봉지 두 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가게 한가운데에는 여름날을 지나온 끈끈이풀이 아직 날파리의 유골들을 매단 채 늘어져 있었다.

" 글쎄요. 나도 여기에 터 잡은 지 20년이 되지만 뭐, 거기서 거기지. 저 공항 활주로 때문에 여긴 개발이 안된데요. 날씨가 어째 찌뿌등 하니 눈이라도 오실라나. "

여주인이 흑갈색 샤시문에 코를 박듯 얼굴을 디밀다가 돌아서 방으로 향했다.

" 공항이 옮겨진다잖아요."

나는 훅, 하고 약한 입김으로 맥주거품을 유리잔 밖으로 밀어냈다.

" 어느 세월에. 글쎄, 나 저 세상 갔다가 돌아올 땐 그 비행장으로 올려 나 하하."

여주인은 자신이 얘기해 놓고 뭐가 재미있는지 호탕하게 웃어제꼈다. 나는 맥주잔을 채우며 그건 나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방문 이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귀국은 꼭 그 신공항으로 입국을 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저기 방화동서 김포읍까지 죄다 아파트가 들어섰잖수. 그런데 이곳만 안된데요. 능말 쪽은 전철이 들어오면서 한꺼번에 땅값이 서른 배가 올라 사람들이 난리가 나고......"

여주인은 방안에 엉덩이를 디밀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손바닥으로 무릎 깨를 쓱쓱 문질렀다. 관절이 시린 모양이었다.

" 그래도 서울서 이만큼 맑은 공기에 논바닥이라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쉽겠어요.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에."

" 공기는 무슨 얼어죽을 공기. 먹고 살기 바쁜데 공기는 맑아서 뭐해요.돈이 최고지. 요즘은 돈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잖아요. 그리고 여기도 저 강화로 원당으로 차가 하도 다녀서 공기가 옛날 같지가 않아요. 또 논바닥은 제 논바닥인가. 모조리 타지 사람들 차지 아녜요. 그런데...... 여기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우....."

그녀는 엉덩이를 들지 못한 채 목을 약간 빼서 등진 나를 바라보았다.

" 네. 한 25년 전에 여기에 살았습니다."

" 그래요 ?그럼 여기 사람이네에."

그녀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목청을 길게 뽑았다.

" 얼마 살지 않아 이사를 갔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제가 여길 떠날 때 여덟 살이었거든요. 하지만 동네는 내가 기억하는 것하고 별반 차이가 없어보여요. 집은 모두 새로 지은 것이지만요. 내가 어렸을 때 저기 산 아래 큰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아직 있나요 ? "

" 웃말 말이요? 그럼요. 두 그루가 아직 있어요."

여주인은 자신있게 말했다.

" 근데 그 터에 왠 부자가 들어와서 집 세 채를 몽땅 부수고 새집을 짓더니 은행나무까지 담을 쳤지 뭐유. 떠억하니 보긴 좋더라만 한 여름철에도 그 집 셰파트 짖는 통에 사람들이 그늘 밑에도 못가요."

" 아, 그래요."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은행나무.

내가 시드니 근교 파라마타숲에 살면서도 가끔씩 떠올리던 그 은행나무였다. 이민 생활 10년, 억울하고 답답하고 지칠 때마다 나는 천연림을 굽어도는 파라마타 강가를 걸었다. 마을의 두 배 쯤 되는 강변 공원엔 온통 잉꼬새와 낮설은 나무들의 천지였다. 강을 거슬러 십여 분 걷다보면 수령이 족히 500년은 되어 보이는 유카리나무가 하나 나왔다. 나는 그 나무 밑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생각 저 생각 돌다 보면 어린시절 그 큰 은행나무가 떠오르곤 하였다.

초등학교 1학년. 오전반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차례 언덕을 올라서야 한다. 한겨울엔 아이들이 몰려가 연을 날리던 푸른 언덕. 소나무숲 주위엔 듬성듬성 묘지가 놓여 있고 김포 벌판과 서해 바다와 하늘과 구름이 와 닿는 곳이었다. 언덕에 올라서면 마을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예배당의 십자가와 다음에 그 은행나무였다. 수업을 마치면 파종소리가 다 떠나기도 전에 우리는 언덕으로 내달았다. 그리고 바람을 등에 지고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우리는 마을을 한번 굽어보았다.

" 와, 저기 뭔일 났나부다."

초등학교 일 학년이 뭘 알았겠는가. 은행나무 아래 마을 사람이 떼로 몰려있는 꼴을 보고 먼저 소리친 것은 바로 나였다. 우리는 냅다 언덕을 달려 내려가 은행나무로 향했다. 그리고 게막 치듯 둘러싼 어른들의 바지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이 싸우는 중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혀를 차는 소리가 귓전에 와 박혔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때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손등으로 코를 훔쳐가며 머리통을 디밀었다. 그리고 나는 어깨에서 가방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그만 그 자리에 멈추어서고 말았다.

한 사내가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배를 움켜쥐고 은행나무에 기대어 앉았는데, 그게,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앞에 선 덩치 큰 사내였다.

"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명 재촉을 하네."

아버지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그 남자는 자꾸 앞으로 수그러드는 아버지의 가슴에 발길질을 해댔다. 사내의 거센 발길이 올려질 때마다 아버지는 짚단이 흔들리듯 흐느적거리며 상체가 은행나무 아름드리에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 으으, 으으으 "

내 귀에도 들릴 듯 말 듯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바닥에 깔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말 없이 그런 신음소리만 가늘게 뽑아내며 고개를 숙인 채매를 맞았다.

나는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도망을 치면 곁에 있는 아이들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돌아서지 못하고 침만 꿀꺽 삼키며 앞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두어 발치씩 물러선 어른들도 한숨만 토해낼 뿐 누구 하나 나서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사내 곁엔 여자도 있었다. 나이든 여자였다. 사내보다 더 씩씩대며 눈을 부라리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휙 몸을 돌렸다. 나는 그 시선이 나에게 오는 것으로 알고 슬며시 몸을 숨겼다.

" 도사 이 년 어디 있어. 이 년도 죽여야 되! "

맞다. 여자는 곧 둘러선 사람들을 뚫고 우리 집 방향으로 내달았는데 그녀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었다. 도사 이 년 어디 있어. 그녀는 어머니를 찾아나선 것이었다.

그날 그 사내는 집성촌인 마을의 권씨 일가 중 한사람이었다. 여럿 되는 그 집안 젊은이 중의 한 사람이었다. 기억하건데 추석 명절 때면 열리던 마을 콩쿨대회에서 당수도 시범을 보이던 사람이던가 아니면 사회를 보던 사람이던가 둘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 마을 사람들이 많이 떠났지요 ? "

나는 마을 사정을 아는 양 가벼운 목소리를 내보였다. 창 밖이 어두워 지고 있을 무렵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더욱 쓸쓸하였다.

" 그렇지요. 우리네 들어올 때만해도 벌써 옛날이예요. 마을은 변하는 게 없는데 사람은 죄 갈렸지 뭐유. 이젠 이곳도 앞뒷집을 몰라요."

" 권씨네도 많이 이사를 갔나요 ?"

" 그럼요. 몇 집 안돼요. 옛날 권씨지 누가 있간요."

아, 그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구나. 동짓달에나 겨우 맛을 보던 쌀엿을 한여름에도 입에 물고 다니는 아이들. 그들은 그 권씨네 아이들 뿐이었다. 깊은 광 시원한 항아리 속에 엿을 담아놓고 사계절 없이 군것질을 하던 아이들이 권씨 문중의 일가붙이들이었다. 그날, 그러니까 아버지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곤죽이 되도록 매를 맞고 나는 끝내 산길을 따라 언덕으로 되돌아갔다가 해가 져서 돌아온 날 저녁, 나는 문간을 들어서며 어머니의 감아드는 흐느낌을 들었다.

" 그러게 내가 뭐라했어요. 거기 붙여 먹으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 했잖아요. 돌간(채석장) 밑에라도 갈아서 먹자니까 영주애비, 영주애비 찾다가 끝내 이 모양 아니예요. 친구는 무슨 얼어죽을 친구야. 남은 생각도 않는데에. 누가 그 고집 모른다할까봐 맛뵈줄려고 그랬어요. 이게 무슨 꼴이에요 이게. 아휴, 진짜 못살겠어 못살겠어. 내말만 들었어도...... "

알만한 일이었다. 벌써 몇 차례 집을 찾아와 법석을 떨던 얘기였다. 그날 아버지에게 매를 가하던 사내의 곁에 섰던 여자는 사내의 어미되는 여자였으며 이미 여러 차례 집을 찾아와 난리를 피웠던 여자였다.

땅이 문제였다. 얘긴즉슨 벌판 끝 수문 옆에 있는 짜투리땅에 씨를 뿌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벌판은 권씨 문중의 땅이었고 언제부턴가 그 땅은 서로 사촌간에 싸움이 붙던 땅이었다.

싸움을 하던 한편에 영주애비라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영주애비는 아버지와 그중 가까운 권씨 문중이었다. 행동거지가 세력있는 집 사람같지가 않았다. 외양부터 수더분하고 심성 고운 그 양반은 거적 쓰듯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심으로 밭을 그냥 쓰라고 허락해 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여자가 수시로 찾아와 밭을 못쓰게 막아섰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영주애비가 그랬다 하며 둘러대고 말았다. 친구인 영주애비가 마음놓고 쓰라 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고집도 여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만 물러서자고 말할 때에는 영주애비가 내 친구라는데 말이 많다며 어머니 이마 앞에서 재털이를 들었다 놨다 하곤 했다. 어려운 문제였다. 땅은 겨우 손바닥만 하여 겨우 땅콩이나 서너 되 거두어 들이고 밭 둘레엔 수수깡이나 세우던 짜투리였다. 그러니까 밭농사라야 별반 큰 도움이 안가는 자리였다. 그런데 뒷날 알고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내가 모르는 나름대로의 깊은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먼저 얼마되지 않는 땅에 죽어라고 씨를 심어대는 아버지의 속내는 이러했다.

아버지로선 그 밭을 일굼으로서 땅을 허락해 준 권씨 문중의 영주애비가 자기 친구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로선 영주애비가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 그쪽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아버지로선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영주애비와 함께 어울리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없었는데도 아버지는 매양 입에다가 영주애비를 달고 다녔다.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 그가 없는 자리에선 나와 영주가 크면 서로 사돈을 맺기로 약속을 했다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아이들과 멱질(수영)을 나갔다가 동네 어귀로 들어서는데 그 양반이 나를 불러 세웠다. 머리에서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는 여름날이었다.

" 햐, 고녀석 꼭 물방개 같이 생겼네. 너 수영 잘하지. "

영주애비는, 아버지 친구는 좌판에서 여럿이 모여 술추렴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 네."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 너, 찬이 맞지. "

" 네."

나는 나를 알아주는 그 아버지 친구가 고마워 다시 큰소리로 대답했다.

" 너 이거 먹어라. "

아버지 친구는 대뜸 내게 달팽이과자 한 봉지를 내미는 것이었다. 나는 짐짓 물러섰지만 그때 곁에 섰던 아이들의 부러운 눈빛을 똑똑히 보았다. 나는 그 과자를 받아들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내놓았다. 내가 들고 온 과자봉지를 보자 아버지는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고 성큼 다가 앉았다.

" 응, 영주애비가 이걸 너한테 주더란 말이지."

" 네. "

" 응, 영주애비가 다른 애들은 제치고 너한테만 과자를 사주더란 말이지. "

" 네. "

" 사돈 맺자더니 빈말은 아니었는가 보다. 으음. "

아버지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어머니가 들으라고 재차 그렇게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는 슬쩍 한번 고개를 돌리더니 뜻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비행기가 천정을 찢고 지나가는 한여름 한낮이었다.

권씨 사촌간에는 그 땅이 힘겨루기의 징표였다.

워낙 큰 집안이라 보는 눈이 많아서 내놓고 싸움질은 못하지만 임자 없는 그 땅은 장차 벌어질 재산 싸움의 선수를 잡는 꼴이었다. 그러니 그들로선 그만큼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그 작은 땅의 소유권이 천파만파로 온 벌판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영주애비의 사촌은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웬만한 일에도 주먹을 휘두르는 망나니였다. 당시 그 사내는 또 누군가 사람을 때리고 한철이 다가도록 몸을 숨긴 뒤였다. 도망가기 전 다짐을 했는지 그 어미는 여러 차례 집을 찾아와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도망갔던 사내가 어찌 어찌 돈으로 해결을 본 뒤 마을로 돌아온 직후였다. 집안간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영주애비에게 당한 분풀이를 동네 사람 보란듯이, 그리고 뒤에서 미친개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상것들 보란듯이 아버지를 개패듯이 두둘겼던 것이다.

" 깍새 주제에 ...... "

그날, 아버지가 매를 맞던 그날. 그런 소리도 해댔을 것이다.

듣기로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협동조합 귀퉁이에 가게를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가게가 무슨 가게인지는 통 얘기가 오고가지 않아 잊혀지고 말았었다. 아버지가 동네를 뜨기까지, 다시 말해 그렇게 모진 매를 맞고 망신살이 뻗친 그 다음 해 짐을 꾸리기까지 채석장에 나가는 석수쟁이였다는 것이 어린시절 내가 아는 아버지의 일이었다.

자라면서 그리고 커서 마을의 얘기는 간혹 들었었다.

즐거운 추억은 없지만 고향이랍시고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곳, 그것이 알량한 나의 고향이었다. 신문이나 방송에 비슷한 글자만 나와도 얼른 눈길이 쏠렸다. 그런 풍문으로 마을의 변화를 대강은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발길이 다가서지 않던 먼 기억 속의 고향이었다. 차로 몇 번인가 지나치면서도 일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게 고향은 영원히 어둠의 터널이 끝나지 않는 은혈이었다.

박정희 시절 마을을 온통 갈아엎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을은 강화로 가는 행길가에 산자락을 등에 업고 놓였는데 박정희가 강화도에 오고 가며 보기 싫다고 단장을 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새마을식 주택으로 멀리서 보면 무슨 수용소처럼 일제히 시퍼런 기와지붕을 한 양식 주택가로 변해버렸다. 그때 논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땅을 팔아 집을 지어 살았고 그나마 남의 논 붙여먹던 이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집 모양만 고스란히 바꾸어 놓았지 지세 변경이나 개발은 전혀 되질 않고 옛마을 그대로였다. 말하자면 주변에 다른 마을이 들어선다든가 주택가나 번화가가 생긴다든가 하는 발전이 없이 마을의 크기가 30년 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번듯한 음식점 하나 없었다.

 

샤시문을 밀고 길 위에 나서니 생각보다 찬 기운은 견딜만 하였다. 나는 안개 속을 거닐둣 눈길을 걸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마을의 언덕으로 향했다. 25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 어둠에 쌓인 산을 향해 하얀 눈길을 걸었다. 기억에 의하면 길의 끝에 산길이 이어지고 저쯤이면 산길 옆에 상수리나무가 여럿 버티고 섰을 것이다. 어깨를 움츠리고 입김을 토해내며 천천히 걷다가 ---.

나는 걷다가 돌아서 내가 남긴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발자국은 제법 뚜렷하였다. 발자국은 곱게 내린 눈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렸으며 구두 끝이 끌려 눈길을 온통 망쳐 놓은 꼴이었다. 마을 밖에선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나는 철조망이 쳐진 산자락을 기어올랐다. 철조망을 끌어올리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어둠 속에 상수리나무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나무들은 많지가 않았다. 기억에 의하면 숲을 이루었을 상수리나무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밤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나무 몇을 찾아 가까이 가 보았다. 아카시아 나무가 많았지만 역시 상수리나무였다. 나는 그 나무들에서 나무 등걸에 있을 법한 상처들을 찾아보았다.

눈이 내린 뒤의 겨울밤, 기운 잃은 달빛이 지키는 낮선 세상은 막 옷을 갈아입은 듯 곱고도 밝았다. 그 눈옷 위에서 나는 얼마든지 발길을 옮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무의 상처들은 알아볼 수 없었다. 분명히 위치는 맞는데 생각했던 상수리나무의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산길로 학교를 오갈 때마다 작은 바위로 상수리나무를 두들겼었다. 당시에 도토리나무라고 부르던 그 키 큰 나무들의 허리에 대고 무직한 돌덩어리를 부딫치면 한번에 도토리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돌덩어리는 데굴데굴 굴러 산자락에 붙은 토담집의 뒤란을 뚫고 내려갔다. 가끔 쨍, 하고 장독 깨지는 소리도 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소리가 울려 퍼지고 방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퉁탕대며 마루에서부터 발구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온다아--, 하며 책가방을 움켜쥐고 언덕으로 뛰곤 했었다. 그 바위로 도토리 따기는 내가 마을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이들보다 발걸음이 늦은 할아버지와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의 숨바꼭질이 눈에 잡힐 듯이 선했다. 작은 우리들의 빛나던 시절이었다. 나는 한동안 숲속에 서서 벌판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언덕 끝으로 난 활주로가 붉은 수은등으로 환하게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들판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여주인이 다섯 병째 맥주병을 따던 무렵이었다.

이번 귀국 길에 시간이 나면 고향에 한번 가보리라 다짐은 했었지만 그저 한번 횡하니 돌아보곤 떠날 심사였다. 그런데 목도 축일 겸 들어선 구멍가게에서 쉽게 일어설 수가 없었다. 홀로 앉은 꼴이 남새스러 나는 계속 맥주 잔을 비웠다.

" 으째, 오늘은 없나. "

" 날이 궂으니까 나오기들 싫은가 봐요."

가겟방에서 매양 화투라도 치는 마을 사람인 모양이었다. 사십 중반의 얼굴에 눈길처럼 머리가 하얗게 반백인 사내는 어둠을 등지고 옷깃을 쓱쓱 문질러 추위를 물렸다. 나는 엉거주춤 맥주 잔을 내려놓았다. 옆모습을 흝으니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기억에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나는 이 마을에서 얼굴에 관한한 아직 남아 있는 기억이 없었다. 내가 마을을 떠날 때 나는 너무 어렸던 것이다.

" 참, 이 손님이 한 25년 전 이곳에 살았다는 데요 ? "

" 그래 ? 어느집에 살았나."

" 예, 저기 마을 끝에 살았었습니다. 산 너머 초등학교에 2학년을 다니다가 이사를 갔어요. "

" 그래요 ? 부석 살았구만. "

" 맞습니다. 부석."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마을 이름에 나는 갑자기 마음이 상기되었다.

" 어르신이 어떻게 되시는지."

" 함자가 춘자 백자 되십니다. "

" 정씬가 ?"

반백의 사내가 고개를 비쓱였다.

" 윤가 입니다. "

" 글쎄..... "

사내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꿈벅이다가 이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사내보다 대여섯 살은 위임직한 중년 하나가 다시 샤시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방안에 있는 사내를 보곤 반색을 하며 빨려들 듯 방으로 들어갔다. 이어 여주인이 따라 들어가고 갑자기 방안에서 소란스러운 농짓거리와 웃음이 울려 퍼졌다. 여주인은 잠시 후 다시 나왔다. 열린 방문 밖으로 두런대는 웃음소리가 한동안 가게 안에 흘러나오더니 곧 목소리가 숨을 죽였다. 나는 취기가 오르는 것을 느끼고 그만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만 일어서야겠어요. 얼마죠 아주머니. "

나는 계산을 위해 방쪽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그때, 지갑을 펼치면서 방안에 있는 그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보자 갑자기 대화가 끊어졌다.

" 이 사람이 여기가 고향이래요. "

나는 주춤했다. 내가 고개를 들자 반백이 나중 온 중년에게 나를 소개했다.

" 예, 저는 '가'라고 합니다. 저 위 부석에 살았지요."

" '가'라구 ? 글쎄.....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

그러나 중년 역시 곧 고개짓과 함께 침묵으로 나를 묻어버렸다. 주춤거리며 섰다가 나는 이유없이 죄스런 마음으로 계산을 마친 뒤 돌아섰다. 돌아서 조용히 눈 쌓인 길이 있는 밖을 향해 나섰다. 그때 그런 소리가 들렸다. 나직이.

" 깍새 아들 아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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