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제목	[시] 이름 있는 자의 죽음
이름	강수경

이름 있는 자의 죽음 / 강수경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번지

젊은 여자의 시신이 험하게 훼손된 채 집주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녀를 과거로부터 내게 소환한 것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는 옛 성병관리소

소요산 주차장 옆 언덕 위

방치되어 흉물이 된 건물은

함부로 쓰고 버려진 휴지뭉치처럼 풀숲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겉보기에는 잘 보이지 않아 있는 줄도 몰랐던

모르면 몰라서라지만 알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6.25전쟁 후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위안부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양공주'

한 때 나라의 외화벌이 국위선양 애국자로 추켜세워진

실재는 무시와 천대 그리고 멸시를 받았던 여성들

한국 정부가 미군 기지촌 내 성매매를 허가하면서

성병은 만연해지고

깨끗한 몸을 제공해달라는 미군의 요청에

정부가 나서서 만들었다는 성병관리소

성병에 걸리거나 걸리지 않아도

포주나 미군의 묘략으로 격리되거나 감금되었던

치료나 요양을 위한 곳이라기보다 감옥과 같은 낙검자 수용소

그녀들이 쇠창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원숭이들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몽키 하우스'

입구에는 그곳을 탈출하려는 여성들을 감시하는 초소가 섬뜩하게 버티고 있었다

페니실린 과다 투여로 과민성 쇼크가 빈번했고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고

그러면 상패동 공동묘지에 묻히고

기지촌 여성들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한풀이 하며 슬픔에 젖어 밤을 보냈다고

그곳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여성들은 더 몸을 낮췄고

기지촌에서 도망을 치기도 했는데

그러다 붙잡혀 오면 빚은 더 늘어났다고

만신창이로 철저히 무시되고 소외되었던

인권이 처참하게 유린된 공포의 장소

과거에서 소환된 전북 순창 출신의 그녀도 어린 나이에 공장을 전전하다가

어찌어찌 흘러흘러 평택 등지에서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일을 했다고

사건 발생 며칠 전 평택에서 동두천으로 이사 온 그녀는

그 날도 거리에서 꽃을 팔다가 20살 마클 이병을 만나게 됐다고

그는 술에 취했었고 다음 날 술이 깨서

너 같은 것한테는 돈을 주지 않겠다며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했다고

코라콜라 병에 얼굴을 맞아 전면부가 함몰되고 그에 따른 과다 출혈로 인한 죽음이 직접적 사인으로 밝혀졌는데

그러나 그것은 다가 아니다

공개된 범행 현장을 차마 글로 옮기는 게 타당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을 기술하는 것이 비명에 간 억울한 사자의 아픈 영혼을

또 흔들어 깨우는 건 아닌지 몹시 두렵고 미안하고 조심스럽다

그러나 쓰려고 한다

그녀의 음부에는 코카콜라 병이 항문에는 우산대가 꽂혀 있었는데 직장까지 약 26센티미터나 들어가 있었고 입 안 가득 부러진 성냥개비가 물려 있었으며 온 몸에 분말세제가 흩뿌려져 있었다고

몸에 행한 잔혹한 범행 장면이다

하찮은 양공주 하나 죽은 게 뭐가 대수냐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어쩌냐며 그녀의 죽음을 모욕하고 하찮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으나

사건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분노한 학생들과 시민들의 끈질긴 시위로

한미SOFA 2차 개정을 이끌어 냈으니

그녀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 윤금이

우리나라 전국에 40여 곳 있었다는 성병관리소

지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나 남은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국가폭력*의 생생한 증거물

여성들에 행한 인권유린과 존엄성을 침해한 살아있는 유물

아프고 슬픈 역사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곳이 존치되어야 할 이유다

그 곳에 가지 않았다면

과거는 소환되지 않았을 것이고 기억하지 못하면 잊혀질 것이다

이름 있는 자의 죽음은 기억되어야 한다

* 2022년 9월 29일 122명의 원고 이름으로 8년 여 진행되었던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미군위안부에 대한 국가책임, 즉 국가에 의한 폭력과 인권침해 사실을 대한민국 사법부가 공식적이고 최종적으로 인정한 날이다. 이는 1986년부터 소외되고 억압된 삶을 살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의 가치를 되찾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고 있는 민간단체 '두레방'의 역할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