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시 제39회
개간지
문 영 균
산비탈 깎아 일군 뙤약밭
경운기 로터리 꽁무니를 따라 다녔어요
대낮에도 쇠, 튕기며 튀어나온 돌멩이
풀섶에 내 던졌어요
비가 와야 했어요
비탈진 두둑에 옮겨 심은 참깨는
대, 세우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비가 오지 않으면 하루종일
분무기로 흠씬 뿌렸어요
그래요. 나도 늘어지고
뜸부기도 목쉬는 저녁이면
수렁배미 앞 둠벙에 돌을 던지며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적처럼
외쳤어요. 열려라 참깨!
팔십 년대 초반,
우리집에는 밭이 없었어요
물론 산도 없어요
하기사 논농사도 소작농이고
초가지붕 집터도
겉보리 닷 말 도조로 내는데
밭이라고 여부가 있겠어요
아버지, 그래도 열심이었어요
(하늘만 쳐다보지 않았어요/
자식들 가르치려고 애썼어요)
억새풀 깎아낸 밭두둑엔
호박이랑 개똥참외도 심고요
칡넝쿨 뻗어오는 자투리 땅에는
고구마 순을 맞질러 놓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돌멩이를 닮은 고구마로
시린 겨울을 웅크리고
다음 해, 또 다음 해
큰비에 씻겨 내려간 개간지에서
고구마를 닮은 돌멩이를 골라내며
밭갈이를 했어요
(일요일이면 일요일/
방학이면 방학마다)
산으로 논으로
경운기를 따라 다녔어요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자식들 다 일구어 놓았지만
나, 죽어도
일요일이면 집에 안가요
사글세 방에서
삼 대가 밥 빌어 먹는다는 시를
써요. 술병무덤 쌓아요
(어머니 가슴에/
돌무덤 쌓아요)
문영균(시인) --------------
민족문학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 회원.
처음 올린 날: 2002년 4월 20일(토)
|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