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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선암사 금낭화
김 인 호(시인)
오월의 첫 날이자 부처님 오신 날, 휴일이라고 늦게 일어나 보니 어머니는 벌써 나물 캐러 나가셨다.
요즘 어머니의 나물캐기는 떡을 하면 쫄깃쫄깃 하니 맛있다는 개쑥, 꽃다지 나물이고 또 한 손에는 꽃 핀 고들빼기를 캐와 빈 화분에 옮겨 심어놓으신다.
씨앗를 받아 보려는 어머니의 작은 욕심, 들판이 그리운 것이리.
어머니 돌아오시기를 기다려 점심을 먹고 두 시가 넘어서야 순천 가까이 있는 조계산 선암사 길 나섰다.
길가 논에는 자운영이 흐벅지게 피어 자꾸만 걸음을 붙잡는다.
살랑살랑 노랑나비 모양과 벌들 잉잉거리는 소릴 들으며 한 잠 꽃밭 잠이라도 자고 싶은 마음을 몇 장 사진에 담고 돌아선다.
선암사 입구에서부터 차가 밀리지만 그래도 오후시간이어서 빠져나가는 차가 많아 늦게 나선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 가는데 금새 어지러워 걷기가 힘들어 못 올라가겠다는 어머니는 힘들더라도 부축해드릴테니 천천히 올라가자니까 고개를 흔드신다.
나무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한 참을 쉬었는데도 "요새 밥도 잘 묵는디 왜 이런다냐.. 너나 갔다오니라" 그러신다. 절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시는데, 차안에서도 시줏돈을 꺼내 몇 번씩 세어보며 좋아하시더니 숨이 차 못 가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그냥 돌아갈까 했지만 "금낭화" 금낭화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기실 어머니 모시고 절에 가는 것도 가는 것이지만 지난 일요일 찾아온 해남
작가회의 벗들 안내차 들렸다가 선방 돌담에 함초롬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던 "금낭화"를 다시 만나보리라 마음먹었던 길이라 욕심을 내어 어머니를 나무그늘 의자에 쉬시라 하고 아이와 함께 숲길을 걸어 오른다.
아직 포장되지 않은 숲길은 울창한 연초록 숲과 맑은 계곡이 함께 어우러져 산사를 찾는 걸음들을 한껏 반기는데 조금이라도 편해보려고 경내까지 끌고 들어온 차들이 뒤엉켜 내는 신음소리 같은 엔진소리와 매연이 모처럼 산뜻한 걸음을 불편하게 하고 남아 있는 무지개 다리 중에서는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승선교의 아름다운 모습도 막힌 차에 가려 그 모습을 차분히 감상할 여유마
저 빼앗긴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강선루와 차밭을 지나 양쪽으로 늘어선 연등에다 오가는 사람들로 번잡한 일주문 계단을 피해 에움길로 운수암에 오르니 다 떨궈내고 몇 송이 남은 꽃이 떨어질새라 조심스레 서 있는 동백나무 꽃자리에 서서 잠시 푸른 조계산을 바라보다 선암사로 되짚어 내려와 매화나무 돌담길을 돌아서니 그 "금낭화"가 담쟁이 잎새를 배경으로 맑디맑은 웃음으로 맞아 주는 듯해 어둠 속에 환한 등불을 켜든 것처럼 마음이 환해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지 못하던 우리가 이렇듯 서로를 부르며 만날 수 있다니, 이 봄날 다 가 너 꽃잎 떨구더라도 내 마음속에 늘 환히 피어 있으리니,
어디 멀리 떠나 다시 너를 찾지 못할지라도 내 마음속에 늘 이렇듯 피어 있으리니, 내 가진 것 다 잃더라도 너는 내 맘에 남아 있을 것이리니, 혼자서 기다리느라 애태우실 어머니 생각에 얼른 내려가야지 하면서도 쉽게 돌아서지 못하고 주렁주렁 연등 내 건 듯한 금낭화 곁만 맴도는, 아, 사랑에 마악 눈뜨던 스무살 적 같은 마음의 한나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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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광주출생
<인천문단>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시집 <땅끝에서 온 편지> <섬진강 편지>
사보 <남전> 편집 담당
처음 올린 날: 2002년 9월 2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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