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옛날이야기(外 1편)/ 나정욱:시인뉴스 포엠]
옛날이야기
옛날이야기가 많지만 세월을 묵혀 보내고 남은 얘기는 어릴 적 엄마가 해준 얘기뿐,
엄마가 해준 옛날얘기는 늙지도 않고 귓가에 선연한데 우리 엄마는 하얗게 늙어 요양병원에서 자신의 나이도 잊고 누워 계신다
인내 난다! 인내 난다! 사람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것이 이야기 속의 뱀뿐이랴! 호랑이뿐이랴!
뱀보다 호랑이보다 엄마의 나이를 빼 먹는 귀신 같은 시간도 있다
아흔네 살 우리 엄마
아흔네 살 우리 엄마는 당신의 나이는 잊었어도 당신의 이름은 수줍게 잊지 않고 말하네요
오늘은 우리 엄마 손톱을 다 깎고 발톱을 깎으려 양말을 벗겨 보려 하는데 아흔네 살 우리 엄마 발톱이 부끄러운지 한사코 양말을 벗으려 하지 않네요
아흔네 살 우리 엄마 하루 종일 환자복을 입고 계신 우리 엄마 휠체어를 타고 봄날의 꽃구경을 하시는데 환자복 양쪽 주머니에 수국 한 송이씩 따서 집어넣으시는데
수국을 뭘로 보시고 저러시는지 알 수가 없네요 솜사탕처럼 킁킁 냄새를 맡다가 무심하게 꽃 덤불에 던져 버리는 저 무심한 수국 꽃숭어리들! 나정욱 시인 ● 『한민족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1990년) ●시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 『얼룩진 유전자』(2024년) ●울산문화관광재단 예술창작지원 사업 수혜(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 추천작가 선정(울산문화관광재단, 2025년)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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