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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 어판 장 1
김 명 기
조막 칼 순식간 배를 갈라
할복된 뱃가죽이 뒤집어 지면
똥이란 창자랑 준비된 오물통으로 쓸려간다.
째깍 째깍 이정도의 시간이나 걸렸을까?
나신나신 무채 썰 듯
한 놈의 오징어가 잘려져 움츠린다.
흡반 은 마지막 가는 길이 아쉬워
삶을 부여 쥔 채 놓을 줄 모른다.
허나 네가 가야할 길
찢기고 퇴색한 고무장갑처럼
너를 누인 이 노친네 표정 없는 얼굴에
희망의 증거라면 너는 순교자다.
숨구멍 숭숭 뚫린 도라무깡 난로는
먹어 도 먹어 도 주린 배
붉은 혓바닥 사방으로 널름대며
군침 같은 진을 흘리고
이 노친네 마지막 유산일지 모를 고무장갑은
뒤집어 진채 도마위에 툭 고단으로 돌아눕는다.
매듭을 옭아매는
갈라진 손등에서
쪼개진 가난이 검은 비닐봉지를 타고
헤진 덧버선 발등으로
오징어 시신의 쓴물처럼 떨어진다. 뚝 뚝 뚝 . . .
엄동의 바람 살가울 리 없어 노안을 쑤석이면
괴인 눈물은 슬픔 없이 빛나라
더러 포개진 분노가 싸움이 되어도
판장에 와본 사람은 안다. 판장에 좌절이 없는 이유를
조르고 칭얼대던 바닷바람
제풀에 지쳐 출어를 기다리는 불배의 뱃머리에 오르고
집어등은 오늘밤 또 다른 순교자를 위해 불을 밝히니
오늘 밤 오늘 밤 이 노친네 결린 허리 밑에
심해의 자유를 만끽하라
라면 한 박스 소주 한 박스 이륜구루마에 끌려와
승선을 기다리는 어스름한 판장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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