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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회
저 미군 장갑차들
정 우 영
너는 눈치채지 못하지만, 네 머리 속은 네 게 아니야. 바람도 불지 않는 어떤 맑은 날, 눈을 감고 입 속으로 나직이 외쳐 보라구. "효순이, 미선이 깔아 죽인 미군놈들 처단하라! 통일조국 가로막는 주한미군 철수하라!" 채 말을 맺기도 전에 네 머리 속이 깨질 듯 아파 올 거야. 그때, 마음의 눈을 살포시 열어 네 머리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아. 크르르, 크르르. 육중한 미군 장갑차들이 네 생각을 지우기 위해 네 머리 속을 들쑤시고 다닐 거야.
놀라지 마. 오래되었어. 대한민국 사람들 유전자에는 미군 장갑차 칩이 하나씩 심어져 있어. 미국에 반항하는 낌새만 보이면 장갑차가 만들어져 출동하지. 자, 진정하고 마음을 추스린 다음, 천천히 눈을 돌려 네 주위를 한번 둘러보아. 보이지? 사람들을 장악하고 있는 저 미군 장갑차, 거리 곳곳을 당당하게 누비는 저 미군 장갑차들. <맨인블랙>의 케이가 외계인을 보는 것보다도 더 잘 보일걸.
네 아이의 이마도 좀 보아. 올록볼록 장갑차 바퀴 자국이 선명하지? 왜 아이가 통일이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머리 아파했는지 알 수 있겠지? 네 아내를 짓누르는 가슴 통증도 마찬가지야. 저것들 소행이지. 뿐이랴,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덤도 납작납작 깔아뭉개고 있어. 영혼들이 얼마나 기가 막힐까? 왜 그래? 치떨려서? 솟구치는 화를 어쩌지 못하겠어? 미군 장갑차는 네 분노쯤 아랑곳하지 않아. 우리의 증오로도 꿈쩍하지 않지. 50년도 넘게 우리 의식을 장악해 왔는걸.
그러나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가 효순이, 미선이를 짓뭉개던 날이야.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어. 두 소녀의 순정한 영혼이 작은 촛불로 타오른 거야. 자기 몸을 태워 사람들 마음에 불을 켠 거지.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촛불들이 곳곳에서 일렁이기 시작했어. 어린이의 마음속에도, 오빠, 언니의 마음속에도, 아저씨, 아줌마의 마음속에도 작은 촛불은 영롱하게 타올랐어. 사람들은 부끄러움도 잊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어. 바로 그때야. 기적이 일어났어. 눈물과 함께 떨어진 촛농들이 미군 장갑차를 녹여 버린 거야.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미군 장갑차 칩들도 사라지기 시작했지. 환희야. 이거야말로 진정한 독립이지. 이제 알겠지? 네 마음에 켜진 작은 촛불을 전파해야 하는 이유.
정우영(시인) 숭실대학교 국문과 졸업. <민중시>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문학동네)가 있다.
처음 올린 날: 2003년 1월 14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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