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어(隱語) 몇 마디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시대에나 은어는 존재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신종 은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요즘 새로운 은어가 자주 출몰하는 듯하다. 방언에는 지역적 방언과 사회적 방언이 있고 은어는 사회적 방언에 속한다. 특정한 사람들이 쓰는 낱말이라고 해서 변두리 말, 즉 변말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중심을 뒤흔드는 사건이 늘 변두리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변말이 우리 언어와 삶에 끼칠 영향력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요즘 같은 시대에는 순수한 은어란 존재하기 힘들다. 새로이 만들어진 은어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재빠르게 전파되어 특정 계층을 초월하여 널리 사용되기 때문이다. 쥐박이나 2메가바이트라는 은어는 이미 은어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평생 농사짓고 살아온 고향에 계신 어머니도 아는 거니까. 어머니가 알면 세상사람 다 아는 거다.
은어는 무한증식을 한다. 하나의 은어가 다른 은어를 낳고 그 은어는 이미 다른 은어를 잉태하고 있다. 건드릴수록 커져가고 짓밟을수록 단단해진다. 은어에는 우리가 일상어에 채 담지 못한 울분과 슬픔과 희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어의 소멸을 바란다면 은어를 박해하기보다는 지금과는 다른 더 나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지름길일 것이다. 은어는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은어는 허위를 가장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가둘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은어의 귀환을 재촉한 건 매서운 날씨다. 시방은 겨울의 한복판이다. 봄이 머지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곧 회귀성 어류인 은어(銀魚)가 찾아오리라. 은어는 알고 있다. 추위가 더할수록 자신들의 근원으로 돌아갈 날이 그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그 은어들이 품고 있을 저 고귀한 언어의 알들이 보이지 않는가. 산란의 시절이 금방이다.
<2009. 1. 13 손홍규 소설가>
|
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