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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제47회
뿌리깊은 잠
류 외 향
마악 비 그치고 덩이째 떨어진 수국 꽃잎 끝에서 안개 피어오를 때
나는 변소 안에서 누워 잠잔다
반듯한 직사각형의 구멍이 반질반질한 어둠을 꽉 깨물고
주위의 모든 사물들을 불러 들인다
나는 그 구멍 옆에서 니은자로 꺾여져
잠을 잔다 끌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부주의한 똥들이 구멍가에서 화석처럼 굳어가고
이따금씩 내 발끝에 채여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이윽고 식은땀처럼 똥물 한 방울이
구멍 가까이까지 솟아올랐다가 돌아간다
여긴 아냐, 아니라구
가위 눌린 잠이 목줄기를 눌러대지만 나는 한사코
상형문자 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변소 바깥에서 날아다니던 벌들이
수국 속에 침을 꽂은 채
꽃 속에 갇혀 덩이째 떨어진다
꿈 속에서 보는 똥은 좋은 거야,
행복해야 해, 아늑하게 잠드는 거야,
반듯한 직사각형의 구멍이 천천히 일어난다
어둠의 거대한 아가리가 입을 벌린다 그
밖으로 일찍 깬 구더기 몇 마리 꾸물꾸물 기어나온다
류외향(시인) --------------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처음 올린 날: 2002년 6월 22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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