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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새벽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길을 걷는 나그네라면 마땅히 똑바로 걸어야 한다고 했다. 뒷사람을 위해 나그네는 최선을 다해 바르게 걸어야 한다고 했다. 새벽녘 눈 쌓인 거리를 볼 때마다 늘 이 말이 떠오른다. 순백의 도화지를 앞에 두고 무엇을 그려야할지 고민하는 사람처럼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매해 첫 달을 맞이하는 심정도 이와 비슷하다. 올 한 해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작성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흥분과 두려움도 눈 녹듯 스러질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올 해의 마지막 달에 이르면 대체 무얼 작심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말리라. 사실이 그렇다. 눈 내린 새벽길을 갈팡질팡 걷는다 해도 무슨 상관이랴. 해가 뜨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 나그네의 첫 발자국 흔적도 사라지고 만다. 누구도 나그네의 노력을 기억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만약 단 한 사람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한번 찍히면 결코 지워지지 않을 족적이 남는 길이 있다면 어떠할까. 이를테면 우리 영혼으로 난 눈길 같은 것 말이다. 우리의 영혼을 거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첫 발자국이 곧 마지막 발자국인 길. 그 발자국을 뒤따르는 사람도 우리 자신이고 인도하는 사람도 우리 자신인 그런 길. 유일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길.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동시에 세계 어디로든 통할 수 있는 길.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 만인의 것이 되는 길. 가난한 이나 부유한 이나 모두 공평하게 단 하나만 지닐 수 있는 길. 그 길을 이미 우리는 걷고 있지 않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도 첫걸음을 내디디던 순간 무엇을 결심했는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길을 이미 우리 모두 걷고 있지 않은가.
<2009. 1. 6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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