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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 자료[1]
이름 사무처 이메일


                                        “제10회 세계작가와의 대화” 겸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
(The 10th Dialogue with World Writers & The 1st Workshop for Asian Writers)

--고통의 기억을 넘어 평화로운 미래로!
(Beyond the Memory of Pains Toward the Future of Peace)


2004년 6월 28일- 7월 8일
28 June- 8 July, 2004


서울, 광주, 부산, 포항, 제주
Seoul, Gwangju, Busan, Pohang, Jeju

 (사)민족문학작가회의
The Association of Writers for National Literature

후원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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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 차 --

인사말

행사 소개

초청 작가 소개

주요 일정표

주요 행사 안내

1.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광주)

2. 아시아 문학 연대의 밤(광주)
 시
자카리아 모하메드 / 마흐무드 다르위시 / 칠라자브 / 띤모 / 찜짱 / 반레 /
압둘 와합 알 바야티/ 박두규 / 나희덕 / 이철송 / 박관서 / 고재종 / 임동확

3. 아시아작가 평화선언(광주)

4. 아시아 문학 심포지엄(부산)


[산문] 지옥같은 버마를 세계에 알린다아시아 문학 소개


민족문학작가회의 소개


세계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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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안녕하십니까?
아시아 곳곳에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이번 행사에 참가해 주신 작가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양심적인 작가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만으로 모여 만든 우리 (사)민족문학작가회의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긴 세월 동안 초발심을 결코 잊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그동안 걸어온 길을 찬찬히 돌아보거나 기념할 만한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바로 오늘 새벽, 우리는 이라크에서 날아온 끔찍한 비보를 접했습니다. 이라크 테러단체에 인질로 잡힌 한국의 민간인 한 사람이 온국민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끝내 살해되고 말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죄없는 민간인을 살해한 이들의 행동은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유린한 테러에 지나지않습니다. 그들은 한국군의 추가 파병을 결정한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처음부터 반대해 온 우리로서도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라는 원천적 죄악을 규탄하는 것과 꼭같은 이유로 우리는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파생적 죄악도 규탄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문학인의 이름으로 이라크에서 더 이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행사에는 그 비극의 이라크 현지에서 오신 이라크 작가분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점령지 라말라에서 봉쇄선을 뚫고 어렵게 오신 팔레스타인 작가분, 그리고 장기간 군사 독재 정권의 철권 통치 아래서 고통을 받다가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버마의 작가분을 비롯하여, 지난 세기 미국이 주도한 야만적 전쟁으로 끔찍한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베트남의 여러 작가분들, 그리고 사회주의 소련의 간섭을 받았던 몽골의 작가분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자연스럽게 아시아가 당했던, 그리고 지금도 당하고 있는 고통을 확인하는 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이야말로 더없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그런 고통의 경험을 반드시 미래의 참다운 평화로 역전시키는 놀라운 혁명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이때 문학은 더없이 튼튼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이번 행사는 아시아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자의 창작 경험을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시아의 작가들이 서로를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폭력과 억압이 배제된 평화로운 아시아를 이루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수선한 시기이지만, 한국에 머무시는 동안 편안하게 지내시고 마음껏 한국의 속살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아시아 각국에서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2004년 6월 23일
 (사)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염무웅










































행사소개------------------------------------------------------------------------------------------------------------------


“제10회 세계작가와의 대화 겸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

주최: (사)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염무웅)
주관: (사)민족문학작가회의 국제교류위원회(위원장 김남일)
지역 행사 주관: 광주전남작가회의(회장 김희수), 부산작가회의(회장 남송우), 경북작가회의(회장 이대환), 제주작가회의(회장 김광렬)
후원: 문화예술진흥원(원장 현기영), 5.18기념재단(이사장 박석무)
협찬: (주)창비, (주)실천문학사, (주)문학동네 외

(사)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회장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해마다 “세계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꾸려 왔습니다. 우리는 이 행사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를 꾀하는 동시에 세계문학 속에서 한국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점검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한국문학의 세계화에도 일정 정도 기여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동안 가라타니 고진(일본,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리타 더브(미국, 흑인 여성 계관시인), 아리엘 도르프만(칠레, 반체제 소설가인 동시에 극작가), 바오닌(베트남, 소설가, [전쟁의 슬픔] 저자)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저명한 작가들을 초청하여 만남의 자리를 가진 바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작가회의 창립 3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을 함께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번 워크숍의 커다란 주제는 “고통의 기억을 넘어 평화로운 미래로!”(Beyond the Memory of Pains Toward the Future of Peace)입니다. 20세기를 제국주의의 침탈과 파행적 근대화로 인해 고통받아 온 아시아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갖가지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시아의 문학인들은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이번 행사는 아시아의 경험을 공유하는 가운데 아시아인의 꿈을 방해하는 모든 고통의 사슬을 끊는 평화의 연대를 꾀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큰 주제 아래 서울을 비롯하여 광주, 부산, 제주 지역에서 다양한 행사를 가질 예정입니다.

이번 행사에는 특히 현재 전쟁의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는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작가들이 각기 점령지 바그다드와 라말라를 떠나 사상 처음으로 방한하는 한편, 군사독재 체제에서 시달리고 있는 버마(미얀마)의 망명 작가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입을 통해 점령하 이라크, 팔레스타인, 버마의 문학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파병 반대를 일관되게 주장해 온 작가회의는 이번 행사를 통해 굴욕적이고 음습한 무기의 연대가 아니라 문학을 통한 평화의 연대가 아시아의 비극을 해결하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아시아 각국의 문학인들과 더불어 나누고 확인할 것입니다.

 
초청 작가 소개----------------------------------------------------------------------------------------------------------



1. 자카리아 모하메드(Zakaria Mohammed): 팔레스타인 시인, 소설가. 남
본명은 다우드 마흐무드(Daoud M. E. Mahmoud). 자카리아는 필명이다. 1950년 나불루스 출생. 현재 이스라엘 점령지인 라말라에 거주. 이라크의 바그다드대학에서 아랍어학 전공. 1976년 이후 베이루트, 암만, 다마스커스 등지에서 자유기고가로도 활동. 1986년부터는 시리아, 키프로스,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신문, 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다. 그의 시는 현대 아랍시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간주되기도 한다. 1999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세계 시축제에 참가했다. 팔레스타인 문화센터인 사카키니 센터의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라말라 점령 당시 영국에 있는 친구 시인이자 번역가인 사라 마과이어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광범위한 독자와 만날 수 있었다. 탱크들이 진격하고 체계적인 수색을 시작하기 전에, 자카리아는 이미 자살폭탄 운동에 대해서 팔레스타인 언론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율법회의에 회부되었다. 그래서 그는 양측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국제 펜클럽이 그의 용기를 높이 샀다. 시집으로 [마지막 시들](베이루트, 1981), [손으로 만든 물건](Hand crafts, 런던, 1990), [아스카다르를 지나가는 말](The horse passes Askadar, 런던, 1991), [햇살](암만, 2001)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빈 눈동자](라말라, 1996), [자전거 타는 사람](암만-카이로, 2003), 비평집 [팔레스타인 문화론](라말라, 2003) 등과 다수의 아동물을 펴냈다. 현재 아랍작가연맹과 팔레스타인 작가연맹 회원이다.

2. 하미드 무사(Hameed. J. Musa): 이라크 시인, 소설가, 남
필명은 하미드 알 묵타르. 사담 치하에서 8년간 투옥 생활. 주요 작품으로 [큰소리들](aswat alea, 1982) [투숙객들](al nuzalaa ,1985: 장편소설) [자밀 부싸이나 그리고 우쓰리의 사랑](jamil buthayna andalhub alothrey, 1986) [다와리의 봄](rabea al dawary, 1990: 장편소설) [루캄 공원](hadikat al rukam, 1992) al masalik and almahalik (1995, 장편소설) 등이 있다. 현재 새로 구성된 이라크 문인협회장.
 
3. 띤 마웅 탄(Tin Maung Than): 버마 소설가, 언론인, 남
1954년 출생. 만달레이 의대를 졸업한 후 영향력 있는 월간지 띤바와(1991 - 2000)의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에이즈 문제 및 교육과 사회에 관한 글들을 통해 버마 젊은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미얀마 군사정부가 월간지 띤바와에 대하여 전체 잡지 분량의 1/3을 삭제할 만큼 지나친 검열을 하는 것 때문에 줄곧 마찰을 빚어 왔다. 2000년 국가계획경제개발장관인 쩌툰이 미얀마정부의 그릇된 경제정책을 비판하자 정부는 쩌툰 장관을 경질했고 그의 연설문이 유출되는 것을 막았다. 띤 마웅 탄은 그 연설문을 입수하여 해외에 배포하였는데 그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같은 해 10월 정부는 야당인 NLD(사무총장 아웅산 수지)의 사무실을 급습하여 모든 자료를 훑어 갔으며, 그때 그가 작성한 미얀마의 민주화를 주장한 문건 중 다수가 정부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11월 말, 그는 구속이 임박해지자 태국으로 탈출했다. 그 후 그는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 2003년 미얀마에서 출판할 수 없었던 미얀마의 교육정책을 비판한 칼럼집 [더케나잉자노](나라의 참주인)를 한국에서 출판하였다. [더케나잉자노]는 버마인들의 도서관인 도쿄도서관, 나고야도서관, 부천도서관이 후원하여 출판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각 나라 버마공동체는 회원들이 책을 자주 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도서관 운영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초청으로 2003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작가로서 그는 단편소설과 수필을 주로 쓰며, 버마에서 단편집 [결정난 남자]와 두 권의 에세이집을 펴냈다.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 광주 행사 참가 작가

레 반 봉(Le Van Vong): 베트남 소설가, 남
도 박 마이(Do Bach Mai): 베트남 시인, 여
도 킴 끄엉(Do Kim Cuong): 베트남 소설가, 남
딘 꽝 톤(Dinh Quang Ton): 베트남 소설가, 남
팜 응옥 티엔(Pham Ngoc Tien): 베트남 시인, 남
이 반(Y Ban): 베트남 소설가, 여
우옌 칸 찌(Nguyen Khanh Chi): 베트남 소설가, 여
투이 드엉(Thuy Duong): 베트남 소설가, 여
팜 카이(Pham Khai): 베트남 소설가, 남
까오 두이 송(Cao Duy Son): 베트남
느 빈(Nhu Binh:Le Thi Thanh Binh): 베트남
판 꿍 비엣(Phan Cung Viet): 베트남
응오 빈 빈(Ngo Vinh Binh): 베트남
응오 티 킴 꾹(Ngo Thi Kim Cuc): 베트남
팜 티 응옥 리엔(Pham Thi Ngoc Lien): 베트남

칠라자브(Kh. Chilaajav): 몽골 시인. 몽골작가연맹 의장.
브양자야(Ts. Buyanzaya): 몽골 시인, 평론가. 몽골작가연맹 사무국장.
바트바야르(D. Batbayar): 몽골 작가. 이크 몽골 대학 교수. 계관 문인.
바야르사이칸(L. Bayarsaikhan): 몽골 시인. 에르데넷시 작가협회 사무국장.
뱜바야브(N. Byambajav): 몽골 작가. 몽골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통역․번역 도와주신 분>

임병필 (부산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장세원 (명지대학교 아랍어과)
장현자 (조선대학교 아랍어과)
김성원 (부산외국어대학교 미얀마어과)



주요 일정표-----------------------------------------------------------------------------------------------------------




제1일 6월 28일(월)
17:00 기자회견 및 환영만찬(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
 
제2일 6월 29일(화)
분단 현장 및 파주출판단지 방문

제3일 6월 30일(수)
14:00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5.18기념문화관 대동홀)
19:00 “아시아 문학 연대의 밤”(5.18기념문화관 대동홀)
 
제4일 7월 1일(목)
10:00 국립 5.18 묘지 참배, “아시아 작가 평화선언” 발표
19:00 아시아문학 심포지엄(부산)

제5일 7월 2일(금)
포항, 경주 방문

제6일 7월 3일(토)
19:00 제주작가회의와 문학간담회, “고통의 기억과 문학의 연대”

제7일 7월 4일(일)
제주 4.3현장 탐방

제8일 7월 5일(월)
19:00 성공회대 NGO 학과 강연

제9일 7월 6일(화)
19:00 “분쟁지역 아시아 문학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 밤”(작가회의)

제10일 7월 7일(수)
18:00 환송 만찬(인사동)

제11일 7월 8일(목)
출국





 주요 행사 안내






1.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광주)

2. 아시아 문학 연대의 밤(광주)

3. 아시아작가 평화선언(광주)

4. 아시아 문학 심포지엄(부산)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광주)


 
때: 6월 30일(수) 오후 2시-6시
곳: 광주 5.18기념문화관 대동홀
주최: (사)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염무웅), 5.18기념재단(이사장 박석무)
주관: 광주전남작가회의(회장 김희수 시인)
참가국: 한국, 이라크, 버마, 팔레스타인, 베트남, 몽골

내용: 1) 발제: “전쟁, 민주주의, 통일, 그리고 한국문학의 경험”-방현석(소설가,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회장)
 2) 발제: “한반도 문화의 아시아적 혹은 세계적 보편성과 광주항쟁”- 김준태(시인,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3) 창작 경험 자유 토론


















발제: 한국/ 김준태----------------------------------------------------------------------------------------------------



 The Asian or Global Universality of Korean Culture and Kwangju(Gwangju) May Uprising

 - Kim Jun Tai(Kim,Chun-t/'/ae), Korea, Poet


Good afternoon. Nice to meet you. First, thanks for my respectable writer-colleaques (poets & novelist etc.) coming a long way in these countries Vietnam, Burma(Myanmar), Palestine, and Iraq to taking part in The 10th Dialogue with World Writers & the 1st Workshop for Asian Literature. With our Korean writers I am very happy to present at this meeting. Now also I face you, I feel highly honored to talk with you who love Korea and think over the future of Asia & the world.
I am a poet and teacher in the korean Peninsula. The Korean Peninsular has grief caused by internal and external contradictions. This peninsular may have more painful factors than any other countries in Asian and Pacific are. Tomorrow morning, is the Mangwol-dong cemetery for May 18 victims that you will visit the very memorable place representing this reality? Of course, from June 15 in the 2000 the Korean Peninsula-South & North Korea has been coming a peace-mood, therefore many People do not spare any efforts for make /'/a Dream of Unification/'/ an actuality.
At any rate, I agree with you that the whole things of Asian and Pacific area are not tragic and painful. You must be proud that the great values of culture that Korea has preserved and accumulated through several thousands and tens of thousands years are still remain untouched. And I believe firmly that the whole of the world including Korea will be affluent and happy in the future when they magnify and reproduce the values of korean culture from now.
Since Kwangju May Uprising in the 1980 I have realized this new Asian or Oriental value and have placed my hope on it. Kwangju citizens uprising, equal to the French Revolution, was really enormously powerful. Kwangju citizens and conscientious people of Korea resisted and stood against the tyrannical military regime which oppressed democracy and killed innocent citizens for the taking helm of state affairs. At that time Kwangju citizens were "people who defeated death at the risk ones death
and acquired life at the cost of ones life."
In May 18 Uprising, Kwangju citizens were people who inherited the real spirit and culture from Asian traditional agricultural people and the activist who practised inherited common goodness(public goodness) like the farmers in the ideal agricultural society who planted rice with songs and cooperated with others.
Though they fought against military regime armed with newest weapons, Kwangju citizens never forfeited humanity, sharing mind and the spirit of cooperations. In Kwangju at that time there no bank robbed and prices fluctuated narrowly. We can find that Kwangju citizens had sharing minds and knew the economy of sharing at the time. Where was it from?
The power of sharing, the mind to share with others and to regard other/'/s life as own life, and the spirit to be a foundation of truth, peace, and democracy at the cost of life prevailed among Kwangju citizens as a miracle. I know that common goodness and spirit of cooperation were from Korean philosophy and Korean value based on the Korean spirit accumulated for a long time.
But now Korea faces another adversity. Above all, new-liberalism and the logic of the market economy are prevailing in the whole country. As the other counties of Asia, Korea is caught by IMF-aftereffect and under the influence of powerful multinational financial specialists.
In the case of Korea, the culture of sharing, the culture based on common goodness and cooperation, and the spirit of citizens solidarity, which Kwangju of May in 1980 had pursued, are threatened now. The number of the unemployed is growing fast and the middle classes fell down. Capitalistic economy is in great peril.
I emphasize that to overcome the economical, social, and cultural crisis of the world, we must recover the Korean values and reproduce them. As history reveals, common goodness and agricultural cooperation spirits played an important part in Korean culture. As Korean history shows, Dangun, the first founder of Korean Peninsular suggested thehumanitarian ideal, "Hongik" meaning devotion to the welfare of mankind, to his people.
The Korean virtue of common goodness is somewhat different from the culture of Western nomadic tribes, but similar to the Asian culture. From ancient times, Korea is the region where these religions, thoughts, cultures co-exist : Ancestor worship regarding human as lord of creation ; Totemism worshiping animals of things like the Indian/'/s cult of nature ; Heaven ; Ecological and an environment idea ; Shamanism, the basis of primitive religion to believe the contacts with gods and spirits ; Buddhism ; Confucianism ; Dong-hak idea that believed human beings were heaven ; Mi-ruck religion that the people would meet the new ideal world ; Wonbulgyo, Korean people/'/s religion placing great emphasis on the harmony material and spirit ; the culture of benevolence and love showing mercy ; and the culture to share and live together.
Korean Peninsular has been supported by the very religions, and cultures. And I believe these Korean cultures and thoughts are firmly related with those of other countries in the world.
In this reason I expect these cultures and thoughts make progress to the 21st century. We hope our 21st century will be the happy world where people will less own, and more share with others, not the world where people having more come to live better and better. At the end, I will reading my poem [A Single Beans].
My respectable writer-colleaques, Thank you.


A single Beans

 Who dropped it? I wonder
 If it did/'/nt fall
 From a hole-ridden bundle
 Borne by a grandma,
 All wrinkles,
 Just in from the country,
 On her way
 To see her youngest daughter.
 
 One green bean
 Trod upon, rolling
 On the asphalt
 Of the plaza
 Before the depot.

 That enormous life I gathered up,
 Left the city behind, then
 Beyond the river
 Along a field/'/s furrowed row
 Planted it deep down, deep.
 
 From all sides at that moment
 Twilight was eyeing me.
 












 한반도 문화의 아시아적 혹은 세계적 보편성과 광주항쟁
 
 김준태(시인)
 

 안녕하십니까. 먼저, ‘제10회 세계작가와의 대화 및 제1회 아시아청년작가워크숍’에 참석하고자 멀리 베트남, 버마(미얀마), 몽골,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지에서 와주신 존경하는 작가동료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과 세계를 위해 늘 사랑과 염려를 해주시는 여러분들 앞에서 얘기하려니 영광스럽습니다.
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 광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개인적으로는 시를 쓰고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저는 세계의 모든 나라 문학인들이 당연히 그래왔듯이 인간 개개인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간의 관계, 그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듯 싶습니다.
 정말이지 이 땅 한반도는 내부모순 못지 않게 외부모순으로 인한 아픔들이 비장할 정도로 가득히 응어리져 있는 곳입니다. 물론 지난 2000년 6월 15일부터는 남북한간의 긴장이 서서히 걷히고 평화와 협력의 무드가 조성되면서, 남북 당사자간에 통일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일련의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 코리아가 간직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결코 비극적으로만 파악하지 않습니다. 특히 코리아가 수 만년 수 천년을 통하여 간직해 오고 있는, 그리고 축적해 오고 있는 엄청난 문화의 가치가 아직도 건강하게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과 더불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문화적 가치들을 오늘과 내일에도 필연코 확대 재생산시켜 나갈 때, 코리아는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의 삶도 보다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코리아 문화의 가치에 대하여 새로운 발견의 눈을 뜨고 나름대로 큰 기대를 거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시작한 것은 1980년 5월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광주민중봉기Kwangju Uprising’때부터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서양의 프랑스 혁명에 필적하는 당시의 광주시민들의 민중봉기는 그야말로 야만의 적들을 향한 벌떼와 같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시민들의 무고한 생명을 정권 탈취의 재물로 삼으려는 일부 포악스런 군사쿠데타 세력을 향하여, 광주시민들과 이 땅의 양심세력들은 결코 묵과하지 않고 떨쳐 일어선 것입니다. 그 항쟁기간 동안 광주시 전역은 마치 ‘파도가 흘러 넘치는 바다’였습니다.
그때 광주시민들은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광주시민들은 저 찬란했던 공동체― ‘농경사회’의 농민들처럼 논바닥에 함께 서서 노래하며 벼 포기를 꽂으려 했던, 농경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가장 착실하게 물려받은 저 아름다운 ‘공동선(公同善)’의 실천가들이었습니다.
당시 최신식 무기를 휴대한 군부파쇼집단과 싸우면서도 끝끝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끝까지 ‘모두 함께 살기‘를 포기 않는 그런 정신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습니다. 광주시에서는 그때 은행이 단 한 군데 안 털리고, 물가도 오히려 변동이 없었고, 나눔의 마음, 나눔의 경제학이 만발했습니다. 광주시민들 스스로도 놀랬던, 과연 그런 ‘힘‘이 그래 어디에서 그렇게 솟아났을까요?
그 나눔의 힘, 나눠 먹고사는 힘, 이웃의 생명을 나의 생명처럼 여기는마음, 그리고 혼자 살기보다는 죽어서라도 같이 ‘진리와 평화와 민주주의에 밑거름’이 되고자 했던 그 정신은, 정말 놀라운 기적처럼 온통 광주의 시가지를 적셔댔습니다. 나는 그 공동선, 공동체 정신이 다름 아닌 코리아의 철학, 코리아의 문화적 가치에 뿌리를 내린 오랜 동안의 축적된 정신에서 비롯됐음을 깊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주항쟁’ 혹은 ‘광주봉기’의 그 날을 20여 년 넘긴 지금, 이 땅 한반도는 다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선 신자유주의의 바람과 시장경제 논리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이곳 코리아도 예외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아시아 지역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IMF 체제와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터입니다.
따라서 이 땅 한반도의 경우만 하더라도 1980년 5월 ‘Free-Kwangju‘가 추구했던 나눔의 문화, 함께 사는 세상, 공동선과 공동체정신을 활짝 꽃 피운 문화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터입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학자가 부르짖은 ‘빈곤의 경제학’ 즉 나눔의 경제학이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들을 염려한 로마 교황 요한 바오르는 200년 2월엔가 멕시코에서 발표한 소위 ‘교황 권고문Apostolic Exhortation’에서, 강대국 중심의 국제화․세계화는 불공정 경쟁 체제를 부추긴다면서 지나친 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경고를 했던 듯 싶습니다.
아무튼 정치적으로나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세계사적 이 위기를 극복하는 진료와 처방에는, 코리아적 문화의 가치 회복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는 것을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코리아의 문화는 과거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나눠 가짐과 베풀어 나눠 먹음‘을 예의 공동선과 농경사회적 공동체정신이 한몫을 튼튼히 했던 게 사실입니다. 우리 Korea의 역사를 들추어보아도, 이 땅 한반도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단군 할아버지는 ‘홍익인(弘益人)’ 혹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내걸었습니다. ‘홍익’이란 말은 문자 그래로 ‘널리 나누어 베푼다’ ‘온 누리에 널리 이롭게 나누어 베푼다’라는 뜻을 담고 있음이 그것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보여주었던 ‘사람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란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물질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본바탕으로 삼았던 저 찬란한 역사의 살아있는 생명력을 그래서 오늘 우리는 새로이 반추―되새겨야 할 듯 합니다. 생명을 다 하는 그 순간에도 인간주의와 베푸는 사랑을 잃지 않았던, 서로 함께 하는 대동세상의 철학, 그것은 바로 코리아의 문화에서 얼마든지 발견되는 덕목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하고 깊이 생각해 봅니다.
거듭 말씀드린다면 코리아의 경우, 그런 아름다운 공동선의 덕목들은 서구 유목민적 문화와는 다른 농경사회적인 특징이 다분히 많다는 것입니다. 코리아는 예로부터 사람을 만물의 근본으로 삼는 조상숭배를 비롯하여, 인디언들의 성기숭배나 힌두교 인들의 소나 돼지 숭배에서 볼 수 있는 어떤 하찮은 동물이나 사물을 숭배하는 Totemism, 바위나 나무 등지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적인 Animism, 하늘을 우러러 섬기는 경천사상, 흙의 대지와 지모신을 섬기는 지기(地氣)와 수기(水氣)를 믿는 생태학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사상, 세상 만물과 엑시터시(접신)하고자 하는 원시신앙의 기본인 Shamanism, 불교, 공자와 맹자 사상, 인간의 심성을 자연을 통해 정화 즉 카타르시스하고자 했던 노장사상,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 / 人乃天)’를 최고의 이념으로 삼았던 1890년대의 동학사상, 오늘의 벽을 내일의 문으로 만들고자 했던 강증산의 개벽사상, 민중이 새 세상을 만난다는 미륵종교, 물질과 마음을 같이 중시여기는 원불교, 그리고 기독교와 천주교의 사상을 함께 녹여서, 모두 함께 사는, 모두 함께 나누어 먹는, 모두가 서로 베풀어주는 자비(혹은 사랑)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바로 이런 종교적인 것들과 사상과 문화가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탱․유지해왔던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문화가 바로 21세기 내내 줄기차게 살아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21세기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먹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라, ‘더 적게 먹고, 더 많이 나누어 먹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원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끝으로 제가 쓴 시 ‘콩알 하나’를 낭송해 드리고 여기에서 그치겠습니다. 한국에서 즐거운 날들이 계속되기를 바라오며,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누가 흘렸을까 // 막내딸을 찾아가는 /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
구멍난 보따리에서 / 빠져 떨어졌을까 // 역전 광장 / 아스팔트 위에 /
밟히며 뒹구는 / 파아란 콩알 하나 //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 강 건너 밭 이랑에 / 깊숙이 깊숙이 심어 주었다 /
그때 사방 팔방에서 / 저녁 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 ‘콩알 하나’ 전문

























참가 작가 창작토론---------------------------------------------------------------------------------------------------



공통 설문
Some Questions

1. As a writer, what kind of subject do you like?

2. In your country, what it means that you live as a writer?

3. As a writer, what is the most difficult thing or problem which you meet now?

4. The main subject of our program("The 1st Workshop for Asian Literature") is "Forward Peaceful Future over War and Dictatorship". About this subject, what do you think?

5. As a writer living in Asia, how do you think about this kind of program?

6. What do you most anticipate in your visiting Korea this time?




Zakaria Mohammed

Question one:
 Living as a writer?
I have always tried to live as an ordinary person not as a writer, or as the writer suppose to live in the pubic image.
In my country the writer is forced to hold a mission over his shoulders: his nation destiny and its longing to get read of occupation. He is supposed to be the tongue of his people. This is a great honor from one side, and a great prison from the other. Between honor and the prison the writer is struggling.
For example, if there is a freedom demonstration in the street and the writer is seeing it from his window what shall he do? Is he supposed to continue writing his novel, or shall he turn off his computer and run down to the street to join the demonstrators?
If he continues writing forgetting the people in the street the freedom cause will loose. And if he went down to share the struggle his writing will the looser.
And this is the daily seen in my country. And you have to take a decision.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
나는 늘 작가, 즉 대중에게 드러난 이미지로 살아가야 하는 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란 조국의 운명과 점령을 제거하고자 하는 열망이라는 임무를 두 어깨에 지고 있는 존재다. 작가는 사람들의 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보면 꽤 큰 영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대단한 감옥이기도 하다. 영예와 감옥 사이에서 작가는 싸우고 있다. 예를들어, 거리에서 자유를 위한 시위가 벌어졌을 때, 그리고 작가가 자기 집 창문을 통해 그것을 보았을 때, 작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쓰던 소설을 계속 써야 하는가? 아니면 컴퓨터를 끄고 거리로 나가 시위대에 합세해야 하는가? 만일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잊어버린 채 글만 쓴다면 자유를 잃을 것이다. 거리로 나가 투쟁에 동참한다면 글을 잃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우리나라에서 매일같이 겪는 일이다. 결정은 당신이 내려야만 한다.

 Question two:
Finding books is the most difficult thing for me as a writer.
There are many check points, many obstacles, for the book to reach my hands. The occupation force in standing there on the road.
When the allowed books reaches me in the end their price will tripled at least. I have no many to buy them.
There are no public libraries to depend on. The main public library in my city, Ramallah, have only twenty thousands titles on its shelves only. Half of them are rubbish.
Books are our main pain.

작가로서 나는 책을 찾는 게 가장 힘든 일이다.
책이 내 손에 들어오려면 수많은 검문소와 수많은 장애물을 거쳐야 한다. 거리에는 점령군이 서 있다. 마침내 바라던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가격은 최소한 세 배쯤 뛰어버린다. 나는 그것들을 살 만한 여유가 없다.
변변한 도서관도 없다. 내가 사는 라말라의 중앙 공립 도서관은 선반에 고작 이만 권의 책 밖에 비치해 두고 있지 못하다. 그 중 반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책은 우리의 중요한 고통 중 하나이다.

Question three:

Asia for me is the land of variety. It is not like Europe.
Variety is gift indeed. But it needs bridges. There are not many bridges in Asia. In the remote past there was much bridges than now, and they were much stronger. We have to rebuild them, and to build new ones.

아시아는 내게 다양성의 땅이다. 유럽하고는 다르다.
다양성이란 축복이다. 하지만 다리가 필요하다. 아시아에는 다리가 많지 않다. 먼 옛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다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는 지금보다 훨씬 튼튼했다. 이제 그 다리들을 다시 건설해야 한다. 새로운 다리를 말이다.

Question four:
This program in Seoul is one of these bridges.
It is a bridge between cultures, nations and writers.

서울에서 열리는 이 프로그램이 그런 다리들 중 하나의 다리가 될 것이다. 그것은 여러 문화, 민족, 작가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다리이다.

Question five:
In my mind, Korea is something special and deference.
So I am coming to smell this special place.
I have to sea as much as I can, to hear as much as I can and to smell as much as I can.
I am not coming to contact Asian writers first of all but to contact Korea.

내 생각에 한국은 무엇인가 특별하고도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특별한 곳의 냄새를 맡고자 한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이 보고, 듣고, 냄새를 맡아야만 한다. 나는 아시아 작가들을 만나기 전에 우선은 한국을 만나려고 여기에 왔다.





 

















 
 



Tin Maung Than


1. As a writer, what kind of subject do you like?
작가로서 당신은 어떤 주제에 흥미를 갖고 있는가?
 
 I am interested in humanity and liberation from suppression of justice, freedom rights, and economic equity.
 나는 휴머니즘과 정의, 자유, 경제적 평등에 대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관심을 갖고 있다.


2. In your country, what it means that you live as a writer?
당신의 나라에서 작가로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A writer is highly regarded by readers in Burma. I think Burma may be the only country where there is Writer/'/s month and day. It is 9th Burmese calendar month (November and December). During this period, people donate cash to local literary interest group, which makes a decision on invitation of writers. Usually 3 or 4 distinguished writers are invited. Each writer gives a talk at night about 40 to 60 minutes on literature or culture or social opinion on current affairs which is to be followed by discussion. Usually the writers hold discussion with a small group of
local young writers and poets until 3:00 or 4:00 AM next morning.
 But on the other hand, the military junta does not want to give free hand to writers so they set up censor office. Burma is the one of the top censor country in the world.
버마에서 작가는 아주 높은 대접을 받는다. 내 생각에, 버마는 ‘작가의 달’이 있는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작가의 달’은 버마력으로 9월(11월-12월)이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 지역의 작가 집단에 돈을 기부한다. 그것이 작가를 초청하는 비용이 된다. 일반적으로 3,4명의 저명한 작가들이 초청된다. 작가들은 밤에 40분에서 한 시간 가량 문학과 문화,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이후에 토론이 이어진다. 작가들은 보통 지역의 젊은 작가나 시인들과 더불어 새벽 3,4시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한편, 군사정부는 작가들을 자유롭게 놔두지 않는다. 그들은 작가들을 검열한다. 버마는 세계에서 가장 검열이 심한 나라 중 하나다.

3. As a writer, what is the most difficult thing or problem which you meet now?
작가로서 당신이 현재 부닥치고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The most difficult problem for me is to allot some time to write a literary piece since most of my time is occupied with project, related to policy formulation and politics.
Sometimes I would like to devote all my time to write a novel.
내게 가장 힘든 문제는 문학작품을 쓸 적절한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정책 개발이나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는 모든 시간을 소설 쓰는 데 쓰고 싶다.

4. The main subject of our program ("The 1st Workshop for Asian Literature") is "Forward Peaceful Future over War and Dictatorship". About this subject, what do you think?
우리 행사의 주제는 “전쟁과 독재를 넘어 평화로운 미래로”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War, peace and dictatorship are very important issues and we need to restructure our civilization to move forward to peace. I think we need a world conference on creating new world of humanity.
 전쟁, 평화, 그리고 독재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 문명이 평화를 향해 나라가도록 재건할 필요가 있다. 나는 우리가 휴머니즘이 넘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세계 회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5. As a writer living in Asia, how do you think about this kind of program?
아시아에 사는 작가로서, 이번 행사와 같은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General impression in the west is that Asians are docile. We need to be aggressive in dealing with dictators and human rights abuses in Asia and other regions. This rogram will enhance understanding between people living under different systems and regions and thus promote peace through intellectuals.
서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시아인들이 유순하다(다루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아시아와 다른 지역에서 독재와 인권을 처리하는 데 공격적일 필요가 있다. 이 행사는 상이한 체제와 종교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따라서 지성인들 사이에서 평화를 증진시킬 것이다.

6. What do you most anticipate in your visiting Korea this time?
이번 방한에서 당신은 한국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I would like to have exchange of thought with Korean writers, journalists and intellectuals.
나는 한국 작가들, 언론인, 지식인들과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누고 싶다.























2. 아시아 문학 연대의 밤(광주)

 때: 6월 30일(수) 오후 7시
 곳: 광주 5.18기념문화관 대동홀
 주관: 광주전남작가회의(회장 김희수 시인)
 후원: 5.18기념재단(이사장 박석무)
 참가국: 한국(5), 이라크(1), 버마(1), 팔레스타인(1), 베트남(2), 몽골(1)

*식전공연- 모듬사물놀이(극단 신명)

제1부
사회 : 조진태(시인, 5․18재단 사무처장)
*개식 선언
*묵념 : 전쟁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한 아시아인을 위한 묵념
*인사말 : 김희수(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격려사 : 박석무(5.18기념재단 이사장), 김준태(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행사소개 :김남일(민족문학작가회의 국제교류위원회 위원장)
*해외 참가작가 소개:
팔레스타인, 이라크, 미얀마 : 오수연(소설가, 작가회의 공식파견 이라크 종군작자)
베트남 : 방현석(소설가,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회장 )
몽골 : 김형수(시인, 작가회의 사무총장)

제2부
*사회 : 채희윤 (소설가, 광주여대 교수)
*내벗소리 민족예술단 어린이 판소리 공연
*시낭송
박두규/ 베트남/ 고재종/ 몽골/ 나희덕/ 팔레스타인/ 박관서/ 이라크/ 임동확/ 버마/ 이철송
*노래: 참교육학부모 산하 어린이 합창단 아름나라
*전체합창 - 님을 위한 행진곡

3부 뒷풀이
시----------------------------------------------------------------------------------------------------------------------------


자카리아 모하메드(Zakaria Mohammed: 팔레스타인)
*번역: 서강목(문학평론가, 한신대 영문과 교수, [실천문학] 편집위원)

The Rose

I want this rose
I want to shatter this rose
like I want to crush a fine vase with my fists into splinters
I want to slaughter this rose
like I want to gut and skewer a turkey
I want to mutilate this rose
like I want to circumcise a lad with a flint
I long for this rose
I want this rose to suppurate
all over my body and soul with abscesses and cysts
I want to stick this rose
into the dead socket of my one blind eye
I want to use this rose
to wipe the Milky Way from the stars
And I want to toss this rose
up into the clouds to explode

<장미>

나 이 장미를 원한다
나 이 장미를 박살내길 원한다
마치 멋진 도자기를 주먹으로 내질러 조각내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참살하길 원한다
마치 칠면조 내장 뽑고 꼬챙이로 꿰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절단하길 원한다
마치 부싯돌로 한 소년 할례하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갈망한다
나 이 장미가 내 온 몸과 영혼 위에서
물집과 농양으로 화농하길 원한다
나 이 장미를 쳐박길 원한다
나의 멀어버린 한쪽 눈 썩은 눈구멍 속으로
나 이 장미를 별들로부터 은하수를 지워내는 일에
사용하길 원한다
무엇보다도 나 이 장미를 구름 속으로 던져 올려
폭발하길 원한다.

The Bit

The boy watched
the black horse
with a white star
set in its forehead
The black horse watched
nothing
He lifted one hoof
from the ground
The meadow was lush
under the scorching sun
The horses star blazed
under his forelock
The horse
wore no bridle
He had no bit
in his mouth
Still he champed
and champed
rearing his head
While hot blood spilled
from his lips
The boy was amazed
What is the black horse chewing?
he asked,
What does it chew?
The black horse
is chewing
a bit
of memory
forged from cold steel
to be champed on
and champed on
till death

<재갈>

소년은 검은 말을
바라보았다
그 말 앞머리에 새겨진
하이얀 별 지니고 있었지
말은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땅으로부터
한 발을 들어 올렸다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초원은 푸르디 푸르고
앞머리 갈기 아래
그 말의 별 불타 올랐다
그 말
굴레 하지 않았고
입에
재갈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말
머리 치켜들고
우적우적 씹었다
그 입술로부터
뜨거운 피 흘러내렸다
소년은 깜짝 놀랐다
검은 말이 뭘 씹고 있지?
그는 물었다
도대체 무얼 씹지?
검은 말은
싸늘한 쇠붙이로부터 벼려진
기억의 재갈을
씹고
있었다
우적우적 씹고
죽을 때까지
또 씹을 재갈을.

The Dead

Father, what are these trees
that stretch to the horizon
in an unbroken row?
The dead, my son,
who left for the war
and couldnt return
Watch them line up
like peasants at checkpoints
longing to enter the city
But the huge gates are barred
and the watchtowers are manned
with fire and with arrows all night

<사자(死者)들>

아버지, 끊이지 않은 줄로
지평선까지 이어진
이 나무들은 무엇인가요?
아들아, 죽은 자들이란다
전장으로 나가
돌아올 수 없었던 이들이지
잘 보아라 도회로 들어가려
검문소에 모인 농부들처럼
줄 서 있는 꼴을
거대한 대문은 빗장 채워져 있고
망루는 밤새 횃불과 궁수들로
득시글거린단다.


Dogs

The strange ideas of the Bedouin
come out of his brain and crouch down in front of him
He whistles to them
He throws them a stick and calls Fetch!
The ideas of the Bedouin
say to themselves:
What a strange man!
He thinks ideas are dogs!
But they go along with the game,
they run to fetch the stick
If they did not bark, if they did not wag their tails
the Bedouin could do nothing with his ideas
The ideas play along
They know they can be either dogs or horses
But nowadays, all the horses are champing their bits
banged up in the royal stables
Nowadays, an idea is nothing more
than a dog

<개들>

베드윈 베드윈: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영위하는 아랍인들
 사람들의 이상한 생각들은
그 뇌로부터 생성되어 그 발치 아래 웅크린다
베드윈 사람은 그것들에게 휘파람 불거나
막대기 던지고 “물고 와!”라고 외친다
베드윈 사람들의 생각들은
뇌까리기를
별 이상한 인간 다 보겠네!
베드윈 사람은 생각들을 개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사냥감을 추격하고
막대기 가지러 달려간다
그들이 짖지 않으면, 그들이 꼬리 치지 않으면
베드윈 사람들 생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생각은 혼자서도 잘 노니
개들이 되거나 말이 되는 줄 익히 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말들은 왕립 마굿간에 감금되어
재갈이나 씹고 있고
오늘날, 생각은 단지 개 꼴에
지나지 않는다.

The Tree

The tree is climbing the air
chewing it up like a camel chews cactus
as space splits apart like fissuring ice-floes
The tree is climbing the air
like a blind man climbing the stairs
tapping his stick as he inches along
Where are you heading, blind tree?
Where are you going old camel
eating up branches of air?
The tree is climbing the air
which gingerly opens its rusty door

<나무>

나무가 허공을 오르고 있다
낙타가 선인장을 먹어치우듯이 먹어치우며
공백이 갈라지는 빙산처럼 벌어진다
나무가 허공을 오르고 있다
맹인이 계단을 오르듯이
지팡이 두드려 한 발 한 발 오른다
눈 먼 나무야, 어디를 향하니?
늙은 낙타야 어디로 가니
허공의 나뭇가지 삼키면서
나무가 허공을 오르고 있다
허공의 녹 슨 입구 조심스레 열린다.



 마흐무드 다르위시 (Mahmoud Darwish: 팔레스타인) 마흐무드 다르위시 (Mahmoud Darwish)는 1941년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 수니파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8년 이스라엘군이 마을을 공격하자 그의 가족은 레바논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유엔의 구호식품으로 연명하다가 1년 뒤 갈릴리 근처의 다이루 알아사드(Dayru al-Assad)에 정착하였다. 1970년 모스크바대학교를 다니던 다르위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집트로 이주하였고, 2년 뒤 레바논에서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가담하였다. 1982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PLO가 베이루트에서 추방되자 파리와 튀니지 등을 오가며 활동하였으며, 1987년 PLO의 간부로 임명되었으나 1993년 오슬로 협약에 반대하여 그 자리를 사임하였다. 다르위시는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아픔을 대변하는 시를 썼다. 초기에 그의 시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팔레스타인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1982년 이후 다르위시의 시는 절망적인 심정을 드러내었다. 영웅은 과거의 용맹스러운 모습에서 벗어나 팔레스타인 민족을 위한 희생양으로 결국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그는 1993년까지 23편의 시집을 출간하였는데 대표작품에 《올리브 나뭇잎》(1964), 《팔레스타인 연인》(1966), 《새들 갈릴리에서 죽다》(1970), 《별 열하나》(1992) 등이 있다. (네이트 백과사전 인용)
1969년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가 주는 로터스상 수상. 우리나라에는 그의 시 [팔레스타인에서 온 연인] 외 여러 편이 [팔레스타인 민족시집](실천문학사, 1981)에 번역 소개되었다.
 
*번역: 송경숙(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교수)
 

신분증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신분증 번호는 5만번이오

아이들은 여덟

여름이 가면 아홉째가 나온다오

그래서 당신은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채석장에서 땀흘리는 동무들과 함께 일하오



그리고 내 아이들은 여덟이오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하여 밤조각을 얻어내오

그리고 옷가지와 공책도

바위로부터....

그리고 나는 당신의 대문으로부터 자선을 구걸하지도 않소

또한 당신의 현관 앞에서 비굴하지도 않소

그래서 당신은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이이오

나는 성도 없이 이름뿐인 놈이라오

나라 안의 모든 것이

들끓는 분노 속에서 살고 있는 그런 나라에서

참고 사는 사람이오

나의 뿌리는... 내려졌소

세월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영겁이 열리기도 전에

그리고 측백나무와 올리브나무보다 먼저

그리고 풀들이 무성하기도 전에

내 아비는.. 쟁기의 가족이오

행세하는 양반이 아니오

그리고 내 할아버지는 농부였소

가문도... 혈통도 없는

그는 내게 책읽기보다 먼저 태양의 긍지를 가르쳤소

그리고 나의 집, 과원(果園)지기의 초막은

나무막대와 갈대로 만들어졌소

그래 내 처지가 마음에 드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내 머리 색깔은.... 검은색이고

내 눈 빛갈은 .... 커피색이오

그리고 내 특징은:

나의 머리에 이깔을 두른 쿠피아가 있소

그리고 내 손바닥은 바위처럼 딱딱하오

누구든지 닿기만 하면 할퀸다오

내가 제일 졿아하는 음식은

올리브 기름과 자아타르요

그리고 나의 주소는:

나는 잊혀진 외딴 마을 사람이오

마을의 거리들은 이름도 없소

그리고... 사내들은 모두 .... 들판과 채석장에 있소

그래서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당신은 내 조상의 과원을 빼앗았소

그리고 나와 내 아들들 모두가

경작하던 땅도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리고 나의 자손 모두에게는

이 돌들 밖에남긴 게 없소

그런데 그마저

듣기로는...

당신들의 정부가 가져간다고?

그렇다면!

 

기록하시오.... 맨첫머리에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소

누구도 약탈하지 않소

그러나 나는 .... 내가 배고팠다 하면

나는 나의 것을 빼앗은 자의 살을 먹을 것이오

조심하시오... 조심하시오.... 나의 배고픔을.








A man and a monkey


By Kyi Aung

"A show on the street,
A man and a monkey.
Monkey is a leading actor,
Man is a beggar."


































 띤 모 Tin moe(본명은 Saya U Tin Moe) 버마의 저명한 시인. 단순하고 정감있고 정직한 시 세계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웅산 수 키와 각별한 사이로 전국민주동맹의 창설자 중 한 명. 군사정권에 의해 3년간 투옥. 석방된 후에도 일체의 시작 및 출판 금지 조처를 당함. 나중에 벨기에로 탈출했다. 버마 국내에서는 철저히 검열 대상. 띤 모는 버마의 계관시인이다. 그는 1959년부터 시와 산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해 <불빛>이라는 제목의 시선집을 내서 시 부문 국가문학상을 수상했다. 1970년에는 <우산 없는 마 니>라는 책으로 아동문학 부문 국가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약 서른 권의 책을 펴냈는데, 그중 15권은 시집이다. 그의 가장 최근의 책은 1998년 10월 펴낸 <불모의 시절>이라는 제목의 시집이다. 그는 교사, 편집자, 수필가로서 생계를 꾸려갔다. 20년(1967-1987)동안은 양곤대학 번역출판학과의 compiler 및 assistant editor로서 있었다. 1991년에는 문학지 "Pay-Bu-Hlwa"의 책임편집인이었다. 그는 1989년 이래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NLD)의 지식인모임 회원이다. 띤 모는 1991년부터 1995년 2월까지 악명높은 인세인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했다. 최근, 그는 버마에서 일체의 저술과 문학활동이 금지당한 상태이다.


내 조국의 여명






요더야에 버마의 힘이 뻗쳐
전성기를 누렸었지.

잔혹한 역사에 대항하여
빛나는 승리의 축제를 벌여보자.

바야흐로 21세기
내가 본 방콕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우리 버마는 아주 작은 마을
억압의 시절 폭력의 시절이
그치질 않네.

앙숙의수탉들이 싸우는 것처럼
서로 영토를 넓혀
태국을 병합하고
방콕까지 탈환했던
역사의 용맹은 사라지고
암담한 생활이여
남자는 뼈를 깎는 노동 속으로 끌려가고
여자는 비굴하게 옷을 벗어야 했네.

오늘날 버마의 운명은
군부가 날조하고 있다.
욕망을 앞세운 독재자는
어린 학생과 주민들을 억누르며
권력을 휘두르고
쫓겨난 사람들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던
민중들은 반역자가 되어
내란의 불구덩이 속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정녕 앞으로 볼 수 없단 말인가?

온산 장군과 수지 여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버마의 영광은
HH뒤집어쓰고
비천함을 면치 못했으리.

타국(他國) 깊숙이 스며들어
내 잠자리 어찌 편할 수 있으리.
내 가슴속 근심걱정만 가득할 뿐
요동치는 괴로움으로
내 어머니 고향
가보고 싶구나.

부정이 사라지고
정의가 떠오르는

희망이 동트는 조국의 여명
언제쯤일까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계간 실천문학 2001년 겨울호/ 통권 제64호 수록)































찜 짱 (CHIM TRẮNG): 베트남의 대표시인 중 한 사람이며 Nhung nga duong (여러 갈래 길)로 1981년 베트남 국가문학상(작가동맹상)을 수상했다. [수련꽃]은 베트남의 국민적 애송시로서 1965년에 씌어졌다. 찜 짱은 필명으로 <하얀 새>라는 뜻이다.




수련꽃


이른 아침 뜰에 나가 수련꽃을 땄네
폭탄 구덩이 아래 어머니가 심은 수련꽃
아아, 어디가 아프길래 물밑 바닥부터
잔물결 끝도 없이 일렁이는가

몇 해 지나 폭탄 구덩이 여전히 거기에 있어
야자수 이파리 푸른 물결을 덮고
아아, 우리 누이의 살점이던가
수련꽃 오늘 더욱 붉네


































반레 베트남의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1949년 베트남 북부 닌빈성의 자탄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레지투이/'/이다. 1976년 문예주간 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1982년부터 현재까지 국립해방영화사에서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1996년 영화 /'/조용한 영광/'/으로 베트남영화제 최우수시나리오상, 2000년 다큐멘터리 영화 /'/원혼의 유언/'/으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사랑에 빠지다>, <불 아래 들판>이 있으며 장편소설 <정글에 남은 두 사람>, <프랏타나의 절>,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실천문학사) 등이 있다.


시인 김남주를 생각하며



사람들이 당신은 돌산처럼 강하다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
돌산도 석회처럼 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당신은 강철이라 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
강철도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당신은 샘물이라 했다
나는 주저한다
자그마한 수맥이 역시 산을 무너트리기도 하고, 언덕을 기울게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물은 부드럽다
이것은 당신의 성격과 맞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정신이라고. 이상(理想)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나는 믿는다.
정신은 불이 붙어도 타지 않고
단단한 도끼날 앞에서도 휘어지지 않는다.

정신은 모든 가슴 속에 들어갈 수 있다
희망을 환하게 밝히고
정신은 의지 굳은 사람을 도와준다
잔인한 폭력 앞에서.

정신은 사랑을 크게 키우고
동과 서 사이에서, 남과 북 사이에서!
정신은 언제나 불멸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정신이라 했다, 이상(理想)이라 했다.
그것을 나는 믿는다...

2003년 10월 5일 망월동 김남주 묘지 앞에서









압둘 와합 알 바야티 압둘 와합 알 바야티[Bayati, Abdul Wahab al, 1926 ~ 1999.8.3]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실천적 문학운동을 펼쳐 참여문학의 모범을 보인 시인이다. 1926년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 1950년 바그다드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한편, 《Al-Thaqafa Al-Jadida》라는 문화잡지를 편집하였다.초기에 공산주의 정치에 관여하다가 반정부 활동을 벌여 국외로 추방당하였다.1954년 이라크를 떠나 레바논·시리아·이집트 등지에서 살다가 1958년 왕권이 전복된 뒤 이라크로 돌아와 교육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59년 이라크대사관의 문화공보관으로 모스크바에 갔다가 1961년 사임하고, 구소련과학아카데미 〈Asian and African Peoples/'/ Institute〉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동유럽 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에 머물렀다.
 1968년 범아랍 사회주의당인 바트당이 정권을 잡은 후 이라크로 돌아왔다가, 몇 년 뒤 좌파를 탄압하는 정치운동을 피하여 다시 도피하였다. 1972년 바그다드로 다시 돌아왔다.
 1980∼1990년 이라크 문화공보관으로 스페인에 머물던 그는 1990년 쿠웨이트가 이라크를 침공한 뒤 스페인을 떠나 요르단의 피난소로 갔다가 1996년 시리아로 옮겨갔다. 1995년 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난 뒤 사담 후세인 정권이 그의 이라크 시민권을 박탈하자, 남은 여생을 동료 이라크 망명자들과 함께 다마스쿠스에서 보내다가 1999년 8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경향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곧 신화에 바탕을 둔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반영한 역사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1950년 첫번째 시집을을 출판하였고, 1954년 대표작인 《Abariq muhashshama》을 펴냈다. 대부분 자유시로 이루어진 이 시집은 곧 아랍권 전체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1998년까지 35권이 넘는 시집을 펴냈다.
 고전적인 아랍시 형식을 타파하고 자유시를 개척하였으며, 일상어에 가까운 단순한 언어를 구사하였고, 전통시로부터 풍부한 문학적 인유를 사용하였다. 후기 시들은 대부분 수피즘(Sufism)의 영향을 받았다. 현대 아랍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엠파스 백과사전)



우리는 왜 유랑지에 있나?
 *임병필 역




우리는 왜 침묵을 지키고 있나.
우리는 죽는다.
나에겐 집이 있었다.
나에겐 있었다.
바로 너
심장이 없이, 소리도 없이
통곡한다, 바로 너.
왜 우리는 유랑지에 있나.
우리는 죽어간다.
우리는 침묵 속에 죽어간다.
왜 우리는 울지 못하나.
불 위를
가시덤불 위를
걸어갔다.
우리 백성들이 걸어갔다.
우리가 왜, 주여!
조국도 없이, 사랑도 없이,
죽어간다.
두려움속에서 죽어간다.
왜 우리는 유랑지에 있나.
우리가 왜, 주여?
(홍일선 편집 [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화남, 2003) 수록.)


에덴의 동쪽

박두규 박두규 : 1985년 『남민시』로 등단. 시집으로 『사과꽃 편지』,『당몰샘』이 있다




늘 푸른 숲그늘의 나라,
촉촉한 물빛 맨몸으로 하루를 걸어
사과 하나를 베어 물던 태초의 나라에서도
사람들은 끝도 없는 꿈을 꾸었나 보다.
꿈이 있는 곳에 살육도 있어
가인은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고
아담의 부족들은 유프라테스를 따라 내려왔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꿈은,
인간의 욕망은,
늘 사막을 향한 꿈이었다.

우리가 아메리카의 꿈을 키우는 동안
아메리카는 사막을 향한 꿈을 키우고 있었고
그 꿈들이 무르익어 떠나는 곳은 언제나
가인이 숙명처럼 밟아야 했던 에덴의 동쪽이었다.
아, 이제 이 사막의 끝에서 죽음의 모래바람을 벗어나려면
살육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아메리카의 평화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아메리카의 자유를
그 모든 아메리카式 꿈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야 하리.
우리 포한의 가슴에 새겨진 가난한 꿈마저 버려야 하리.
고사리 손이 꼭 쥐고 있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담겨진
요람 속 아가의 꿈마저도 지워야 하리.
그렇게 아무런, 아무런 꿈도 없는 사막의 적막 속에도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것을
보아야 하리.









 

 그는 먹구름 속에 들어 계셨다


나 희 덕 나희덕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뿌리에게』,『어두워진다는 것』이 있다. 1998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

 

그가 보이지 않으니
가슴의 火傷 또한 보이지 않았다

동쪽 창으로 멀리 보이던 無等,
갈매빛 눈매는 성글고 그윽하였으나
그 기억의 분화구를 들여다보기 두려워
한 번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너무도 큰 죽음을 보아버린 눈동자가
저리도 평화로울 수 있다니,
진물 흐르는 가슴이 저리도 푸르다니,
그러나 오늘은 그가 먹구름 속에 들어 계셨다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가까운 숨소리에 잠이 깨었다

밤마다 그의 겨드랑이께 숨은 마을로 돌아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잠이 들면
그는 조금씩 걸어 내려와
어지러운 내 잠머리를 지키다 가곤 했으니
그를 보지 않은 듯 나는 너무 많이 보아온 것이다

먹구름이 걷히자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그의 등이 보였다

無等에게로 돌아가는 無等,
녹음 속의 火傷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 손에는 거기서 흘러내린 진물이 묻어 있었다
그의 겨드랑이께에서 깨어났다









평온한 열반

이철송 이철송 : 1991년 <실천문학> 가을호로 등단. <시와 사람> 겨울호에 ‘불안한 生’ 발표


네가 떠나고 세상이 우르르
무너졌다. 낙엽 한잎 허물어진 세상 위로
가볍게 내려앉는, 너와 밤새던
광주 공원 광장, 오늘 밤도
순백의 김을 내뿜으며 돼지 대가리가
노상의 가스불 위에서 禪
하고 있다. 더운 김 내뿜으며
물렁물렁 해가는,
등신불이 돼가는 오, 저 평온한
열반, 형용할 수 없는 장엄이다
행복하리, 죽어 이 세상에 발톱 하나
남김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죽어 똥이 될 수 있다는 것, 행복하리
너 떠나고, 한 줌의 추억이
돼지똥처럼 내 입에 남아 냄새나는데
돼지 혓바닥을, 너와 함께 소주 털던
입속에서 오물거리며 아,
모든 죽어가는 것은
아름답구나, 너 떠난 여기에서

















뱀을 만나

 박 관 서 박관서: 1962년 전북 정읍 생. 조선대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 1996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신인 추천. 1997년 제7회 윤상원문학상 수상. 2000년 시집 ‘철도원 일기’ 간행. 현 민족문학작가회의 목포지부 사무국장.



늦은 오후 산책길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만났다
화들짝, 저도 놀라 나도 놀라
이리저리 서로 피하려 했으나
여차하면 저는 나를 물어뜯으려 했고
나는 저를 발로 차버리려 했다
그 옛날, 낮고 어두운 대지에서 만나
머리를 꼬여 둘러 사랑과 자유를 나누었고
발꿈치를 물어뜯으며 해방과 통일을 꿈꾸었건만
저와 나는 만나면 아니 되는
전과자의 과거 같은 것일까
사랑도 해방도 희미해진 오늘날의 우리들
귀신같은 희망의 얼굴인 것일까
저는 날름거리는 혀로
나는 번뜩이는 두 눈으로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며 노려보았지만
서로가 물어뜯거나 걷어차진 않았다
저나 나나 산책길이었고 무엇보다도
세상은 이미, 충분히 저물어 있었으므로
저는 어둠내리는 풀숲으로 돌아가고
나는 덜컹대는 가슴으로 돌아왔다

슬- 슬- 뱀처럼, 뱀처럼




 




 굴뚝 속의 새를 날려보내다


고 재 종 고재종 :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에 ‘동구밖 열두 식구’ 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새벽들』,『바람부는 솔 숲에 사랑은 머물고』등이 있다.



높디나 높은 굴뚝 속에 빠진 새를 구하기 위하여
높디나 높은 굴뚝을 넘어뜨린 시인 부부가 있다*
처음엔 굴을 파고 들어간 생쥐인 줄 알았다가
하룻밤이 지나서도 그치지 않는 소리
틀림없이 푸드득푸드득, 목숨을 타전하는 소리에
그들의 푸르른 심금은 떨리고 떨렸던 것이다

내게는 아랫마을 방앗간집 아들과 통정했다가
가난하다고 해서 버림받은 누이가 있다
해산날에 그 집 향해 실려가다가
싸락눈에 삭풍 치는 신작로 한가운데서
제 이빨로 탯줄 끊어 몸을 풀었던 누이,
하지만 그 문전에서 아이만 빼앗긴 채 내쫓겨서
끝내 정신병동에 갇혀버린 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에겐 정녕 바람 불어도 떨리는 게 없어서
등교길, 청천벽력 같은 미군 장갑차에 압사한
어리디 어린 순결 앞에서 또 유구무언일 뿐인가

안암팎의 그리움 죄다 곱사둥이인 세상에서
둘러보고 둘러보아도 굴뚝 속 검댕일 뿐인
칠흑 절망을 더는 어쩌지 못한 생들이,
그 속에서 자기 날개를 짓찧는 아픔으로 되레
칠흑 고독을 이기려는 생들이, 어찌 새만 못하랴

쓰러진 굴뚝 밑으로 어리벙벙, 마침내 기어 나와
포르릉, 푸르른 자유를 나는 새를 바라보는
시인 부부의 환한 심금에 신의 연주가 있으리


*굴뚝에 빠진 새의 이야기는 고진하 시인의 산문에서 취함






공평무사
 
 임동확 임동확 : 1987년『매장시편』을 발간하며 등단. 시집『운주사 가는 길』, 『처음 사랑을 느꼈다』등이 있다.



그 어떤 농부가
한 알의 깨알이라도
땅바닥으로 흘리고 싶겠는가

그러나 농부가 밭고랑에 들어서기 전부터
여기저기 흰 깨알들이 흩어져 있다
남보다 먼저 꽃피워 여물었다가
그만 바닥으로 흘러내린 깨알들이다

애써 가꾼 자로선 참으로 고약한 일이겠으나
주인이 보기에 조금은 아깝고 안타까운 것이겠으나

아무리 조심해도
낫질을 할 때마다 이미 벌어져 있는
껍질 사이로 주르르 쏟아져 내린 깨알들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제 아무리 악착같더라도 우리들 사이엔
자신들도 모르게 깨알처럼 쏟아내는 것들
어쩔 수 없이 나눠가져야 할 것들이 있다

쓸어 담을 수 없는 2할의 깨알이
어디선가 까맣게 몰려드는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어주듯이
그게 무엇이든, 서로가 희망의 시래기가 되고
기꺼이 아침 밥상의 배춧국이 되어
말라붙은 사랑의 내장들을 덥혀주는 것들이 있다












3. 아시아 작가 평화선언(광주)




 때: 7월 1일(수) 오전 10시
 곳: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
 주관: 광주전남작가회의(회장 김희수 시인)
 후원: 5.18기념재단(이사장 박석무)
 참가국: 한국, 이라크, 버마, 팔레스타인, 베트남, 몽골

 내용: 1) “아시아 작가 평화 선언” 낭독: 구묘역 김남주 시인 묘소 앞
2) 기자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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