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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회
극작가 빅 투이에게
이 영 진
붉은 깃발을 들고 연꽃 속으로 달려가는 여자들은 총을 심장에 정확히 겨눌 줄 알지. 죽음의 푸른 뇌관
위에 연꽃을 피우는 여자들은 베트남의 계절이 왜 더운 여름 하나뿐인지를 알아. 허공에서 잠시 햇살에
번득이다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에 몸을 맡겨봐. 여자들이 속으로 우는 눈물 냄새를 맡을 수 있어. 갈증
에 이르기도 전에 증발하고 마는 물비린내, 긴 속눈썹이 떨릴 때마다 대지에 묻힌 이름들을 가만히 불
러보는 빅투이. 호치민 시의 여자들은 복면을 하고 있어. 눈만 내놓고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들은 모두
화살이야. 과녁의 중앙을 관통한 뒤 부르르 털다 멈추는 눈빛, 나는 여자들이 연꽃잎에 밥을 싸는 동안
물소의 잔등이 까맣게 타오르는 걸 보았어. 늪지에 피는 연꽃의 붉은 봉우리보다 더 깊은 세상, 어떤 슬
픔도 그냥 흘려 보내지 못하는 눈빛들은 알지 한없이 가난 속으로 무너져 내리면서도 끝내 가난을 껴안
은 채 달리고 또 달리는 바퀴들의 날개를.
*이 시는 제8회 세계작가와의 대화 <한/베트남 문학교류의 날>(2002.10.30) 행사에서 처음으로
낭송되었다.
이영진: 시인.
처음 올린 날: 2002년 11월 1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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