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슈뢰딩거의 거북이 外 1편/ 나 욱:시인뉴스 포엠 (poetnews.kr)]
슈뢰딩거의 거북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를 열자 거북이 한 마리 기어 나온다
슈뢰딩거는 그 실험 상자에 고양이를 넣은 것이 분명한가 거북이를 고양이로 알고 넣은 것은 아닌가 아니면 처음부터 거북이를 넣고 고양이를 넣은 걸까 슈뢰딩거의 상자를 열자 거북이가 고양이 흉내를 내며 기어 나온다
거북이가 분명한데 고양이의 눈빛으로 고양이의 울음을 낸다 도대체 슈뢰딩거의 상자 속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슈뢰딩거의 실제 상자는 없다
그러니 슈뢰딩거 고양이는 없는 것이니 그 상자에서 거북이가 하품하며 나온다고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우리는 슈뢰딩거의 상자 속에서 고양이가 될지 거북이가 될지 선택해야 한다 슈뢰딩거의 상자를 여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상자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 카운트다운 오초 전입니다 오, 사 ... 일, 상자 속의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하세요 거북이입니까 고양이입니까
나는 거북이로 슈뢰딩거의 상자에 열렸습니다 슈뢰딩거 거북이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누에의 잠
죄송합니다 바다로 이어진 123호실로 입실할 수는 없어요 123호실은 당신이 평생을 모아 살림을 산 집 당신은 그곳에 내가 살기를 원하지만 죄송합니다 나는 123호실로 내려갈 수 없어요
푸른 색깔의 수평선 그것은 바다입니다
빨간 색깔의 지평선이 사막이듯이 당신은 123호실을 나와 사막에 이어진 115호실에 살고 있네요 미안해요 당신의 방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곳은 당신이 평생을 모아둔 잠이 쌓여 있는 방입니다 당신의 살림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겨우 꿈속에서 당신이 칠한 꿈의 색깔을 보았는데 푸른 색깔의 수평선이 바다란 것만 겨우 알아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아는 척했지만 나는 당신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군요 죄송합니다 나는 평생 누에의 자세로 잠을 자고 있습니다
누에의 꿈은 누에의 눈에 있는데 정작 누에는 자신의 눈을 볼 수가 없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떠난 123호실은 바다가 내어 준 한 평의 방이더군요 당신과 달리 나는 아가미가 없어요 그런 당신이 빨간 지평선이 있는 사막에 살고 있다니 그렇군요
사막은 바다의 꿈을 갖고 있는 예전의 123호실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 나 욱 (본명: 나정욱) 시인
『한민족문학』(1990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의 시집이 있음.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