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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3회 푸른작가 청소년 문학상, 중등부 산문당선작
이름 사무처 이메일


                                        제3회 푸른작가 청소년 문학상

- 중등부

<산문>

최우수상
정희원잊혀져가는 얼굴


우수상
전유니진정한 녹색 도시를 꿈꾸며
이가람신발


가작
박현진나의 어린 시절
심문옥내복같은 사람이 될래요




<중등부 산문 최우수상>
정희원잊혀져가는 얼굴
경기도 성포중학교 2학년



잊혀져가는 얼굴



내 마음 속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져가는 얼굴이 있다. 작고 둥근 얼굴에 언제나 웃고 있는 입까지는 그려보지만 더 이상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얼굴은 처음에는 또렷하게 그려지다가 나중에는 솜사탕처럼 형체만 둥글게 남아 있다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 얼굴은 바로 내가 5살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 얼굴이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현관문을 열어 주시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 왔다.
“희원아, 어서어서 준비해라. 제상에 늦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내가 오기전에 미리 움직일 준비를 하고 계셨던 엄마의 바쁜 목소리에 나도 마음이 바빠졌다.
오늘이 바로 10년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제사를 지내는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양에 있는 외삼촌 댁에 가야했다. 바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던 나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있는 분홍빛 코끼리 인형으로 눈길이 갔다. 코끼리 인형은 언제나처럼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그 인형을 말처럼 타고 놀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다. 그동안 털도 많이 빠지고, 색깔도 많이 엷어졌지만 우리 가족들중에는 아무도 그 인형을 버리려고 하지않는다. 그 코끼리 인형은 외할머니께서 나에게 돌맞이 선물로 주셨던 인형이기 때문이다.
“너는 여름에 태어났잖니? 그 날은 날씨도 무척 더웠단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여니 외할머니께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커다란 인형을 안고 서 계시지 않겠니? 아무 연락도 없이 오셔서 놀라기도 했지만 그렇게 큰 인형을 안고 서 계시지 않겠니? 아무 연락도 없이 오셔서 놀라기도했지만 그렇게 큰 인형을 서울에서 우리집까지 들고 오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더구나. 더구나 외숙모한테 들어서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외할머니께서는 동네에서 인형에 장식품을 붙여 주는 부업을 하고 계셨단다. 그런데 첫 외손녀인 너에게 돌맞이 선물로 인형을 주려고 한 달동안 일하신 품삯대신 코끼리 인형을 가져 오셨다는 구나…….”
나는 가끔 엄마께서 들려 주시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외할머니 얼굴이 보고 싶어 얼굴을 떠올리지만 그 때마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어느새 10여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가끔 엄마는 외할머니 생각이 나면 코끼리 인형을 꺼내어 손질을 하시며 외할머니 이야기도 들려 주신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눈시울은 빨개지시곤 한다.
지금까지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 본 외할머니는 몸집은 작고 마르셨지만 무척 부지런하시고 욕심도 많으신 분이시다. 엄마가 자랄 때는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외할버지께서는 워낙 무뚝뚝하셔서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외할머니께서 도맡아 하셨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아침 일찍 외할아버지 구둣방에 가시면 밤 늦게서야 집에 오시는 힘든 생활을 하시면서도 자식들에게 조금의 빈 틈도 보이지 않으셨다고 한다.
내가 오는 날이면 마당에 세숫대야나 빈 바가지를 늘어 놓고 빗물을 받아 쓰실 정도로 알뜰하셨고,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숙제 검사는 꼭 하실 정도로 교육열도 높으셨으며,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철마다 구둣방 앞에 과일이며 옥수수, 군밤같은 것을 파셨다고 한다. 덕분에 넷이나 되는 자식들 모두 잘 자랐고 나름대로 가정을 꾸려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정작 외할머니께서는 병을 얻어 그 흔한 여행 한 번 가보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지금도 외할머니의 얼굴은 잘 그려내지 못하지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엄마가 그 날은 마치 떼쓰는 어린 아이처럼 앉아서 펑펑 우는 모습에 어린 나도 놀라고 겁이 나서 엄마 품에 안겨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엄마도 나처럼 운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안양에 있는 외삼촌 댁으로 가는 좌석 버스에 올라탄 나는 엄마와 나란히 앉아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엄마는 외할머니 얼굴 지금도 생각 나요?”
“그럼, 내 엄마 얼굴인데 어떻게 잊혀 지겠니? 잊혀지기는 커녕 자꾸만 보고 싶어져서 큰 일인데. 너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해지면 예전의 할머니 마음을 알 것같아 생각이 나고, 여름철에 길 가에서 파는 옥수수를 보면 옥수수를 찌느라 땀을 흘리시던 모습이 생각나고, 가을에 국화꽃이 필 때도 생각이 나고…….”
“국화꽃은 엄마가 좋아하는 꽃 아니예요?”
“응, 그래. 나도 좋아하지. 그런데 사실은 외할머니가 좋아하셨단다.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 살면서도 외할머니는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노란 국화꽃 화분을 사다 놓으셨단다. 그 때만 해도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말고는 꽃이나 화분을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거든. 한 번은 친구들이랑 소꿉놀이를 하려고 외할머니 몰래 국화꽃잎을 모두 따서 놀다가 회초리로 매를 맞기도 했었단다. 나중에 내가 크면 국화꽃 화분을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단 한 번을 사드리지 못 했지 뭐냐. 뭐가 그렇게도 바빴는지…….”
나는 엄마의 말씀을 들으며 해마다 가을이면 우리집 거실 한 쪽에 놓여있던 국화꽃 화분이 떠올랐다. 그동안 국화꽃 화분을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모습을 국화꽃속에서 찾고 계셨던 것이었다. 겉으로는 우리들에게 웃음을 보여 주시느는 엄마가 마음속 깊이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엄마의 모습이 작아 보여 코 끝이 찡해졌다.
“엄마, 다음 가을에는 제가 국화꽃 화분을 사다 드릴께요. 저처럼 통통하고 예쁜 국화꽃 화분으로요. 아니 해마다 제가 사드릴께요. 하나? 둘? 에이 인심썼다. 백 개까지 사 드릴게요. 앞으로 영원히…….”
“후후. 됐다. 됐어. 화분은 그만 두고 말이나 잘 들어라.”
나를 보며 웃으시는 엄마의 웃음이 국화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외할머니의 웃음도 엄마와 똑같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 때가 되어 외삼촌 댁에 도착한 나는 외할머니를 사진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보자 나는 내 방에 있는 분홍빛 코끼리 인형이 떠올랐다. 비록 외할머니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계시지 않지만 내 마음속에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때로는 분홍빛 코끼리 인형의 모습으로, 또 국화꽃으로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것이다.
새벽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속에 외할머니의 얼굴이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코끼리인형과 함께…….




<중등부 산문 우수상>
전유니진정한 녹색 도시를 꿈꾸며
대전 문정중학교 2학년



진정한 녹색 도시를 꿈꾸며



어느 날 TV에서 패스트푸드를 먹게 일회용품 과다 사용은 물론 환경에도 좋지 않다고 하여 “나, 나도 환경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패스트푸드도 끊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지구를 괴롭히면서 행복하게 생활을 하지만 그에 비해 지구는 늘 하루 하루를 아파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지구를 치료해 줘야 한다. 1주일 동안 감기를 앓는 것도 무척 힘든 고생인데 우리로 인하여 지구는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갈수록 더 심하게 병을 앓고 있다. 아마도 우리를 잘살게 만든 공업화가 바로 지구를 아프게 하는 것 같다. 공업화로 인하여 우리가 먹고사는 일은 많이 해결되었지만, 그만큼 자연환경은 파손되었다. 농지와 산지를 없애고 공장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갈수록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수도권 도시에 우리 인구 40%가 몰려 살고 있으니 자연이 훼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로 인해 하천, 바다, 육지가 오염되는 것은 물론인데, 서울에 있는 63빌딩이 하루에 소비하는 전기는 청주시 전체의 하루 전기 소비량과 비슷하다고 하니 하나의 대도시가 환경을 소모하는 양은 과연 얼마나 클까 짐작이 간다.
이제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도 바닥나고 있다. 앞으로 10년 뒷면 석유가 부족해져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석유가 영구적인 에너지라고 하더라도 공기오염을 일으키므로 쓰지 말아야 하겠지만 석유가 부족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석유가 자동차에만 이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 폴리에스테르라는 섬유는 석유에서 뽑은 물질로 만든 섬유고, 순면으로 된 옷도 목화를 대규모로 재배하기 위해 트랙터 같은 기계를 사용해야 하므로 석유가 필요하고, 또 공장에서 트랙터와 옷을 만들기 위해서도 전기가 필요하며 전기는 화석 연료를 사용해서 만든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인데 석유가 부족해지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컴퓨터도 할 수 없게 되고 TV도 볼 수 없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아마 내가 대학생이 될 때즘이면 불도 안 들어오는 껌껌한 방에서 베란다에서 기른 야채로 밥을 먹고 있을 지도 모른다. 정말 이 글을 쓰다보니 이 모든 사실들이 두렵고 무서워진다.
물론, 석유 없이도 전기를 만들수는 있다. 바로 핵에너지가 그것이다. 하지만 핵에너지는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고 나면 여러 가지 핵폐기물이 나온다고 한다. 이것은 너무너무 위험해서 함부로 묻을 수도, 태울 수도 없다는데… 플루토늄이라는 물질은 독성이 정말 강해서 1g 만으로도 100만 명이 암에 걸리게 할 수 있다고 한다. 1986년에 일어난 체르노빌 사건을 살펴보면 핵이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바람에 죽은 사람이 3만여 명이나 되고 200km 떨어진 곳까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었다. 체르노빌 지역에는 철조망을 쳐 놓아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구역으로 구분해 놓았다. 정말이지 이렇다면 10년 후에도 과연 내가 컴퓨터를 할 수 있을까? 없을 수도 있단 말인가?
다행히도 새로운 에너지들이 개발되고 있다. 어떤 에너지들이 있냐하면… 첫 번째로는 태양열 에너지가 있다. 태양은 50억 년 후가 되어도 우리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한다. 태양 전지판 1개로 컴퓨터 1대를 켤 수 있는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 문제점인데, 하루빨리 우리 아파트에도 태양열 전지판을 달았으면 좋겠다.
두 번째로는 바람 에너지가 있다. 과학자들은 바람을 잘 이용하면 전 세계 사람드리 쓸 수 있는 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바람이 많이 부는 산이나 사막, 바닷가에서 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하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번 귀 기울여 실천해 볼만한 일이다.
세 번째로는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왔다가 나가는 이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서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조석간만의 차가 큰 영국에서 이를 실천한다면, 영국에서 사용하는 전체 전력의 20%는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이다. 갑자기 웬 음식물 쓰레기하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음식물 찌꺼기에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찌꺼기를 발효시키면 메탄가스가 나오는데, 이것으로 전기와 열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이것을 바이오 매스라고 부르는데 독일에서는 도시의 음식물 찌꺼기를 모두 한데 모아서 발효기에 넣고 발효시켜 가스를 만든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뿐만 아니라 가축의 배설물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남은 찌꺼기는 퇴비로도 쓰고, 전력도 공급하고 여러모로 유용한 것 같다. 처음 이 정보를 접하였을 땐 굉장한 기쁨을 느꼈다. 찌꺼기로 에너지를 만들다니, 참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빨리 이 네 가지의 에너지를 개발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실생활에 응용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체 에너지들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전기를 절약하며 지내야 한다. 하지만 전기절약이 말처럼 실행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겨울철에 방바닥이 끓을 정도로 후끈하다. 겨울에도 반 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아주머니께서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것을 본 적이 많다.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의 아주머니께서도 겨울에는 집에서 긴 팔 옷에 스웨터나 조끼를 걸친 채 에너지를 절약하며 지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어학연수를 하느라 묵었던 뉴질랜드의 민박집 아주머니 샐리의 집을 보더라도 겨울철에는 거실 바닥에 두터운 카페트를 깔고, 실내에서 두터운 스웨처를 입고, 털신을 신고, 심지어는 털장갑까지 끼고, 또 사람이 있는 경우에만 히터를 틀곤 했다. 또 목욕을 할 때에도 간단하게 샤워하며 물을 아끼라고 했다. 샐리 아주머니는 부엌 쓰레기도 구분해서 했는데, 음식물 찌꺼기, 과일 껍질 등은 따로 모아 발효시켜 정원 거름에 사용하곤 했다.
사실 나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에너지 절약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없는 것 같다. 여름이 되면 또 우리는 에어컨을 너도나도 틀어대기 때문이다. 에어컨은 선풍기보다 30배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조금 뜨끔한 얘기다. 왜냐하면 우리 집도 에어컨을 자주 틀기 때문이다. 맨 꼭대기 층이라 다른 층보다 더 더워 에어컨을 자주 트는데 내가 컴퓨터를 하는 동안 컴퓨터에 정신이 팔려있어 잠시만 냉방시키고 꺼야지 하고는 컴퓨터를 하는 내내 에어컨을 켜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말로만 주절거릴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한겨울에도 반 팔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아주머니를 나무랐던 나도 에너지 절약에 둔감한 것은 그 아줌마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런 내가 너무 부끄럽다.
에너지 절약은 아주 작은 사실을 알고 지키는데 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먼저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이 높이 표시된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 쓰지 않는 가전기기는 플러그를 빼어 두고 백열등을 전구식 형광등으로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정말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 또 한가지는 큰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작게 쓰여져 있는 글씨, 바로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사용하지 않으면 연간 164억 원이 절약됩니다”라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돈이 절약되는지 생각해보면 이런 실천을 하기가 더 쉬워질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에너지들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에너지 절약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석유가 바닥나는 그 날까지 계속 석탄과 석유를 사용한다면, 환경이 점점 더 파괴될 것이다. 맑은 날에도 하늘이 회색인 이유는 석탄과 석유로 인한 스모그 현상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사는 대전은 아직 맑은 하늘이 보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서울처럼 회색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또 이 희뿌연 하늘을 만들어내는 매연 가스들에 포함된 나쁜 물질들은 산성비가 되어 내리는데, 대기 오염물질은 바람을 타고 약 5000km까지 퍼진다. 산성비를 맞으면 식물에게도 좋지 않고 우리에게도 좋지 않다. 산성비를 맞으면 우리의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보라.
그런데 이런 환경오염 문제는 한 나라에서만 실천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세계 사람들이 노력을 해야한다. 그런 노력을 지금 실천하고 있는 도시들이 있다. 브라질의 꾸리지바 시는 녹색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녹색도시란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를 뜻한다. 레르네르 시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사람 중심의 도시로 바꾸어 나가고 시내 중심에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구역을 만들었다. 극빈자들에게는 쓰레기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일자리를 주었고 폐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장난감 공장을 건설하여 주민들의 소득을 높여주었다. 꾸리지바의 버스교통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요금으로 가장 높은 버스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데 도시버스는 노선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했으며, 버스전용차로를 만들었으며, 정류장의 높이를 모두 같게 하여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였다.
또 독일의 칼 하세 시에 있는 집들은 남쪽을 향하고 있어 난방과 조명에 쓰이는 전기 양을 줄이고 주차장을 마을 밖에 만들어 마을 안으로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화장실도 자연 발효식 화장실로 바꾸고 모든 집에 절수기기를 도입하였으며 천연가스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고 이때 발생하는 열로 물을 끓여 난방을 하여 공해도 없다고 한다. 집을 만드는 재료 또한 흙, 나무 등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면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만들 도시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무척 부러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에너지 절약과 환경오염을 줄이는 일을 생각하며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를 꿈꾸어본다. 인간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 진정한 이익이 아니라, 자연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도 더욱 쾌적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에너지 절약은 환경을 밝게 가꾸는 일과도 직결되며 이것은 곧 우리의 아름다운 생활터전이 되는 진정한 인간 환경을 만드는 것과도 직결된다. 그러므로 서울에도 회색 하늘 대신하얀 구름이 떠 다니는 맑은 하늘이 될 수 있기를, 녹색 도시가 되길을 다시 한 번 꿈꾸어본다.



<중등부 산문 우수상>
이가람신발
산본중학교 3학년



신발



“아빠, 오늘두 회사 가?”
내가 묻는 말에 아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연신 헛손질하며 구두끈을 묶습니다. 시선이 나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지간히 바쁘신 모양입니다. 나는 며칠 전 새로 산 검정 구두의 반질반질한 코끝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에 시선을 옮깁니다. 괜히 구두에 질투를 느낍니다. 안녕? 잘 있어. 구두가 인사를 합니다. 나는 손을 들어 그래, 안녕, 하려다 그만둡니다. 한참 바쁘게 움직이던 아빠는 나를 보시더니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우리 공주님, 아빠 다녀와도 되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물론 겉으로만요. 마음속으론 가지 말라고 매일 소리치곤 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내 대답에 안심했는지 등을 돌리고 힘차게 걸어갑니다. 아빠는, 정말 바보입니다. 내가 얼마나 아빠와 함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바보.
나는 8살입니다. 이름은 소희구요. 아빠가 어마를 닮은 예쁜 아가씨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엄마가 내가 2살이 채 되기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아빠 말로는 무척이나 상냥하고 예쁜 분이었다고 해요. 나랑 꼭 닮았다고 아빠는 항상 나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아빠 바보.”
현관문이 닫히자 나는 도로 방에 들어가 내 친구 곰돌이를 끌어안고 침대에 눕습니다. 나는 요즘 몸이 자주 아파서 내 또래 아이들처럼 밖으로 나가서 놀 수 없습니다. 아빠의 말로는 폐렴이 자주 재발된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위험한 병이 아니라고 안심시키면서도 막상 밖에 나가 뛰어놀라치면 숨이 턱턱 막히곤 합니다. 아빠 말씀이 맞습니다. 밖에 나가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구요.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왜 아빠는 내가 습관성 폐렴이란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집에 혼자 내 버려 두는 것일까요. 왜 내 곁에 있어주지 않는지요. 아빠한테 투정이라도 부릴 때면 항상 아빠는 양쪽 눈썹이 아래로 쭉 미끄러지며 ‘미안’이라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그래서 왜 나를 혼자 내버려두냐고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미안이라는 말을 할 때 아빠는 굉장히 슬퍼보이거든요.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무척 나쁩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은 너무 외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낮 동안 텅 빈 집안에서 햇살만 잔뜩 받아야만 하는 화초를 보면 꼭 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가 직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식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면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불을 있는 대로 켜 놓아야 합니다. 아니면 어디서 귀신이 나올지 모르거든요. 귀신은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소희야! 소희야!!”
누군가가 내 팔을 흔들고 급하게 소리칩니다. 그런데 머리가 아파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아빠가 가깝게 보였다가 멀어져 갑니다. 아빠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가 내 등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웁니다. 늘 따뜻하던 아빠의 손이 오늘따라 차갑습니다. 아빠는 허둥지둥 내게 체온계를 꽂습니다. 순식간에 죽 올라가는 빨간 물을 바라보고는 휴 한숨을 내쉽니다.
“또 열이 올랐네… 큰일났다!”
머리가 아팠던 게 그것 때문이었나 봅니다. 나는 갑자기 희망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내일 아빠가 내 곁에 있게 될지 모릅니다. 몸이 구름처럼 둥둥 떠간다고 느꼈습니다. 아빠가 부르는 소리도 희미하게 멀어집니다. 그러자 예쁜 아줌마가 나를 꼭 껴안으며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줍니다.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착한 아기 우리 아기…. 그렇습니다. 이런 날 꿈속에서 나는 엄마를 만납니다. 엄마는 너무 예쁩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천사같습니다. 나는 엄마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만 깊은 잠에 떨어지고 맙니다.
“아빠야, 우리 소희 잘 잤니?”
아빠 방에서 잠깐 잠이 들었나 봅니다. 아빠가 활짝 웃으며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줍니다.
“내일 아빠가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회사에 꼭 나가야 하는데 우리 소희… 집에서 혼자 약 먹고 잘 있을 수 있지?”
나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눈물도 났습니다. 왜 아빠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 것일까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기분이 나빠져서 결국 아빠의 말도 더 듣지 않고 일부러 발끝으로 바닥을 쾅쾅거리며 내 방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아빠는 나를 잡을 생각도 안 합니다. 그냥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을 뿐입니다. 그게 나를 더 슬프게 했습니다. 나는 그 뒤에도 한참 침대에 누워 자려고 했지만 낮에 너무 많이 잤던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늦은 밤 나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빠를 회사에 가지 못하게 할 좋은 수가 생각난 것입니다.
조심조심, 나는 현관에 갔습니다. 그러고는 한켠에 조용히 놓여 있는 아빠의 새 구두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손이 떨려 중간에 한번 구두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구두는 쿵, 하며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간이 콩알만해져서 아빠 방을 바라보았지만 아빠는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안심을 한 나는 구두를 가지고 조심조심 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구두를 내 책상 아래에 있는 작은 공간에 숨겨두었습니다. 이쯤 되면 아빠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이 책상 아래의 빈자리는 나도 며칠 전에야 처음 알았던 비밀장소거든요.
“이제 아빠는 회사 못 가겠지?”
나는 내가 자랑스럽고 뿌듯해져 마음이 다 설레었습니다. 오늘 밤에 엄마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를 만나면 나는 이렇게 엄마에게 말할 것입니다. 아빠, 엄마 소희와 이렇게 함께 있어요. 하고 말이에요. 아마 엄마 아빠는 그래 그래 우리 소희 말대로 하자 할 것입니다. 오랜만에 나는 편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날 아침, 내 생각대로 아빠는 신발이 있던 장소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습니다.
“아빠, 거기서 뭐해?”
“아… 소희로구나. 혹시 아빠 구두 못 봤니?” 아빠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웃습니다. 나도 아싸! 외치며 속으로 웃습니다. ‘아빠 바보, 내가 숨겼는데.’ 그래도 겉으로는 들키지 않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니… 못봤는데… 구두 없어졌어?”
“이상하다… 우리 집에 사는 귀신이 가져갔나?”
아빠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별 수 없다는 듯 신발장에서 다 떨어진 낡은 구두를 꺼냅니다. 곳곳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는 그 구두는 아빠가 7년 이상을 신다가 굽이 떨어져서 쓸 수 없게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빠는 그 구두를 신고는 언제나처럼 회사로 출근을 하러 나갔습니다.
쾅! 꽝! 꽈아앙!
아빠는 문소리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아빠 미워!”
아빠가 나간 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그런 구두를 신고서라도 회사에 나갈 만큰 회사가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어쩜 아빠는 나보다 회사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자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겼습니다. 원래는 오늘 밤 아빠의 신발을 다시 돌려놓으려 할 셈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제 절대로 아빠의 신발을 되돌려 놓지 않기로요.
다음날, 또 다음날이 지났습니다. 난 여전히 아빠의 신발을 가져다 놓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빠의 낡은 구두마저 가지고 가 감추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운동화까지 신으며 계속 회사에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희야! 문 열어라!”
방에서 그림을 그리던 나는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낯선 목소리에 당황했습니다. 아빠가 퇴근할 시간이 늦어져서 조금 걱정이 되던 때인데, 이 시간에 누구일까요? 나는 버럭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 무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밖에서는 계속 문을 쾅쾅 두드려 대고 있었습니다.
“누…누구세요?”
한참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 후에야 나는 겨우 쭈뼛거리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급한 듯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행히도, 그 대답은 나를 안심시켜 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나다, 방실이 아저씨. 얼른 문 좀 열어줘.”
나는 안심을 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방실이 아저씨는 우리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 분입니다. 웃는 얼굴이 참 좋아서 방실이 아저씨입니다. 나는 방실이 아저씨를 알고 있는데, 그건 아저씨가 아빠의 초대를 받아 우리 집에 자주 와 나와 놀아주기 때문입니다. 어떨 때는 선물을 사 가지고 주시기도 하구요.
“아저씨, 여긴 무슨 일이세요?”
혹시 아저씨가 내가 신발을 숨긴 사실을 아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나는 아저씨의 등에 업힌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틀림없이 우리 아빠였습니다. 볼에 점이 있는 걸로 보아 아빠가 확실합니다. 왜 아빠가 이 시간에 술에 취해 이렇게 들어오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내가 아프기 시작한 뒤로는 술이라곤 입에도 안 대던 아빠인데요.
“그러게 이 친구야, 그 단정하던 놈이 왜 요즘 들어 그렇게 덜 떨어진 모습을 하고 다녀서 사장님한테 찍히고 난리야, 응? 아니, 회사에 오는데 운동화가 뭐야, 운동화가! 사장님이 얼마나 체면에 약한 분인데…”
아빠를 침대에 눕힌 뒤 방실이 아저씨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무서운 얼굴을 해 보이며 아빠를 다그쳤습니다. 아빠는 침대에 웅크린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나의 물음에 그제야 방실이 아저씨는 굳은 인상을 풀더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니 아빠가 며칠 전부터 회사에 운동화를 신고 나오지 뭐냐. 오늘은 중요한 모임이 있는 자리였는데 오늘마저 운동화를 신고 나온 거야. 그것도 다 떨어진 운동화를. 그래서 사장님이 한바탕 화가 나셔서 네 아빠가 잔소리 좀 들었다.”
나는 설교의 뜻이 뭔지는 모르지만 나쁜 것임엔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아빠가 이렇게 술에 취해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나는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아빠가 운동화를 회사에 신고 간 것은 나 때문이니까요. 신발을 괜히 감추었나,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난 먼저 가봐야겠다. 그럼, 다음에 보자.”
아저씨는 아빠를 침대에 눕히고는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빠와 단 둘이 남은 나는 조심조심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빠가 보였습니다.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저기…”
내가 먼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내 목소리는 아빠에 의해 막혀버렸습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말하는 아빠의 발음은 매우 우스웠지만, 나는 모든 것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안하다, 소희야… 아빠가 너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회사 일에 바빠 너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나는 아빠가 왜 나에게 사과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건 나인데 말입니다. 아빠의 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아빠가… 소희 아빠 구두 가져가는 거 보고 얼마나 좋았는데… 우리 소희가 아빠를 아직도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나는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아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내가 아빠의 새 구두를 훔쳐간 것도, 계속 심술을 부려 아빠의 다른 신발들도 모조리 감춰두었다는 것을요. 그래도 아빠는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왜인지 난 잘 모르지만, 그래도 꼭 사고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 미안해요.”
머뭇거리다 빨리 말을 내뱉은 내가 얼른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방으로 가서 내 책상 아래 작은 구석에 숨겨져 있던 신발들을 꺼냈습니다. 이미 하나였던 신발은 4켤레가 한데 뭉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중에서 아빠의 윤기나는 새 구두를 들어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구두는, 다른 운동화들과 함부로 끼워 넣은 탓에 신발자국이 나 있어 흉하게만 보였습니다.
나는 서둘러 구두를 들고 나가 열심히 닦기 시작했습니다. 걸레로 열심히 닦다 보니 처음에 있던 신발자국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내일은 아빠에게 이 구두를 건네주면서, ‘오늘도 회사 가?’라는 물음 대신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해야겠습니다.



<중등부 산문 가작>
박현진나의 어린 시절
옥천중학교 3학년



나의 어린 시절




새로운 출발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어느 마을로 이사를 가면서 나의 생활은 새로운 배경에 적응을 해야 했다. 그렇게 많지 않은 마을 사람들,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정겨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뒤에는 산이 솟아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이 동네는 여기저기 동네 아이들이 뛰어 다니는 한적하고 고요한 동네이다. 이사를 온 우리 집에 많은 관심을 가지시며 여기저기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에 한번씩 들려보시는 것 같았다. 우리 집도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이사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떡을 드리려고 마을을 도는 중이었다. 먼 곳은 다 돌리고 바로 이 집 한 집이 남아있었다. 그 집은 이상하게 나 혼자 갔다 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을 봐서 무언가 우리 집과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시멘트 바닥에 양쪽 화단에는 장미꽃, 상추, 앵두, 여러 가지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집안을 둘러보는 참에 저쪽에서…
“야! 우리 집에 왜 들어왔냐?”
집안 현관에서 들려오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숨막히게 달려온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도 서 있었다.
“응? 우리가 이사를 왔는데.”
그 여자아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받아 채었다.
“이사를 왔으면 됐지. 우리 집에는 왜 들어오니?”
“떡 좀 같다 주려고 왔는데. 엄마 아빠는 안 계셔?”
“모두 다 일 가셨어. 네 옆에 가지고 있는 게 떡 이니?”
“응.”
“그럼 빨리 줘. 배고프다 같이 먹을래?”
순간 여자아이의 질문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응. 그래 같이 먹자.”
떡을 먹으면서 여러 집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까 와는 다르게 꽤 잘살지도 않고 못 살지도 않은 집 우리 집과 딴판 다른 것이 없는 집이었다.
“네 엄마, 아빠는 뭐하시니?”
“어! 회사 다니시는데.”
처음 내가 말했을 때는 어디선가 온 도시 아이인줄 알았던 것 같았다. 점점 지내면서 나도 시골 아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떡을 먹고 동네 구경을 시켜 준다는 말에 뒤를 따라나섰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산을 올라가서 보니 동네가 한눈에 다 보였다. 이런걸 본적이 없는 나는 한동안 풍경에 빠져 나오질 못 했다. 어느새 비 온 뒤의 하늘이 겉이고 다시 하늘엔 태양 빛이 가득 들어찼다. 그늘을 피해 우리는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우리들을 가려주기에 충분했다. 태양 빛이 들지 않는 바람 솔솔 부는 곳이었다. 그러는 동안 여자아이와 단짝 친구가 된 것 같다. 동네 구경을 하고 산에서 마을로 내려왔다. 벌써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 듯 했다.


학교 생활의 시작

오늘부터 드디어 이곳에서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니 스무명정도의 친구들이 모여 있던 것 같았다. 교실을 본 순간 놀라웠다. 저기 한쪽에 내가 어제 보았던 여자아이가 않아 있던 것이었다. 나를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여기 주목. 새로운 친구가 왔다. 시내에서 이사온 친구다. 모두다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 그럼 이만.”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말투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서 나가시고, 곧바로 아이들은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공부는 잘하니?”
“운동은 좋아하니?”
많은 질문 중에 이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시 후에 전학 온 첫째 날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느닷없이 운동장으로 나가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할지는 몰랐지만 따라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운동장을 보니 저번 학교의 운동장과는 대조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오셔서 오늘 첫 시간은 체육으로 하신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벌써 축구 하기로 정한 것 같았다.
“와---”
하며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축구는 시작되었다.
축구를 싫어하는 나는 친구들은 축구도 좋아하고 내가 뛰지 않으면 서로 친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힘을 다해 뛸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선 심판을 보셨고, 작은 인원이지만 여자, 남자, 섞어가면 팀을 나누었다. 경기가 한창 진행될 무렵 공격과 수비가 서로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우리 팀이 공을 잡아 골대 앞까지 가게 되었다. 그 옆을 따라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건 바로 자기가 넣지 않고 공을 나에게 주었던 것이었다. 나는 빠른 머리회전으로 공을 잡아챈 다음,
“슛---골인”
“와----”
여기저기 친구들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축구 시합을 마치고, 세면대에서 팔과 얼굴을 씻고 있었다.
“야! 너 축구 잘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그랬었나.”
“오늘 보니까 축구 잘하던데. 오늘 학교 끝나고 축구 시합 또 하고 가자.”
“그래. 알았어.”
그날 축구 시합에서 한 골을 기록한 나는 친구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강가에서

전학을 오고 시간이 흘러 나무에는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이 되었다. 여러분은 여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당연히 여름 하면 물놀이가 생각날 것이다.
일요일 낮이었다. 집에 앉아 있던 중에 친구들이 찾아온 것 같았다.
“야! 집에 있냐? 집에 있으면 놀러가자.”
“어. 나 집에 있어. 어디로 놀러 갈 건데?”
“냇가로 가자.”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준비하고 나갈게.”
집에서 나와 친구들을 보니 친구들 네 명 정도가 있는 듯 했다. 학교 앞 물로 가기로 정했다. 학교 앞에 흐르는 개울물은 참 맑았다. 여기 저기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물고기 떼가 지나가고 양쪽 물가에는 버들나무가 있는 고요한 물이었다. 물가에 도착하자 친구들이 하나 둘씩 물 속에 들어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멋있게 다이빙을 해서 잠수를 했다. 잠수를 하니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몇 년 전 죽을 뻔한 사건이 있었다. 충북 영동에 흐르는 강으로 놀러를 가게 되었다. 그 강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물은 깨끗하고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빨라 조금만 한 눈을 팔면 물살에 휩쓸려 갈 정도의 강줄기이었다. 이종사촌형과 같이 갔다. 형은 수영을 잘했지만 그땐 나는 튜브에 몸을 의지하며 놀 수밖에 없었다. 형은 조금씩 조금씩 물 속으로 들어갔다.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것처럼 나도 형을 따라 들어가며 놀았다. 어! 어느 지점에 들어오자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깜짝 놀랐다. 물살에 흘러가지 않기 위해서 발을 힘껏 저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인 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튜브를 터질 듯이 잡았고,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이대로 떠내려가는 걸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겁을 먹기엔 충분했다. 이제는 울을 힘도 다 빠진 듯 하였다. 그때 강변에서 놀고 계시던 아빠와 이모부는 나를 발견하신 것 같았다. 우리 텐트에 고무 보트가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드디어 살수 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를 저으며 오는 보트는 점점 가까워지고, 초인 같은 힘을 내며 발을 저었다.
물에서 나온 나는 이모부께 안전한 곳에서 놀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놀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하늘에선 붉게 차려입은 노을 손님이 곁에와 있었다. 우리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체 젖은 옷을 이끌고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붉은 열매

매일 노을진 학교를 갔다 오는 길에 양쪽 길가에 곱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보며 매일 인사를 나눈다.
‘매일 변하지 않는 너를 보니 참 좋아 보이는구나.’
이렇게 인사를 하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어 주는 것 같다.
또 다른 곳을 보면 붉은 열매가 달린 나무들이 있다. 산밑에서 길 옆 밭에는 붉은 열매가 익어가고 탐스러움을 더해간다. 아직까지는 그 붉은 열매가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아직까지는 알 때까지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집에 오면서 꼭 한번 먹어 보리라는 생각을 한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에게 붉은 열매를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하나 둘 씩 모여든 친구들은 우리 반 모든 남자아이들이 모인 듯 했다. 우리들은 열매가 있는 곳으로 빨리 길을 걸어갔다. 사방이 열매 밭이어서 조금만 가도 보일 열매이었다.
“야! 저기 보이는 거 맞아?”
“어. 맞아 나보다 빨리 보았네.”
“그런데 저거 먹어도 되는 거야?”
“거기 가서 하나 먹어 보면 되지. 빨리 뛰어 가자.”
조금만 더 가서 붉은 열매가 있는 밭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와- 드디어 열매 밭이다.”
그 밭에는 아무도 없었다. 밭에 있는 풀을 뽑는 사람도 나뭇가지를 손질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안심을 하고 먹을 수가 있었다. 열매 하나를 먹어 보았다. 두 번째 먹으니 더욱더 맛있었고, 점점 먹어 갈수록 더욱더 맛있었다. 어느 정도 먹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조금만 먹은 것 같았는데, 땅에는 열매 껍질이 많았다.
“야! 이거 많이 먹어도 되는 거야?”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럼, 오늘은 그만 갔다가 다음에 다시 오자.”
우리들은 어지러 놓은 밭을 깨끗이 치우고 빠져 나와서 각자의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께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오늘 친구들이랑…….”
“혹시 그 붉은 열매…….”
나는 그때서야 그 붉은 열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포도라는 이름을 가진 과일이었다. 내일 학교 가면 꼭 친구들에게 해 주어야겠다고 느끼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갔던 포도밭 아저씨께 혼나는 꿈을 꾸면서…….


눈 오는 날

학교에 들어오고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벌써 생각지도 못하게 이학년 막바지를 보내게 되었다. 일년의 시작인 봄을 보내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했던 것이었다. 모두들 며칠 후에 있을 겨울 방학에 무엇을 하며 놀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즐거운 마음뿐이었다. 도시의 친구들은 겨울에 도시의 한쪽에 있는 썰매장, 스케이트장, 놀이공원 등을 가지만 우리 동네의 친구들은 조금이 아니라, 전혀 다르게 놀 수밖에 없다. 동네에 다니는 버스가 있다. 그것도 몇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는 버스이다. 그러나 눈이 많이 왔다하면, 어디를 놀러 갈려고 할 땐 버스는 금세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미끄러운 것을 눈치 채고는 우리 동네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날은 정말 도시 친구들이 무척 부럽기도 하지만 뒤에 생각해 보면 도시의 이런 추억 보다 우리의 이런 생활이 더 추억에 많이 남는 듯 싶다. 우리들은 어떻게 노냐면, 우선 눈이 오면, 논과 밭을 간다. 논밭에 가는 이유는 먼저 눈썰매를 타기 위해서, 우리를 신나게 끌어줄 비료 포대를 구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에 가서 비료 포대 속에 넣을 지푸라기를 구해 넣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많이 넣으면 소파처럼 변해 버려 잘 나가지 않고, 조금 충격만 보호할 정도로 넣어야 된다. 그렇게 구한 포대를 가지고 저수지 둑으로 가거나 언덕으로 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신나게 타고 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놀이가 있다. 그건 두 편으로 갈라 눈싸움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다른 모든 것이 없어도 이것만 있으면 눈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눈을 상대편에게 정확하게 던지는 것이다. 이 놀이는 눈이 많다고 해서도 이길 수 없는 놀이이다.
우리는 이런 놀이를 하며 즐거운 겨울을 보낸다. 어쩔 때는 도시 친구들이 생각나서 밤잠을 설칠 때도 있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다. 그러나 아침 같지가 않았다. 밖은 어두운 물감을 뿌려 놓았는지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무엇인가 내려올 것 같았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우리 엄마 소리.
“얘, 얼른 씻고 학교 가야지.”
“알았어요. 엄마.”
오늘은 듣지 않을 듯 했지만 기어코 들어야만 했다. 드디어 씻고 밥 먹고 학교 갈 때가 되었다.
“얘, 우산 가져가니? 오늘 눈이 온다고 하더라.”
“그래요? 알았어요. 엄마.”
많은 시간이 흘렀으므로 곧장 우산을 챙겨 들고 학교 가기에 정신이 없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엄마 말대로 학교 오는 길부터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요번 겨울에는 눈 맞아 본 적이 드물어 이번 눈 맞는 것이 계속 맞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학교에 가니 벌써 많은 친구들이 와 있었다. 나는 곧장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한가지 부탁을 했다.
“야, 우리 학교 끝나고 우리 동네 저수지 둑에 눈썰매 타러 가자.”
“가면 재미있어?”
“재미있지. 눈이 이렇게 많이 오니까 더 재미있을 꺼야.”
“그래, 가자.”
이렇게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수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업 뒷전이었고, 오직 수업 끝나고 놀 생각뿐이 없었다. 일 교시 수업에 들어간 후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급식실이 만들어져 있어서 급식 실로 이동을 해서 점심을 먹었다. 그때도 눈은 계속적으로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눈 내리는 밖을 보며 먹는 밥은 정말 평화스러웠다.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끝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들떴고, 수업이 더더욱 뒷전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수학 시간에 배운 이것은 기억한다. 오 빼기 사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후 시간은 오전 시간보다는 더 금세 지나갔다.
드디어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둑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그랬듯이 둑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 땅을 밝기가 힘들 정도였다. 오면서 준비한 비료포대를 각자 하나씩 집어들고, 책가방은 젖지 않게 나무 위에다 정리해서 놓았다. 그리고 이젠 신나게 각각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매년 그랬지만 요번에 타는 썰매는 왠지 저번과는 다르게 더욱더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겨울 언제 어느 때 타도 재미있는 눈썰매다. 각각 타고 논지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지금부터는 썰매를 두 세 개 이어 붙여 타기로 했다. 그렇게 타는 것은 혼자씩 타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더욱더 재미있는 썰매타기 방법이었다. 그렇게 타면 앞과 뒤에 있는 사람이 제일 안 좋지만 가운데 있는 사람은 매우 재미있게 느껴진다. 서로의 협동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협동심도 길러지고, 동질감도 느끼게 된다. 몇 번 썰매를 타고, 우리가 밝지 않은 눈으로 지금부터는 비료포대를 한쪽에 잘 정리를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밟지 않은 눈이 별로 없어서 눈덩이를 두 개씩이나 만들어야 하는 우리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아래 부분을 만들었다. 아랫부분은 위 부분보다 더 커야 했으므로 크기를 생각하며 만들어야 했다. 아랫부분을 드디어 만들고 햇볕에 녹지 않게 몇 사람이 보호를 했다. 다시 힘을 모아 위 부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위 부분은 아랫부분 만들 때 눈을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위 부분 만들 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더 오래 걸리면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인원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 저기서 눈을 구해 오는 사람이 많아서 간신히 지쳐 버리기 전에 만들 수 있었다. 드디어 위 부분도 다 만들게 되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아랫부분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위 부분을 올렸다. 굴릴 때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올리려고 보니 우리가 이렇게 크고 무겁게 만들었었는지 생각하게 했다. 그나저나 간신히 눈덩어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코․입 없는 눈사람은 그저 눈 조형물에 가까웠다. 지금부터 꾸밀 재료를 찾기에 바빠졌다. 눈이 다 녹기 전에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할 재료를 정해서 구했다. 나는 눈에 붙일 단추를 구하는 것이었다. 여럿이 하나 정말 빨리 구해졌다. 재료를 다 한 곳에 두고 눈에 하나 둘씩 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눈과 코와 입을 붙이고 단추를 달았다. 그리고 팔을 마지막으로 달았다. 모두 달고 나서 한발짝 뒤에서 우리가 땀 흘려 만든 눈을 바라보았다. 무척 기뻐졌다.
눈사람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함께 있었다. 한쪽에는 찡그린 얼굴, 한쪽에는 우는 얼굴, 한쪽에는 시기하는 얼굴이 있었지만 제일 큰 얼굴은 눈사람이 웃는 얼굴이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들도 모든 얼굴들을 가지고 있지만 웃는 얼굴보다 더 좋은 얼굴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부턴 하늘에선 해가 붉어지고, 찬바람이 몰려오고 별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우리들은 모두 가방을 매고 집으로 헤어져 돌아갔다.
다음날이 되었다. 다음날도 어제 내리던 눈이 약간씩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햇빛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부터 친구들과는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제는 너무 즐거웠어.”
“맞아. 난 그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
“나는 다음에 또 가고 싶더라.”
친구들은 하나둘 이야기했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니 친구들에게 잘 소개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다시 가보자.”
“응. 그래.”
친구들과 기약 없는 약속을 해버리고, 이야기를 마쳤다.
학교를 마치고, 또 다시 나 혼자 어제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곳에 가 보았다. 가슴이 설레고, 걱정도 되었다. 혹시나 녹지는 않았을까. 혹시나 바람에 쓰러지지나 않았을까. 정말 두근두근 거리였다.
아침엔 눈발이 날렸지만, 점심때부터는 검은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눈사람 생각에 공부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설마 우리가 어떻게 만들었는데, 이 햇빛 따위에 녹겠어.’
이렇게 마음먹고, 얼른 우리가 만들어 놓은 곳으로 갔다. 눈사람은 아직도 있었다. 우리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만들어 놔서 한쪽만 약간 녹아 내렸을 뿐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참 고마웠다.
‘휴, 다행이다. 아직도 있네.’
“눈사람아. 잘 있었니? 나는 지금 학교에서 끝나고 돌아오는 길인데.”
눈사람은 커다란 얼굴을 가지고 웃고 있었다. 눈사람은 나의 친구가 되어 버렸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치 살아있는 친구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갔었던 지라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나와야 했다.
“잘 있어. 눈사람아.”
나는 언젠가는 눈이 다 녹아 없어질 것이지만, 영원토록 마음속에 살아있을 친구와 다시 만날 인사를 나누고 그곳을 나왔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부터 밖에서는 빗자루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일주일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오늘은 그래서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또다시 생각에 빠졌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까. 뭐 하면 좋지?’
그러나 그 생각은 잠깐. 저 쪽 밖에서 불려지는 엄마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얘. 빨리 나와서 눈 좀 쓸어라.”
“알았어요.”
나는 다른 말도 못하고 끌려나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제 이런 뉴스를 보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 주위에 고기압이 있어서 한반도는 저기압의 길목에 놓여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눈이 30년만에 많이 내리는 폭설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신나기만 했다.
‘오늘도 신나게 놀겠구나.’
그러나 우리와는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어른들은 어제의 소식을 들었을 땐 언제 눈이 그칠 지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의 행동도 다른 것 같았다. 우리들은 길에 쌓인 눈을 그냥 놔두고, 미끄럼틀이나 타면서 재미있게 놀텐데. 왜 어른들은 힘들게 눈을 치우고, 연탄을 깨트리고, 하는지는 그때 당시에는 몰랐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눈을 그대로 놔두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엄마를 따라 눈을 치우기에 바빴다. 해가 떴다고는 하지만 날씨는 춥고, 손과 발은 무척 시리고, 얼음장같았다. 눈을 치우는 동안 앞집에서도 뒷집에서도 눈을 치우는 것을 보았다. 그때 이웃의 정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집 앞의 눈을 치우고 드디어 기다리던 집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집안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얼었던 손과 발은 간지러워 졌고, 더 견딜 수 없어서 따뜻한 물에 몸을 씻은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하루는 빨리 지나 갔다. 내일을 기다렸다.


외로이 할매

사람이란 모두 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다. 겪고 싶지 않다고 벗어날 수도 없다.
오늘은 꿈에서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동네 회관에서 놀고 있었는데, 동네 아래쪽에서 흰색 차가 왔다. 맨 처음에는 무슨 차인 줄 몰랐었다. 그 차에서는 의사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우리 동네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야 무엇인가를 들고서는 내려오는 것이었다. 빨리 일어났다. 꿈속에서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일어난 후에야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꿈을 꾼 일들이 일어날 줄 몰랐기 때문에 설마, 우리 동네에 오늘 일이 일어나겠냐는 듯 놀기에 바빴다. 엄마가 심부름을 하나 시켰다. 평소엔 가지 안았던 심부름을 오늘은 엄마와 끈질기게 싸운 끝에 결국 내가 가게 되었다. 걸어서 동네 구멍가게에 가는 길에는 회관을 들리게 된다. 오늘따라 회관에 있는 사람들은 못 보던 사람들과, 못 보던 차들도 많았다. 나는 얼른 구멍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고,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회관에 사람들 되게 많다.”
“왜. 뭔 일 있데?”
“난 모르지. 엄만 알아?”
“엄마도 모르겠는데.”
궁금증은 쌓여 갔고, 일이 일어 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홉시 반쯤 되는 듯 했다. 회관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위로 올라가는 듯 했다. 나는 그저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났겠구나 하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올라갔던 사람들이 내려오지 않으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위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행동으로 사람들을 따라 올라가게 되었다.
우리 동네는 맨 아래쪽에 있는 회관에서 윗집을 보면 모두다 보인다. 우리 집은 동네의 중간에 있는 집이다. 맨 윗집은 늙으신 할머니가 사시는 집이다. 매일 나무를 베어다가 온돌을 피우시며 사시고, 초가 지붕에 흙으로 만든 벽인 집에서 사신다. 앞과 옆에 있는 밭에서 채소를 기르시며 생활하신다. 할머니께서는 우리를 만나면, 매일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고, 이리 따라오라고 하셔서 맛있는 과자를 주셨던 고마운 할머니이셨다.
잠시 뒤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모두다 울음을 쏟아 내면서, 그리고는 무언가 화려하게 꾸민 가마와 앞에 할머니 사진을 들고 오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무서워졌다. 집으로 곧장 달려들어갔다.
“엄마. 동네 위 쪽에서 이상한 걸 가지고 온다.”
“뭔데?”
“사람들은…….”
“아. 그럼 혹시 할머니가 돌아가셨나 보다.”
“근데. 사람들이 왜 울어?”
“사람이 죽었으니까 울지. 넌 네가 기르던 강아지가 죽으면 안 우니?”
“그땐 울지. 하지만 할머니를 기른 건 아니잖아.”
“그래도, 가족들이고, 다시는 못 보니까 그러는 거야.”
그때서야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듯 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자기 자신은 울고 있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웃고 있고, 죽을 때는 자기 자신은 웃지만, 주위 사람들은 울고 있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할머니는 혼자 외로이 사시면서,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웃고 사신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한번 할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다음날에도 사람들은 아직도 할머니의 집에서 떠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직도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햇빛을 가리기 위해 쳐 놓은 천막도 걷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다음 날이 되서야 사람들은 하나 둘씩 돌아가는 듯 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는 아주 멍한 얼굴들로. 그리고 오후쯤에서야 사람들이 다 돌아간 듯 했다. 나는 그 할머니의 집을 조심스레 가보기로 했다. 아주 무서웠지만. 할머니의 우리들을 사랑하신 마음에 가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할머니의 집은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는 편이었다. 주위에는 빨간 꽃들이 피어 있고, 텃밭에서는 잎사귀가 생생한 채소들이 무럭무럭 크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로 솟아있는 굴뚝에서는 회색 빛의 연기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할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 했다.
하늘에서는 꽃 비단 하늘이 펼쳐져 있는 듯했다.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할머니께서는 내 몸 깊숙이 어디에선가 살아 계실 것이다.


친구의 싸움

어느새 초등학교의 시절 반정도가 흘러가 버렸다. 그동안 어영부영 한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지금은 한여름이다. 어느덧 무더운 여름의 몸을 녹여주는 시원한 여름 방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점 날씨는 무더워져 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우리들의 불쾌지수는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어제 뉴스에 불쾌지수가 최고인 85%까지 올라간다는 걸 들은 것 같은데, 잘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늘에는 강렬히 자기를 내 뽐내는 태양이 오늘도 둥근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이러다 늦을 것 같다. 지지직- 거리는 텔레비전을 두드리며 보고 있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깜박 잊고 있었다.
이제부터 학교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나와 동생은 학교에 늦지 않기 위해 빨리 달려가기에 바빴다. 땀은 송골송골 얼굴 곳곳에 맺혔다.
학교에 오기 전 이런 뉴스를 보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남한의 장관과 북한의 장관이 한 자리에 모여 정상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회의를 하고서 장관은 모두 일어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서로의 적인데도 저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생각을 하는 동안 학교에 다 올 수 있었다. 내가 늦어서 그런지 교실 안에는 모든 친구들이 와 있었다. 반팔에 반바지에 모두 최대한 짧고, 시원하게 입고 온 것 같았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았다. 무슨 사건이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사건의 원인은 이러했다. 미술 시간에 풀을 빌려주었는데, 그 풀을 다 써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걸 들었을 때 너무나 황당했다. 무슨 그 일로 싸우는 가 했다. 그저 바라다보기만 했다. 남자와 여자와 싸우는 일이라서 남자가 이기기 바랬지만. 1교시가 시작되었다. 서로의 눈총싸움에 우리들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1교시를 아슬아슬하게 보내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풀 주인인 여자아이는 남자아이한테 따지러 가는 듯 했다. 우리는 싸움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았다. 두 주먹 불끈 지고 싸울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앞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그러고서는 곧장 어떻게 할지 얘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남자 쪽과 여자 쪽으로 생각이 달랐다. 여자 쪽은 남자애가 다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우리 남자는 주인인 여자애가 그냥 넘어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말싸움은 계속 되었다. 말을 잘하는 여자아이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남자아이는 아무 말고 못하고 그저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풀 주인하고 빌려쓴 남자아이가 서로 반반씩 부담해서 풀을 사고, 그 풀을 여자아이한테 주는 것이 좋은 듯 한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2교시가 시작되었다. 2교시가 시작이 되었을땐 교실 분위기가 더욱더 어수선해졌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하시다 말고, 우리에게 한가지 물어보았다.
“너희들 무슨 일 있니?”
선생님의 이 질문에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우리들이 싸운다는 걸 아시면 가만 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별 일 없어요.”
“그래? 하지만 너희들 눈들이 평소와는 달라 보여서 그래.”
“그래요? 수업에 너무 집중을 해서 그런가 봐요.”
그렇게 넘긴 우리들은 무사히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3교시, 4교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지켜보는 우리들은 점점 싸움의 끝을 기다렸고, 점점 지쳐 갔다.
“야! 빨리 싸움을 끝내. 선생님이 아시면 어떡할 꺼야.”
“알라면 아시라지. 내가 잘못했나? 빌려쓴 예가 잘못했지.”
“야. 풀 주인인 네가 하나 다시 사던가, 아니면 빌려쓴 네가 하나 사줘!”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분주했다.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울렸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모두들 더 이상 관심을 가져다 줄 우리들이 아니었다. 회담이 계속 되던 중에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집중이 되었다. 그건 남자아이가 꺼낸 말이었다.
“야. 우리 반반씩 내서 풀을 사자.”
“왜?”
“그건 서로 쓴 양이 있으니까. 내가 전부 살 순 없어.”
“그래?”
잠시 동안 생각을 하던 여자애가 말을 했다.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럼 누가 그 풀을 갖지?”
“그건 원래 주인이었던 네가 갖는 게 좋겠다.”
“그래. 그렇게 하자.”
‘처음부터 이렇게 끝났으면 좋았잖아.’
우리 모두는 싸움이 끝난 것을 기뻐했다.
5교시가 시작이 되고,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하시러 들어오셨다. 5교시는 사회수업이었다.
“오늘 아침 뉴스 본 사람?”
“저요, 저요.”
나도 함께 손을 번쩍 들었다.
“많이 봤구나? 오늘 정상회담 하는 거 나왔었지?”
“네. 그래요.”
“그거보고 서로 싸우지 않는 걸 보니 기분이 좋더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들은 서로 바라다보며 하얀 미소를 지었다.
6교시가 끝나고, 지긋지긋한 학교도 끝이 났다. 그 뜨거운 햇살은 오후에도 내리 쬐고 있었다.


고슴도치 나무

뜨거운 태양의 계절 여름은 가고 가을은 빨리 찾아 왔다. 여기 저기 산에는 단풍이 지기 시작했고, 낙엽도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요번엔 추석이 늦게 찾아 왔다. 그래서 다음주면 추석이다. 모두들 놀 생각에 기뻐하고 있었다.
일요일인 오늘 내가 고슴도치 나무라고 부르는 밤을 친구들과 함께 따러 가기고 했다. 친구들은 서로 준비하기로 한 도구들을 들고 하나둘 약속 시간에 모였다.
저번 2학년 때 붉은 열매라고 했던 포도를 따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무가 우리 것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우리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될지 하늘에 맡겨야겠지만, 조금만 따고 올 것이니 좋은 쪽으로 되었으면 좋겠다.
밤송이 나무는 우리 집에서 가깝다. 뒤로 나있는 고개만 넘어가면 아주 큰 가을 하늘을 모두 덮을만한 나무가 우뚝 자라 있다. 그 나무는 나뭇가지가 땅으로 내려져 있는 것도 많아서 따기도 어렵지 않고, 비가 내려도 하도 높아 나무 아래 서 있으면 비도 맞지 않고 제격이다. 뿌리는 얼마나 굵은지 어른 열 사람이 팔을 붙잡고 감아도 감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 나무는 우리 마을 전설에 의하면, 우리 동네를 지켜주는 할아버지라고 한다. 옛날 밤송이 앞에 초가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손자와 할아버지만 사는 아주 가난한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와 손자는 모두 나무를 캐서 나무도 때고, 팔아 남는 돈으로 먹고 살았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장에서 밤나무 한 그루를 사오게 되었다. 그 밤나무를 매일 정성껏 물도 주고 가지도 정리해 주고 튼튼하게 길러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내리는 날 할아버지가 장에 다녀오시게 되셨다. 그런데 무슨 날벼락일까. 그날 밤 사건은 일어나고 말았다. 평소 몸이 좋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추워진 날씨 탓에 그만 혈관에 이상이 생겨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얘야. 우리가 심었던 밤나무가 널 지켜 줄 것이다.’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밤나무가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어느덧 밤나무 앞에 다 왔다. 나무가 보통 나무가 아닌지라 우리는 먼저 인사를 했다. 이 밤송이를 따가도 되겠느냐고.
밤나무의 밤송이는 아주 잘 익은 갈색 빛을 띠고 있었다. 어느 것은 입을 벌리고 있는 것도 있었고, 어느 것은 아직 벌어져 있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내가 밤송이를 고슴도치 나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밤송이에 있는 가시가 꼭 고슴도치처럼 생긴 이유에 있다. 고슴도치가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밤송이가 생각이 나고 밤송이를 보고 있으면 고슴도치가 생각이 난다.
여기 저기 사방을 가리지 않고 밤송이를 땄다.
“야! 내가 제일 많이 땄다.”
“조심해. 밤 떨어진다.”
“아! 나 맞았다.”
“하하하.”
우리 모두는 실컷 웃으면서 기쁘게 밤을 따며 시간을 보냈다.
“너무 많이 딴 것 아니야?”
“그런가?”
“괜찮아. 많이 따서 많이 먹자.”
우리 모두는 걱정 없이 더 따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늦게 가면 안될 것 같았다. 그리고 비가 올 듯 해 보였다.
“야. 그만 따고 가자?”
“왜.”
“하늘을 봐봐, 안 좋아.”
“그래. 정리하자.”
“역시 내가 제일 많아 땄어.”
우리는 빨리 달려 왔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따 가지고 온 밤을 까기 시작했다. 잘 까지는 것도 있었고, 잘 까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천하무적 군단이라 우리가 건드리면 되지 않을 건 없었다. 그래서 끝내 밤은 까지고 말았다. 한 명을 까고, 한 명은 씻고, 한 명은 정리하고 삼박자가 척척 맞아 돌아갔다.
밤을 다 까고, 드디어 기다리던 데로 시식에 들어갔다. 우리가 따온 밤을 아주 꿀밤이었다. 그 어느 것보다 맛있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좀 더 놀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서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와야 했다.
벌써 4학년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5학년이 되고 나면 어떤 일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전학 간 아이, 전학 온 아이

봄방학이 끝났다. 나도 어느새 5학년이 되어 버렸다. 내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의 순리대로 그저 따라갔을 뿐이었다. 오늘 학교는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선생님들도 우리들도 모두 하나 같이 어디론가 움직였다. 우리들이 교무실을 지나칠 때였다. 교무실 안에는 생전 모르던 아이가 와 있었다. 우리학교 전교생들은 어느 학년인지 매우 궁금한 눈초리였다. 교무실을 지켜보던 중에 우리들은 담임 선생님께 들켜 그만 혼이 나고 말았다.
“너네 선생님이 갈 때까지 교실 가서 앉아 있어라.”
“네. 선생님.”
교실에 올라온 후엔 교무실에서 본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자야? 여자야?”
“남자야.”
순간 반에 남자가 귀했던 지라 남자아이라는 말에 우리 반에 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키는 어때?”
“키는 한 우리랑 비슷비슷해.”
“혼자야?”
“어. 혼자인 것 같아.”
“얼굴은 어떻게 생겼어.”
“얼굴? 어떻게 생겼더라? 뒷모습만 봐서 잘 모르겠어. 궁금하면 있다 봐.”
이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선생님께서 올라 오셨다.
“얘들아. 남는 자리 있니?”
“아니요.”
“그럼, 저쪽 창고에 가서 책상하고 의자 좀 가져 와라.”
“네? 왜요?”
“먼저 가지고 와봐. 선생님이 좀 의자에 앉아 보자.”
“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야 했다. 감히 말을 안 들었다가는 태권도 3단에 합기도 2단인 선생님께 혼이 나기 때문이다.
“혹시 전학 온 애 우리 반에 오는 것 아니야?”
“그렇지 않고선 아무 일도 없는데 의자와 책상을 가지고 오라고 하겠어?”
“선생님 앉는 다잖아.”
“야. 선생님 책상 놔두고 왜 우리가 앉는 자리에 앉냐?”
“흥… 뭔 일 일까?”
“난 잘 모르겠다. 빨리 의자와 책상이나 가지고 가자.”
나는 그 애가 우리 반이었으면 좋겠지만 아직 모르는 일이라 그만 신경 쓰기로 했다. 운동장을 가로질 드디어 교실에 가져갔다. 그 순간 나는 당황했다. 우리 반에 모르는 애가 와 있는 것을 본 후에. 그 아이는 교무실에서 본 아이였다.
“야? 너 누구냐?”
“나. 새로 전학 왔는데.”
“거기 내 자리야.”
내 바람대로 그 아인 우리 반에 전학을 왔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 봤었는데, 아주 멀리서 온 것 같았다.
“얘들아. 얘가 전학 온 애야. 다 봤니?”
“네.”
“새로 온 아이가 있으니까, 번호를 다시 정해야겠는걸? 다 앞으로 나와라.”
우리 학교는 생일 순서대로 번호를 맞췄다. 나는 학교를 빨리 들어갔으므로 매번 뒤쪽에 내 번호는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인 생일이 무척 빨랐다. 반에서 가장 빠른 것 같았다. 키도 제일 컸다.
“그래. 이젠 번호를 다 정했다. 너가 제일 빠르다. 전학 온 네가 1번이고, 다들 한 칸씩 뒤로 물리면 될 것 같다. 선생님은 잠사 교무실에 내려갔다 올 테니 싸우지 말고 있어라.”
“네.”
“야? 너 생일이 몇 일이니?”
“나! 1월 달에 있는데.”
“그래! 되게 빠르네.”
“너, 운동 좋아하니?”
“어. 축구 잘해.”
반 남자아이들은 내가 처음 왔을 때처럼 질문을 빠지지 않고 하나씩은 던졌다. 그럴수록 지쳐 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우리들과 더욱더 친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 올라 오셨다.
“내 소개를 안 했구나. 선생님은 매우 부드럽지만 버릇없을 땐 매우 무서운 선생님이다. 그러니까 까불려고 하는 생각은 하지 마라. 이름은 나중에 알려 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 이름은 남자이면서도 이름이 여자 같아 밝히기를 꺼려하신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이제까지 방학 과제물을 제대로 한 적은 없었다. 꼭 필요한 몇 가지와 안 해 가면 맞는 것만 해 갈 뿐이었다. 봄방학이 끝나고 왔지만, 방학 시작할 때 내준 숙제가 있었다고 그 전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나 보다.
결국엔 피해갈 수 없는 시간이 와버렸다. 내 차례 검사였다. 그저 손엔 일기장 몇 장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께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 첫 날이라서 넘어갈 줄 알았는데,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옆에 서 있었다. 친구들이 해 오는 걸 보라는 것이었다. 그건 즐겨운 벌이면서 제일 힘든 벌이었다.
드디어 친구들의 방학 숙제를 하고 나니 4교시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내 얼굴은 쓰러질 듯 한 얼굴이었지만, 친구들은 언제 지나갔는냐는 듯 활짝 웃고 있었다.
“자. 이제 끝내자.”
“차렷. 경례.”
“안녕히 계세요.”
우리는 모두 인사를 하고 학교에서의 개학 첫 날을 보냈다.
다음 날이 되었다. 학교에 갔을 땐 모두들 새로운 친국한테 있었다. 그 친구는 새로 본 친구들이 낯설지도 않은 듯 노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무언가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은 다른 친구 하나가 전학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유치원도 같이 다녔고, 초등학교 5년 동안 매일 같이 놀던 친구였다. 그러던 친구가 전학을 간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에게 왜 나에게 전부터 말하지 않았냐고 말해보았더니, 오랜 시간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나는 그때 선물도 하나 준비해 두지 않은 상태였다. 선생님게 말씀드려 집에 갔다 올까 싶었지만, 그럴 시간 없을 것 같아 그저 바라보기로 했다.
‘무얼 줄까? 무엇을 주어야 오랫동안 잊지 않을까? 고민된다. 고민돼. 공책을 줄까? 아니면 볼펜? 으앙. 모르겠다. 그래. 결정했다. 샤프를 주자.’
무척 검소하고, 그것도 내가 쓰던 것을 선물로 주자니 안 주는 것이 더 낳을 듯 싶었지만, 그래도 보면서 잊지는 않을 듯 싶어 샤프라도 주기로 결정을 했다.
“자. 여기 받어. 갑자기 알아서, 줄 건 없는데, 이거 내가 쓰던 샤프거든. 오래동안 잘 써.”
“알았어. 고마워.”
“근데, 어디로 전학을 가?”
“나. 청주로 전학을 가.”
“응… 그래? 그럼 많이 못 보겠네.”
“그럴꺼야. 그래도 많이 놀러와.”
“알았어.”
이렇게 간단히 꼭 알아야 하는 것들만 물어 본 체 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몇 분 후, 전학 가는 애의 부모님께서 선생님과 같이 올라 오셨다.
“인사해봐.”
“안녕하세요.”
“응. 그래. 어제는 전학을 왔다. 그러나 오늘은 안타깝게 다 알고 있겠지만, 한 친구가 전학을 간다.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 앞으로 나와.”
“그 동안 고마웠어. 전학 가서도 많이 연락할게. 잘 있어.”
“응. 알았어. 잘 가.”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고, 그와 부모님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교실 문을 빠져나갔다. 어쩐지 무거운 쇠붙이를 매달고 가는 듯한 발걸음을 하면서.
“우리 모두는 잊지 못 하겠지?”
“응. 그럴꺼야.”


포도나무 찾으러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 여름이 되었다. 며칠 내내 비가 쏟아지는 날이 많아지고, 여기 저기에선 풀들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밭에선 여름 작물을 따는 아저씨들께서 분주히 움직이시고 계셨다. 오늘은 한적한 일요일이다. 놀 시간도 많고, 잠 잘 시간도 많고, 먹을 시간도 많다. 그리고 산더미같이 밀린 숙제할 시간도 많다. 그러나 내가 숙제할 사람인가. 몸에는 표시가 나지 않아 다행이지만, 성한 데가 어딘지 손꼽을 만하다. 어제는 교실 바닥에 눈을 붙이고 있는 벌을 받았고, 그 전날에는 운동장에 나가서 풀을 없애는 벌을 받았다.
오후엔 무엇을 할까 빈둥빈둥 거실 바닥을 뒹굴고 닦고 있다가 2학년 때 가 보았던 포도밭이 생각이 나서 그곳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아, 그 포도 맛있었는데, 그리고 친구들하고 논 것도 재미있었는데. 직접 빨리 가보기로 하자.’
홀로 길을 떠나니 여럿이 갈 때랑 느낌이 달랐다. 여러 가지 상상도 되고,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약 몇 십분 걸었더니 그 포도밭에 도착을 했다. 매번 학교에 갔다 오면서 먼발치에서 봤었지, 이곳까지 오기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오늘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무들은 키도 더 자랐고, 나무 그루도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달려있는 포도 열매들도 더욱더 많이 열려 있는 듯 보였다. 포도 열매를 하나 따먹어 보았다. 무농약으로 짓기 때문에 물에 씻어 먹지 않아도 된다. 시면서도 단맛이 정말 맛있었다.
밭을 더욱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곳은 벌써 포도를 몇 상자 딴 모양인지, 포도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가니 그때 놀던 친구들의 움직임들이 살아나는 듯 보였다.
한 바퀴 돌아 본 다음 포도를 아주 조금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서 집에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엄마가 그건 나쁜 행동이라며 그날 저녁 매우 혼이 났다.
오늘 보았던 나무를 생각하며 생각을 해 본다. 나무드른 못 본지 몇 년 동안 자기의 힘으로 많이 변했다. 가지고 뻗고, 열매도 맺고. 하지만 나는 어떤 모양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저 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뛰어 놀기 좋아하고, 철부지 없이 놀기만 좋아하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이르면 이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무들처럼 빨리 자라서 철이 들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지막 시작의 만남

나의 마음속에선 지금 눈물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선 활짝 방긋, 어느 누구보다 기쁘게 웃고 있다. 이곳은 졸업식장을 들어가기 직전 대기장소에 모여있는 중이다. 지금 밖에선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그 눈은 내 속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그럴때면 그런 소나무가 부럽다. 떠나기 싫어도 떠나야 하는 우리들 보단 나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꽃 한 송이씩을 나누어 주셨다. 그동안 배우느라 수고했다고. 이것으로 선생님과의 대면은 마지막이었다. 한족에선 즐거운 이야기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하고 있었다.
“너네 너무 즐거워 보인다.”
선생님게서 듣고 계시다 말씀하셨다.
“입학식이예요.”
“뭐? 하하.”
그저 웃음으로 넘겨 버리셨다. 하기는 그것이 나을 듯 했다. 마지막을 슬프게 가는 것보다 기쁘게 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지금 졸업식장안은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소리로는 매우 분주한 것 같았다. 여러 각지에서 오신 손님들과, 우리들의 부모님들 그리고 마지막을 축복하러 온 후배들, 많은 사람들이 있는 듯 했다.
드디어 몇 분 후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을 환영하는 박수를 받으며 입장을 했다. 그 박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자리는 이곳이 아니었다. 뒤쪽에서 선배들을 바라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앉으니 기분이 남달랐다. 첫 번째로 애국가 제창이 있었고, 그 다음 개근상과 각종 공로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장학금 수여가 있었다. 나는 6년동안 학교를 빠지지 않았으므로 6년 개근상을 받을 수가 있었다. 장학금은 졸업생이 20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다 10만원씩 받을 수 있었다. 사실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장학금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었다. 상을 2개나 받아서 사전을 두 개씩이나 받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순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졸업식 노래를 불렀다. 1절부터 3절까지 모두다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이젠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밖에는 눈이 그쳐 있었다.
식장을 빠져 나왔다. 헤어지는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선생님과 기념촬영을 했다.
“잘 가.”
어디선가 문득 찾아와서 나의 단짝 여자친구가 말했다. 그땐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시 잠깐 할 말을 잊었었다.
“응. 그래. 너도 잘 가.”
집에 와서도 졸업식장면은 머릿속에 맴돌았다. 졸업식을 하니 공부 끝 놀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급학교에 올라가려고 하니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졸업식 후 몇 일 동안 초등학교의 생활을 정리를 하면서, 할 일 없이 그저 집안에서 굴러다녔다. 그리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땐 아파트에 살고 싶었기 때문에 정말로 이사가는 것이 좋았다. 매일 아파트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시내의 여러 상점들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맥없이 흘러가 버렸다.


영원한 주인

아파트로 이사를 간 후,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골에서의 이웃간의 정과 친구들과 뛰어 놀던 추억이 더 좋다는 것을.
몇 일 전부터 부모님께 말했다.
“엄마, 다시 시골로 가면 안될까?”
“어떻게 그러니? 이사 온 지도 몇 일 안 되었는데.”
“그래도 가고 싶어.”
몇 번을 말해도 헛수고였다. 그저 말 못하고 학교를 갈 때까지 집에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몇 주일이 흘렀다. 나는 결심했다. 그곳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을. 사실 시골엔 우리 할머니께서 사신다. 그곳에서 학교를 다녀도 될 것 같았다. 일주일 동안 이사를 위해 계획을 세웠다. 말은 토요일날 하고, 짐은 틈틈이 갔다 놓는 것으로. 그러나 일요일이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제일 큰 어려움은 부모님을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너 거기로 가면 학교는 어떻게 다니려고 그러니?”
“괜찮아요. 다닐 수 있어요.”
“그곳으로 가면, 여기서 다니는 것보다 더 힘들텐데.”
“그것쯤은 이겨 낼 수 있어요.”
“그럼 맘대로 해 봐라.”
반은 설득한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고민이 되었다.
‘갈까? 말까? 그냥 왔다갔다 놀러 다닐까? 모르겠다. 어떻게 하지?’
오랜 시간동안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결심을 한 만큼 부딪쳐 보자고 생각했다.
드디어 일주일의 끝 일요일이 되었다. 먼저 시골의 할머니 집에 간다고 연락을 했다.
“할머니. 저 집인데요. 오늘 버스 타고 갈게요.”
“오늘? 그래. 알았다. 조심해서 오거라.”
“네. 그럼 있다 뵈요.”
할머니 집이자 나의 고향인 시골은 처음에 말했었지만, 울퉁불퉁한 길을 버스를 타고 한참동안이나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동안 언제나 맞기 싫은 소똥냄새를 맡았고, 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달려온 끝에 마을 회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다. 회관에는 연락을 하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와 있었다. 정말 기쁜 순간이었다. 그리고 집이 떨어져 있어서 못 보았던 친구들이 너무 반가웠다. 먼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그래. 오느라 수고했다.”
그 다음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했다.
“안녕. 나 다시 왔어.”
“그래. 잘 왔어.”
“오느라 죽는 줄 알았다.”
“시내에서 이곳은 참 먼 곳이지.”
“하하….”
“할머니. 저 친구들하고 놀고 올게요.”
“응. 그래라. 저녁 먹을 때 들어와라.”
“네. 알았어요.”
“우리 산에 가볼까? 거기 가면 마을이 다 보이잖아.”
“응. 그래.”
회관에서 별로 떨어져 있지 않아 금방 도착할 수가 있었다.
“와… 마을은 별로 변하지 않았구나.”
“응. 그대로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때론 변하는 것도 좋지만, 마을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도 있지.”
“맞아.”
“저긴 너네 집이지? 그리고 저쪽은 우리 할머니네 집.”
“응. 그래. 맞아.”
“우리 산 좀 둘러보자.”
산을 둘러본 다음 나와 곁에 있던 친구들이 다녔던 학교에 가기로 했다. 학교는 조금 멀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15분 거리인데, 그곳을 걸어 간 것이었다. 날씨는 어두컴컴해 지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땐 아무도 없었다. 학교의 학생수가 적어서 폐교가 되기 전이었다. 슬픈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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