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소설가의 첫 소설집 [코끼리]
(실천문학사, 2005년 12월 5일)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신인상에 '또 다른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재영의 첫 소설집. 등단 이후 만 5년간 발표해온 작품들을 묶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루는 소설들을 비롯하여, 패배자들의 지친 삶에 주목하는 열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코끼리'와 '아홉 개의 푸른 쏘냐'에 등장하는 러시아, 네팔, 중국,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들은 출구 없는 막다른 절망과 고통스런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이들은 타지의 섬뜩한 폭력을 견디며 무서운 절망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성실한 취재가 바탕이 된 표제작 '코끼리'는 국내의 현대문학 교수 350명이 뽑은 '2005 올해의 문제 소설', 작가들이 뽑은 '2005 올해의 좋은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

'미조'의 주인공은 이혼과 실직을 겪은 뒤 도시생활에 대한 환멸을 안고 낙향하여 술로 세월을 보낸다. 그에게는 더 이상 행복해지려 하는 꿈이 없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자정의 불빛'은 의식 없는 삶을 살아가는 부르주아의 속물성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김재영 1966년 경기 여주 출생.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2005년 대산창작기금과 문화예술진흥원의 창작기금 수혜.

::책 속에서

신들의 왕 인드라를 태우는 구름이었다는 은빛 코끼리, 창조주가 세계의 알을 깨뜨리면서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버렸다는 코끼리가 문득 아버지처럼 여겨졌다. 구름보다 높은 히말라야에서 태어나 이곳, 후미진 공장지대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눈꺼풀 안쪽으로 은색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구덩이에 발이 빠진 코끼리는 큰 귀를 펄럭이며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발버둥칠수록 뒷다리는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 '코끼리' 중에서


::작가의 말

봄날의 벚꽃과 초여름의 철쭉, 한여름 계곡과 가을날의 단풍은 말할 것 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편 계절과 계절 사이에 조심조심 생장하고 가만가만 갈무리하는,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견디는 풀과 나무들을 지켜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슬프고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비로소 숲의 내밀한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순간 내 소설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쾌하고 농염하진 않지만, 달빛 속에서 도란도란 속내를 드러내는 살가움이라면. 아린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함이라면. - 김재영


::추천글

작지만 크고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소설가, 김재영이 첫 창작집을 묶었다. 무결점이 도리어 결점처럼 느껴지는 '코끼리'로부터, 설화 같은 현실인 '아홉 개의 푸른 쏘냐'까지를 읽는 기쁨은 아기자기하고 한편 웅장하다. 부엌에서 인간의 상처와 소외를 말하는가 하면 그 인간애가 가구공단의 외국인 노동자와 이태원의 러시아 처녀에게 미친다. 관심의 폭은 넓고 다양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힘은 따뜻하고 정의롭다. 사람은 어떻게 서로 스며들고 사랑해야 하는지, 혼자 미소 지으며 김재영을 생각한다. - 이경자 (소설가)

김재영의 소설은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매우 따뜻하고 건강해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인생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고, 또 자기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이 소설집을 처음 본 것은 어떤 문화재단에서 실시하는 '신인작가 창작지원기금' 심사에서였다. 그때 여러 심사위원들이 김재영의 소설에 대해 그의 작품은 안으로는 수준이 고르고 밖으로는 따듯하게 빛을 발한다고 했다. 또 그의 소설은 소설이 끝나는 자리에 감동의 여운이 준비되어 있다. - 이순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