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엔 밤이 오지 않는다
임서상
누군가 밤을 몰래 밝혀 두거나 남겨두는 것도 아닌
종로엔 밤이 오지 않는다
선술집, 국밥, 해장국집, 오락실, 인력사무실에도 밤은
꺼지지도 않고 밝혀져 있다. 낮이 밤인 것처럼, 밤이 낮인 듯
밤 거리는 밝혀져 있다. 술에 취해 싸우는 소리, 웃는 소리도
종로엔 추억이 결코 사라지지도 않는다, 사랑도, 노점상들도
시위자들의 천막에도, 낮술인지 밤술인지도 모르게 술판을
막무가내로 밝혀 둔다. 지방에서 모처럼 온 시인들도
소설가들도, 평론가도 어두운 밤을 훤히 밝혀 둔다
종로엔 밤이 오지 않는다
정치판 완장도, 노동자도, 먼 대륙에서 건너 온 외국인도
밤을 시끄럽게 밝히고야 만다. 거리를 헤매던 해가 뜨듯 지지도 않는다
별들이 밤낮으로 잔치를 벌여도 밤 그늘조차 밤은 거두지 못한다
눈물도, 슬픔도, 어떤 악의도, 왁자지껄한 시장 상인도 밤을 밝힌다
이별도, 분노도, 축제도, 아쉬운 사랑도 눈에 서렵게 밝혀져 있다
종로엔 밤이 오지 않는다
과거도, 현실도, 잊혀진 역사도, 전쟁도 시끄럽게 살아 있다
뜨겁게 이루어지는 사랑이 미처 저물지 않도록 밝혀 두었다
나그네 발길도, 낯선 서러움도, 가난도, 눈이 멀지 않도록 밝혀져 있다
종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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