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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내가 가지지 않은 세 가지
공 선 옥(소설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전에 가지지 않았던 많은 물건들을 소유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전에는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에 필요치 않았던 물건들이기도 하고 세상이 변하면
서 필요가 생겨서 가지게 된 물건들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 물건들을 가지지 않으면 현대를 살아가기가 불편해져 버린 물건들이다. 그러
나 또, 꼭 필요치 않으나, 남들이 가졌기 때문에, 내가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을
가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긍극적으로는 필요치 않은 물건들
을 필요로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필요가 생산을 추동하는것이 아니라 생산
이 필요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생리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남기기 위하여 끝없이 생산을 해야 하고 생산한 것을 팔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생산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활의 편리'라는 이유로 구매가 되
는것이다. 그러나 실상 자본주의적 생산원리에 의해 생산되었고 생활의 편리라는 이유로
구매된 그 물건들이 우리 생활에서 정말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나, 휴대폰
아니, 편리하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가지지 않은 첫
번째 품목인 휴대폰만 해도 그렇다.
생각하면 휴대폰이라는 물건이 얼마나 편리하고 유익한 물건인가. 그러나, 그 휴대폰이 없
었던 시절에 우리는 얼마나 불편을 느끼며 살았던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도 있었던 것
이 아닐까. 사실, 이즈음에는 휴대폰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드문 세상이 되어서, 나같이 휴
대폰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휴대폰 가진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언제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한 휴대폰 하나만 내가 가졌어도 꼭 받지 않으면 안되는 전화를
언제 어디서나 받을 수 있다는것은 그 얼마나편리하고 유익한 것이냐. 그러나 또 돌려 생
각해보면, 꼭 필요한 전화라는 건 언제 받아도 받을 수 있는 전화가 아닌가. 그리고 정 필요
한데 전화 연락이 안되면 편지를 쓰거나 직접 만날 수도 있다.
나는 집에서 일을 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휴대폰이 그리 필요치 않은 사람이다. 꼭 필
요치 않은 물건을 내가 굳이 가질 필요가 없다. 나에게 언제쯤 휴대폰이 생길지 모르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휴대폰을 가질 생각은 그래서 아직은 없다.
둘, 자동차
두번째 내가 가지지 않은 물건은 자동차다. 그전에 내게도 차가 한 대 있었다. 시골 살 때는
워낙 움직이는 거리가 멀고 아이들 학교도 멀어서 아이들 통학용, 시장보기용 등으로 그 차
가 필요했다. 그런데 여수로 이사를 가면서는 도시의 발달된 교통여건이 내가 굳이 차를 가
질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나는 두번 생각할것도 없이 차를 폐차 처분해 버렸다. 차를 처분하고 돌아서는데 그렇게 홀
가분할 수가 없었다. 처분하러 갈 때는 차를 몰고 갔다가 돌아올 때는 내 발로 걸어오는 데
먼 길을 내 발로 걸어오는 자체가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차가 있으면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갈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차로 인해서 지불해야
할 유무형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자가용이 없다고 해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휴대폰이나 자동차나 내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일 뿐
이다.
그리고 모든 물건들이란 게 가져서 좋은 점이 있으면 가지지 않아서 좋은 점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가져서 나쁜 것은 안 가져서 나쁜 것보다 훨씬 악성이다.
셋, 신용카드
요즘 사람들이 필시 가지고 있기가 쉬운 물건 중에 내게는없는 세번째 물건은 신용카드다.
요즘은 신용카드로 결재를 해야 세금 계산하기가 투명하다고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도
카드를 가져야 할 것 같지만, 그러나 나는 굳이 카드로 물건을 사야 할 만큼의 소비생활을
하지 않는 때문인지, 카드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다.
어찌보면 나같은 사람은 조세당국에서 기피하는 인물이기가 쉬울 듯도 한데, 모르겠다. 내
가 신용카드를 가져야 옳은지, 안 가져야 옳은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 개인으로서는 신용카드 안 가진 것이 가진 것보다 편한 것이, 신용
카드로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 그 다음달 내 통장에서 빠져나갈 돈을 내가 미리미리 챙길만
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돈이 없으면 '안쓰자주의자'가 돼야 하는 가난한
사람이다. 당장 현금은 없는데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는
것이 내가 신용카드 갖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이다.
휴대폰, 자동차, 신용카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들이기가 쉬운 그 물건들이 언제쯤 내게도
꼭 필요한 물건들이 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런 날은 내 생애 내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 물건들 뿐 아니라, 되도록이면 많은 물건들이 내게 필요치 않아졌으면 좋겠다. 그
런 삶을 살고 싶다. 필요한 물건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삶도 그만큼 무거워질것 같으니
까. 나는 되도록이면 가볍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 e고향(http://www.egohyang.com/index1.jsp) 고향 쉼터 2002년 10월 17일 수록
처음 올린 날: 2002년 12월 23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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