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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팔루자사태-활동가 전언
이름 사무처 이메일


                                        *2004년 5월 22일 이라크반전평화팀이, 작가회의 신입회원오리엔테이션에서 강연한 내용(2)


지난 4월 4일부터 전면전으로 치달았던 이라크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군은 시아파 종교지도자 모크타다 알-사드르 체포를 위해 시아파 성지 나자프와 카르발라에 대한 공격임박설이 나도는 한편, 팔루자에서도 저항세력 소탕을 위해 공격은 계속 멈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난 주 16일(금)에는 바그다드 서부 도로 주변의 민가에 저항세력 무자헤딘이 배포한 것으로 보이는 전단지에 ꡒ곧 바그다드 내에서도 미군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대피하라ꡓ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다음날 17일(토)에는 미군측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해 전쟁양상이 바그다드 시내로 확전될 것인지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 키미드 준장은 그 지역 일대를 언급하며 ꡒ무장세력으로 오인되어 사살될 위험이 있으니 접근하지 마라ꡓ고 경고했다.

"미군, 수백명 피난민 감금한 채 물도 안 줘"
팔루자는 여전히 미군에 의해 봉쇄되어 있다. 시아파 명절인 아르비엔야를 기점으로 일시적으로 있었던 미군의 공격중단과 휴전협상은 12일 밤부터 깨졌다. 미군은 한편으론 협상을 하면서도 탱크와 F-16 전투기를 동원해 바그다드-팔루자 도로간 팔루자 시내 진입을 시도, 이 교전과정에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팔루자 시내에서 긴급구호 작업을 하고 있는 아흐메드 노와프(25세, 교사)가 16일(금)에 전화로 전한 증언에 의하면, 미군의 팔루자의 봉쇄는 여전하고 연일 교전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를 포함한 팔루자 난민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팔루자 공격이 시작된 지난 4일부터 미군의 탱크가 한번도 이 체크포인트를 넘어 직접적으로 진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저항세력 무자헤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 진입로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아흐메드 노와프는 지난 8일 팔루자에 있던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바그다드로 대피시키는 데까지 함께 동행했고, 이후 한 명의 친구와 함께 팔루자 긴급구호를 위해 다시 알-니에니아 사막을 거쳐 13일 팔루자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는 팔루자 인근에서 차를 버리고, 걸어서 팔루자 시내까지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사막을 건너는 동안 사막에서 미군들이 몇 백명의 피난민들을 인근 펩시콜라 공장에 가두고 외부출입을 통제해, 13일 현재 사흘째 물과 음식의 공급이 중단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그대로라면 피난민들의 대부분이 여자와 어린아이들인 점을 감안,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와는 13일 팔루자 내부로 들어가 16일에 전화통화가 가능했다. 그를 거리에 있는 썪어가는 사체를 수거해 묻는 작업을 하느라 완전 탈진 상태였다. 그리고 함께 팔루자에 들어가 구호 작업을 하던 친구는 미군의 저격수에 의해 사살됐다고 전했다.

"미군, 팔루자 옥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 사살"
지난 16일(금) 알-사드르시티에서 수니-시아 연합 금요예배가 5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치뤄졌다. ⓒ윤정은
미군들은 탱크를 동원 팔루자에 직접적으로 진입이 불가능하자 헬기를 이용해 저격수를 투하, 팔루자내 많은 건물들의 옥상에는 미군의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다. 지난 8일 미군은 팔루자 주민들에게 ꡒ8시간 내로 팔루자를 떠나지 않으면 무장세력 무자헤딘으로 간주하겠다ꡓ고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저격수들은 팔루자 거리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들은 사살시키고 있다.
저격수에 의해 사살된 아흐메트 노와프의 친구는 13일 팔루자 자신의 집에 도착한 즉시 사살됐고, 그의 아버지 또한 정원에서 이마가 명중되어 죽어가는 아들을 구하러 집 밖으로 뛰어나가다가 같은 자리에서 사살됐다. 이 모든 상황을 노와프가 목격했고, 전화로 증언했다. 지금은 그와도 전화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현재 팔루자에서는 무장세력 무자헤딘은 ꡒ목숨을 걸고 고향과 가족들을 지키겠다ꡓ고 항전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팔루자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그들은 끝까지 고향을 지키겠다고 팔루자를 떠나지 않고 있으며, 이들은 거리에 썩어가는 시체들을 보며 분노를 넘어 죽음으로 대항하고 있다.
미군은 팔루자 내에서 저항세력 완전소탕을 천명하고 있어서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아마 전쟁이 끝나는 시점은 미군이 더 이상 쏟아부을 수 있는 걸 다 쏟아붓고 난 다음, 그렇지 않다면 무장세력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있는 화력이 떨어졌을 때 전쟁은 끝날 것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의 연속이다.

"미군이 철수하는 날까지 죽음 불사한 저항 계속될 것"
이것은 비단 대학살이 진행된 팔루자에만 국한되는 상황이 아니다. 팔루자를 포함한 수니 지역을 포함하여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까지 저항세력들은 ꡒ미군이 철수하는 그날까지 죽음을 불사한 저항이 계속될 것ꡓ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이 전쟁에서 이유는 없다. 양쪽은 모두 죽이고 죽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을가? 그리고 미군이 말하는 것처럼 과연 모크타다 알 사드르가 범죄자, 혹은 과격 시아 저항세력의 우두머리이기만 한 인물로서 체포되거나 사살되어 마땅한 인물인가? 그리고 왜 팔루자 사람들을 비롯하여 수니지역과 시아 지역에서 동시에 무장봉기가 이어지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난 4일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전쟁으로 먼저 가장 큰 인명피해가 났던 팔루자를 비롯한 수니 지역은 전쟁 이후, 미군의 저항세력 소탕작전이라는 명분으로 1년동안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었다. 또한 저항세력들에 의한 폭탄테러 또한 끊이지 않았다.
미군 입장에서 보면 수니삼각지대는 후세인 정권 하에 활동했던 핵심세력들이 잔존하고 있는 지역이고, 모든 무장봉기의 진앙지로 파악됐다. 이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은 1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월 31일에 있었던 미국인들 사체 훼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 당시 팔루자의 민심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미군정의 점령이 시작된 지 1여년동안 이라크는 극심한 실업난과 사회혼란이 계속됐고, 특히 팔루자에서는 가장들이 아이들에게 줄 우유 한병, 펩시콜라 한병 살 돈이 없다고 얘기되어질 정도로 실업문제가 심각했다.
또한 미군의 저항세력 소탕작전이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민가에 난입하여 총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집안에 총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을 무조건 잡아들인다는 피해보고가 계속됐다. 이 과정이 1년 동안 계속됐고,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감이 폭발한 게 지난 3월 31일 미 경호요원 4명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미 경호요원들이 말이 민간인이었지, 그들은 미군에 협조하여 이라크에 대한 정보수집을 하던 임무이다 보니 결코 저항세력 소탕작전과 무관한 민간인이 아니었던 까닭에, 팔루자 주민들의 화가 그들에게 미친 것이다.
또 한편으로 미군정에 우호적이었던 시아파가 갑자기 무장봉기로 이어진 것도 이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동안 미군정은 이라크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아파 종교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를 써왔다. 또, 시아파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 또한 온건노선을 견지하며, 미군정에 우호적인 태도를 줄곧 유지해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던 거의 모든 시아파 신자들이 지금은 미군들에 등을 돌리며 총을 들고 있는가?
발단은 지난 3월 28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 임시행정처(CPA)가 시아파 종교소식지인 알-하우자에 60일간 정간조치를 내렸다. 알-하우자는 매주 목요일 8-12쪽씩, 1만에서 1만 2천부가 발행되는 유가지였다. 이 주간지는 발행되는 그날 즉시 매진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미군정이 소식에 정간조치를 내린 이유는 젊은 시아파 지도자였던 모크타다 알-사드르의 금요 설교를 매번 게재하는 등 미군정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알-사드르는 3월 8일 과도헌법이 통과된 후, 이 과도헌법에 대한 비판 및 미군정의 점령정책을 비난의 강도를 높여와 미군정으로 봐서는 가장 기피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미군정은 알-하우자에 대한 정간조치에 그치지 않고, 곧이어 알-사드르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발부하면서 시아파와의 관계를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체포영장에 대한 명분은 알-사드르가 지난해 4월 발생했던 알-시스타니 측인 압둘 마지드 알-호에이 피살사건과 같은 해 8월에 일어났던 알-하킴 폭사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었다.

이에 대해 시아파 신자들은 바그다드를 포함해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와 카르빌라에서 알-하우자 정간조치와 알-사드르 체포영장에 반대하는 농성을 연일 했다.
그러던 4월 4일, 나자프 모스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향해 연합군이 발포해 21명 사망, 200여명의 사람이 다쳤다. 이날을 기점으로 농성과 시위를 벌이던 시위양상이 무장항쟁으로 바뀌었으며, 미군의 공세가 강화되자 무장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지난 4일부터 미군이 수니지역과 시아 성지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 이후로부터 현재까지는 시아-수니 연합전선을 구축해 미군에 대항하고 있다.

16일 바그다서 5만~6만명 모여 수니-시아 연합예배
아리비엔야 후 첫 금요일을 맞았던 지난 16일(금)에는 바그다드에서는 수니-연합 세력을 과시하려는 듯 수니-시아 연합예배로 치뤄졌다. 바그다드 내 시아파 밀집지역인 알-사드르시티엔 이날 최소한 5,6만 명의 시민들이 모스크로 운집했다.
ꡒ시아파 명절이지만 오늘 예배는 수니와 시아가 함께 치루는 것이다ꡓ라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몸수색과 총기소지 여부를 확인하던 민병대 마흐메트(36세)가 말했다. 그의 말은 지금의 이라크 사태가 단지 시아파 무크타다 알-사드르 추종세력의 일부와 수니지역의 일부 무장세력이 봉기한 것이 아니라 미군은 전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라는 설명이다.
이날도 예배 곳곳에서 모크타다 알-사드르의 사진이 내걸리고, 그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지지가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4-04-09

"팔루자를 해방시키자!" 이라크민중 평화행진 시작

미군의 대대적인 포위 공세로 닷새 동안에 3백명이상의 사망자가 속출한 팔루자를 돕기 위한 이라크인들의 평화행렬이 시작됐다. 미군은 지난 5일부터 바그다드에서 팔루자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비롯하여 팔루자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봉쇄하고, 6일은 로켓포 공격까지 감행했다. 현재 사상자도 정확히 집계되지 않는 상황이다. 외신들은 닷새동안의 포위공격으로 최소한 3백명이상의 팔루자인들이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미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 고립된 채 공중에서 융단폭격을 맞는 팔루자 시민들의 고통에 분노한 바그다드 시민들은 8일부터 미군의 폭력 중단을 요구하며, 팔루자에 직접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한 대대적 평화행진에 나섰다.
/'/이라크의 빛고을(광주)/'/로 급부상한 팔루자를 해방시키기 위한 이라크 민중의 거대한 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8일부터 바그다드인 평화행진 시작

위대한 행진은 8일부터 시작됐다.팔루자와 가장 인접한 바그다드 가잘리아와 아다미야의 사원을 중심으로 8일 새벽기도 시간에 "팔루자로 평화와 구호를 보내는 행진을 하자"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수 천명의 바그다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구호물자를 수집, 자마 움물고라 사원과 자마 이맘아담 사원으로 향하고 있다.
8일 오후 2시경. 두 모스크에는 하룻동안 바그다드 사람들이 보낸 쌀, 식품, 의약품, 생필품, 물 등이 건물 앞은 물론이고 건물 안에도 꽉차 있었다. 사람들은 역할을 분담해 식품, 의약품, 생필품 등으로 분류해, 트럭에 싣고, 팔루자로 떠나는 사람들과, 바그다드에서 사람들이 보내는 물품을 수집하여 운반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이것들을 다시 분류하는 작업들로 사람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또 구호물자를 보내는 행렬뿐 아니라 봉쇄된 팔루자까지 도보로 평화행렬도 시작됐다. 8일은 몇 명에 그쳤지만, 9일에는 수천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팔루자가 미군에 의해 봉쇄된 것은 지난 5일부터다. 지난 4일 나자프에서 연합군과 시아파의 유혈충돌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연합군과 이라크 저항세력 간의 충돌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는 곳이 팔루자다.
미군이 갑자기 작정하고 팔루자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벌인 것은, 지난 미군 민간인 4명을 살해하고, 시체 훼손 사건에 대해 범인을 색출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6일, 미군은 이라크 승전선언후 최초로 전투기까지 동원해 로켓포 공격을 감행하고, 8일은 사원에 무차별 공격을 가해 기도를 하던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까지 속출하고 있다.
미군 4명 살해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미군에 의해 현재까지 팔루자에서는 사상자가 수백명에 이르러 정확한 숫자는 현재 파악되지 않는 상황이다. 외신들은 닷새동안에 팔루자에서만 최소한 3백명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전하고 있다. 말그대로 /'/팔루자 학살/'/이다.
이것을 두고 범인색출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누가 보더래도 명백한 /'/보복 공격/'/이다. 자국민의 몇 명의 생명이 희생당한 것 또한 안타깝긴 하지만, 그에 대해 무차별적인 대대적인 보복공세를 하는 미군의 태도는 납득할 수 없다.
ꡒl love Falluja!ꡓ
ꡒWhy?ꡓ
운수업을 하는 알리(25세)는 지금의 미군의 태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되물었다. 현재 그는 바그다드에 거주하고 있으나, 팔루자가 고향이며 현재 어머니를 비롯하여 가족들이 팔루자에 있는데 전화도 두절되고, 며칠동안 생사를 알 수 없어 속을 태우고 있었다.
이날 구호물자를 보내는 모스크에는 10살 내외의 소년들도 팔루자로 구호물자를 보내는 일을 거들고 있었다. 현재 바그다드 시내를 비롯하여 인근 도시의 학교가 문을 닫은 지 나흘이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높은 트럭에 맨발로 올라가 물자들을 분류하고 받아넘기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고, 자기 체중보다 더 무거운 짐들은 업어 나르는 등 눈물겨운 동참을 하고 있었다.
ꡒl love Falluja!ꡓ

한 아이가 높은 컨테이너 트럭에서 내려오더니 이렇게 외치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들 ꡒI love Falluja!ꡓ를 따라 외쳤다.
현재 팔루자는 미군에 의한 침공과 점령 정책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저항의 발상지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반미성전의 성지/'/로 팔루자를 얘기한다. 4일부터 시작되어 이라크 전역으로 확산되는 이라크인들의 반미 정서는 엄청난 무기들을 동원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한 미군이 조장한 것이다. 지금의 반미 저항의 흐름은 이라크 내 무장세력과 미군의 충돌이 아니라, 오로지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 미군의 침공에 대해 분노한 이라크 민간인이 총을 들고 있다. 현재 미군은 군과 전쟁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을 상대로 폭탄을 퍼붓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바그다드 시민들 중 어느 누구를 잡아 물어봐도 ꡒ미군은 나쁘다ꡓ라고 말한다.
ꡒ이라크 사람들은 우리 땅에서 가족을 지기키 위해 총을 들지만, 미군은 무슨 자격으로 이라크 사람을 죽이느냐.ꡓ 자마 움물고라 사원에서 사람들을 지휘하던 한 성직자가 바쁘게 움직이며 말했다. 그는 또 ꡒ미군은 더 이상 이라크 사람들을 죽이면 안된다ꡓ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ꡒ내일이면, 또 다음날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팔루자로 향할 것ꡓ
언제까지 구호물자를 운반한 평화행진이 계속 될 거냐는 질문에 바그다드 시민들은 ꡒ내일 아침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팔루자로 향할 것ꡓ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다음 내일이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미군의 폭력이 중단될 때까지 바그다드 시민들은 미군에 의해 봉쇄돼버린 바그다드-팔루자 간 도로를 향해 걸어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밤마다 바그다드 외곽으로부터 더 크게 들려오던 폭탄 소리에 숨죽이고 있던 바그다드 시민들이 팔루자로 이어지는 평화행렬을 위해 일어서기 시작했다.
위대한 민중의 인파가 지금 팔루자를 향해 바그다드를 위시한 이라크 각지에서 밀려들고 있다. 미군은 지금 팔루자를 포위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라크 민중으로부터 포위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윤정은/평화운동가




2004-04-10

4만 바그다드시민의 통곡, 팔루자 학살 중단하라

바그다드 함락 1주년인 9일(현지시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크고 작은 폭발로 긴장감이 고조됐다. 쉐라톤 호텔 옆에 박격포탄 한 발이 떨어졌고, 시내 중심부에도 두 차례 큰 폭발이 있었다. 또한 바그다드 외곽 지역에서는 오전부터 작은 폭발들이 계속 잇달아 일어났다. 바그다드 내에서도 긴장감이 높아지자 그동안 팔루자, 알 사드르 시 등 바그다드 외곽에서 일어난 전쟁 양상이 언제 어떻게 바그다드 중심부로 번질지 예상할 수 없는 상태이다.
날로 바그다드의 긴장감이 높아감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 시민들은 ꡐ학살(Genocide)ꡑ이 이루어지는 팔루자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또 이날 시민들뿐만 아니라 압델 카림 마후드 알-마하마다위를 비롯한 과도통치위원들은 미군의 팔루자 공격을 학살이라고 규정하고 ꡒ미국이 팔루자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과도통치위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ꡓ고 발표했다.

4만명 바그다드시민, /'/팔루자학살/'/중지 촉구집회 열어
10일부터 시작되는 시아파 종교 행사인 ꡐ아르비엔야ꡑ의 하루 전인 이날은 각 사원을 중심으로, 팔루자에 대한 미군의 폭력 중지를 요구하는 특별기도와 군중집회가 이뤄졌다.
바그다드 내에서 가장 대규모의 인원이 모인 사원은 팔루자에서 가장 가까운 바그다드 서부 외곽인 가잘리아 지역 움 알쿠라 사원이었다. 현재 이 사원은 바그다드에서 팔루자로 보내는 구호물품의 중간 창고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날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었던 바그다드-팔루자 간 도로의 인간띠잇기 보도 평화행진은 팔루자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침 9시 즈음에 수십명의 사람이 모여 걷기 시작했으나, 도로 주변과 인근 마을 곳곳에서 폭발이 이어졌고, 목숨을 건 평화행진은 종료됐다.
그러나 구호물자를 실은 차량행렬은 여전히 계속됐고, 오후 기도시간을 기점으로 오후 1시경 팔루자-바그다드 도로 위에서 계속되는 폭발위험을 뚫고 4만명 이상의 바그다드 시민들이 차량이동으로 이곳에 집결했다. 평소 교통체증을 겪던 이 도로는 구호물을 실은 차량과 사원으로 모이는 시민들의 자가용 외에는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

언론통제된 /'/팔루자 학살/'/에 시민들 울음
이날 집회는 유례없이 평화적으로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진행됐다. 사원 앞으로 수천대의 자동차가 붐빌 것을 예상하고, 수십 명의 진행요원들이 가잘리아 지역 입구로 들어오는 곳부터 주차를 안내했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총기를 소지한 사람들은 가슴에 명찰을 달아 신원을 밝히고 있었다. 오후 3시에 기도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반미 집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사원의 중심부로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ꡒ팔루자!ꡓ라고 한 사람의 선창을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ꡒ팔루자ꡓ를 복창을 했고, 마이크를 든 종교지도자가 ꡒ미군은 팔루자의 학살을 중지하라ꡓ는 내용의 연설을 시작하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또ꡒ이라크인들이 총을 드는 것은 결코 불법이 아니며, 우리 형제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드는 것ꡓ이라며 ꡒ팔루자에서 우리 형제들이 죽은 것처럼 미군에게 똑같은 죽음을 줘야 한다ꡓ고 말을 하자,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ꡒ지하드(성전)ꡓ을 외쳤다.
이날 집회 내내 바그다드 시민들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 사원에서 채 1시간도 떨어져있지 않는 팔루자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시간에 몇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지도 알 수 없다.
이날 과도통치위에서는 팔루자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5일동안 최소한 4백명 이상이 죽고, 1천명 이상이 다쳤다고 공식발표 했다. 현재 팔루자에서는 미군에 의해 도로가 봉쇄되어 물과 식료품, 의약품의 공급이 어렵고, 통신이 두절된 상태이다. 또한 언론 통제에 의해 팔루자의 참상이 전혀 외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틀 전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의 보도를 통해 공개된 죽은 아이의 끔찍한 사진 몇 장이 전부이다.
9일 오전 8시30분. 역시 바그다드 서부 지역 아다미야의 이맘 아담 사원에서 구호물자를 실은 차량을 촬영하기 위해 이맘 아담 사원 앞에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소리쳤다.
전날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피랍사건으로 잔뜩 긴장했던 터라, 그가 다가올 때 움찔했다. 곧 통역원을 통역을 통해 그가 전하고 싶었던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ꡒ팔루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이라크인들이 죽어간다. 그런데 아무도 이 사실 알지 못한다. 전세계에 이것을 알려달라ꡓ고 그는 카메라 앞에서 절규했다.
그의 말처럼, 미군은 팔루자에 대한 봉쇄와 폭격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라크 현지에 있는 언론인들은 지금 팔루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도하기 위해, 팔루자로 이라크 시민들과 함께 행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국민들이 지금 무엇에 분노하고, 왜 절규하는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군정, 자국민 죽음 정치적으로 악용"
지금 팔루자의 현실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대테러전을 선포하고 2년 사이에 두 개의 전쟁을 치루는 부시 정부의 호전적인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미국 사회는 9.11 사태를 통해 엄청난 충격을 받고, 부시 정권이 아프간 전쟁을 시작으로 해 이라크 전쟁까지 감행하는 것을 용인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9.11 테러 희생자들에뿐 아니라, 자국민 4명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미군은 이번에 미국 경호원 4명의 죽음을 세계 언론을 통해 그대로 내보내고, 국제사회를 경악에 빠트린 다음, 그리고 지금 팔루자에서 대학살을 자행했다. 이것은 미군정이 자국민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 평론가인 수잔 손택은 9.11 사태 2주 후, ꡒ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ꡓ(뉴요커, 2001년 9월 24일자)고 전쟁을 부추기는 부시정권과 사회지도자들에게 각성을 요구하고, 미국 국민들에게는 이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미국은 또다시 자국민을, 그들은 전 세계를 바보로 알고 있다.
 

윤정은/평화운동가
팔루자 민간인 학살 증언

10일부터 시작된 이라크에서 대명절인 아르비엔야를 기점으로 전면전으로 치닫던 전쟁은 팔루자를 비롯하여 일시적으로 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편으론, 12일 이라크 주둔 존 애비제이드 미군 중부사령관은미 국방부에 1만명 추가파병을 요청했고, 미군은 알 사드르 시티를 비롯한 이라크 저항세력은 완전소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어, 언제 또다시 미군의 2차 공격이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상태이다.

환자 후송하는 엠블런스도 미군에 의해 습격
이런 일시적인 휴전상태를 깨고, 미군은 13일 팔루자로 진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12일까지도 협상이 진행되는 중에도 교전은 곳곳에서 발생했다. 미군은 일시적인 휴전협상을 통해 추가파병을 결정하고 전세를 가다듬어 테러조직을 완전히 소탕을 의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고, 이라크 저항세력들 또한 거듭 저항의지를 밝히고 있어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라크 국민들의 반미정서가 어느 때보다 강해 언제 어떻게 화약고가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바그다드 도심에서 북쪽으로 30여분 떨어져있는 알 사드르의 시티의 경우 9일 미군이 철수했다. 알 사드르의 시티의 경우, 그동안의 전투로 총 46명의 이라크인이 죽고, 150여명이 다쳤다고, 알사드르 병원측이 밝혔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리아드 다이엘(36세)는 자동차로 이동하던 중 미군의 무차별 사격에 의해 몸에 세 곳에 총상을 입었다. 병원측은 의약품과 기자재가 부족한 실정이라서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많은 환자들이 집으로 되돌려 보내졌고, 현재 자리를 옮길 수 없는 위독한 환자들이 병원에 남아있다고 전했다. 또, 병원측은 이 병원의 환자를 후송하는 엠블런스조차 미군에 의해 습격받았다고 전했다. 운전을 하던 기사의 경우, 다친 임산부를 후송 중 미군 저격병의 조준 사격으로 총알이 몸을 관통해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미군이 팔루자에서 병원을 폭격하고, 병원차를 공격하기 위해 저격병이 병원차를 따라다닌다는 증언들이 알 사드르시티의 경우에도 마찬지였다.
미군이 철수한 다음날인 10일 알 사드르 시티를 방문했을 때, 미군의 테러조직 소탕이라는 명분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도시 전체를 과녘으로 무차별 사격과 폭격을 가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병원측의 증언과 더불어 또 있었다.
자신의 이층집에 사는 일가족이 모조리 몰살당한 걸 목격한 한 주민은 ꡒ미군이 왜 이 가족들을 죽였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 사람들과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이다. 그가 저항세력이었는지 우리는 몰랐다. 그는 그저 우리와 똑같았다.ꡓ
8일 새벽에 갑자기 미군이 박격포로 공격해 이층집에 살던 부부가 세 아이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전가족이 몰살당한 이 가정의 가장이 민병대 메흐디군의 일원이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미군은 아이들 세 명을 포함한 전가족을 몰살시켰다.

팔루자 민간인, 6백명 이상 사망하고 1천2백명 이상 부상
팔루자 또한 현재 미군의 공격이 멈춘 상태이다. 사상자는 애초 외신보도와는 달리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 600여명의 이상의 팔루자 주민이 죽고, 1200여명 이상이 다쳤다. 10일부터 휴전에 들어가진 했지만, 12일까지 교전으로 계속 미군과 이라크 저항세력의 인명피해가 계속 나고 있다.
특히 미군이 10일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또다시 팔루자에 대한 공습을 감행해, 사상자가 다시 발생했다. 그리고, 미군이 협상하겠다고 발표하기 바로 전 새벽에는 바그다드 서부지역에 위치한 이맘 아담 사원에 미군 20여명이 난입해 팔루자로 보내는 구호물자들을 훼손하고 사원 안에 들어가 천정에 총을 쏘는 등 기물을 파손시켰다. 이 사원은 그동안 구호물품을 보내던 중간 창고로 쓰였던 곳이다.
ꡒ미군들이 갑자기 들어와서 의약품에 불을 지르고, 그동안 분류해놓았던 식품들이 모두 뒤집고, 섞어놓았다. 긴급하게 팔루자로 보내는 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모른다ꡓ며 새벽에 사원을 지키고 있었던 성직자가 밝혔다. 구호물품마저 보내는 것을 교활하게 방해하는 미군의 이런 행태로 인해 팔루자로 긴급히 보내던 구호물자들은 일시적으로 수송이 중단됐다.
팔루자는 현재 외부 사람들이 전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팔루자-바그다드 도로를 통해 팔루자에 접근할 수 없을뿐 아니라, 팔루자 내부로 들어가더라도 민병대 무자헤딘들의 검문을 통과할 수 없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팔루자에 접근했을 때, 외국인 본인 자신만은 물론 함께 동행한 안내인과 기사까지 사살당할 것이다. 이것은 12일, 미군이 테러조직을 완전 소탕 계획 발표와 함께 알 사드르 시티를 포함해서 팔루자의 부족장들의 회의 결과에 의해서 이런 강경한 방침이 발표됐다. 그래서 현재 어떤 외국인도, 외국 언론인도 팔루자에 접근하지 못하고, 바그다드에 완전 발이 묶인 상태이다. 저항세력들의 항전의지와 분노 또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그다드 시내조차 외국인들 신변 위협 느껴
그동안 바그다드 시내에서는 외국인들이 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었는데, 최근부터는 아시아인들 또한 심각한 신변위협을 느끼고 있다. 특히, 자위대를 파견한 일본인으로 오인받는 경우에는 더욱이 그렇다. 가끔 길을 지나가면, 히잡을 착용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따라오면서 ꡒ일본인이다ꡓ라고 외치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현재 바그다드에서조차 외신 기자들을 포함하여 외국인들은 극도로 신변위협을 느끼며, 그와 동행하는 이라크 현지인들 또한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팔루자에서 이틀동안의 사선을 넘어 대피한 피난민들을 취재하러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복장은 온몸을 검은 천으로 덮는 히잡을 입고, 머리카락도 검은천으로 가리고 이곳 사람들의 차림새로 다니는데도, 통역원과 기사가 느끼는 불안감을 통해 지금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과 혐오감이 어느 정도인지 눈치챌 수 있다.
현재 함께 다니는 현지인들은 한국인과 함께 다닌다는 사실이 두려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ꡒ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ꡓ이라고 소개하고 다니고 있다. 특히 아시아인 중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의 경우 국적을 속이고 다니지 않으면, 차안에 있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다. 외국인이 테러의 표적이 있다.

바그다드로 대피한 팔루자인의 증언 : "하늘에서 폭탄과 미사일이 쏟아져 내렸다"
13일 오후, 팔루자 사람들이 바그다드 내에 대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들을 찾으러 전날 머물렀다고 알려져있는 모스크들을 수소문해서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안전을 염려한 모스크의 관계자들은 이미 이들을 민가로 대피시킨 상태였고, 어디로 갔는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네다섯 군데의 모스크를 거쳤는데도 팔루자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기거하는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바그다드 시내를 몇 시간에 걸려 돌다가, 겨우 한 소식통으로부터 그들이 있는 장소를 알아냈다.한 집에 70명의 팔루자 사람들이 은신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들을 만나 5일동안 팔루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방이 두 개인 이 집에 현재 70명, 네 가족이 대피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현재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의 증언 중 일부만을 대략적으로 싣는다.
ꡒ미군은 4일부터 팔루자를 에워싸고 모든 길을 막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폭탄과 미사일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무서워서 집안에만 있었다. 나는 지금 임신 중이다. 집은 다 파괴됐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다쳤다. 나만 멀쩡하다. 나는 살아야 했다. 그래서 팔루자를 도망쳐 나왔다.ꡓ(여성, 무나 하렘, 26세)
ꡒ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죽어있는 걸 봤는지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죽은 사람을 본 것만 해도 수십명이 넘은 것 같다. 사막을 지나서 이틀에 걸쳐 바그다드에 도착했다.ꡓ(남성, 무하메드 자셈, 35세)
ꡒ도망쳐 나오는 과정에서 두 아이를 잃었다. 미군은 우리에게 대피하라고 해놓고 사막마저 봉쇄했다. 사막에 꼬박 하루 갇혀있었다. 그러다가 사막에서 물을 마시지 못해 데리고 나온 우리 아이 두 명이 죽었다. 한 아이가 여섯 살이었고, 한 아이가 두 살이다. 우리뿐 아니라 도망쳐 나오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한 가족이 차안에 타고 있었는데, 미군이 차를 세워 총으로 가족을 몰살시키는 것을 보았다. 네 명이었다. 이건 학살이다. 모스크도 파괴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과도통치위(Governing council)를 반대한다. 그들은 우리를 죽이는 미군을 반대하지 않는다.ꡓ (여성, 하미드 제삼 54세)
ꡒ나는 언니 가족들과 함께 팔루자를 떠났다. 나는 교사이다. 미군이 5일 동안 매일 로켓트로 공격했다. 모든 게 다 파괴됐다.ꡓ(여성, 지난 질르스, 24세)
ꡒ미군은 팔루자를 월요일(5일) 아침부터 공격했다. 아침이었다. 일요일 밤부터 우리는 포위됐다. 비행기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웠다. 나는 신에게 기도했다. 나와 친한 친구 가족이 집안에 있다가 죽었다. 나는 점점 더 무서워져서 집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쳐도 치료할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들이 집 안에 그대로 있었다. 남편과 삼촌이 죽었다. (잠시 흐느낌) 4일 동안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남편과 삼촌을 그대로 집 앞에 두고 팔루자를 떠났다. 그러나 우리가 사막에 도착했을 때, 사막조차도 포위됐다. 미군들은 우리를 바그다드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래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던 중 자우바라는 지역 부족이 우리를 보호해주었다. 우리는 그들의 도움으로 다음날 바그다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온 가족이 온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딸을 찾을 수 없어 그냥 팔루자에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살아야만 했다.ꡓ (여성, 지삼 알리, 20세)
미군은 공격의 막바지 무렵인 8일부터 주민들에게 팔루자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약 8시간 내에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의 경우는 앞으로 모두 무장세력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증언에 의하면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무장세력이라는 건 말이 안된다.아이가 다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 가족을 땅에 묻지도 못해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이 이미 몸이 불편한 사람들. 8시간 안에 가족과 고향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다 무장세력이겠는가?
그리고 미군이 유일하게 주민들에게 대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곳은 알 니에니야(Al-Nieniyah)라는 사막이었다. 그곳으로 주민들을 유도하고, 그리고 그 사막마저 봉쇄해, 주민들이 사막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물이 없어서, 두 아이를 잃었다는 어머니의 증언은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제 팔루자지역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보면 미군은 5일 동안 팔루자에서 민간인에 대해 어떤 인도주의적인 접근이나 고려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고서도 처음에는 한 명의 민간인의 인명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더 많은 증언으로 팔루자 대학살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4-05-03

"팔루자서 하룻새에 8백명 시신 이장"
27일만에 봉쇄 풀린 팔루자의 분노

미군에 의해 봉쇄된 지 27일째인 5월 1일, 마침내 팔루자가 열렸다.
5월 1일 아침, 검문소 앞에 도착했을 때, 전날과 다른 풍경이 있다면 미군 대신 이라크 국기를 팔에 단 이라크 군대가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수백명의 난민들은 미군이 아니라 이라크인이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자 두려움과 경계심이 일단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였다. 그러나 타고온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서 팔루자로 들어갈 수 있다는 방침이 내려졌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곳저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수백 명이 팔루자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그동안 개미 한 마리 지나다지 못한다고 말해질 정도로 굳게 봉쇄되었던 고향을 향해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1일, 팔루자 봉쇄 풀려
4월 30일, 미군은 팔루자에서 철수 준비를 했다. 전날 29일 미군 지휘부와 전직 이라크 장성들이 29일 만나 팔루자 합의안을 도출했다. 미군 대신 후세인 정권 하의 바트당 고위장성이었던 자셈 무하마드 잘리가 /'/팔루자 보호군/'/ 사령관으로 등극, 30일 현지 방송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미군은 앞으로 팔루자의 치안을 1천명이 넘는 이라크군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5월 1일, 검문소 앞에서 만난 팔루자 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미군 대신 팔에 이라크 깃발을 단 이라크군이 그들과 맞대니 직접적인 적개심의 표출 등은 자연히 자제됐고, 미군 탱크는 멀찌감치 떨어져 팔루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차피 작전권은 미군이 있지 않느냐"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또 검문소 앞에서 기다리다 지친 문들 무한넷씨(40세)는 "우리는 지금 팔루자를 가려고 한다. 그동안 미군이 우리를 못 가게 하더니, 오늘은 이라크 군대가 우리를 못 가게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곧 이어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걸어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교전이라도 벌어지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며 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가족들을 차에서 내리지 못하도록 했다. 지난 전쟁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5월 1일, 사람들이 빠져나가 유령도시처럼 된 팔루자에 사람들이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들은 죽은 가족과 친척들의 시신을 거둬, 묘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동안 시신들은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20여일이 지나도록 방치되어 있었다. 팔루자 열린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공동묘지로 쓰이는 축구경기장에는 4백여구 이상의 시신들이 옮겨졌다. 이곳으로는 부족해 또다른 새로운 공동묘지가 만들어졌고, 그곳에도 하룻동안 2백여구 이상이 묻혔다. 그동안 방치되어 부패되고 있던 시신 6백구 이상이 이날 공동묘지로 옮겨졌다.

아이들까지 자원해 시신 처리. 2일 묘지에 이장된 사망자만 8백여명
땅에 묻는 것이 하루라도 시급한 사정이라 아이들까지 자원하여 봉사자로 마스크를 쓰고 정원에 아무렇게 있는 문드러진 시체를 꺼내 묘지로 이장하는 작업에 함께 하는 장면은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정도였다. 팔루자 사람들이 연일 검문소 앞에서 팔루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 것도 죽은 가족들을 두고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못하고 피난을 떠나왔기 때문이다.
5월 2일 오후 4시, 갑자기 만들어진 축구경기장 묘지를 책임지고 있는 성직자는 "총 6백여구 이상이 묻혔다"고 밝혔다. "새로 만들어진 공동묘지에도 2백여구 이상이 묻혔고, 아직도 피난갔던 사람들이 다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고 이곳으로 옮기지지 못한 시체들도 아직 많다"고 말했다. 이 숫자만으로도 사망자 수는 8백명을 훨씬 웃돈다.
그리고 이번 전쟁피해는 폭격에 의한 것이 대다수라서 아직도 건물 잔해에 깔려있는 시체는 수거하지 못한 상태이고, 그리고 지나가는 차량에 미사일 공격을 한 경우는 그 시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망자수는 발표된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5월 2일까지 묘지에 이장된 숫자만 해도 8백명 이상이다.
특히 5월 2일, 한 사원 앞에는 폭격되어 전소된 자동차가 두 대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죽은 가족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그 자동차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루종일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50미터도 안되는 거리 안에서 총 4명의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마흐멧씨(26세)는 "오늘 팔루자에 들어왔다. 부모님과 삼촌이 이 차 안에 타고 있었다"며 그저 새까맣게 타버린 차옆을 떠날 줄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세 사람의 시신이 고스란히 차안에서 죽은 것이다. 약 30미터 떨어진 거리에 전소된 또 하나의 자동차 안에는 여자가 한명 타고 있었는데, 미군의 공격에 의해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시체도 없는 그 빈좌석에 굶주린 개가 하루종일 앉자 사람들이 쫓아도 으르렁거리며 차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11일에 한 집에 25명이 죽어있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 한명의 생존자가 있었는데, 대여섯살쯤 보이는 아이가 살아있었다.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응급처치를 했는데, 아이는 다섯시간 후에 죽었다. 그곳은 하일 아스카리 지역이었다."
이걸 증언한 후세인은 26일간의 전투 중에도 목숨을 걸고 의약품과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세번이나 팔루자로 들어왔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바그다드 사람이었지만 팔루자 현지를 잘 알고 있어, 미군의 검문을 피하는 길을 통해 들어왔고, 5월 2일 그는 당시 팔루자에서 함께 그의 구호작업을 도왔던 팔루자 현지 사람의 집을 방문해 그의 생사를 확인하자, 부둥켜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미군 저격 무서워 아버지 시신 봐도 옮기지도 못해"
"거리에 아버지가 죽어 누워있는데, 아이들이 아버지를 시체를 눈으로 보면서도 무서워서 집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생각해봐라. 얼마나 끔찍한가. 나 또한 두번째 방문한 날에는 옆집에 있는 그 아이들의 안타까움을 알았지만 시체를 옮길 엄두를 못냈다. 모든 모스크에는 첨탑이 있다. 그 꼭대기에 미군 사격수 두명이 사정 거리에 있는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쏘는 걸 보는데, 누가 나갈 수 있었겠는가?"

그는 그날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가 생사를 함께 한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는 10분동안에도 비행기에 의해 폭격이 가해지는 폭발음이 가까운 곳에서 정확히 4번 들렸다. 그리고 더 짧은 간격으로 열번 이상의 폭발음이 들렸다. 팔루자가 열리는 첫날인 5월 1일에도 미군이 완전히 팔루자를 빠져나가진 않았다. 오전 11시에도 시내에서 교전이 있었고, 이튿날인 2일에도 여전히 팔루자 외곽에서는 미군에 의한 폭격이 계속 있었다.
5월 2일 팔루자는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모습은 아니었다. 저항세력 무자헤딘들이 총을 들고 거리 곳곳에서 보초를 서고, 지붕 위에서도 경계를 늦추고 있지 않는 모습이었다.
텅비어 있는 거리와 다 무너진 건물과 집 앞에서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모습. 전쟁 후의 모습은 처참했다. 40명이 한꺼번에 죽었던 압둘 아지즈 알-사마라이 모스크는 완전히 파괴되어 중장비가 동원되어 그 잔해들을 치우고 있었다.
또 하이-나잘 지역을 지나치다 들른 한 민가는 총 수백발의 총탄으로 건물 벽은 벌집이 돼 있었고, 지붕은 몇 번의 폭격으로 인한 것인지 셀 수도 없이 구멍이 몇 개나 나 하늘이 훤히 보였다. 이 폭격으로 집을 지키고 있었던 한 사람만이 희생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피난을 가 있어 다행히 희생자는 적었다. 도대체 빈집을 왜 이렇게 벌집으로 만들어놓은 것일까?
"인샬라"라고 인사하는 주인은 그 이유에 대해서 "모른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난민들이 돌아와 하룻동안 이장한 시신만 6백구를 넘어섰다. 민간인 피해는 외신보도 훨씬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윤정은
시신들이 20여일 이상 방치된 채 있었고, 난민들이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시신 이장 작업이었다. ⓒ강은지

"희생당한 여성.아이들의 이름이 /'/학살/'/임을 말할 것"
이번 공격을 지휘했던 미 해병대 대대장 브레넌 바인 중령은 도시시가전에서 따르는 불가피한 군사작전이었다며 "지독한 전투였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분명히 해둘 것은, 이런 걸 두고 군사작전이라고 하지 않는다. 학살이라고 일컫는다.
축구장을 가득 메우고도 묻을 자리가 없어 한 구덩이에 네다섯 구의 시체를 함께 묻기에 바쁘고, 그래도 묻을 자리가 없어 새로 만들어진 공동묘지로 가 비석을 쓸 틈도 없이 굴러다니는 돌 위에 죽은 자의 이름을 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이유가 도데체 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묻혀지진 않는다.
돌 위에 쓰여진 그 이름들이 이제 말을 할 것이다. 아이들과 여성들의 이름들이 "학살"이었음을 말할 것이다.
이번 전쟁으로 희생을 당한, 그리고 20여일이 넘는 시간동안 그 죽음마저도 갇혀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모든 이들의 명복과 위로를 빈다.
 
 
유령의 도시, 불안한 활기…
600~1000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은 팔루자의 악몽과 분노
5월7일 금요일. 다시 찾은 팔루자는 조용했다.

바그다드에서 팔루자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에도 이라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미군 체크포인트 하나가 들어가는 차량을 검사할 뿐이었다. 지난 4월29일, 기자가 두 번째로 팔루자 진입을 시도했을 때 ꡒ다시 한번 제멋대로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듣지 않으면 쫓아내겠다ꡓ고 협박을 해댔던 미군 병사가 기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웃으며 농담을 걸어댔다.
ꡒ오늘 축포 소리(이라크에서는 결혼식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공중에 공포탄을 많이 쏜다)가 몇번 난 것만 빼고는 요 며칠 동안 팔루자는 아주 조용합니다.
그렇다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ꡓ 지난 5월1일 처음 팔루자에 들어갔을 때, 팔루자는 유령의 도시를 방불케 했다. 다 무너진 집들, 텅 빈 거리, 외국인이 나타나자 유령처럼 폐허에서 하나둘씩 나오던 무자헤딘들. 그러나 그로부터 6일이 지난 5월7일, 팔루자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는 듯 보였다. 거리에 음료수며 담배를 파는 가판대들도 다시 등장했고 시장도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었다. 한 팔루자 주민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며칠 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미군 저격수들도 떠났다.
25일 동안, 거리에서 움직이는 것은 모두 쏘아버리는 미군 저격수가 무서워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고 길거리에, 무너진 건물 잔해에, 집 앞마당에 얕게 판 구덩이에 방치해두었던 시신들을 공동묘지에 이장하는 작업도 이제 거의 마무리됐다.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집이 파괴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을 빼면 팔루자를 빠져나갔던 난민들도 대부분 돌아와 집을 손보느라 바빴다.
28명의 가족이 골란지구의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아흐메드 하림 메크리프는 그날 막 팔루자로 돌아온 참이었다. 지난 4월6일 그가 사는 집 주변에 미군의 폭격이 쏟아졌다. 그의 집과 주변의 주택 여러 채가 미군의 로켓탄에 맞아 지붕이며 벽이며 물탱크며 모든 것이 부서졌고, 그는 가족을 이끌고 서둘러 팔루자를 떠났었다. 마을을 비우라는 미군의 명령에 도시를 빠져나가 바그다드의 친척집에 머물다 이틀 전에 돌아왔다는 압둘 사하는 그날 폭격으로 이 동네에서만 9명이 죽었다고 전했다. ꡒ그날 이곳에 무자헤딘은 없었어요. 칼리슈니코프 소총 한 자루만 들고 마을 치안을 맡고 있던 청년들 몇명이 집 근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미군이 폭격을 해서 집안에 있던 5명이 죽고 차를 타고 지나가던 4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어요.ꡓ 아흐메드는 미군이 팔루자 외곽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그곳에 있는 미군의 존재 자체가 팔루자에 위험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ꡒ이 모든 일이 왜 시작됐나요? 미군 용병 4명의 죽음 때문 아닌가요? 미군이 지금 팔루자 외곽에 남아 있는 것은 아주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만약 누군가가 그들 중 1명이라도 죽인다면, 그들은 다시 팔루자에 들어와 우리 모두를 죽여버릴 것 아닌가요?ꡓ 25일 동안, 팔루자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적게는 600명에서 많게는 1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분명 집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혹은 팔루자를 빠져나가려고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민간인들이었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다 파괴된 이들의 삶의 터전은 또 누가 복구해줄 것인가. 폭격이 멈췄다고는 하지만, 미군이 팔루자를 떠났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들의 기억 속에 악몽과 분노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팔루자의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팔루자 취재기간에 기자와 동행했던 아흐메드 하림 메크리프는 내내 친절하게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헤어지는 자리, 입가에 그대로 미소를 머금은 채 그가 기자에게 한 말은 소름끼쳤다. ꡒ당신, 2주일 전에만 들어왔어도, 내가 당신을 납치했을 겁니다. 다행인 줄 알아야 해요.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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