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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3회 푸른작가 청소년 문학상, 고등부 운문당선작
이름 사무처 이메일


                                        제3회 푸른작가 청소년 문학상

- 고등부
<운문>


최우수상
정새힘작은 유산 외 4편


우수상
최성희옥탑방 외 2편
최성아종이꽃 외 4편


가작
강민경청소부 외 2편
문진영거리 외 4편




<고등부 운문 최우수상>
정새힘작은 유산 외 4편
사우고등학교 2학년



작은 유산


내 인생의 반은
거칠어진 손과 짐이 가득한 등으로
열 아홉 해를 업어 키우신 부모님의 것,
그 반의 반은
위로 한 마디, 작은 정성 하나로
내 손발을 이끌어온 수많은 이들의 것,
그 반의 반의 반은
나를 덮은 하늘과 내가 밟은 땅과 내가 삼킨 생명들의 것,
그 반의 반의 반의 반은
내 이름을 지어준 나 이전의 시간과
내 이름을 불러줄 나 이후의 시간을 위한 것,

그리고 그 남은 반의 반의 반의 반이 그제야 나의 것.

그것은,

때론 넓은 방 안을 환하게 밝히는 작은 촛불과 같은 것
그러나 때론 완벽한 조상을 한낱 돌덩이로 추락시키는 작은 흠집과도 같은 것

보일 듯 말 듯, 꺼질 듯 말 듯

인생을 다 가진 양 멋대로 휘저으려는 돌출과
인생을 다 잃은 양 쓸쓸히 돌아서려는 한숨이 밑바닥에 고인 작은 물잔

잃지도, 빼앗지도 않고자

이름도 없는 조그만 종자를 싹 틔우려 흙을 파헤치는 용기와
깨어날 줄 모르는 씨앗에게 수십 연도 물을 주는 인내로

치기 어린 생의 집념을 겸허히 다독이는 손길



늦가을 교정에서


인자한 나무 밑에 서서
열매 한 알 부탁하기도 미안한
소년이 되고 싶었습니다

메마른 겨울이 오기 전에
몇 방울 빗물로나마 땅을 적셔주려고,
구겨진 아스팔트 길 움푹 패인 골 위로
때늦은 낙엽과 함께 흩뿌려지는 것

속 좁은 시험지에도
그런 늦가을이 찾아드는 게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기뻤습니다

서투른 글 몇 자로
욕심 많은 시험지를 채워가는 펜대는
마지막 열매를 떨구어 주는
늦가을 가지처럼,
비를 몰고 오는 갈바람을 그리워합니다

다 시든 열매까지 털어내고서
비운 가지 속으로 고여진 눈이
벌써부터 오종종한 한길을

잠잠한 나무 밑에 서서
열매 한 알 물어보기도 미안한
소년과 함께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심장


이런 것 딱 하나만 더 있었으면,

싱싱하게 팔팔 뛰는 게 아니라도 좋고
천방지축 못돼 먹은 것이라도 좋고
그저 그렇게 생긴 거라도 딱 하나만 더 있었으면,

이것저것이 꽉 들어차서 답답할 땐
잠시 꺼내서 빈 것으로 갈아넣을 수도 있을 텐데.
공허하고 갈피를 못 잡을 땐
잠시 또 꺼내서 전지처럼 충전도 할 수 있고.
단단한 벽 속에서 아프다고 움찔거리면
그저 바깥에서 두들기고 문지르기만 하던 걸
잠시 꺼내서 감싸 안아줄 수도 있을 건데.
깊숙이 감춰둔 걸 보고 싶을 때면
남모르게 슬쩍 꺼내보아도 되었을 것을.

이렇게 조그만 것이 하나밖에 없으니

독방에 갇힌 죄수에게 정성껏 밥을 주고
두드리고 울부짖는 문짝을 외면하는
착해빠진 간수처럼
말없이 그 발길질을 가슴으로 받아낼 밖에 없다



거울


잠시 멈춰 서서 거울을 열어 들여다 본다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웃음 지으며 거울을 접어 넣으려는데,

어디선가 조롱 섞인 시선을 주워 담은 귀 한쪽이 나를 잡아 끈다

좁아터진 등짝을 혹덩이처럼 눌러대는 독한 말들보다
조그마한 내 귀가 어쩌면 더 잔인하다

이따금 나는,
뒷모습까지 훤히 비쳐보이는
신기하고 부끄러운 거울을 가졌다



내 마음의 외딴섬


나의 바다엔 섬이 없다.
몸부림 치는 검푸른 파도 밖엔.
저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도 돌아올 곳은 이 해변 뿐.
자그마한 소라 껍데기와 비어버린 고둥이 나를 다시 맞아줄 것을.
닳고 닳아 어느 게 어느 건지 알아볼 수도 없는 작고 하얀 것들이.
그것들이라고 저 거친 파랑에 쓸려 돌아온 내 몸뚱이를 알아볼 건가.
아- 나는 낯익은 땅에서,
기억이 어슴푸레한 이들을 바라보며 지친 눈을 껌벅이고 싶진 않다.
어디든 가야,
어디는 내 손끝이 걸리는 데 걸쳐서 살아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영영한 내 작은 섬에서.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외딴섬,
저 검푸른 물결 속에 파묻힌 작은 섬을 바라보며
저 바닷물을 다 말려야지.
열 길은 햇볕에, 오십 길은 바람결에 말리고, 백 길은 내가 단숨에 마셔야지.
가슴이 턱턱 막혀올 때까지 무서운 갈증을 보태어
저 작은 외딴섬을 내가 떠올려야지.
그예 내 작은 섬이 떠오르고, 나는 건너가야지.
미진한 동경이 잠겨있는 두려움을 걷어내고서
짠 소금기가 배어 시들어가는 모래를 툭툭 털며 일어서야지.




<고등부 운문 우수상>
최성희옥탑방 외 2편

용문종합고등학교 2학년



옥탑방


과자 부스러기 같은 별들이 하늘에 박히면
골목 안 쓰레기통이 네모난 얼굴을 하고서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벽보만 날리는 가로등 빛은 서글프기만 하다

술 취한 사내가 옥탑방으로 올라가자
잠시 껌벅 거리던 형광등 불빛이 환하게 켜진다
눈이 시리다
바깥은 안개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새벽 그늘을 타고 골목을 빠져나간 사내는
남대문 시장에서 지게품을 팔다
계단에 앉아 긴 하품을 한다
옷감에서 나오는 포르말린 냄새에 눈이 아프다
김밥을 파는 여자가 허탕을 치고 돌아간 뒤로
바깥에는 기어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에 젖은 사람들이 계단으로 뛰어들고
둥지 밖에서는 비를 피해 달아나는 취객들이
첫차를 타고 떠났다

옥탑방이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밤 고양이 옥상을 배회하고 있었다
비에 젖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의자


길 가, 누군가 버려놓은 의자 위에는
먼지만 세들어 살고 있다
해가 서쪽으로 등을 돌리면
달맞이 꽃의 쿨럭대는 소리가 비껴가기도 한다

처음 의자를 만들었던 사내는
가끔, 피곤에 지쳤을 때
혼자 앉아 하늘 저편을 올려다 보면서
떠날 채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다리 한쪽이 무너져버린 뒤로
하늘을 기우뚱 바라보고 서 있으면서
낮달이 지는 것을 아쉬워 한다

새들이 둥지 짓느라 아우성칠 저녁
숲이 조용해지면
의자는 절룩거리며 일어나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듯 멍하니 서있다

무꽃이 한창 필 때쯤
떠났던 외삼촌이 돌아와 낡은 집을 수리하고
깊게 잠겨버린 우물을 다시 퍼 올려
마당가에 봉숭아 꽃씨를 뿌린다
처마 밑에는 평상이나 긴 의자를 내어 놓고서
여름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외삼촌은 목발을 짚은 채
낡은 의자 위에 앉아
서울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모닥불에 던져 넣고 있었다



서울로 간 아버지


오뉴월 가뭄에 갈라터진 논바닥에
쇠비름이 자라고
끝내 물이 채워지지 않는 저수지가
연 뿌리를 하얗게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해 장마에는 물바다가 되었지만
올해는 점점 파래지는 하늘에
고추잠자리들만 무성하게 날아다니고
가뭄 끝에 마을 떠난 이들은 고추잠자리가 되어
도시의 회색 하늘을 날고 있으리라

땅만 바라보다가 서울로 떠난 아버지는
여태 소식이 없다
알전구 밑
말라빠진 푸성귀를 담든는 엄니의 손가락 끝엔
풀물이 짙게 배였다
봉숭아도 이젠 지쳐
노란 꽃을 피우다 말고 고개를 떨구었다

날마다 서울로 떠나는 열차를 바라보면서
나도 한번쯤 서울로 떠나버릴까 눈물 짓다가
끝내 주저앉고 만다
들녘은
아직도 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찔레꽃이 해진 옷깃을 여미며
산비탈을 내려오고 있는 저녁 무렵이면
나는 떠난 열차를 생각한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곤한 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옷깃에서는 낡은 주름살이 접히고
새벽,
가로등 불빛에 젖은 초라한 아버지를 본다
마당 뒤편 텃밭에서는
아버지가 심어놓은 해바라기들이
말라가고 있다
엄니의 손에선 아직도 풀물이 지워지지 않았다

언제쯤 비를 묻힌 바람이 불어올까
풀들이 제 풀에 자지러지고
냇물이 말라버려서 이젠 자갈밭이 되었다
뉴스에서 본 서울 하늘은 늘 푸르러
눈물이 난다
도시의 밤은 안녕한가 묻고 싶었다



<고등부 운문 우수상>
최성아종이꽃 외 4편
전주예술고등학교 3학년


종이꽃


밤새 내린 비로 발목까지 흥건하다

겨우내 밭에 머물던 할머니
한 송이 꽃조차 피울 수 없는
지붕 높은 집, 해거름은
반쪽짜리 창문을 가닥가닥 두드린다
지쳐 돌아가 버린 봄 날
전설이라도 붙잡고 싶은 갈증이 인다

손 시린 어둠 속
꽃을 접는다
하루 종일 벗지 않은 내복 소매에
진홍빛 종이꽃물이 올랐다

자식들 꿈을 바지런히 키워왔던
종이꽃에 짓눌려
늙은 오이마냥 굽은 허리엔
적적한 빈 둥지만 남았다

꽃술에 숨 불어넣는 볼이 부풀고
샛노란 하늘이 내려앉는 찰나
할머니의 등줄기가 봉긋 솟는다
수북히 접어놓은 무더기 꽃 속에서
고동빛 마른 손에서 흘러나온
여린 종이꽃의 잎사귀에는
누런 고름만 얼룩덜룩 화사하다

태풍이 이제 막
쩔뚝이며 산을 넘었다는 뉴스속보에
진달래색 개나리색 습자지가
겹겹이 허리 묶어 포개 눕는다
밤새 내린 빗줄기
약한 밭고랑 틈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예순세 송이 종이꽃
목에 두르고 저승길 가련다,
지네발로 가도 아직 한참인 먼 길
당신이 피우고 당신이 태울 마지막 욕심에
비탈진 생의 주름진 텃밭을 건너는
한 잎의 여자,

꽃잎보다 가벼운 생
가뿐가뿐 반음 낮은 숨소리로
할머니 손끝, 닳아진 지문이
색종이 이파리 물관을 트고
철사 위에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갯벌의 꿈



바다가 살을 발라내야
서서히 드러나는 갯벌
하늘을 향해 숨구멍이 열리고
살아 꿈틀대는 것들이 모두
목을 쭉 내 뺀다

해안선 타고 온 겨울기운이
귓볼을 날카롭게 스치고
물결이 바람따라 한 쪽으로 눕듯
깊은 주름이 흐르는 얼굴들
어망을 뒤집던 할배가
옷섶에서 솔담배를 내어 물면

황태보다 몇 번은 더 얼었다 녹은 손
반나절 질척한 갯벌 속을 본다
빨판으로 끝가지 버티던 세발낙지
네 녀석도 집을 지키려던 게지
억척스럽게도 깊은 낙지의 동굴
적막했던 갯벌이 웅웅 울리고
쓴 입에서 담배재가 하얗게 날아간다

할배 허리가 해거름을 찾아 기울고
망태기 하나가 가득 채워지면
뱃고동소리 너머 바다가 오고 있다
뻘에 널려있는 기억이 둥글게 부풀어
어느덧 주름진 할배 얼굴에도
파도의 흔적이 썰물처럼 빠진다



국화꽃 향기를 아세요?


변두리 버스 정류장 옆
아내의 병원비가 부풀수록
빵 찍는 기계는
쉴새 없이 달아올랐다

노동의 철칙인 양 도통 입을 떼지 않는 사내
국화빵과 누런 종이봉투만으로
세상과 수화를 나눈다

일당을 챙겨 넣은 안주머니
고된 노동이 허덕인다
혹여 그 돈이 풀어진 실 자락 틈새로
빠져나갈라, 곧장 병원으로 내달리는 사내

단골 이씨 아저씨가 왔다
만원을 내고 거스름 팔천원을 받는 낯익은 손
되돌아와 계산이 틀렸다며
돌려주는 오천원권 지폐 한 장
서로가 제 것이 아님을 안다
사랑으로 나누는 수화

한 평 남짓한 따스한 공간에서
오천원권 지폐의 종착역은
항상 주인사내의 손이었다

어느덧,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바람
계절 탓이지-
코끝 아린 매연이 국화 향을 밀어낸다

지난 봄, 자취를 감춘 사내
몇일 전, 남자는 아내와
바삭바삭 군침 도는 국화빵 굽기 시작했다
길목을 녹여내는 국화 향기로
병석에 누운 아내를 일으켰다는
사내의 인사말

그윽한 국화 향기, 도시를 녹인다



평화세탁소


느티나무 아래 커다란 볼록거울 속으로
평화세탁소 오토바이가 들어온다
이른 일요일 아침,
경사가 가파른 재건축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늦잠에 뒤척이는 집들을 깨우고 나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는 복도에
활기가 차기 시작한다
세탁소에 남아 있는 아내는
왼쪽 볼에 실밥을 묻힌 채
낡은 양복 바짓단을 다림질하고 있다
좁은 골목에 가로등이 환한 눈을 뜨고
이마엔 단추같은 땀방울이 꿰어진다
갸르릉대는 기계소리에 파묻혀
티비소리가 점점 목소리를 잃어가고
반쯤 부푼 헌 지폐를 세며
스팀다리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에
얼굴이 뜨거워도 내일이 기울어지지 않는다
자꾸 일어나려는 보푸라기를 다림질하면서
납작한 세상을 꿈꾸며
먼지를 훌훌 털어버리려 한다
하얀 김을 쏘이며 옷감을 누빌때마다
옷들이 파닥파닥 은비늘로 펄떡이고 있다






어스름이 고여 있는 바깥 어둠 속에서
나는 차을 들여다보았다
언제부터 닫혀 있었을까
뽀얀 먼지가 수북하게 내려앉아 있을
썩은 밑동이는 늙은 개 이빨처럼 들쑥날쑥하고
오래 된 창문 고리는
손때 묻은 정겨움이 결을 따라 닳아 있다

곶감 한 타래가 여무는 창문 모서리로
노을빛을 안고 달려온 바람이 머물 적
창문에 일렁이는 입김을 따라 문득 눈을 들면
처마 밑 삭은 물도랑은 감나무 밑을 돌고 돈다

할머니는 골방에 앉아 묵묵히 겨울 채비를 하셨다
강물같이 환한 웃음 지으시며
저녁놀보다 더 느리게 웃으시는 할머니

열아홉 개의 창을 가진 나는
옹이가 생긴 하나뿐인 할머니의 창을 두들겨 보지만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이 서로
말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을 안다
모나지 않은 가을 풍경 속에서는
잎이 노랗게 질 때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산사 풍경이 울먹울먹 메아리치고
창 밖 노을이 가지에 내려앉을 때마다
까치는 푸르르 몸을 떨며 날아가고
어둠살이 마구 보채는 산그늘은 아직도
창문 곁을 떠나지 않는다



<고등부 운문 가작>
강민경청소부 외 3편
과천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청소부


찌그러진 깡통과 으깨진 병들이 좁고 가파른 골목마다 제멋대로 뒹굴고 있다 그 가파른 기슭을 쇠똥구리 한 마리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리어카에 산 같이 실린 오물 포대들,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오는 사내의 다리가 자중 휘청거린다 날개 부러져 바람을 만들 수 없는 선풍기처럼 삐걱거리는 수레바퀴가 축 쳐진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고봉밥보다 더 높이 짐을 싣고 골목길을 힘겹게 돌아 나오는, 땀으로 시작되는 그의 새벽은 언제나 바쁘다 자기 몸보다 수십 배나 큰 소똥 경단을 끌고 가는 쇠똥구리처럼 단칸방 문 앞에 올망졸망 내놓은 세간들과 축축이 젖은 비닐봉지들, 그 사연들을 낱낱이 보듬다보면 봄바람 여린 기운에도 쿨럭 쿨럭 잔기침을 앓는다

초롱초롱 빛나는 새벽 별들이 고층 아파트 너머로 희미하게 사라질때가지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말갛게 비질하는 사내, 제 몸보다 더 무거운 경단을 끌고 가는 그의 삶은 쇠똥구리 생애만큼 언제나 거룩하다



오리야 미안하다


삼촌은 반쯤 무너진 울타리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문다
비좁은 우리 바닥에 죽은 오리들이 우왕좌왕 차갑게 엉겨있다
짧은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르다가
축축 늘어진 것들, 뚫어질 듯 바라보는 눈길도 힘이 없다
젖은 부고처럼 하늘에선 납덩이같은 눈이 내리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일꾼들이 비닐장갑 낀 손으로
누런 마대자루마다 축축 늘어진 몸들을 쓸어 담아낸다
한 움큼씩 털이 뽑혔거나 납작하게 엉겨붙은 날개들이
흙탕물과 섞여 있다가 뚝뚝 떨어진다, 산처럼 쌓이는 시체들
갑자기 제 삶을 빼앗긴 목숨들은 저리도 질긴 것일까
마지막 숨이 붙어있는 것들도 그냥 마대자루에 보쌈 당한다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푸른 트럭 위에 함부로 던져진다
재빨리 트럭이 달려간 곳 쿵쿵 포크레인이 땅을 파고 있다
깊이 패인 웅덩이는 매장의 높이를 재고 그 무덤에다
터억 입을 벌린 덤프트럭이 주르르 마대자루를 토해놓는다
내던져지는 몸 위로 눈발이 덮이고 웅성웅성 모여 있던
사람들, 나사 빠진 장난감처럼 털썩 주저앉는다
삼촌은 피워대던 담배를 발바닥으로 비벼 끈다
벌써 몇 갑 째인가 빙빙 하늘이 돌고 현기증이 인다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는 삼촌을 부축하랴 보쌈 당한
오리의 죽음을 매장하랴, 인부들의 손길만 자꾸 바빠진다
퍽퍽 그 아픔을 담아내는 기자들의 플래시 소리만 높아진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풍경에 몸을 떨며 족쇄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끌고 돌아서는 이 겨울의 삼촌,
한없이 무너지는 어깨를 천근 무게의 눈발이 짓누르고 있다


열아홉 부근


독서실을 나선다
좁은 통로를 끌어당겨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1, 2, 3, 4, 5 주홍빛 숫자들이 멈출 때마다
시선은 45°위를 향한다 유리문을 밀치고 아스팔트 위를 밟는다
비가 여우처럼 한 방울 한 방울 얄밉게 떨어진다 눅눅하다
툭, 투욱 힘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알 수 없는,
그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맡긴다
포세이돈 PC방 원조마포소금구이 KFC 간판들
까만 밤하늘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사거리 신호등이 빨간 눈을 들이대며 길을 가로막는다
우회전, 왕자포토 보세집 오씨엘 아이스크림가게를 스치고
지나간다 편의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호빵 하나 사 든다
‘자신의 수능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옥상에서……’
또야, 슬금슬금 빗방울이 몸뚱어리로 스며든다
파르르, 파르르 입술부터 파랗게 떨린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낙엽들 자분자분 밟고 갈 때마다
나뭇잎들이 줄줄이 눈물을 흘린다 사박사박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버스 정거장에 모인 교복들,
빨랫줄에 매달린 듯 축축 늘어져 있다
언제나 어둠 저쪽에서 버스는 같은 길을 향해 달려오고 달려간다
빗속에서 친구를 만난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호빵을 건넨다
그저 조용히 손에 쥐고는 먹지를 않는다
꿈결같은 친구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그러나 세차게 물길을 만드는 차 소리에 금세 파묻힌다
우리는 이제 열아홉이야, 열 아홉!



고향마을에 가서


마른 먼지만 풀풀 날리는 교실에는
아직도 아이들 재잘거림이 곳곳에 남아있다
벚나무와 측백나무가 울타리를 친 교정
물안개에 흠뻑 몸을 적신 아침이
반쯤 허물어진 학교의 담벼락을 기어오르면
그 어두운 그늘에서 먼저 빠져나오려고
왕메밀넝쿨과 과남풀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름 모를 풀들이 푸르게 하늘 밀어 올리는
초여름의 울타리 너머 화단에서는
하루종일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읊는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마을회관까지 마실을 간다
찾아오는 아이 아무도 없는데도
마냥 흔들리며 녹슨 울음을 토해내는 외줄 그네
아직도 잔모래에 찍힌 아이들의 발자국
가만히 귀 기울이면 까르르 까르르 쏟아지는
아이들 웃음소리 들릴 듯 말 듯 화단에 웃자란
쑥대공만 바람 멱살을 잡고 고요를 흔들고 있다
부신 햇살만 놀이터에서 미끄럼을 타고
멀고 가까운 산에서는 여전히 그 뻐꾸기 소리
아직도 이 학교를 떠나지 못해
발 동동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교실과 복도와
텅 빈 운동장에 참새 떼 재잘거림으로 남아 있다
먼지 자욱히 내려앉은 걸상마다
엉덩이 비집고 들어앉은 아이들 옹알거림
민들레홀씨만 바람을 따라 떠도는 교무실 앞
가, 갸, 거, 겨, 고, 교, 구, 규, 그, 기……
세종대왕이 읊어대는 훈민정음 한 페이지가
훌쩍 바람결에 실려 저녁 노을에 불타고 있다




<고등부 운문 가작>
문진영거리 외 4편


거리


모다 닳아
둔해진 보도블럭 위로
재만 남은 바람은
가장 늦된 낙엽과 함께
서걱이는 발걸음을 디뎌

노을 빛에
꾸역꾸역 먹히는
성급한 가로등 불빛에
그림자는 건너편 인도를
꿈처럼 베고

가슴에 치오르는
쏜살같은 덩어리들에게
어둠같은 잠을 덮는다

전화부스
까무륵한 번호를 더듬던 하루살이와
오뎅국물 맛 종이컵에 주둥이를 박던
피부병 걸린 누렁개마저

어느 고요한 잠자리에 누워
별속을 헤집는,
가로등만 은하수처럼
아득히 길을 만들고

그 길 끝으로
터덜대며 걸어오는
농도 15프로의 새벽

설익은 아이처럼 두팔을 벌리고
중앙선 따라 흔들대며 온다
아직 꿈꾸며 온다



항해


함께 파도 맞으며
마라도 가는 배를 탔다
꺄악깍
이불 빨래마냥 흠뻑 젖어선
마음은 물새처럼
파도 사이를 넘나들었다
조각조각 흩어진 소금기 포말 속에
서로 눈 마주치며 웃었었지
청룡열차 같다며
우리 모두 바닷배는 처음 탄다며
뛰어들고 싶은 쪽빛
자꾸 손 내미는 수면위로
초여름 햇살이 파편처럼 떠다닐 때
뱃사람 같다며 웃었었지

그렇게 말린 오징어처럼
질겅질겅 돌아갈때도
콧잔등에 허연 소금을 털어내며
섬 하나 배 한척,
그렇게 고기 잡으며 살고 싶었다

오랜만에 웃입술이 짭짤하다



뿌리


산이며 나무며 풀이며
다들 자기만한 뿌리로
지금 거기 서 있는다 한다

산은 산만한 뿌리
나무는 제만한 뿌리로
부스럭진 흙입자들을 그러모아
대지라 이름붙이고 있다는데

여기 이렇게
두 다리로 든든히 서있는 나는,
나의 뿌리는

그 뻔뻔한 만유인력이며
그 권위주의적인 중력 말고도,
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면 좋을텐데

매일같이 새로운 세포로
한 걸음 뗄 떼마다
흙냄새와 만나는
그런 뿌리
내 발바닥에서도 좀
돋아났으면 좋겠는데

난 그때서야
세상의 일부일 것 같다
그렇게 존재할 것 같다
나만한 뿌리로 지금 여기



법칙Ⅰ


길다란 음영이
자정에 가 닿았다
잠들테지
해가 돌아 반드시 온다는
낯익은 산 너머 동쪽에는
등굽은 노송 한 그루와
솔방울 만한 노인만이
물 대접 한 그릇으로 빌고 있었다
자꾸만 엎드러져 빌다
노인도 노송도 한 줌 흙이 되버린 후에는,
해는 서쪽에서 한번쯤,
아니 두 번쯤 나타날런지도 몰라
해가 돌아, 나는
연보랏빛 새벽
산 너머 동쪽 웃고 있는
태양과 눈마주치다
어색하게 웃다



파리


파리 한 마리가
무슨 제트기만한 속도로
미칠 듯이 윙윙댄다

어쩌면 최초의 정신분열증은
잡지못한,
제트기 속의 파리 한 마리
때문이었는지도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어서
무작정 문제집을 휘두르다가
제 풀에 지쳐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생화학 무기
모기잡는 홈키파로
방안을 난도질했다

시대가 좋아져서
특유의 냄새도 증발해버린 홈키파 공기 속
태연히 앉아 다시 공부하려니까
방바닥 어딘가
전장(戰場)처럼 누워있을 파리 시체가
하염없이 씁쓸해진다

뭘까
여전히 들리는 이 윙윙소리는
자세히 귀 기울이니
내 뇌와 아주 가까운 곳인 것 같다

그래 어쩌면 이 소리는
제트기 속도로 날던 파리 것이 아니라
냉장고처럼
새벽2시까지 혹 아침까지 계속 작동해야만 하는
내 뇌를 발전(發電)하는 소리가 아닐까

언제 발밑에 붙게 될는지
파리 시체가 조심스러워졌다
죄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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