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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지도(外 1편)/ 나정욱:시인뉴스 포엠]
얼굴과 지도
어차피 완전히 해독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도와 얼굴을 사랑한다
지도를 보고 갈 수 없는 나라가 있다
뻔히 알고 있는 나라이지만 그곳에 갈 수가 없다
내 얼굴이지만 내 얼굴을 고치기가 어렵다
겨우 표정을 지었다 풀어보는 것
겨우 수염이나 밀고 턱을 한번 쓰다듬어 보는 것
그것 말고는 내가 내 얼굴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지도가 떠 올랐다
내 얼굴의 가죽을 펼치면 한 장의 지도가 될 것이다
그동안 거울을 보면서 쌓고 높였던 부분은
등고선을 겹친 것처럼 높은 산쯤 될 것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눌러둔 곳은 지도의 바다 밑쯤 될 것이다
해발과 해저가 그려져 있는 지도처럼
내 얼굴에도 높은 곳이 있고 낮은 곳이 있다
거울을 보며 나는 내 얼굴을 들고 어딜 그리 헤맸던 걸까
눈을 감고 내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지금 내 영혼이 머무는 지점은 내 얼굴의 어디쯤일까
종이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지점을 갖고 있어 나는 내 얼굴이 그리웠던 것이다
노동의 얼굴
노동의 도시는 철이 움직이는 도시
철이 녹아서 마지막이 되는 물건이 서로
부딪혀 항용 시끄러운 도시
손에는 항상 철이 수단으로 들려진 도시
굳이 망치를 들지 않아도 망치로
뭔가를 두드려야 안심이 되는 도시
불안을 가둬 둘 공간이 부족한 도시
노동의 도시에서는 항상 불이 침노하고
불 꺼진 자리에는 연기가 자욱하다
연기를 밟고 연기를 마시며 연기 속에서
안개처럼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도시
노동으로 먹고사는 도시는 망치를 닮아서
사람들의 목소리도 망치로 몇 대 맞은
철제 소리를 가졌다 겨우 헬멧 쓴 사람들만
망치를 피해 온전한 얼굴을 가졌으나
얼굴을 확인하기 어러운 것은 밤이나 되어
노동의 사슬에서 풀려난 그 이후에나
겨우 제 얼굴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정욱 시인
● 『한민족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1990년)
●시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
『얼룩진 유전자』(2024년)
●울산문화관광재단 예술창작지원 사업 수혜(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 추천작가 선정(울산문화관광재단, 2025년)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