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소의 해다. 소는 예로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옛 사람들이 소를 일러 가축(家畜)이라 하지 않고 생구(生口)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족(家族)과 식구(食口)는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낱말은 혈연을 고집하고 있는 듯한 폐쇄적인 느낌을 주는 데 비해,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닌 식구라는 낱말은 좀더 살가운 느낌을 준다. 그러니 소를 가축이라 하는 것보다야 식구 다음간다는 의미로 생구라고 부르는 게 더 정겨운 표현이었으리라. 가족이 가축을 거느리고 식구가 생구를 거느리는 식이다.

그 소가 수난의 시대를 겪고 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래도 요지부동이었다. 해가 바뀌어 소의 해가 되었다. 조그만 성냥불에 데어 본 사람도 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런데 한 둘도 아닌 여섯 명의 철거민과 경찰이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또한 나는 궁금하다. 침묵하는 다수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는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 코뚜레를 끼우고 고삐만 매면 이끄는 대로 가는 게 소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소의 해이니만큼 소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건장한 소는 손쉽게 고삐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맹수도 물리친다. 그 모든 저항의 직전 단계는 바로 침묵이다. 침묵은 다만 소리 없는 언어일 뿐이다. 현명한 자라면 이 소리 없는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간절한 의사소통의 욕망이 담긴 언어이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을 펼치면 다음과 같은 낱말이 있다. 기축년의 참어(讖語). 뜻풀이는 이렇다. 조선시대 선조22년(1587)의 기축년을 전후하여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던 나라 운명에 관한 예언. 예사롭지 않은 기축년이다. 사전은 늘 갱신된다. 훗날 우리는 국어사전에서 다음과 같은 뜻풀이를 만날지도 모른다. 2009년 기축년. 뒷걸음질하던 소가 쥐 잡은 해.

<2009. 1. 27 손홍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