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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층 아파트
김영산
문방구점을 하는 아들 내외가 있는
할머니가 또 불쑥 찾아왔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더니,
자기 집인 양 아주 조용히 들어왔다
검버섯 낯으로 새색시처럼
안방을 기웃기웃 하였다
이 방에서 손주와 함께 살았다 했다
그리고 19층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하염없이 허공 벽을 바라봤다
몇날이 지나 문방구점에 들렀다
할머니 잘 계시냐 물었다 자꾸만
어디로인지 돌아다니신다 했다
옛집을 못 잊어하신다 했다
- 시집 <벽화> 중에서/ 창작과비평 刊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1990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동지'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평일> <벽화>가 있다.
세상의 모든 19층을 '집'으로 기억하는 할머니가 화자의 집을 '또 불쑥'찾아온다.
기웃기웃 하며 집을 둘러도 보고 혼잣말을 되뇌이기도 하면서.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없는 공간에 '또 불쑥' 찾아와
할머니가 더듬고 재생시키고 있는 시선의 끄트머리에 눈을 맞추니
거기 놀랍게도 '허공 벽'이 있다.
고층 아파트 벽면과 문 닫은 시골 가게 때 절은 벽에 <벽화>를 그려내던 화자의 무망한 눈이
문방구점 할머니의 시선에 얹어져 '허공의 벽' 혹은 '허공 벽'으로 현세를 뛰어넘고 있는 듯 보인다.
얼마전 인천작가회의 식구들이 마련한 조촐한 출판기념 자리에서
부쩍 깊어지고 쓸쓸해진 그의 눈빛을 훔쳐보고야 말았다.
하지만 끝내...무슨 일 있느냐고 묻지 못했다.
다만 시집의 마지막 작품으로 내걸린 아래 시를 웹진에 올리는 것으로 잿빛 안부를 가늠할밖에.
우리가 각방을 쓰기 시작한 게 처음 있는 일이지/ 결혼 십육년째 별거 아닌 별거/ 가장 가까이서 먼 거리를 본다/ 수십번 이혼이라는 말보다/ 몇달째 갑갑한 침묵보다/ 무심한 백치 같은/ 눈빛/ 당신의 고요한 눈빛 - '詩는 사기라는 네 말을 이젠 부정할 수 있겠다'의 부분
오늘도 지난 겨울 영흥에서 줏어온 고뇌에 찬 사람 얼굴 형상의 돌에
향불을 피워 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의 제례가 이후로도 아주 오랜 세월
이어질 것 같은 예감에 명치끝이 저릿하다.
이제 겨우 불혹의 문턱을 넘어선 그가 "귀산(歸山), 귀산, 다시 귀산"을 꿈꾸며 펴낸 두번째 시집 출간 소식을 시분과 회원님들께 대신 전하며
김영산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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