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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회 아시아청년작가 워크숍> 자료 [2]
이름 사무처 이메일


                                       
 4. 아시아 문학 심포지엄(부산)



 
 때: 7월 1일(목) 오후 7시
 곳: 부산 영광도서
 주관: 부산작가회의(회장 남송우 문학평론가)
 후원: 부산 영광도서
 참가국: 한국, 이라크, 버마, 팔레스타인
 
 심포지엄 제목: “고통의 기억을 넘어 평화로운 미래로!”

 발제:
 박영한(소설가): 한국
 자카리아 모하메드(시인): 팔레스타인
 하무드 무사(소설가): 이라크
 띤 마웅 딴(소설가): 버마

토론:
 김성원(부산외대 미얀마어과 교수): 한국
 전용문(소설가): 한국

통역:
버마/ 김성원(부산외대 미얀마어과)
아랍/ 임병필(부산외대 아랍어과)





발제: 팔레스타인-------------------------------------------------------------------------------------------------------


Zakaria Mohammed
War, defeat, victory and literature


I cant easily count the wars I witnessed. There were wars all the way.
As if life is just a calm moments between two wars, a little silence between two cries.
In these wars I am always in the camp of the defeated party.
I do not know what victory is. I do not taste it.
I get used to defeat. I am a friend of losers.
When I watch a football game I will stand with the one with zero goals. But I he managed to turn to be in the lead by: 2 to1, be sure that I will make a shift and give my support to the under dog.
This is not a good thing I know, but I keep selling it to my self; do not worry because a devil we know is much better than a devil you dont. Do not look for victory. And I continue telling my angry self: are you sure that victory is much better than defeat for me and for you? Are you sure that the victories were the good guys in history? Do you believe that the defeated are the worse?
But my self is willing to put me in the victories camp one time at least in my life. I am rebuking here: dont you know that war is blood? Dont you see that?
***
 
Some times I feel angry about my point of view, about my self and about being the under dog. It happened that I was talking to my friend kid Majd. He was an eight years boy. We were watching a football game. Then he told me: I am always with the weak party, I support the under dog.
I was amazed. I thought I am the only one who is like that.
Later I find that this national feeling in my country. We are always the defeated, the under dog, the weak party and the victim.
I told my self: enough is enough. I do not want to be the under dog from now on. So when I visited my friend again I watched with his two kids Majd And Talah Tom and Jerry. To tees Majd I cried: I am with the strong party here, I am with the victories. Who is the victorious here? The little kid Tallah got enthusiast with my cry. I Continued: I am with George Push, I am Sharon. She cried with me: I am George Bush, I am Sharon I am the evil one.
When I left I remembered that I saw, months ago, a group of Palestinian kids playing. One of them was holding a stick hitting the others with it crying: I am Sharon, I am the strong.
I said to my self: oh my god what we did with Tallah? I just let here play the rule of Sharon like this kid, as if it is our destiny to be either The victim or the killer image in the mirror? If this is the whole case I will choose the first without hesitation.
****
My writing belongs to defeat not victory.
Thanks for defeat if I did some thing in my writing.
I was in Beirut in when it was under siege in1982. But I failed to write about those days. My memory is not helping me. It is trying to escape that time. In the beginning I thought that this is normal. There must be enough time to coal my passion down, and then I will write.
I was wrong. I am not able to write about that time. I remember the fourth of may when the city was shelled by quarter million shell in one day. When the shelling stopped and I left the shelter I thought I will find the whole people of the city dead.
I am failing to write about that time. I said to my self you need a real space of peace if you want to write about war. War can not create writing. And I have no peaceful space to write about war. A war leads me to the next. I have to remember the war if I have to catch. I cant remember the war when I am in the middle of another war.
***
There was a time when the Palestinian poetry was busy in writing about occupation. Occupation soldiers are every where. Their check points are in every road. The prisons are filled with detainees. Twenty percent of the whole population has experienced prisons.
Every think is pushing to write about the occupation and his tanks.
But in the end we found that the tanks are deciding our poetry agenda. This was very bad.
Then suddenly our poetry decided to kick the tanks out. Poetry will not speak about tanks from now on. It will not allow the tanks to decide its agenda.
But we can do with out the barbarians? We spend our life talking about them. What things our poetry is going to deal with? Could it survive when it looses its main subject?
It survived.
It is now writing about the rose, the ant, and the tomato color!
Our streets are filled with tanks, but our poetry is free of them. Isit a victory?. May be. But still it is a negative victory.
So do be so happy, we are still in the defeated camp.











전쟁, 패배, 승리 그리고 문학


나는 내가 목격한 전쟁들을 쉽게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전쟁은 늘 있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인생이란 마치 두 개의 전쟁 사이에 끼어 있는 고요한 순간들인 것 같았습니다. 혹은 두 개의 고함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침묵인 것 같았지요.
그 전쟁들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늘 패배한 쪽의 캠프에 있었습니다.
나는 패배에 익숙합니다. 나는 패자들의 친구입니다.
축구 경기를 볼 때, 나는 한 골도 넣지 못한 팀과 함께합니다. 그러나 만일 2대 1로 경기가 뒤집어지면, 나는 마음을 바꿔 지는 쪽을 응원할 게 확실합니다.
이게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걸 나도 압니다. 하지만 나는 늘 그런 식입니다. 우리가 아는 악마는 네가 모르는 악마보다 훨씬 좋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길 거라고 기대하지 마. 그리고 나는 화가 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그리고 너에게 승리가 패배보다 좋다는 걸 확신할 수 있어? 승리가 역사 속에서 좋은 편이었다는 걸 확신해? 패배한 쪽이 나빴다고 믿어?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적어도 한번은 나를 승리한 쪽의 캠프로 몰아가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비난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피라는 걸 알지 못해? 그걸 보지 못한다구?

때때로 나는 내 관점, 내 자신, 그리고 밑에 깔린 개꼴이 되는 처지에 대해 화가 납니다. 한번은 내 친구의 아들 마즈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여덟살짜리 꼬마였죠. 함께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애가 내게 말했어요. 난 언제나 약한 쪽 편이에요. 나는 지는 쪽을 응원해요.
나는 놀랐습니다. 나는 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훗날 나는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이성적인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늘 패자였습니다. 밑에 깔린 개였습니다. 약한 쪽이었고 희생자였습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지겨워. 이제부터는 밑에 깔린 개 꼴이 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내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는 그의 두 아이 마즈드와 탈라와 함께 텔레비전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보았습니다. ... 마즈드에게 소리쳤습니다. 난 여기서 강한 쪽 편이다. 나는 이기는 쪽이다. 여기서 누가 이기지? 꼬마 탈라는 내 소리에 열광했습니다. 난 계속 소리쳤지요. 난 조지 부시다. 난 샤론이다. 그 애는 나를 따라 소리쳤어요. 난 조지 부시다. 난 샤론이다. 난 악마다.
돌아올 때 나는 몇 달 전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노는 걸 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습니다. 그 아이들 중 하나가 막대기를 들고서 다른 아이들을 마구 때려 울게 만들었습니다. 난 샤론이다. 난 강해.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세상에! 내가 탈라에게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나는 이런 아이에게 샤론의 규칙을 따르도록 한 거야. 마치 거울에 비친 희생자나 킬러의 이미지 중 하나만이 우리의 운명인 것처럼 말야. 만일 이게 다라면, 난 주저없이 전자를 택하겠어.

내 글은 패자에게 속하지 승자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 글에서 무언가를 이룬다면, 그건 패배에게 감사할 일입니다.
1982년 베이루트가 포위되었을 때 나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의 일들을 쓰지 못했습니다. 기억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기억은 그 시절로부터 자꾸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처음에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열정을 차분히 가라앉힐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야 글을 쓸 것이라고.
나는 잘못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 시절에 대해 전혀 쓰지 못했습니다. 나는 도시가 하루에 무려 25만 발의 폭탄 세례를 받고 초토화된 5월 4일을 기억합니다. 포격이 멈췄을 때, 나는 방공호를 빠져나오면서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죽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시절에 대해 쓰지 못했습니다. 전쟁은 글을 창작해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전쟁에 대해 쓸 만큼 평화로운 여유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전쟁은 나를 다른 전쟁으로 데리고 갑니다. 만일 내가 전쟁을 따라잡으려면 전쟁에 대해 기억해야만 합니다. 나는 내가 또다른 전쟁의 와중에 있는 동안에는 전쟁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시가 점령에 대해 부지런히 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점령군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그들의 초소는 어느 길에나 있었지요. 감옥은 수감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전 인구의 20퍼센트가 감옥을 한번쯤은 경험했습니다. 생각만 하면 당장이라도 점령과 탱크에 대해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탱크들이 우리 시의 비망록을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나쁜 일입니다. 그러자 우리 시가 갑자기 탱크를 걷어차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부터 시는 탱크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탱크가 시의 비망록을 결정하도록 놔두지는 않겠다.
그러면 그 야만인들을 쫓아낼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거기에 대해 토론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시는 무엇을 써야 하지? 가장 중요한 주제를 잃어버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는 살아남았습니다.
시는 지금 장미와 개미와 토마토 색깔에 대해 씁니다.
우리 거리는 탱크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우리 시는 그런 것들하고 상관없습니다. 이게 승리일까요? 아마도 그럴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그건 부정적인 승리입니다.
 ..... 우리는 여전히 패배자의 캠프에 있습니다.














발제: 버마-----------------------------------------------------------------------------------------------------------------


War, peace and dictatorship:Perspective of the Oppressed
 By Tin Maung Than


A man has become a victim of its own creation, the state.A nation state has been irrationally larger than a man reaching to a point that a man is not a man unless he is identified with a state.This might be a pessimistic expression of humanity but sadly was a fact in my life. When we were granted refugee status, my wife and I, both medical doctors, requested the UN officer to send us to a refugee camp, where, we would be useful for the health of refugees.The UNHCR denied our request because Thailand government did not allow the UN to accept any new refugee at the camp.Sympathy, kindness, ethical values and responsibilities were rejected.When we stayed in Bangkok, my family and I were constantly facing a danger of arrest by police.My kids, 8 and 12, could not access to health and education.When we went to grocery store we dare not speak our Burmese language.I began to know that I was definitely not a man.

인간은 자신의 창조물, 즉 국가의 희생물이 되어버렸다. 한 민족 국가는 한 인간보다 비이성적일 정도로 비대해져 왔다. 인간이 스스로 국가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까지 말이다. 이것은 인간성에 대한 비관적인 표현이지만, 슬프게도 내 인생에서는 그게 사실이었다. 우리가 난민 신세를 받아들였을 때, 나와 내 아내는, 둘다 의사인데, 유엔에 우리를 난민 캠프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난민들의 건강에 유용할 테니까. 유엔 인권위원회(UNHCR)는 우리의 요구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유엔이 새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태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정, 친절, 윤리적 가치, 그리고 책임감은 거부되었다. 우리가 방콕에 머물고 있는 동안, 우리 가족과 나는 끊임없이 경찰의 체포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여덟살과 열두살인 우리 아이들은 건강을 돌볼 수도 없었고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상점에 갈 때는 모국어인 버마어를 쓰면 안되었다.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Every time I saw a dog, I envied him.A dog has a free pass to go through any boundary on this earth.But when people travel on this earth with a heavy package of sufferings, oppressions and injustice, they are treated as criminals and it is said they aredisplaced while indeed the humanity is displaced. Look at several borders around the world.When a man passes the boundaries, he is beaten or imprisoned or shot.And it is called rationality.Of course it is the rationality of nationhood, the herd instinct of an animal, not of individual man whose status is now lower than a dog.Nations are nothing but the pitch of organizing animal herd instinct.

개를 볼 때마다, 개를 부러워했다. 개는 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고통과 억압과 부정의를 짊어진 채 지구를 여행할 때, 그들은 범죄자로 취급받고, 실제로 인간성이 .....세계의 여러 국경을 보라. 누군가 그곳을 지나려고 할 때, 그는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가거나 총을 맞는다. 그리고 그게 이성(합리성)이라고 말해진다. 물론 그것은 국가의 이성, 동물의 집단 본능이지, 그의 신세가 개보다 낮지 않은 개별적 인간의 이성은 아니다. 국가는 동물적 집단 본능을 조직한 데 지나지않는다.

Man is a creature of nature or God, not a creature of artifice. He is a son or daughter of God not a State.He is created out of love not of hatred.He is a craftsman of civilization, not a victim of state apparatus.

인간은 자연의 창조물, 또는 신의 창조물이다. 인공의 창조물이 아니다. 인간은 신의 자녀이지 국가의 자녀가 아니다. 인간은 사랑으로 창조된 것이지 증오로 창조된 게 아니다. 인간은 문명의 장인이지 국가 장치의 희생자가 아니다.

But some people who call themselves leaders has replaced God with a nation, which is nothing but a large group of people composed with sub-groups.Men become generic; belong only to their genus.These groups of people become gods who punishes Sisyphus, who loves the twilight universe, the bright sun, the moon sparkling sea, the peaceful sky; who hates the death, the penalty; who has passions for life and this earth.For these people, what lie in their heart is not the man, but a vote or an arm, an essential mean for his longing for power to exercise on others.They care only for their race, their artificial land, and their beliefs.The man out of his race and territory is not a man at all.The nationhood, a grotesque collectivism, becomes an idol to these artificial men, made by themselves a couple of hundreds of years ago.They have abandoned the sense of community at large and Gods teaching of brotherhood.They have kneeled down in front of this idol and blindly worshipped it.The virtue of it is nothing but a collective parochial sordidness.

그러나 스스로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몇몇 사람들이 신을 국가로 대체시켰다. 그건 더 작은 그룹들로 구성된 사람들의 더 커다란 그룹에 불과하다. 인간은 속(屬)이 되었고, 오로지 자기들 종(種)에만 속한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황혼에 빛나는 우주, 눈부신 태양, 달빛이 쪼개지는 바다, 평화로운 하늘을 사랑하고, 죽음과 벌을 미워한, 그리고 삶과 이 땅에 대해 열정을 지녔던시지프스를 벌주는 신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가슴 속에 놓여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한 장의 투표권이나 한 개의 무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이야말로 그가 타인에게 행사하고픈 권력에 대한 열망을 채우는 데 본질적인 수단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종족, 그들의 인공적인 영토, 그들의 믿음만을 보호한다. 종족과 영토를 벗어난 인간은 결코 인간이 아니다. 우스꽝스러운 집합주의인 민족성은 그 인공적인 인간들의 우상이 되었다. 수백 년 전부터 ....그들은 공동체의 정신이나 형제애를 가르친 신들의 정신을 내버렸다. 그들은 이 우상 아래 무릎을 꿇고 맹목적으로 경배한다. 그것의 미덕이라면 오직 편협한 집단적 탐욕일 뿐이다.
 
The current model of nation is democratic but is still far from being fulfilling the humanity. In the current democratic system, people choose governors but not governance.The system assumes that governance is the job of the few not of the people. Representatives and interest groups control the policies.The people have the role in the governance only at the gate - the entry and exit point of the agreed period - but not in the house - the process. Thus the few impose its will on the people; not the people impose their will on the few.The truth is that the people are rhetorically masters but practically gatekeepers.However the lives of gatekeepers are better than of slaves under dictatorships, the truth is: a few rules.

국가의 현재 모델은 민주주의이지만 아직은 인간성을 충족시키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 현단계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사람들이 통치자를 선택하지 통치를 선택하는 건 아니다. 시스템은 통치는 소수의 직업이지 대다수 사람들의 직업은 아니다. 대표자와 이익집단이 정책을 조정한다. 사람들은 통치에서 단지 문턱(주어진 기간의 입구와 출구)에서만 역할을 지니고 있지, 집안(과정)에까지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소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사람들이 소수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게 아니다. 진실은 사람들이 수사적으로는 주인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문지기에 지나지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문지기로서의 인생들도 독재 하의 노예보다는 낫다. 진실은 소수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The war is the product of nation states, not of people. Tyranny, in the name of elected majority or dictatorship, and exclusion of people in the decision process are the causes.The world is helpless in facing both war and dictatorship.An oppressed still lives in dilemma.War displaced people, but peace, the antithesis of war, paradoxically serves the tyrant and his agenda.War means the death of some innocent people, while peace under dictatorship means the repression of all people living under the dictator for years to come.If war is capital punishment, peace under a dictatorial regime is imprisonment for life.War may punish the tyrants, while peace helps dictators continue violence against their people, including very real imprisonment and torture.War can save people from lies, threats and the brutality of a dictator, while peace, in fact, maintains the status quo.While Saddam Hussein was toppled in fewer than 30 days of war, the people of Iraq suffered 30-plus years of repression masquerading as peace.Sadly, war could not bring liberation and freedom to Iraq yet.

전쟁은 사람들이 일으키는 게 아니라 민족국가의 산물이다. 선출된 다수나 독재의 이름하에 자행되는 전제와 결정 과정에서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것들이 원인이다. 세계는 전쟁과 독재를 어쩔수없이 마주하고 있다. 억압받는 자들은 여전히 곤혹 속에서 살고 있다. 전쟁은 사람들을 추방한다. 하지만 전쟁의 반대로서 평화는 역설적이게도 전제자와 그의 아젠다에 복무한다. 전쟁은 어떤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뜻한다. 반면, 독재하의 평화는 독재자 밑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억압을 의미한다. 전쟁이 자본의 벌이라면, 독재 정권하의 평화는 생에 대한 감금이다. 전쟁은 전제자를 벌주지만, 평화는 독재자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투옥과 고문을 포함하는 폭력을 계속 행사하게 한다. 전쟁은 사람들로부터 독재자의 거짓, 위협, 야만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지만, 평화는 사실상 현상을 유지시킨다. 사담 후세인은 전쟁이 일어난 지 30일도 못되어 무너졌지만, 이라크 사람들은 평화라고 거짓 꾸며진 억압으로 30년도 넘게 고통받았다. 슬프게도 전쟁은 이라크에 아직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The dilemma of this war and peace results from the failure of existing rules of the game, played by rulers.They follow the rules set by kings of centuries past in the name of sovereignty, which, in fact, is respect for a kings right to rule his subjects at his will.This still is the heart of international relationships and the United Nations.The U.N. refrains from action, even when thousands of people suffer and die under injustice because the organization is the club for the rulers not the world body for the people. The elites call this passivity  respect for sovereignty of state,  which in fact should be called the shame of civilization.

이 전쟁과 평화의 딜레마는 지배자들에 의해 자행된 기존의 게임 법칙이 실패한 데서 비롯한다. 그들은 주권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 수세기 동안 왕들이 만들어 놓은 법칙을 따른다. 그런데 그 법칙이란 사실상 왕이 복속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는 권리에 대한 존경일 따름이다. 국제 관계, 그리고 유엔의 심장부에서 이런 행태가 여전히 존재한다. 유엔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불의 아래 고통받고 죽어가는데도 행동을 금하고 있다. 왜냐하면 조직이란 지배자들의 사교 클럽이지 일반 사람들을 위한 세계 육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은 이러한 수동성을 국가 주권에 대한 존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은 문명의 수치라고 불려져야 할 것이다.

It is shameful because world leaders did not differentiate between community and country, humanity and human rights, morality and politics.It is outrageous because they did not distinguish between crime and political game.It is unacceptable because they treated alike between what is right and might.

세계의 지도자들이 공동체와 나라, 인간성과 인권, 도덕성과 정치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들이 범죄와 정치 게임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도 분노할 만한 일이다. 그들이 권리(right)와 권력(might)을 엇비슷한 것처럼 다루어왔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World leaders should shed their elites terms and thinking and listen to their own human hearts.Be a man!Burma and other heated places are still wildly a case of common sense.Think this.The first thought that hit to your mind is action against a criminal when you are a victim of assault.Yet the world leaders has pretended to be aloof under the veil of men made theories and failed to deliver the call of victims.

세계의 지도자들은 자기의 엘리트들을 그들 자신릐 인간적인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 인간이 되어라! 버마와 다른 열대 지역은 광범위하게 여전히 상식적인 사례이다. 이 점을 생각해라. 당신이 암살의 희생자가 될 때, 당신의 마음 속에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범죄자에 저항하는 행동이다. 그런데도 세계의 지도자들은 이론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베일 아래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희생자의 외침을 전달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Around the world, policies are based on the perceived public interests of the few.In many countries, while children are hungry and dying military spending is skyrocketing.These countries are not necessarily dictatorial.While a government is thirsty to fulfill its national glory its heart becomes hollow in the draught of love, kindness and compassion.The nation in the disguise of prosperity and in the name of responsibility is morally degenerating into collective egoistic corruption.Thus a nation fails to raise its people to attain the higher plane of humanity.It has already abandoned its spiritual responsibility.It is only governance of the people, not government of the people, that can bring peace and happiness to the world.People all over the world need to restructure our civilization. For, man is inextricably bound to the God or nature.

세계적으로 볼 때, 정책은 소수의 인지된 대중적 관심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죽어갈 때, 군사비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있다. 이런 나라들이 꼭 독재적인 것은 아니다. 정부가 국가의 영광을 만족시키기를 갈망하는 동안, 진정으로 중요한 나라의 심장은 사랑과 친절, 그리고 동정의 고갈로 인해 죽정이만 남게 된다. 번영이라는 허울 아래, 그리고 책임감이라는 명목 하에 국가는 도덕적으로 집단적 이기주의적 파멸로 나아간다. 따라서 국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성의 높은 상태를 획득하도록 고양시키는 데 실패하고 만다. 국가는 이미 정신적 책임감을 포기했다. 그것은 세계에 평화와 행복을 안겨주는 사람들의 정부가 아니라 사람들을 통치하는 조직일 뿐이다. 전세계의 사람들은 우리의 문명을 재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신과 자연에 매어 있기 때문이다.
























발제문/한국---------------------------------------------------------------------------------------------------------


박 영 한(소설가)


전쟁에 관한 한 우리 한국인들은 집단적인 콤플렉스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 역사에서 최근세에 해당되는 1950년 남북한간의 전쟁이 그러하고 또한 나와 내 동료들이 참전했던 베트남전 역시 그러합니다. 일테면 명백한 외적과의 전쟁에서는 콤플렉스가 들어설 자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목적이 분명하고 전쟁의 명분 또한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우리 한국인이 콤플렉스를 갖게 된 것은 그것이 동족간의 싸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겪은 한국동란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동족간의 전쟁이었습니다. 베트남전이 우리에게 콤플렉스를 강요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한 가지는 그것이 우리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남의 나라 전쟁에 우리가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전은 미국과 북베트남과의 전쟁이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북베트남과 프랑스, 북베트남과 일본과의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던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한국군들은 미군의 탱크에 올라앉아 전쟁을 치뤄내야 했는데, 우리가 참전했을 당시에는 현재 한국의 처지와는 너무도 다르게 우리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마악 끝낸 한국은 당시 몹시 가난했고 국가적 차원에서 보자면 젊은 목숨들을 팔아서라도 경제를 일으켜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 군인들은 국가의 명령이 떨어져, 가라 하면 가야 했고 오라 하면 군말 없이 와야만 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라크전에 우리 한국군들이 참여해야 한다 또는 참여하면 안 된다 설왕설래가 많아 나라가 시끌벅적한데, 당시 박대통령 시절에는 이런 공론과 반박의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절박했고 그것을 선두에서 진두지휘한 사람이 다름 아닌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우리가 콤플렉스를 갖게 된 두 번째 이유는 베트남전이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뼈저리게 겪었던 한국동란과 너무나도 유사한 균형 위에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전쟁 역시나 우리 한국동란과 마찬가지로 동족간의 전쟁이었는데, 막상 참전해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웬걸, 그것은 우리가 불과 10여년 전에 통과의례를 치룬 바 있던 한국동란과 너무도 흡사한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한국동란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은 북한이 그 한 당사자이고, 자본주의 대국 미국의 힘을 등에 걸머진 남한이 나머지 당사자라면 이 또한 베트남전의 대립 형세와 너무나도 흡사한 구도였던 것입니다.
참전할 당시 우리는 나이가 어렸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나 지적인 판단 없이 전쟁터로 떠밀려가야 했으며, 거기서 우리는 단지 우리가 용감하게 싸우는 일이 국가를 위해서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정당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참전했던 그 남의 나라 전쟁이 과연 전쟁 당사국한테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는지 등등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으며, 우리가 그 땅에서 철수한 뒤 미국의 패배로 전쟁이 마감되고 나서도 꽤나 세월이 지나기까지도 우리가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던지, 그래서 결국은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를 밀쳐내려고 애썼던지 도무지 관심조차 못 가졌습니다. 언론도 입을 다물었고, 국내 정치 상황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렸으며, 그러니 국제 정세에도 우리는 둔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 전쟁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한참 세월이 지나서의 일이었습니다.

나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이라 일컬어지는 {머나먼 쏭바강}은 바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그 반성적 성찰을 기반으로 한 작품입니다. 참전병사였던 나로서는 되돌아보기 싫은 전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내 동료들도 그 전쟁에서 아무런 값진 것을 얻지 못했으며, 우리는 의무 복무기간이 지나자마자 곧바로 지쳐빠져서 돌아왔기 때문이었고, 우리는 우리가 일단 철수한 그 전쟁을 금세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고 있었던지도 모릅니다. 왜냐? 뭔가 우리한테는 속으로 찔리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베트남전에 관한 소설로서 나는 두 편의 장편소설을 썼습니다.
반성이 시작되자 느낌이 많아졌습니다. 반성이 시작되자 속에 쌓여 있던 할 말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반성이 시작되자 분노가 터져나왔습니다. 반성이 시작되자 잊었던 그 땅에서의 한 여대생에의 사랑이 다시 싹터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반성이 시작되자 그 나라 사람들한테 부끄럽기 시작했습니다. 반성이 시작되자 첨전 동료들과 나 자신을 향한 질책이 시작되었습니다. 반성이 시작되자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향한 이념적인 분열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펴낸 두 편의 장편소설은 일종의 성찰과 속죄의 기록이었습니다. 내가 참전했던 남의 나라 전쟁을 통해서 내 나라 현실을 보다 분명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심대한 전환기였고 내 문학의 뿌리를 뒤흔드는 무엇이었습니다.
지지난 해던가 언제던가 북베트남의 전사로서 소년병 때부터 줄곧 오랜 시간동안 남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참혹한 전투체험을 많이 가진 바오닌이라는 베트남 작가가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바오닌과 나눈 어느 신문 인터뷔가 생각나는군요. 아니, 그 사람의 표정이 말입니다. 깡마른 그의 얼굴에서 얼핏얼핏 느껴지던 것은 일종의 새하얀 살기였습니다. 그는 그 강팍한 살기 한 가지로 그 숱하게 처참했던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었던 것입니다. 바오닌은 전혀 작가답지 않고, 해박하거나 유식하지도 않으며, 그 전쟁에 관한 것 빼고는 문학 예술에 관해서는 무지에 가까운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바오닌과 인터뷔한 그 보수적인 신문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미국을 무던히도 싫어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렇다면 미국군과 함께 어깨동무해서 같은 탱크에 올라앉았던 한국군에 대해선 과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이제 다신 그런 일이 없어야지요. 잊어버리고 삽시다] 하고 얼버무리더군요. 여러 차례 사선을 뛰어넘었다던 그는 아마 한국군과도 총부리를 겨누었던 게 확실해 보입니다. 전쟁은 다신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열혈신조였던 기억이 나는군요.
지구상에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대체 전쟁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라고 묻는다면 여기 참석하신 작가들께선 당연히 코웃음칠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은 대체 누가 일으키는 것이며 그것은 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침공하는 강대국이 몹쓸 것들이라서? 침공당하는 대개의 약소국이 문제아들이라서?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많을 것입니다. 나는 차라리 이렇게 결론짓고 싶군요. 인간들을 보라. 서로가 서로에게 잘 대해주기만 할 수 없고, 매번 인간들끼리 매양 갈등을 일으키고 때로는 살인에까지 이르는 그 이유가 어찌 그리도 다양한지를 잘 살펴보면 전쟁이 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담박 알 수 있으리라고 말이지요. 클라우제비츠란 사람마냥 나는 전쟁 연구가도 아니며, 더더구나 전쟁소설 두 편 내고 전쟁 프로 작가라고 치부할 처지도 못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서고 보니 내가 썼던 두 번째 베트남전 {인간의 새벽}이란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주인공 여자를 통해 나 자신의 세계관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는 그 소설의 라스트 신 한 장면만 짧게 인용하고 이 자리를 물러날까 합니다.

---여자는 피투성이가 된 키엠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후리치는 폭풍우와 마주앉았다. 오한이 났다. 오빠 곁에 드러누울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기력조차 없다. 두 개의 몸뚱이가 꼭 붙은 채 굳어버렸으면...... 갈매기떼가 뜯어먹을 것이다. 누가 이런 전쟁을 일으켰을까? 그러자 쌓여온 분노가 되살아났다.
[시체 버리지 마]
가냘픈 선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요! 여자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여자는 전신의 힘을 짜내어 시체를 힘껏 뱃전 너머로 밀었다. 바다는 깜깜했고 파도가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띤마웅딴] 지옥 같은 버마를 세계에 알린다

한겨레21 2003년10월30일 제482호




버마 민주화를 외치며 ꡐ외로운ꡑ 싸움을 벌이고 있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날카로운 사회비판과 풍자로 버마에서 이름을 날렸던 띤마웅딴(50)이 국내 버마공동체와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초청으로 지난 10월17일 한국을 찾은 것이다.

띤마웅딴이 1991년부터 2000년까지 펴낸 월간지 <띤바와>는 에이즈, 교육 등의 문제에서 버마 사회를 보는 참신한 시각을 제시해, 버마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ꡐ당연하게도ꡑ 버마 정부에는 눈엣가시여서, 띤마웅딴은 결국 지난 2000년 구속이 임박해지자 타이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ꡒ버마는 언론 검열이 매우 심했어요. 매우 ꡐ부드럽게ꡑ 비판하지만 ꡐ날카로운ꡑ 독자는 알아차릴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했습니다. 하나의 예술이었지요. 하하하!ꡓ

띤마웅딴은 현재 미국 워싱턴 D.C의 <라디오 프리 아시아> <버마 자유의 소리> 등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버마의 정치․사회 문제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올 초에 버마 교육정책을 비판한 칼럼집을 펴내는 등 버마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뛰고 있다.

이제는 자유롭게 버마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치열한 고국의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점은 그를 고민스럽게 한다.

ꡒ국민들이 정부에 대항해 ꡐ일어날 수ꡑ 있게 해야 하는데 정말 어려워요. 또 미국에 있다보니 제 주장이 버마 본국에 잘 전달되지도 않고요.ꡓ

띤마웅딴은 ꡒ한국의 민주화운동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ꡓ며 ꡒ버마인들도 민주화를 위해 일어났으면 한다ꡓ고 덧붙였다. 띤마웅딴은 버마인 공동체 등이 준비한 간담회에 참석한 뒤 지난 23일 출국했다.

 

글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아시아문학 소개-------------------------------------------------------------------------------------------------------


Palestinian Literature


The Palestinian modern literature has crossed four stages since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first one is to be called the renascence. The writers wet, like their fellows in the Arab world, to the Golden Age Arabic literature trying build there models out of it.This stage managed to get red of the weakness which occurred in the last four or five centuries.
The Second stage was in the first quarter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Palestinian literature started to find his special voice and his special way among the Arabic literature.
In its third stage, at the beginning of the sixties. the Palestinian literature reached its maturity. In many fields and especially poetry it started to take lead in the Arab world literature. The well national Palestinian poet Mohmoud Darwish started his way at that time reaching his beak at the eighties and nineties.
Darwish revolutionary language managed to affect not only Palestine but the whole poetry movement in the Arab world.
Building on his gained and the Gains of Kenefani in the field of novel we could say now that the Palestinian literature inters its fourth stage, flourishing in many fields, not in poetry only. This literature is participating in the national struggle for liberation and independent. It is also taking its part in modernizing the Arab literature.
Now it is a rich literature with many schools and voices.
May be it is worth to Quote what Dr Salma Jayyusi,a well known Palestinian critique about the changes in the Palestinians literature in the eighties:
(Never the Palestinian creative talent such as a rich harvest)














민족문학작가회의 소개----------------------------------------------------------------------------------------------


The Association of Writers for National Literature(AWNL)

The Association of Writers for National Literature(AWNL) is the representative organization of Korean writers.Its purpose is &quot;to build the truly national literature on this land, succeeding and developing the spirit of The Council of Writers for Freedom and Practice which have endeavored to achieve the freedom of expression and the democratization of Korean society.&quot;
And it makes every effort not only to defend the rights and interests of Korean writers in this changing society, but to raise the status of Korean literature in the world through various kinds of international exchanges.
Presently AWNL, registered as a corporation aggregate, has many committees such as Committee for Freedom and Practice and various departments of genres. Also it has more than 13 local branches organized since 1997.
 
(http://www.minjak.or.kr)











 











<세계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 안내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세계문학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가운데 그 유용한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민족문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국제위원회를 중심으로 <세계작가와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외국의 저명한 문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 우리의 시야를 한층 넓혀줄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이 기회를 통해 우리문학을 해외에 더욱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동시에, 우리문학이 세계문학 속에서 담당해야 할 정당하고도 의미있는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할 이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제1회 / 1997. 6. 26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따니 고진 초청
강연주제 : 미와 지배 - 『오리엔탈리즘』 이후
제2회 / 1997. 8. 13
미국의 계관시인 리타 더브(Rita Dove) 초청
강연주제 : 시짓기와 현실 - 시집 『토마스와 뷸라』의 생성과정
제3회 / 1997. 11. 13
프랑스의 원로시인 미셸 드기(Michel Deguy) 초청
강연주제 : 시와 언어, 문화
제4회 / 1998. 5. 6
칠레의 저항작가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초청
강연주제 : 살아남기의 언어
제5회 / 1999. 4. 25 ~ 5. 1
일본의 원로시인 초청 요시마쓰 고오조오 초청
강연주제 : 신일본문학운동의 과거․현재․미래
제6회 / 2000. 6. 5 ~ 6. 6
중국 작가 여화(余華), 베트남 작가 바오닌(Bao Ninh), 프랑스 작가 카트린느 에르마르 비엘(Catherine Hermary-Vieille) 초청
강연 : 21세기를 여는 동아시아 문학의 미래
제7회 / 2001. 1. 13 ~ 1. 17
베트남작가동맹으로부터 초청받아 작가회의 대표단(단장 이문구) 베트남 방문
한․베트남 문화협정 체결 / 하노이, 베트남 작가동맹 사무실
제8회 / 2002. 10. 24 ~ 10. 31
한․베트남 수교 10주년 기념 - 베트남 작가동맹 대표단 휴틴(총서기), 안 득(부총서기), 킴호아(시인, 번역가), 투이 마이(소설가) 초청
강연주제 : 아시아의 평화와 문학
제9회 / 2003. 8. 21 ~ 8. 28
한․몽 시인 대회 개최, 한․몽 예술교류를 위한 간담회, 북방 미학 순례(울란바토르에서 고비사막까지) - 민족문학작가회의 몽골 방문
이시영, 고형렬, 박영근, 김용락, 한창훈 등 10여 명과 몽골 측 문인협회장 등 20인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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