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감긴 필름 / 강수경
역사의 필름이 30여 년 전으로 거리를 돌려놓았다
여전히 우리는 빈손이었고
여전히 그들은 방패와 전투복과 헬멧을 쓰고 있었다
허가된 집회에 차량통제를 하지 않아 운전자도 보행자도 위험천만한 곡예를 한다
진입한 운전자와 보행자를 갈라치기하는 저 경찰은
누구를 위해 호루라기를 불고
지휘봉을 휘두르는가
누구의 명령을 받는가
대로마다 폴리스라인을 치고 몇 겹으로 새까맣게 대열을 갖춘 기동타격대
광장으로 모여드는 민중을 막기 위해
흩어놓기 위해
시민의 지팡이는 총칼이 되어 시민을 향하고
사라진 광장이
다시 광장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은
시민들이 든 각각의 카메라에 담긴다
도로는 광장이 되고
광화문 거리에서 숭례문 거리에서
세종대로 빌딩들 사이에서 운집하려는 민중의 함성 드높고
깃발은 퇴진의 바람으로 펄럭인다
저지선이 무너질까봐 차벽이 들어서고
그것마저 둑이 터지듯 틈을 뚫고 나오는 민중의 힘
그러다 누군가 쓰러지고 아, 지금 거리는
30여 년 전으로 되감긴 거리
집회허가 구역에 들어와 있던 경찰차 위에서 고배율 줌 카메라를 들이대
작은 것 하나라도 찍어내려는 썩은 미소의 경찰들
저들은 민중을 그들이 질겅거리며 씹는 껌처럼 여기리라
강력히 항의하는 주권자 시민을 향해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대 셔터를 누르며 위협하고
흩어졌던 민중이 차량을 빽빽이 둘러쌌을 때
차 위에서 바라본 인파에 고립된 그들은 공포를 느꼈으리라
그 허여멀건 얼굴이 붉어진 것은 부끄러움을 알아서라고 믿고 싶다
모세의 기적처럼 민중은 길을 열었고
되감긴 필름을 되감 듯
후진하며 경찰차는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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