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평화, 그리고 생명- 새만금 생명의 시(19)
바지락의 길
김 해 화
바지락이 기어가서
바지락의 길
농발게가 걸어가서
농발게의 길
그 길 따라 바닷물 오고가고
바람과 해와 달 가고 오더니
세상 모든 뭍이
바다로부터 시작되고
사람들
바지락한테 배운 대로 길을 내며
걸어 왔다더라
오늘도 길은 개펄 안으로 이어지고
바다로 나가는 아비들은
농발게가 내놓은 길로 경운기를 몰고 나가
온몸을 출렁대며 일어서는구나
그 아비의 건강한 허리 아래를 향해
바지락 같은 어미들이 널판을 밀고 나가
서둘러 사람의 씨앗을 받아오는
황홀한 길
오래 기다렸으나
아직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못했네
아직 사랑하는 사람도 오지 못했네
전지전능한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으로도
자비로운 부처님의 이름으로도
저 바다의 길을 막지 마라
사람이 오는 길을 막지 마라
■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와 한겨레신문사가 공동 기획한 정전 50돌 '평화, 그리고 생명' 신작시 프로그램. 참여시인 27인이 7월 한달 동안 날마다 시 한 편씩을 릴레이 형식으로 게재. 이곳을 통해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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