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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3회 푸른작가 청소년 문학상, 고등부 산문당선작[2]
이름 사무처 이메일


                                        <고등부 산문 최우수상>
유선화
사직여자고등학교 2학년


둥지없는 새의 유랑



오늘따라 유난히 더웠다. 아니 어쩌면 뜻하지 않는 헛된 이상을 다시 아등바등 쫓아가는 나의 우스운 꼴에 화가 나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의 흰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벌써 여기를 헤맨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거칠게 덕지덕지 발라 놓은 아스팔트는 데일 듯한 뜨거운 열을 강렬히 뿜어내고 있었다. 또한 마치 땅따먹기라도 하듯이 빽빽이 붙어 있는 상가들은 좁은 거리를 한가운데 두고 양쪽에 쭉 늘어 서있어 숨쉬기조차 답답해 보였다. 게다가 상인들은 거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로 나를 포함해서 북적대는 사람들을 호객하느라 목에 푸른 핏대를 세우며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었다.
대충 빨아서 물이 얼룩덜룩하게 빠진 하늘색 남방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버려 진득진득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싸 쥐고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물 한 모금 들이키지 않고 똑같은 곳을 맴돌았던 까닭에 입술을 바짝 말라있었고, 입 안은 떫은 감을 먹은 듯이 텁텁했다. 또한 까슬까슬하게 자란 짙은 검은색 머리와 유난히 튀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쓴 검은색 모자에 스며드는 땀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심란한 마음을 사정없이 휘갈기는 것이었다.
 ‘제기랄. 도대체 어디에 쳐 박혀 있기에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 거야.’
한시라도 빨리 숙부의 집을 찾아 얼음을 동동 띄운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태어나 쭉 살면서 외출을 삼가던 나로서는 거미줄과 같이 엉켜 있는 구포 시장에서 숙부의 집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인기피증까지 겹쳐 선뜻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지리를 물어 볼 용기 따위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저 사람들이 30분 후에 날 기억이나 하겠어?’
나는 애써 나를 안심시키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려 노력했지만 역시나 결정적인 순간에 대인기피증이 재 발동을 거는 것이었다. 이미 앞으로 나간 오른쪽 발을 다시 되돌리려 할 때, 곱슬머리를 덥수룩하게 빗어 넘긴 후 유행이 훨씬 지난 커다란 진주 구슬핀을 거칠게 찌른 50대 초반 정도 보이는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나의 팔을 세차게 끌어당기며 물었다.
“보소, 총각. 길을 못 찾는 기가.”
오래 전부터 멀리서 떡― 하니 자리 잡은 아담한 상가 안에서 나를 주시하던 한 여자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곳을 땀으로 범벅이가 된 채 빙빙 도는 꼴이 하도 한심해 보였는지 기어이 나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그 여자는 내 어깨 정도쯤 오는 작은 키를 가졌는데도 불과하고 나를 어찌나 세게 끌어당기던지 하마터면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그 여자는 나의 팔을 잡고 끌어당기는 순간 나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훤칠한 키에, 주먹만한 작은 얼굴에, 잡티하나 없는 맑은 흰 피부, 깊게 파여진 눈두덩, 푸른빛이 스며든 눈 그리고 매끈하게 잘빠진 날카로운 나의 코를 신기하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어라, 외국인인 갑네. 보소, 외국총각, 하한구국마알 하할 주울 아나?”
그 여자는 일부러 말을 쭉 늘려서 했다. 그 놈의 외국인, 29년 동안 숱하게 들어왔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나는 까놓고 불쾌감을 보일 배짱이 없었기 때문에 매번 그랬듯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화를 애써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하려 애썼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말끝을 붙잡고 늘어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아닙…니…니다. 저…저는… 하…한국…인…입니…니다…”
나는 낯선 사람을 보면 미리 긴장이 해서 목덜미가 뻣뻣해지고 입에 침이 바삭 마르며 목이 탔다. 또한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는 쉽게 얼굴이 달아오르고, 손이 떨리며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어떤 때엔 몸의 근육이 긴장되어 딱딱하게 굳기도 하고 심하면 안면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혼혈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생겼던 것이다. 매번 고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지는 거 같아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무대공포증도 생겼다. 나는 공공장소 또는 사회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관찰 되거나 모욕정인 증상을 보이게 될까봐 항상 두려워했다. 그랬기에 내가 두려워하는 사회 상황에 노출되면 거의 예외 없이 불안 반응을 일으켰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고 땀이 났다. 이 모든 것 때문에 나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겁내고 두려워하며 피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길을 잃고 똑같은 곳을 한 시간 여 동안 헤매는데도 불과하고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여자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거니 나는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것이었다.
“한국인이라꼬?”
그 여자는 나의 대답에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보이더니 곧 정신을 되찾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고롬… 혼…혈인 이가?”
드디어 등장했다. 내가 29년 동안 살아가면서 받았던 온갖 멸시의 원인이. 그리고 남은 나의 생애 동안 족쇄가 채워질 그 단어가 드디어 등장한 것이었다. 내가 그 여자의 잔인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꺼려하듯 머뭇거리자 그 여자는 대충 눈치를 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길을 못 찾는 기가?”
“예에……”
“어데 찾는데?”
“구…구포… 개 시…장이라고 아…아…십니…까…?”
“개시장이라꼬…?”
여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기억의 조각들을 되새겨 보듯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갑자기 손으로 박수를 크게 치면서 말했다.
“개시장이라카믄 구포시장 맨 구석에 바글바글 모여서 쳐 박혀 있는 것 말하는 기가?”
“…그…그…런 것… 같…네에…요.”
“그 개시장이라카믄 총각이 이 길을 잘못 들어도 한참 잘못 들었데이. 서쪽 끝으로 가야 하는디 요기는 동쪽 끝 아니가. 아따. 어짜믄 좋노. 지금도 힘들어 보이는디…… 여기서도 한 30분은 족히 걸리틴디…… 아따. 어짜믄 좋노. 안쓰러부스…”
나는 그 여자의 말을 듣고 나자 대인기피증으로 남들에게 말 한마디도 못 건 채 한 시간 여 동안 같은 곳을 빙빙 돌면서 숙부네 집을 찾고 있었던 나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애석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쪽은 말라고 가노? 개고기 먹으러 가나?”
“제…에… 수…숙…부가 삽…니…다.”
“니 숙부? 고롬 니 아비가 한국인인가 부제. 어미는 뉘 나란데?”
한국인들이 혼혈인을 만나면 꼭 물어보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는데 이것이 그 중 하나였다. 부모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결혼은 했는지, 군대는 갔다 왔는지부터 외국말은 잘하는지 등 매우 사소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한국 사람들은 매우 궁금하게 여겼다. 나는 그 여자의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떨리는 가슴과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서…서어…쪽 끄트머리…라면… 어…디를 말알…씀 하…하시는 거…거업…니…이까…?”
내가 여자의 설명을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었다. 지극히 은밀한 나의 사생활에 관심 갖는 늙은 여자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다시 한 번 물어 본 것이었다.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여자는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작전이 먹혀든 것이다.
“아따. 이 총각. 보기보다 말길을 못 알아듣네. 한국말도 아직 서툰 것 같은디 내 말은 알아듣기는 하는 기가. 아님 아직도 헤깔리는기가. 총각, 잘 들어 봐래이. 저쪽 반대편으로 쭈욱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된데이. 알겠나? 알아듣겠나? 총각.”
그 여자는 검지로 서쪽을 가리키며 요란스럽게 설명하자 나 또한 애써 그 여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 척 해야만 했다. 나는 그 여자의 요란스런 말의 허리를 뚝 잘라버리고 감사의 표시를 대충 한 다음 잽싸게 그 자리를 피했다. 아직도 거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가 나의 귓가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리고 있는 것 같아 정신이 얼떨떨했다.
여자를 피해 서쪽으로 난 길을 한참 따라오던 나는 손목에 찬 낡은 가죽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4시 35분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덧 뜨거운 햇살도 숨을 죽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좀처럼 사람이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강렬한 햇볕을 피해 지금에서야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더구나 상인의 호객소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거세게 들렸고 손님들 또한 상인과 흥정을 하느라 시장 통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이제는 더 이상 숙부의 집을 찾기보다는 여기를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좀 전에 길을 가르쳐 준 여자의 충고에도 불과하고 한적한 골목으로 빠져들었다. 될 때로 대라는 식이었다.
미로처럼 꼬여있는 골목을 한참 따라 걸어 나오자 나의 예상대로 한적한 곳이 눈앞에 나타났다. 비록 폐업가게들이 시퍼런 천막을 친 채 쭉 늘어서 있어 음침하고 지저분했지만 그 곳은 행인들도 드물었고 무엇보다도 소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어 심란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주는 듯하였다. 하지만 마음 한 쪽에서는 나의 앞길에 대한 막막함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검게 번지고 있었다.

단일 민족의 나라. 한국. 반만년 역사 동안 단일 민족이라는 민족주의 아래서 역사적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이 후에도 한국 사람들끼리 손을 꼭 붙잡은 채 민족이라는 피의 순결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 혼혈인인 내가, 그것도 이태원에서 몸을 팔던 러시아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내가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나 한 사람으로 인해 단일민족의 나라인 한국이 모두 더렵혀졌다는 양 나를 괄시했다.
열성인자임에도 불과하고 나는 얼굴형, 피부색, 눈, 코, 입 그리고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 자체도 러시아인인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그래도 나의 신체 중 한국인인 아버지를 닮은 것이 단 한군데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숱 많은 짙은 색의 검정 머리카락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나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차라리 머리카락 색깔조차도 금발이었거나 갈색이었다면 오히려 이 한국 땅에 정착하며 살아가기가 더욱 쉬웠을지도 모른다. 코쟁이로 말이다.
내가 4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주위의 사람들의 걸레 취급에 못 견디고 그만 집을 나가 버렸다. 그 후 우리 아버지는 포장마차와 막노동을 함께 병행하면서 나를 힘들게 키웠고 나와 아버지는 가난이라는 잔혹한 실험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내 자신이 혼혈인임을 깨닫지 못했다. 비록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을 받기는 했지만 어린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나는 여느 또래와 같이 밝고 활달한 장난꾸러기였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나는 아이들에게 ‘흰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그제야 나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나는 곧바로 아버지에게 달려가 나의 외모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생긴 이유를 물어 보았지만 아버지는 어린 내가 받을 상처를 염려하여 어렸을 때 열병을 심하게 앓아서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내가 혼혈인임을 알게 되자 아버지는 모든 사정을 이야기 해주게 되고 나는 사회에 쏟아지는 비난과 멸시를 받으며 힘들게 살아왔다. 학교에선 ‘흰둥이’로, 사회에선 ‘잡종인’으로 취급받는 한국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게 살아가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었다. 그 때부터 생긴 대인공포증과 무대공포증은 30대가 다 되어 가는데도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공부도 제법 잘해서 꽤 알아주는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지자, 나는 나의 진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가슴 한 구석에서 키어온 꿈 하나가 있었다. 바로 작가였다. 내가 원하는 삶과 사회를 머릿속에서 그려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그 자체가 좋았다. 나의 글에서는 나를 어둡고 더러운 구석으로 몰아내는 사회와 달리 단 한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 더불어 사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하지만 대학입학이라는 진로의 기로에 섰을 때 나는 작가의 길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이때까지 자신을 비난하고 괄시했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과감히 마음에도 전혀 두지 않았던 법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실 작가는 그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혼혈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쌓였던 고통과 분노를 해소해주기는 너무나도 미미한 존재였다. 나는 법대에 입학해서 법학을 공부한 후 검사가 되어 나 같이 소외된 사람들을 도우면서 나의 글에 등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또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애써 위안의 말을 던지며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5년이라는 세월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그 사이 제작 년에는 1․2차 시험에 떡―하니 붙고 3차 시험인 면접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3차 시험에서 대인공포증과 무대 공포증이 실마리가 되어서 법관으로서 제일 중요한 지식 활용능력과 발표능력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되지만 역시나 3차 면접시험에서 또 낙방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나는 대인공포증과 무대공포증을 만든 근본 원인은 혼혈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사회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워 나갔다.
두 차례나 3차 시험에서 연속으로 안타깝게 떨어지자 아버지의 고생에 죄송한 마음에 사법고시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직업을 구하려 했지만 역시나 사회는 혼혈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구나 너무 뚜렷한 외모 덕분에 군대도 면제되어 실력으로는 충분하지만 군복무 가산 점을 획득하지 못해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몇 달 동안 직장을 구하려 다니면서 혼혈인에 대한 세상의 쓴 맛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완전히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밀어 버리고 자그마치 6개월 동안 술에 찌든 채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아버지가 높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8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하기에 이른다.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숙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 볼 수 있었고, 아버지는 숙부에게 나를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나에게 당부하는 말씀도 잊지 않고 전했다. 아버지는 이제 그만 내가 방황의 시간을 끝내고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당당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단다. 그러자 숙부는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숙부는 숙부의 자녀들 중 재민이라는 재수를 하는 아들 한 놈이 있는데 내가 숙부의 집에 살면서 그 놈의 가정교사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사법고시도 함께 준비하면서 말이다. 이번 기회는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생활비도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고 돈도 벌며 게다가 갈 곳 없는 내가 그마나 대접받고 살수 있는, 나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망설여졌다. 오직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뜻하지도 않은 길이 실패하자 그것을 과감히 버렸다가 지금에 와서야 또다시 구차하게 아등바등 쫓아가는 나의 꼴이 비참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방황을 하면서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글을 써 보게 되자 다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 즉 무명작가라도 좋으니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글로 옮기면서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배짱도 용기도 없었다. 나의 배짱은 오래 전에 사람들의 멸시에서 얻은 증오감에 타버려 한 줌의 검은 재로 남아 있었고, 용기 따위도 그동안 받은 가슴 저린 곪은 상처에 다 녹아버렸다. 결국 숙부의 제안이 있은 며칠 후, 나는 나의 진정한 꿈을 모두 등진 채 과감히 사법고시의 길을 다시 선택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나는 애써 괜찮다고 위안을 하면서도 나의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고 폐업가게 거리를 조용히 거닐면서 이런 생각을 끄집어 올려 되새김질을 하다 보니 드디어 개시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하늘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지금이 몇 시나 되었나?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희미하게 새들어 온 빛이 나의 눈을 따끔따끔하게 했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좁은 방 안은 아직 어두침침했지만 밖은 부산한 듯 들렸다. 갑작스럽게 많이 걸었던 탓인지 온 몸이 뻐근했다. 애써 몸을 일으키고 가볍게 기지개를 핀 후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왔다. 숙모는 무언가에 빠져 있는 듯 내가 나온 것도 모르고 마당에서 부추만을 계속 썰고 있었다.
“숙모……”
나는 숙모를 조심스레 불렀다. 마당에서 부추를 열심히 썰던 숙모가 고개를 돌렸다.
“준태야. 이제야 일어난 기가. 아따. 억수루 피곤했나부제. 이 숙모가 아침 차려 줄 테니 쫌만 기다리거레이.”
숙모는 마치 오랜 시간동안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가 한층 들떠 있었다. 그러고는 썰어 놓은 부추를 대충 정리하고 부엌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탁상시계를 바라보았다. 1시였다. 나는 어제 늙은 여자가 가르쳐 준 길을 무시하고 폐업가게 거리를 한참동안 돌아다니다가 칠흑 같은 밤이 되어서야 숙부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숙부와 숙모는 반가이 나를 맞이해 줬고 나 또한 나를 이토록 반가이 반겨주는 숙부네 가족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준태야. 이리 오너래. 더우니까 시원한 마루에서 먹자이. 나도 이른 아침에 밥을 먹 어서 지금 점심 먹어야 겠데이. 같이 묵자이.”
숙모는 커다란 상에 나물 무침 몇 접시와 양념에 절인 고기, 그 외 여러 가지 잔 반찬을 꺼내서 내게 보이더니 곧 내 쪽으로 양념에 절인 고기를 가져다 두었다.
“잠은 잘 잤꼬? 아침에 깨우려 했더니만 아따 재민이 아버지가 그냥 내비두라고 성화여서… 안 그랬나? 재민이 아버지가 얼마나 니를 챙기는지 알제?”
“예. 압니다.”
숙모는 그동안 숙부가 나를 맞이하기 위해서 창고로 쓰던 방에 도배와 장판을 다시 새로 했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덫 붙이면서 재민이와의 과외에서 지켜야 점과 주의 할 점을 몇 번이고 강조하며 이야기 했다.
“재민이 놈도 이제 대학을 가야 되지 않겠나. 그 놈이 능력은 안 되면서 눈만 높아갔고… 아무튼 네가 신경 좀 잘 좀 써주레이. 준태 니는 어릴 때부터 공부 하나는 잘 안했나?”
한참동안 혼자서 떠들어대던 숙모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제풀에 지쳐는 지 한동안 우리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얼마 후 숙모는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는 정적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머뭇머뭇 거리더니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태… 니는… 이제 글쟁이는 완전히 포기한기가?”
그 때까지 땅만 쳐다보면서 밥만 묵묵히 먹던 내가 고개를 들어 숙모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나와 눈이 마주친 숙모는 고개를 잽싸게 떨구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래이. 잘 했데이. 니처럼 공부 잘하는 놈이 왜 글쟁이가 되려 하노. 검사가 되어서 떵떵거리고 살사면 된다이. 글이야 나중에 여유 있으면 그때서야 써도 늦지 않겠냐 말이데이. 그래. 잘했데이. 준태, 니 나중에 검사 되고 나서 나 모른 척 하면 안된데이. 검사 조카 덕 좀 봐야 하지 않겄냐?”
숙모는 마치 나의 대답을 듣기라도 한 사람처럼 또다시 홀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단지 가슴 한구석이 언친 것 같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어느새 숙부네 집에 도착한 후 한 달이 지나고 여름의 절정에 다다랐다. 본디 개시장은 한철 장사이기 때문에 복날이 되자 구포 개시장 또한 피 비린내가 마를 날이 없었다. 간혹 내가 숙부의 가게와 연결이 되어있는 집에서 나와 바람을 쐬려고 하면 잔인하게 들려오는 도살의 소리들, 불안에 떨고 있는 성냥갑만한 우리에 갇힌 개들 그리고 썩은 피 비린내가 나의 심사를 건드려 오히려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랬기에 나는 하루 종일 외출을 삼가고 예전에 창고로 쓰였던 조그만 방 안에 갇혀서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낮에는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밤에는 재수 학원에서 돌아온 재민이와 함께 공부를 했다. 정말 무료하고 답답한 날들이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초복, 중복도 어느새 끝나고 제일 판매량이 좋다는 말복이 다가오는 때였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숙부와 숙모랑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따, 저녁 늦게들 하시는 기가. 어이 한씨, 요즘 장사는 잘 되가나?”
그렇지 않아도 숙부가 밥을 먹는 내내 개고기 이야기만 하는 터라 속이 매슥거렸는데 때마침 김씨 아저씨가 등장했다. 김씨 아저씨는 내가 보기에 구포 개시장에서 숙부와 가장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김씨 아저씨는 검게 탄 피부에 부스스한 곱슬머리를 지닌 거친 사내였는데 항상 대박을 꿈꾸며 주말마다 로또를 가득 사들였다. 특별히 부양할 가족도 없고 하니 하루가 멀다 하고 김씨 아저씨는 숙부네 집을 제 집 드나드는 것처럼 드나들었다.
“어이, 한씨, 이제 말복도 다가오는디 갈 때가 되지 않았나?”
김씨 아저씨는 숙부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좁은 마루에 억지로 엉덩이를 내밀면서 말했다. 나는 김씨 아저씨가 금방 갈 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김씨 아저씨와 함께 있는 것이 머쓱해서 쥐고 있던 숟가락을 잽싸게 놓고 자리를 피했다. 내가 자리를 피한 후에도 김씨 아저씨는 숙부와 한참동안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결국 숙부의 동의를 얻어 냈는지 숙부의 구부정한 어깨를 툭 치더니 얼굴이 활짝 핀 채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숙부의 집에서 나갔다.
다음 날, 숙부는 이른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다. 숙모는 숙부의 부업인 개장수를 하러 갔다고 했고 나도 별 관심 없이 듣고 넘겼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숙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숙부는 떠난 지 5일 후에서야 돌아왔다. 숙부는 어디서 어떻게 개장수 노릇을 했는지는 몰라도 숙부의 트럭 뒤에는 녹슨 우리에 열다섯 마리 정도 보이는 진돗개들을 잔뜩 싣고 왔고, 우리에 갇힌 개들도 오랜 시간동안 갇혀 지냈는지 모두 지쳐서 혀를 길게 쭉 빼고 헐떡거리고 있었다. 숙부는 오랫동안 운전을 해서 피곤하다며 말도 없이 방으로 휑하니 들어가 바로 뻗어서 자버렸고, 나는 굳이 숙부에게 개들에 대해서 물어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뻔할 뻔자 무책임하게 개를 키우던 사람들에게 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이었다. 어제는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올려 진 것 같은 방 안에서 계속 뒤척이다가 결국 쪼가리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워낙 좁은 방에 짐들을 가득 쌓아 올려둔 까닭에 숨통이 콱 막히고 땀으로 범벅이가 되어 온 몸이 찝찝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이른 새벽에 찌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어제 숙부가 잡아 온 개들이 좁은 우리에 갇힌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간단히 마실 것을 들이킨 후 다시 밖으로 나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 때였다. 나는 우연히 우리에 갇힌 개들을 보았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다른 개들은 저들끼리 엉켜 자고 있어 셈을 하기도 곤란할 정도였지만 유독 한 마리만이 무리에 끼지 못하고 홀로 떨어진 채 움츠려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호기심으로 홀로 떨어져 있는 개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다른 개들에 비해 외모도 다른 것 같았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그 개는 눈과 눈 사이에서 콧등에 이르는 경사각이 거칠게 꺾여져 있어서 자세히 보면 주둥이가 살짝 들려 보였다. 얼굴의 색상도 흐리고 창백했으며, 안광은 검은 색이었고 귀는 매우 컸다. 체형은 다른 개들에 비해 다소 크게 보였으며 간혹 주름이 잡혀 있는 부분도 있었다. 꼬리 또한 다른 개들은 등 털보다 두 배 가량 길고 마치 부챗살 편 것과 같았으나 이 개의 꼬리는 솜방망이처럼 부드러워 보였으며 털 길이도 등 털과 비교해 길어 보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나는 곧 그 개로 다가가 더욱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그 개는 자고 있으면서 무언가에 시달리는 듯이 끙끙 앓고 있었다.
그 날 오후, 한나절 동안 잠을 잔 숙부는 저녁밥을 먹을 때쯤에 나타나서는, 진돗개의 우리를 신문지로 말아 놓은 막대기로 사정없이 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다. 방에서 죽은 듯이 공부에 매달리던 내가 숙부의 거친 목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개들이 싸움을 벌인 모양이었다. 오늘 이른 새벽에 홀로 있는 개를 보았기 때문일까. 나는 나답지 않게 그 싸움에 관심이 쏠렸다. 그래서 우리 쪽으로 다가가 고개를 쭉 내밀어 보였다.
우리 안에는 이미 피로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나는 좀 더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싸움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십 여 마리의 개들이 한 마리의 개를 둘러싼 채 물어뜯고 할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둘러싸인 개가 오늘 새벽에 본 그 개였다. 그 개는 온 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못 차리며 왔다 갔다 했다. 그 개의 눈빛은 매우 불안해 보였고 구호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후 숙부가 나머지 개들을 겨우 진정을 시켰다. 그제야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개는 나머지 개들을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개는 나머지 개들에게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절대 덤비지는 않았다. 결국 그 개는 계속해서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우리를 홀로 쓰게 되었다. 나는 우리에 홀로 갇혀 있는 그 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개는 아직도 나머지 개들을 매서운 눈길로 바라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다른 때와 다르게 개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던 내가 신기했는지 숙부가 다가와 물었다.
“왜… 그 개가 불쌍한 기가?”
숙부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 나의 곁에 철퍽 앉았다. 그리고는 내가 답변을 하기도 전에 숙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 개는 ‘이백’이라고 불리는 개이다 아이가. 90년데 초반이었나… 하여간 개장사꾼들이 몸의 아래쪽은 백색이고 등 쪽은 붉은 색인 두 가지 색을 다 갖고 있다고 하여 만들어 낸 이름이지카지……아마……”
나는 숙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궁금증에 못 견디고 숙부의 말을 가로챘다.
"‘이백’이 개의 무슨 종류입니까? 난… 처음 들어 보았어요. 꼭 진돗개와 비슷하게 생겼군요. 진돗개의 종류 입니까?”
갑작스럽게 터진 나의 끊임없는 질문에 숙부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곧 여유를 되찾고는 때, 탄 면바지의 호주머니에서 뒤적뒤적 거려 두꺼운 담배를 꺼내 태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돗개 종류냐고? 음… 진돗개 종류라고도 할 수도 있을 기다. 어차피 진돗개 피는 들어있으니까 말이제…”
숙부의 정리되지 않는 말에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숙부는 태우던 담배를 땅에 미련 없이 떨어뜨리더니 변색된 슬리퍼로 거칠게 비벼댔다.
“그게 무슨 말이냐카믄 저 개는 순수 진돗개의 피와 진도로 우연히 유입된 일본 개 아끼다와 혼배 해 낳은 개이다 아이가. 이 사실을 안 주인은 진도에서 이것이 밝혀지면 퇴출당할 것을 염려해서 말이다이 무려 4년 동안 집 안에서 몰래 안 길렀나. 그러다가잉 이웃의 신고로 다 들통 나고 이 개는 우성 진돗개를 제외한 열성 진돗개와 함께 퇴출 당한기라. 열성 진돗개라하믄 순수 진돗개이기는 한데 귀가 쳐진다거나 다리가 곧지 않는 열등한 진돗개를 말하는 기제. 원래 진도에서는 우등한 진돗개의 혈통을 보전하기 위해서 열성진돗개들은 다 퇴출시킨다 아이가. 그래서 다른 개들도 유입하지 못하는디 어쩌다 진도에서 사는 순수 혈통인 진돗개가 외부로 출입을 했다가 그리 됐나 보드라. 사실… 나는 김씨와 퇴출당하는 저 개들을 빼돌린 기고……”
숙부는 부끄러운 듯이 다듬지 않아 삐쭉 선 머리카락을 긁어 댔다. 이야기를 마친 숙부는 진돗개와 이백에게 다가가더니 한쪽 입술만 끌어 올려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어디론가 가버렸고, 이야기를 들은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 채 한동안 마루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숙부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백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동질성을 느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백과 나는 매우 비슷한 점이 많으니깐 말이다. 진도에서 단지 혼혈견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퇴출을 당해서 이리저리도 끼지 못하는 부류가 된 채 고통을 당하는 이백의 모습이나 혼혈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에도 러시아에도 끼지 못하고 배척만 당하며 비난과 멸시를 당해야 했던 나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폭력을 쓴 개들에게 앙심을 품지만 직접 덤비지는 못하는 용기 없는 이백과 혼혈인을 괄시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만 담아둘 뿐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나의 우스운 꼴 또한 너무나도 비슷했다.
이렇게 나와 이백이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일까. 나는 숙부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후 유독 이백만을 챙기기 시작했다. 가령 쇠고기 미역국을 숙모 몰래 빼돌려 사료를 듬뿍 말아서 주기도 하고 새벽에 춥지 않고 푹신하게 해주기 위해서 낡은 담요를 깔아주기도 했으며 폭행을 당한 후에 생긴 상처에 약을 발라주기도 했다. 특히 숙부가 도살을 할 때는 나는 이백의 곁을 절대 떠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본 숙부는 우리에 갇힌 개들에게 정을 주지 말라고 나무랐으나 나는 숙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다행히 말복도 무사히 끝났다. 이백은 나의 도움 덕분에 도살의 주인공을 피할 수 있었지만 진도에서 온 나머지 진돗개들은 5마리의 희생을 맛보았다. 이백의 상처가 제법 아물자 숙부는 이백을 다른 진돗개들의 우리에 함께 집어넣으려 했다. 나는 숙부에게 이백이 홀로 우리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숙부가 강력히 안 된다고 거절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백이 다른 진돗개들과 함께 우리를 썼는데도 불과하고 예전보다 이백에 대한 폭행이 뜸해졌다. 물론 폭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폭행의 강도가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나머지 개들이 이백을 둘러 싼 채 이백이 쓰러질 때까지 공격을 가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폭행을 가한 후에는 각자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자신의 동족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말복이 들어 있었던 달이 완전히 끝나고 9월이 왔다. 여름의 반란도 어느새 한 풀 꺾기고 가을이 한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다. 9월이 되자 준태는 매우 바빴다. 사법고시 준비를 같이 병행하면서 이제 막바지에 이른 사촌동생 재민이의 수능 마무리를 해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재민이 또한 내가 온 후부터 성적이 제법 향상되어서 공부에 한창 빠져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더욱 열심히 재민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수능 마무리를 철저히 준비했고 자연히 9월에 들어서는 이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 들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숙부는 개장수 일을 병행하면서 개시장을 유지해 나갔다. 숙부는 수요가 가장 많은 복날이 끝나면 쓸데없이 도살을 하지 않았다. 말복이 지나면 손님이 뜸했기 때문에 쓸데없이 도살을 해서 고기를 썩힐 필요도 없었고 또한 오랫동안 숙부의 가게를 이용한 단골손님 대부분은 싱싱한 고기를 얻기 위해 직접 개를 고른 후 숙부가 도살을 부탁했기 때문에 미리 도살을 하지 않았다.
간혹 단골손님이 아닌 반짝이 손님이 가게에 올 때는 개장수때 잡아들인 품종 없는 개를 고기거리로 내놓았다. 굳이 단골손님이 아닌 반짝이 손님들한테 질 좋은 고기거리를 내 놓을 숙부가 아니었다. 숙부는 대부분 길거리에 다니던 품종 없는 개들을 고기거리로 쓰고 진도의 개들은 단골손님들을 위해 아껴 두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항상 풍족한 이름 없는 개들 덕분에 이백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단골손님이 방문을 해서 직접 개를 고르는 경우라도 이백은 항상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에 단골손님들은 이백을 모두 거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재민이는 수능이 50여일이 남자 스스로 공부하면서 정리하겠다고 자청했다. 나 또한 그동안 재민이의 과외와 사법고시 준비로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다. 나는 갑자기 넉넉해진 저녁때의 시간이 익숙하지 않아 오랜만에 이백의 얼굴도 보고 바람도 쐴 겸해서 마당으로 나갔다.
이백은 아직 자지 않고 무리에서 떨어져 우리 한 쪽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이백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이백은 벌떡 일어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맛있는 걸 주어도, 약을 발라주어도 단 한번도 꼬리를 흔들지 않던 무정한 이백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백이 나를 반가이 맞이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바쁜 나의 일상 때문에 이백을 자주 못 보러 왔는데 이백은 내가 보고 싶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백이 기특하기도 하고 사랑스러워 보여 우리 안에 손을 조심스럽게 넣어 얼굴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이백은 눈을 살며시 감으며 꼬리를 더욱 세게 흔들어 보였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개였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따르는 것을 보니 그동안 숙부의 잔소리 몰래 이백을 만나러 온 고생도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얼굴을 쓰다듬다가 나의 손이 이백의 몸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그런데 유난히 이백의 배가 불러 있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떨리던 손으로 조심스레 배를 더듬더듬 만졌다.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개장수를 다 마치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한 숙부에게 이백의 상태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숙부는 매우 귀찮은 듯이 무슨 일이냐며 계속 물으면서 툭 튀어나온 배를 긁어댔다. 숙부는 이백이 있는 우리에 손을 넣어 이리저리 만져보고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잠시 후 숙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숙부의 음성은 매우 거칠었다.
“제길… 임신을 했데이…”
숙부는 이렇게 말하고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갖다 물었다. 숙부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 낫다는 듯이 담배를 바닥으로 사정없이 던져버렸다.
“제길…저 개… 내일 도살하려 했는디…… 재수 없게 임신을 했다 아이가…”
숙부의 입에서 튀어나온 ‘도살’이라는 말에 나는 동공이 커진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이 선풍처럼 쏟아져서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하지만 나는 애써 상념들을 하나 둘 정리해 나갔고 나를 스스로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일 숙부에게 도살을 당할 운명이었다면 오히려 임신 한 것은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단 하루라도 더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구포 개시장에서는 새끼를 가진 어미 개를 도살 할 경우 삼년동안 재수가 없을 거라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에 개 시장 장사꾼들은 섣불리 임신한 개를 죽이지는 않았다.
“저 개… 재수 하나는 억수로 좋제. 이때까지 단골손님한테도 팔리지도 않고… 밥만 축네 길래 도살하려 했더니 더럽게 재수 좋은 거 아이가? 준태 니는 언제부터 알았노?”
“저도 오늘 저녁쯤에 알았어요.”
“분명하다니께, 분명 진도에서 다른 개들과 접촉이 있었던 게 확실하다 아이가? 재수 없게 나한테 이런 게 왔노! 아― 오늘 하루 종일 왜 이렇게 재수가 없노!”
숙부는 하루 종일 잘 풀리지 않았던 일들을 이백에다 다 떠넘기고 있었다. 그러더니 땅에 떨어졌던 담배를 살며시 줍고는 후후 불어댔다. 곧 담배를 입게 물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나는 숙부에게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이백을 다른 우리로 옮길까요?”
내가 이렇게 묻는 순간 숙부는 라이터를 든 손이 잠시 멈칫 하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곧 있어 숙부는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히는 듯 한숨을 크게 쉬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이야기 했다.
“준태… 니… 내가 개한테 관심 두지 말랬제? 근디 왜 그 개한테 유독 관심을 두는 기고? 내… 진작부터 도살 될 개니께이 정 주지도 받지도 말라고 그리 일렀는데 작은 아버지 말이 말 같지도 않는 기가? 으응? 어차피 이렇게 임신이 됐으니 몇 칠 더 살려둘끼지만 하지만 말이데이… 출산 직 후 바로 도살에 들어갈 끼다. 그러니 준태 니도 일찌감치 관심을 끊거래이.”
숙부의 말투는 위엄이 실려 있었다. 숙부는 자신이 하는 일에 젊은 조카가 끼어드는 것이 신경에 몹시 걸렸었나 보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 날 수는 없었다. 물론 평소 같았으면 무조건 숙부의 말에 순순히 따랐겠지만 이것은 이백의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 이백을 어찌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냥 저대로 두실 거예요?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네?”
이렇게 숙부에게 말대답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런 나를 숙부는 흰자가 가득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준태 니 이렇게 말길 못 알아듣는 놈이었나? 상관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 개는 내가 알아서 할 문제인기라. 알아들었나? 나는 그 개를 홀로 둘 생각 전혀 없데이. 유산이 되어도 어쩔 수 없는 기라. 다 지 팔자니 니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이긴 기라. 어차피 죽을 목숨 아이가? 준태 니는 쓸데없는디 상관하지 말고 방으로 어서 들어가레이. 지금 당장! 지금은 준태 니랑 대화 할 기분이 아니데이.”
숙부의 말은 한층 고조되어 있었고 감정도 흥분되어 있었다. 평소 자신에게 절대 덤비지 않던 내가 말대답을 꼬박꼬박하니 매우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내가 숙부의 흥분된 모습과 성난 목소리에 머뭇거리고 있으니 숙부는 참다못해 소리를 꽥 질렀다.
“준태 니, 지금 당장 들어가라고 했나? 안했나? 작은 아버지 말이 진짜 말 같지 않는 기가? 당장 안 들어가고 뭐하노!”
결국 숙부의 성난 큰 목소리에 숙모가 밖으로 나오게 되고 재민이는 문을 조금 열고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고개를 쭉 내밀며 쳐다보았다.
“재민이 아버지, 갑자기 왜 그런데이, 당신이 아끼던 조카아이가? 그런 준태한테 왜 그러노? 아이고, 준태 니는 지금 뭐하노? 작은 아버지가 빨리 들어가라 안 카나? 빨리 안 들어가고 뭐하고 서있노? 빨리 들어가레이.”
숙모는 숙부의 허리를 꼬옥 붙잡고서는 나에게 손짓으로 하며 들어가라고 일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숙부는 나를 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떨리는 몸을 겨우 추스르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에 들어가자 말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이 다시 선풍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숙부는 끝내 이백을 다른 진돗개와 같은 우리에 그냥 방치해 두었다. 이백의 출산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나는 이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백은 종종 나머지 진돗개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이백의 곁에서 치료를 해주면서 지켜주고 싶었으나 예전에 숙부와 싸운 이후로 숙부는 이백이 나와 엮기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듯 보였기 때문에 이백에 대해서 단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못하고 허무하게 계속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나는 오히려 예전에 숙부에게 대들었던 사실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용서를 구하려 했지만 도무지 숙부가 틈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용기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나는 하루 빨리 숙부의 화가 풀려서 예전처럼 내가 이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9월 중순, 어느 이른 새벽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잠을 푹 자지 못했다. 그런데 해가 뜰쯤에 안간힘을 쓰다가 겨우 잠이 든 나의 달콤한 짧은 숙면을 밖에서 나는 부산한 소리가 방해하는 것이었다. 나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이백의 으르렁 소리가 나의 귀를 쑤셔댔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숙모와 숙부 그리고 재민이까지 나와서 이백을 둘러싸고 있었다. 숙부의 손에는 빠알간 고무장갑을 낀 채 우리 속으로 손을 넣을 낌새로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다.
“뭐하세요?”
“어? 준태야. 아니 벌써 일어난 기가? 우리 때문에 일어난 기가? 미안해서 우짜면 좋노! 아니 조용히 할라 캤는데 저 미친개가 물라고 안 카나?”
숙모는 이야기보따리가 터진 것처럼 끊임없이 말을 쏟아냈다. 나는 숙부의 눈치를 힐금 보고는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백이 지난 새벽에 새끼를 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폭력을 당했기 때문인지 이백의 다섯 마리 새끼 중 단 한 마리의 새끼만을 제외한 나머지 새끼들은 모두 태반에 둘러싸인 채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나마 살아있는 새끼 또한 죽어 있는 다른 새끼보다 덩치가 훨씬 작아 보였고 숨쉬기가 가쁜 모양인지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숙부는 죽은 새끼를 꺼내려고 고무장갑을 낀 채 우리 속으로 손을 넣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백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이백은 살아있는 새끼를 포함해서 죽어버린 새끼들까지 모두 자신이 품고서는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이백이 으르렁거리는 거와는 무엇인가 달라 보였다. 한껏 몸을 낮춘 채 앞발을 내밀어 금방이라도 덮칠 듯 한 태세로 으르렁거리는 것이었다. 그런 이백을 보고 있는 나머지 개들은 당황했는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더니 우리 한 구석으로 뒤엉켜서 모여 있었다. 그러자 숙부 또한 손을 쉽사리 넣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숙부에게 다가가 출산 직후라 예민하니 나중에 죽은 새끼를 꺼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고 숙부도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아마 숙부도 예전의 일이 걸리는 기분이었는가 보았다. 평소 같았어도 그렇게 순순히 나의 의견을 따라줄 숙부가 아니었다. 그런데 싸운 후에 이렇게 순순히 나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보니 숙부 또한 이번 기회로 나와의 관계 회복을 원하는 듯 해 보였다.
그렇게 숙부를 설득 시킨 후 오후가 훌쩍 지났다. 숙부는 여전히 개장수를 하러 나갔고 숙모는 장보러 구포시장을 한 바퀴 돌고 온다고 했다. 재민이 또한 집에서는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다고 툴툴거리면서 신경질을 한껏 부리더니 독서실로 휑하니 가버렸다.
나는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에 있는 잔 반찬을 상에 대충 놓고 마루로 들고 나왔다. 그리고 혼자서 묵묵히 늦은 점심밥을 먹으며 이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데 진돗개들 중에서 제법 덩치가 크고 그동안 진돗개들 사이에서 리드 역할을 하던 하얀색 진돗개가 한창 예민해져 있는 이백에게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이백의 얼굴을 살짝 할퀴는 것이었다.
그 때였다. 평소의 이백 성격 같았으면 으르렁거리고 조용히 넘어 갔겠지만 지금의 이백은 그 하얀 진돗개에 먼저 덤벼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 본 나머지 진돗개들도 갑작스럽게 변한 이백의 태도에 당황한 듯 보이더니 곧 앞 다투며 이백에게 잽싸게 다가가 폭행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백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피터지게 그들과 맞섰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내가 신문지로 돌돌 말아 놓은 굵은 막대기로 저지를 했다. 이백의 온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피로 인해 배 부분의 흰 털이 붉은 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나머지 개들은 그리 심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모두들 제각기 작은 상처와 함께 큰 충격을 받았는지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뒤부터 진돗개들은 절대 이백을 먼저 건들지 않았다.

새끼가 태어난 지 3일이 지났다. 죽어버린 새끼들은 썩기 시작하면서 쾌쾌한 냄새와 동반했다. 숙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고무장갑을 들고 나타났다. 사실 숙부처럼 급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 3일이나 참았던 것 또한 매우 놀랄만한 일이었다. 숙부는 고무장갑 안에 목장갑을 끼고 우리 안으로 손을 과감히 집어넣었다. 그런데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이백은 마치 광견병이라도 걸린 개처럼 숙부의 손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우리 밖으로 끌려 나온 이백은 숙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숙부는 괴성을 지르며 이백을 발로 차기 시작했고 숙모와 나는 이백을 떼어 놓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은 이미 숙부의 손에서 나온 피로 붉게 변했고 숙부는 거의 이성을 다 잃고 있었다. 그때, 숙부는 벽에 걸어둔 두꺼운 효자손을 빼내어 이백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얻어맞고 나서야 이백은 지쳤는지 살며시 입을 벌렸고 숙부는 그 때를 참지 못하고 이백을 효자손으로 사정없이 내리 찍었다. 이백은 끙끙거리며 쓰러져 버렸다. 이백은 완전히 의식이 없었고 숙부의 손에서는 붉은 피가 물 뿜듯이 마구 쏟아졌다. 나는 119에 신고를 했고 얼마 있지 못해서 119는 숙부를 싣고 휑하니 가버렸다.
이백은 마당 한 구석에 쓰러진 채 의식을 잃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백의 배에 나의 귀를 갖다 댔다. 아직 숨은 붙어 있는 듯했다. 나는 일단 다른 우리에 푹신한 담요를 깔고 이백을 눕혔다. 나는 이백에게 묻은 피를 닦아냈다. 외상은 별로 없었지만 워낙 효자손으로 잔인하게 얻어맞았던 탓에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곧 살아있는 새끼를 이백 옆에다 두고 죽어버린 새끼를 화단에 곱게 묻어 주었다. 나는 이럴 때 차라리 수의학을 전공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얼마 후 이백은 한참동안 끙끙 앓더니 곧 의식을 되찾았다. 나는 이백에게 사료를 미역국에 잔뜩 불려서 억지로 먹이려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이백은 아픈 몸으로 최선을 다해 먹으려 애썼고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갑자기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밥을 먹인 후, 나는 이백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 밖으로 꺼내 일으켜 세웠다. 이백은 일어나는 듯 하더니 다시 쓰러지기를 수 없이 반복하다가 오른쪽 뒷발을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못해 이백은 푹 쓰러졌고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와 먹은 사료를 모조리 다 토해냈다. 그리고 이백의 눈동자 또한 돌아가서 흰자로 변해있었고 오른쪽 뒷다리를 심하게 절더니 맥없이 푹 기절해 버렸다. 결국 이백은 영원히 오른쪽 뒷다리를 쓰지 못한 채 평생을 세 개의 다리에 의지하며 살아야만했다.

119에 실려 간 숙부는 다음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나는 그때까지 이백을 보살피다 마루에서 깜빡 잠이 들었었다. 숙부는 오른쪽 팔에 붕대를 두껍게 감고 있었다. 숙부는 가게에서 마당으로 이은 문을 세차게 발로 차면서 허겁지겁 들어왔다. 숙부의 이마에는 깊게 파인 주름사이에 송골송골 땀을 맺혀있었다.
“이백! 그놈… 그놈… 어디 갔노? 준태 니가 풀어준기가? 진짜 그런 기가?”
숙부는 내가 이백을 풀어 줬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물론 나도 이백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이백이 기절해서 의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당황스런 기색이 영역한 채 마루에서 일어나 숙부는 응시했다.
“아니요, 지금 우리 안에 있는 데요. 왜 그러세요?”
숙부는 내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많이 쌓여진 우리를 일일이 살펴보다가 이백이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마루에 와서 벌러덩 들어 누웠다. 뒤늦게 따라온 숙모는 부엌으로 잽싸게 들어가서 스테인리스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숙부에게로 갔다. 숙부는 그 물을 받아서 시원하게 꼴깍꼴깍 넘기더니 옷자락으로 입가에 묻은 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캬― 정말 시원하디. 근디 저 놈의 개, 어짜면 좋노? 나를 이렇게 물어뜯어 놓고서는 지는 팔자 좋게 늘어져 자고 있는 기가?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팔자 좋은 지 한 보자 카자.”
숙부는 청자를 뚜렷이 정해두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늘어지게 자는 게 아니라 작은 아버지한테 맞아서 저렇게 기절한 거예요.”
왜 그랬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이백의 편에 서서 이백을 변명해주기에 급급했다. 그러자 숙부는 눈알을 불알이며 아랫입술이 허옇게 변할 정도로 꼭 깨물었다. 그러고 나서는 조그만 창고로 다가가더니 녹슨 굵은 철사와 니퍼를 들고 이백에게 다가갔다. 이백은 숨을 쉬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의식이 없었다. 숙부는 이백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 굵은 철사를 이백의 목에 칭칭 감았다. 그리고 니퍼로 이백의 목에 간긴 철사를 몇 번이고 확인하면서 조였다. 숙부는 목에 연결된 철사를 40cm정도 남겨두고 우리의 철창에 꽁꽁 묶어두기 시작했다. 대충 보아도 움직이기 힘든 길이였다. 곧 숙부는 어미 옆에서 자고 있는 새끼도 들더니 철사로 감으려 했다. 하지만 숙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숙부는 무언가 큰 결정이라도 한 듯이 비장한 표전을 짓고서는 손에 들고 있던 새끼를 원래 자리에 놓고 문고리를 잠갔다. 하지만 숙부는 우리의 닫고서도 안심이 안 되는지 철사를 칭칭 감아대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효자손으로 잔인하게 맞던 이백이 눈을 살며시 떴다.

숙부가 집으로 돌아 온 이후, 다행히 이백은 조금씩 의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숙부는 그런 이백에게 밥도 잘 주지 않았고, 이백 또한 밥을 잘 먹지 못하자 젖이 나오지 않아 새끼와 함께 말라갔다. 숙부는 애초부터 내가 이백의 곁에 가지 못하도록 엄포를 했고 나또한 예전처럼 싸울 태세로 덤벼드는 숙부의 행동에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백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물론 새끼를 낳기 전의 이백이었더라면 조금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백에게는 자신이 보살펴야 하는 새끼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문에 둘러싼 굵은 철사를 풀고 탈출하기 위해서 잇몸에 피가 나고 입술이 찢어지는 아픔을 참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동안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들어 보이던 이백은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고 간혹 어떤 때에는 우리를 둘러싼 철사가 느슨하게 풀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것을 본 숙부는 이백에게 더욱 심한 학대를 가했고 우리에 감긴 철사가 다시는 풀어지지 않도록 더욱 꽁꽁 묶어 두었다. 하지만 이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이백과 숙부의 싸움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나는 이백에게 낯설음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이백은 새끼를 낳고 난 후부터 매우 달라졌다. 네 마리의 새끼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을 탓인지 아니면 한 마리의 새끼에 대한 책임감이 늘어난 탓인지 아무튼 이백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자신의 처지에 절망한 채 사회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지만 딱히 실행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 시도조차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부터 집어 먹어 포기한 나와 다르게 이백은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좌절이나 포기 하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다. 비록 예전의 이백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요즘 들어서 부쩍 변한 이백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이백보다 비겁하고 겁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부가 집으로 돌아온 몇 주 후, 결국 이백은 목과 우리에 연결된 철사를 끊고 우리의 문고리에 감겨져 있던 굵은 철사를 풀어서 새끼와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 새벽에서야 이 사실을 안 숙부는 개하나 간수하지 못하냐면서 괜히 숙모에게 화풀이를 했고 숙부와 숙모는 이백을 찾기 위해서 개시장을 꼼꼼히 뒤지고 있었다. 숙부는 이번에 잡히면 나의 의견을 무시한 채 기필코 도살을 강행할 것이라고 나에게 큰 소리를 쳤다. 그동안 숙부가 이백을 바로 도살하지 않았던 것은 이백에게 오른쪽 손이 물려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손이 나을 때까지 물렸던 분풀이로 이백을 학대한 것이었다.
숙모와 숙부가 탈출한 이백을 잽싸게 찾으려 나가자 나는 이백과 새끼가 있었던 우리에 가 보았다. 탈출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발광을 했는지 우리 곳곳에는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 아직 피가 굳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탈출한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았다. 이백의 목과 우리에 연결된 철사는 이빨로 억지로 끊었는지 거칠게 끊어져 있었고, 철사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아마 잇몸과 입술이 터져서 피가 났을 것이다. 우리의 문고리에 감겨 있던 철사도 어찌나 용케 풀었던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것 또한 그동안 숙부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한 끝에 생겼던 요령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문고리 주위에는 이백의 부러진 발톱들이 흩어져 있었다.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과하고 이백은 탈출을 강행한 것이었다.
나는 이백의 우리를 살펴보고 난 후 개시장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좌․우를 쳐다보았다.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잇몸에 피가 나고 입술이 찢어 졌을 것이며 발톱도 부러져서 걷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숙부에게 잔인하게 맞아 온 몸에는 상처투성이에다 세 개의 다리로 걸어야 할 것이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몸을 일으킬 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아직 어린 새끼까지 함께 데리고 가야 할 것이니 분명 멀리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두 손을 모았다. 특별히 믿는 신도 없었지만 그 때만큼은 나에게 신이 절실했다. 제발 무사히 이백이 개시장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나는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어느덧, 이백이 탈출한지 한달이 훌쩍 지났다. 내가 그날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지 때문이지 숙부는 이백이 탈출한 지 며칠동안 밥 끼도 거스르면서 이백을 찾으려 애쓰더니 결국 몇 주가 지나자 제 풀에 지쳐서 포기하고 말았다.
썩은 피비린내가 난무하는 이곳 개시장 또한 가을의 절정에 이르렀다. 이곳저곳 노랗고 빨갛게 물이 들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로 삭막했던 개시장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밝게 만들어 주어서 내 마음이 설레 이기도 했다.
나는 이백이 탈출한 후 심한 고뇌에 빠졌다. 나는 이백으로 인해서 내 자신을 다시 뒤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백이 탈출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불과하고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고 미적미적 거렸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나의 미래에 대해 결정을 할 것이다. 나는 이백이 탈출한 후 한 달 동안 심한 번뇌에 시달리다 법학 서적의 단 한 글자도 들여다보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지금쯤 한창 공부에 빠져 있어도 모자랄 시간에 나는 지금에서야 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랬기에 나는 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마음을 다시 정리하고 분명히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법관의 길이든 작가의 길이든 선택만 된다면 난 한 가지에 최선을 다할 마음이었다.
아버지의 산소는 황량했다. 여름에 훌쩍 자란 풀들이 아버지의 무덤을 덥수룩하게 덮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무덤에 자란 풀들을 정리하고 알맞은 예를 차렸다. 그리고 편히 앉았다. 실제로 아버지에게 안기기라도 한 듯이 마음이 포근해졌다.
아버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법관이 되어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가길 원했다. 물론 아버지도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반대는 하지 않았다. 단지 찬성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무덤을 한 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황혼이 지도록 아버지의 산소에서 깊은 사색에 취해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무덤가가 어둑어둑 해졌을 때에 나는 아버지의 산소에서 내려왔다. 하루 종일 깊은 사색에 취해 있었지만 결국 나는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낡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늦은 밤의 버스였기 때문인지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나는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버스 안에서도 넋 나간 사람처럼 창문을멍하니 쳐다보면서 깊은 사색에 취해 있었다. 그 때였다.
끽―
“저 놈의… 저 놈의 개가 미쳤나?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썩 꺼져― 어라, 새끼까지 있네.”
버스 앞을 개가 끼어 든 모양이었다. 버스기사는 험상궂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욕설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한 참이 지났는데도 개가 비키지 않는지 버스기사는 계속 빵빵거리고 있었다.
“저 놈의 개가 귓구멍이 막혔나. 왜 안 비키노? 어라. 다리 병신이가?”
버스기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는 하마터면 심장이 멈출 뻔 했다. 버스기사가 욕을 바가지로 퍼부은 개가 바로 이백이 아니겠는가? 이백은 새끼의 등을 물은 채 세 개의 다리를 가지고 힘들게 끌고 있었다. 나는 동공이 크게 벌어진 채 멈춰 있었다. 버스기사의 욕지거리도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버스기사에게 여기서 내려달라고 소리쳤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이백에게 다가갔다. 그 때까지 힘들게 도로를 건너고 있던 이백이 나를 보자 움찔하더니 가던 길을 멈추었다. 나는 이백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이백과 새끼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리고는 버스기사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을 보냈고 버스기사와 승객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멈칫거리더니 곧 휑하니 떠나갔다.
나는 그 때서야 이백과 새끼를 땅에 내려놓았다. 이백은 나를 알아보는지 도망가지 않고 버스가 가는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백의 몸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역시나 하나의 다리는 병신이 되어 있었고 온 몸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뽀얗던 털을 가졌던 새끼도 먼지에 찌들려 누렇게 변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백과 새끼는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비록 몸은 초라했지만 이백의 눈은 수정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이백의 몸을 살피던 중, 목에 칭칭 감겨있는 녹슨 굵은 철사를 보았다. 나는 굵은 철사를 풀려고 애썼지만 숙부가 니퍼를 가지고 얼마나 꼼꼼히 해놓았던지 굵은 철사를 풀자 나의 손이 빨갛게 부르터서야 겨우 철사를 풀 수 있었다. 철사를 풀어내자 이백은 홀가분한 느낌인지 눈을 살며시 감고는 머리를 나에게 비벼대기 시작했다. 나는 이백을 번쩍 들어 올려 꼭 안았다. 그리고 이백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유로워 보였다.
“이백아― 아… 아니지… 이백이 아니지… 내가 너를 만난지도 어느 덧 4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이름 하나 지어주지 못했구나. 이제부터 네 이름은… 이름은… 그렇지, ‘용기’로 하자. 어때? 좋지 않아? 힘들고 고될 때 용기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그렇게 지어 준거야. 너도 마음에 들지? 남은 생애가 마냥 편하고 행복할 수는 없을 거야. 그건 너도 알잖아. 그러니깐 그 때마다 용기 있게 너답게 헤쳐 나가라고 지어주는 거야. 음… 그리고… 너의 새끼는… 그래, ‘희망’이 어때? ‘용기’ 너한테 희망을 준 아이니깐. 그렇지?”
나는 마치 ‘용기’와 대화라도 하듯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용기’와 ‘희망’을 꼭 껴 앉았다. 그렇게 나는 새벽을 맞이할 때까지 ‘용기’와 ‘희망’과 침묵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느새 나는 버스 정류장에 있는 벤치에 ‘용기’와 ‘희망’을 꼭 안고서는 잠이 들어 있었다. 이른 아침의 태양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듯이 나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깨웠다. 나는 ‘용기’와 ‘희망’을 땅에 내려두었다. ‘용기’는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알고 있듯이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희망’과 함께 도로가를 걷기 시작했다. 비록 모습은 초라했지만 ‘용기’와 ‘희망’의 발걸음은 무엇보다도 가벼워 보였다. 나는 ‘용기’와 ‘희망’을 보면서 어쩌면 저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야, 희망아, 부디 행복하길 두 손 모아 간절히 빌께.’
나는 마음속으로 이 말을 수 없이 외쳤다. 나는 ‘용기’와 ‘희망’의 뒷모습이 하나의 점으로 변할 때까지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때, 나의 마음속은 한 달 동안 요동치던 것들이 다 정리되는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나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이 책들… 다… 처분하고 싶은 데요…”
나는 개시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조그마하고 허술한 헌책방 가게를 찾았다. 나는 그동안 공부했던 비싼 법학 서적들을 헌 책방 주인아저씨 앞에 장황하게 놓았다. 흰머리가 잔뜩 섞인 머리를 기름을 매끈하게 발라서 뒤로 넘긴 후, 커다란 돋보기안경을 쓴 헌 책방 주인아저씨는 앞에 놓인 많은 법학 서적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주인아저씨는 콧등으로 내려온 커다란 돋보기안경을 끄집어 올리더니 나에게 물었다.
“어걸… 다 처분하려꼬?”
“예”
내가 법학 서적을 앞에 둔 채 확고히 대답하자 주인아저씨는 나를 위․아래로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법학서적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필기가 잔뜩 되어 있어 많이는 못 줄긴디 그래도 괘안나?”
“예”
내가 이렇게 딱 부러지게 대답하자 주인아저씨는 손바닥만한 계산기를 열심히 두들겼다. 그러고는 한참 후,
“한 권에 대충 5천 원씩 하면이 열 네 권이니께 칠 만원 맞제?”
주인아저씨는 자신 앞에 있는 서랍의 손잡이를 붙잡고서는 눈치를 살피더니 손을 깊숙이 넣어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일곱 장을 세어 나에게 건네 줬다. 나는 그것을 받아 뒤에 있는 호주머니에 꾸깃꾸깃 넣고 있을 때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넣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조심스레 들어 주인아저씨를 보았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주인아저씨는 고개를 잽싸게 떨구었다.
“왜 그러세요? 돈을 잘못 줬나요?”
내가 이렇게 묻자 늙은 주인아저씨는 마치 내가 질문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외국인이가? 외국인인디 왜 이래 우리말을 잘 하노?”
사실 내가 혼혈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대인공포증과 무대공포증이 사라졌다. 20년 동안 없애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도 불과하고 끈질기게 없어지지 않더니 내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나자 이렇게 쉽게 사라진 것이었다.
“저, 외국인 아닙니다. 혼혈인입니다, 지금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요.”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대답하자 순간 주인아저씨는 흠칫 놀란 기색이 영역했다.
“그럼, 저는 갈게요. 많이 파세요.”
내가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끝내자 주인아저씨는 얼떨떨해보였다.
나는 헌책방 가게의 문을 닦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정처 없이 무작정 걸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나의 등에는 처음 숙부네 집을 찾아갈 때 매고 있었던 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동안 쓰고 다녔던 검은색 모자를 벗어 내던졌다. 그동안 나는 혼혈인이라는 것을 애써 외면한 채 살려고 애썼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혼혈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게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고 다녔던 모자였다. 모자를 벗고 나니 가을바람이 제법 자란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훑어주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리 깎아도 끊임없이 자라는 나의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처럼 나는 내가 혼혈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당당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히려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법관의 길을 그만두고 작가의 길을 과감히 선택했다. 사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끝까지 걸리기는 했지만 만약 아버지가 살아있었더라면 나는 아버지에게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을 것이고 아버지도 나의 진정한 행복에 박수를 쳐줬을 거라고 믿는다. 아버지는 내가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당당히 살아가는 것을 바란 것이지 법관이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런 기분은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이었다. 홀가분하면서도 행복했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몸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크게 웃었다. 이렇게 크게 웃어 본적이 얼마 만이던가? 이제부터 나는 크게 웃고 크게 바라보고 크게 생각할 것이다. 비록 둥지 없는 새처럼 정처 없이 떠돌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자유롭고 행복하면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의 발걸음은 한층 더 가벼워져 있었다. 그 뒤에는 은행잎과 단풍잎이 나의 선택에 확신을 주듯 폭죽처럼 화려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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