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포 / 강수경
첫 눈은 습설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폭설이었어
나는 이 한 줄로 쓰기를 멈추어야 해
무엇을 더 보태 무게를 지우는 건 숨이 막혀
그 날 그 곳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인 곳이었어
꿈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던 걸음들,
웨딩촬영을 마치고 온 예비신부가 있었고
졸업을 앞 둔 사회 초년생이 있었고
언니, 동생, 연인, 친구가 있었고
선후배 그리고 가족도 있었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어
싱그러움, 발랄함, 두근거림
웃음, 흥겨움, 설렘
음악, 춤, 코스튬
모든 낯섦과 익숙함이 어우러져 한층 부풀어 오르던 청춘의 향연장이었어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세계음식거리 사이 약간의 비탈이 있는 골목길
세상 별별 일들이 많다고 해도 이런 터무니없는 불상사는 들어보지 못했어
놀러 가서,
길을 걷다가,
159명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
생존과 죽음의 경계가 갈린 아비규환
서서 죽고 끼어 죽고 깔려 죽고 꺾여 죽고
눈코입귀 모든 구멍에서 붉은 죽음이 베어나고
이미 호흡이 멈춘 이도 숨이 붙어있던 이도
함부로 흐트러진 채 길바닥에 방치되었고
참사 현장은 고스란히 동영상으로 전파되었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어떤 이는
온몸이 저려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도왔지만
끝내 주검을 어디론가 실려 보내야 했대
황망히 떠난 자식, 수차례 졸도하며 어렵게 찾았지만
품에 한 번 안아 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겨우 얼굴만 확인하고 끝나버린 마지막 순간
땅을 딛고 있어도 허공에 떠 있는 듯 비현실 같았던 시간들
미처 떠나보낼 준비도 못했는데 뭐가 바빴는지 장례비가 먼저 도착했다고
딸이 쓰던 방, 금방이라도 그 방문을 열고 웃으며 나올 것만 같아
밤이 되면 현관문을 열고 불쑥 아들이들어올 것만 같아
몇 번이고 바라보게 되는 문
내내 거실에서 우두망찰하는 자식 잃은 어버이의
슬픔의 깊이를,
차마 가늠할 수 있을까
해가 바뀌어도 그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아
2024년 이상기후 현상으로 내린 첫 눈에 대한 소회는
그날의 무게를 떠올리게 해
첫 눈은 습설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폭설이었어
단 한 줄만으로도
벌써 가슴은 먹먹해지고
이 한 줄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겠지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거야
아니, 자기 일이 아니면 끝까지 이해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들도 있지
철저히 무시된 산 자와 죽은 자의 명예와 인권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공권력의 부재
2022년 10월 29일
최초신고 오후 6시 34분부터 지금까지
국가가 이태원 참사와 그 외 모든 참사에서 보여줬던
생명 경시 무시의 태도는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책임지는 이가 없어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둥 '밀어'를 외친 나팔수를 찾아야 한다는 둥
쏠린 시선을 돌리기에만 급급했고 몸통은 두고 꼬리 자르기만 했어
그것으로 하늘의 별이 된 희생자들이 웃을 수 있을까
우리는 결코 엔딩 할 수 없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았고
유가족을 거리에서 몸부림치게 했어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처벌도 재발방지대책도 진심어린 사과도 애도도 없었어
2024년 12월 3일 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행복은 뒷전이고
위헌적이고 위법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내란의 수괴 윤석열 정권에
주권자 국민은 정중히 그리고 단호히 사망선고를 내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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