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집이 떠나갔다]
(창작과비평사, 2005년 12월 20일)

1989년 『민중시』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정우영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에서 억눌리고 소외된 삶을 보듬는 따듯한 애정을 보여준 정우영 시인은 두번째 시집에서 고요 속에서 건져올린 관조적이고 생태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정신에 자연과 모성의 따듯한 씨앗을 심어준다.

정우영의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고요함이다. 사물을 강렬하게 포착하는 비유나 현란한 수사를 접어둔 채 시인의 시선은 고향이나 자연 같은 그윽한 곳에 닿아 어느 한군데도 시끄럽지 않다. 이렇듯 고요함에도 시가 밋밋하게 읽히지 않는 것은 시인이 여러 사물과 사람을 상상의 틀 속에서 불러오기 때문이다. 가령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장(移葬)하다가 어머니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어머니의 등불｣), 오래전 사라진 누이가 우물 속에서 하늘길을 따라 승천하는 환상을 보기도 한다(「우물 승천｣). 이 시집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헛것’의 존재나 실재하는 것의 ‘사라짐’ 같은 현상도 이러한 관조의 상상력에서 비롯한다.

가령 이라크에서 전쟁이 시작된 날부터 시인에게만 보이는 ‘달팽이’(「달팽이｣), 며칠 사이 시인의 주변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는 연극 티켓이나 면도기 같은 사물들은 현실의 직접적인 발언에서 한발짝 물러나 고요와 혼몽 가운데 현실의 고통을 감지하는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시인이 깊은 관조 속에서 얻어낸 이러한 상상과 헛것 들은 마치 동화속의 한 장면인 듯 우리의 상처입은 기억에 새살을 돋게 해주고 있다.

정우영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가 있다.

이렇듯 이번 시집에서 정우영의 시는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시인전｣) 한 이전의 참여적 경향에서 벗어나 “세상의 변두리에서 오히려 중심이 되는 생명”(「사람만이 희망인가｣)의 세계로 나아간다. 시인의 관심은 자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생태시의 사유를 곳곳에서 보여주는데, 문학평론가 임홍배는 이를 “자연에서 멀어지고 어긋난 삶의 자세를 다잡는 쪽으로 정진하는 중”이라고 평가한다. 가령 이 시집 맨 앞에 수록된 「생강나무」는 이러한 생태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편이다.

“마흔여섯 해 걸어다닌 나보다/ 한곳에 서 있는 저 여린 생강나무가/ 훨씬 더 많은 지구의 기억을/ 시간의 그늘 곳곳에 켜켜이 새겨둔다”는 시구에서 우리는 역사의 길과 자연의 길을 다르게 보고, 속히 자연의 길을 회복시켜야 함을 역설하는 시인의 예지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시인은 인간의 시간에 종속된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시간의 그늘이 퇴적된 자연의 모습을 시집 곳곳에서 보여준다. 점점 복잡다단해지는 사회 속에서 시인이 찾은 이 독특한 시간의 길이 독자들에게 큰 자극이 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