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물속의 발자국]
(문학과경계, 2005년 11월 21일)
지난 1996년, 등단한 지 8여년 만에 첫 시집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펴냈던 이강산(46) 시인이 10여 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물속의 발자국>(문학과경계)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40대 중반까지 살아온 지난 날들을 차분히 되돌아봄으로써 옛 기억의 그림자를 한층 더 발효시켜 새로운 희망으로 거듭남을 꿈꾸고 있다.
시인 이강산의 두 번째 시집 <물속의 그림자>는 저 오랜 기억의 강가에 버려진 아프고 슬픈 기억들을 하나 둘 소중하게 주워 담음으로써, 그 아픈 기억이 은빛으로 출렁이는 아름다운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스스로 혼자서는 빛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일깨워준다.
 | |
이강산
1959년 충남 금산 출생. 1988년 「삶의 문학」과 「실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2005년 현재 '평상'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
::책 속에서
방짜유기-놋주발
눈코입과 살과 뼈
육신이 투명해지도록 두들겨 맞고
비로소 밥 한 그릇 담는다
저 금빛 피멍
점묘화처럼 빈틈없이 찍힌 흉터
그러나 저들의 매질, 눈여겨보면
그건 단순히 밥그릇의 성형이 아니다
제 몸의 담장 허무는 일이다
내 놋주발에 밥 한 그릇 제대로 담지 못해
아침마다 숟가락 거머쥐는 것은
아직 매 덜 맞은 때문
손이 발이 되고 발바닥이 입이 되는
저 무한경계의 사랑
이루지 못한 때문이다
시인 이강산의 시에서는 오래 앞에 잃어버렸던 바람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지금 들리는 그 바람소리는 귀 따갑도록 쟁쟁쟁 울리던 예전의 그 바람소리다. 최루탄 연기 자욱한 도심의 헐벗은 나뭇가지를 순식간에 부러뜨리며 꼭 하나 남은 잎새를 마구 밟고 지나가던 그 바람소리다.
남들은 아무리 귀 기울여도 듣지 못하는 그 아픈 바람소리를 시인은 듣고 있다. 시인의 귀에 환청처럼 희미하게 들리는 그 바람소리에는 그의 피끓는 젊은 날의 순간순간이 들어있다. 잊을만 하면 자꾸만 가슴을 후벼파는 그 바람소리에는 그때 "무게와 거처 미련 없이 떠"나지 못한 시인의 어정쩡한 모습도 보인다.
지금, 40대 끝자락으로 접어드는 시인은 지난 1980년대에 불었던 그 아픈 바람소리를 듣고 있다. 그 바람소리에는 문득문득 어릴 때 시인의 어린 날을 마구 휘어감았던 그 슬프고 쓸쓸한 바람소리도 들어 있다. 그 바람소리에는 "여든 다섯에 이르도록 개구리가 되어본 적 없는/ 장돌뱅이 톱장수 아버지"(아버지를 넘긴다)의 힘겨운 한숨도 섞여있다.
그래. 그땐 왜 몸이 그렇게 무거웠을까. 그땐 왜 제 자리만을 고집하며 살아왔을까. 그때 "무게와 거처 미련 없이 떠난 물속의 새발자국"을 보았다면 발자국이라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지금은 "날마다 그림자의 방향을 뒤틀고 늘였다 줄"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적어도 "개미의 흔적"이라도 새겼을 것을.
회원새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