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미인들(外 1편)/ 나정욱:시인뉴스 포엠]
미인들
미인이 빨리 죽는다는 말이 있다
실제 미인들은 빨리 죽는다 그래서
미인 되기를 포기하고 오래 사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인들이 아니다
미인들은 빨리 죽는다
빨리 죽은 사람들이 그걸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택해야 한다
실존의 선택이다
미인으로 빨리 죽을 것인가
미인을 포기하고 오래 살 것인가
한결같이 오래 사는 사람들의 선택은
후자였다
후자라는 것은 미인을 포기한 후과이다
미인은 후과를 포기하고
미인답게 사라지고 미인을 포기한 사람들이
후과로 차지한 땅에서 오래 산다
오래 살기 위해 그들은
미인의 집 대신에 그들의 집을 짓는다
그리고 미인을 가리기 위해 잎이 무성한
나무를 심는다
그러나 나무는 알고 있다
나무는 미인을 기리기 위해 산다
아무리 미인을 가리기 위해 나무를 심어도
나무는 안다
미인이 집에 없어도 집에 심은 나무는
미인을 기른다
나무가 오래 사는 이유다
어느 날 풍경 속의 기린이 되어서
어느 날 기린이 되어서 바라본 세상은 귀여웠다
'귀여웠다' 대신에 '다정했다'를 넣으면
사람들이 귀여울까 다정할까
어느 날 기린이 되어서 바라본 세상은
귀여울 수 있을까 다정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기린은 사람들과 살 수 있을까
사자가 사라지고 코끼리도 사라진 세상에
어느 날 기린만 살아남아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 사라진 풍경 속의 기린은 높은 데서
무얼 보고 있을까
어느 날 기린이 되어서 나는 무얼 보고 있을까
풍경 속의 무얼 보고 웃는 걸까
나정욱 시인
● 『한민족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1990년)
● 시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
『얼룩진 유전자』(2024년)
● 울산문화관광재단 예술창작지원 사업 수혜(2024년)
●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