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유형석








섬 동백이 지는 계절이다. 아침나절, 바다는 파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섬 공원으로 가는 길목 어귀에는 도로 양편으로 기념품가게와 편의점, 횟집 등이 십여 미터 남짓 늘어서 있다. 미풍이 밤사이 아스팔트 도로 틈새에 스민 습기를 걷고 지날 뿐 거리는 적요하다. 여수역 방향에서 여자 하나가 나타난 것은 인도 위 양지바른 곳에 배를 깔고 엎드렸던 누런 개가 문득 고개를 들고 조금 지나서였다.
여자는 맨발에 지친 걸음걸이로 방파제를 향해 걸었다. 공원 가는 길목에 들어선 여자는 수퍼 앞을 지나치다 파라솔 탁자 위에 내놓은 삶은 계란 바구니를 발견했다. 여자는 탁자 옆에 놓인 의자에 고꾸라지듯 주저앉았다. 이어 계란을 움켜쥐고 껍질을 벗기는 둥 마는 둥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두 개를 먹어치우는 동안 수퍼 안쪽에서 허리가 굽은 노파가 먼지떨이를 거꾸로 거머쥐고 달려 나왔다. 노파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여자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매질을 피해 얼굴을 감싸고 탁자 위에 너부러지다시피 하면서도 여자는 필사적으로 손에 쥔 계란을 물어 삼켰다.
노파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입가에 으깨진 계란살과 설익은 노른자를 묻히고 볼이 미어져라 우물거리던 여자는 허리춤을 뒤적였다. 매질에 맞아 곱은 손가락 사이로 백동전 몇 푼이 떨어져 탁자 위에 굴렀다. 먼지떨이 쥔 손을 치켜든 채 노파가 쏟아진 동전들을 눈으로 좇았다. 그 틈을 타 여자는 재빨리 계란 한 알을 더 낚아채고는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방파제 어귀의 섬 공원 매표소 앞에 도착하자 여자는 주의 깊게 매표소 유리창 안을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한 달음에 매표소를 지나쳤다. 거기서부터 긴 방파제 길이 섬을 향해 놓여 있다. 여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걸음을 늦춘 여자는 소풍이라도 나온 듯 느긋하게 방파제 길을 걸었다. 길 양편의 바다는 이랑 한 골 없이 푸른 가운데 수평선 가까이 몇 척의 배가 꼼짝도 않고 떠있다. 섬으로 오르는 길목에 이르러 여자는 물가로 내려가 바위 턱에 구부리고 앉아 바닷물을 몇 움큼 쥐어 들이켰다. 물 위 작은 부표(浮標)에 팔을 걸치고 떠서 휘파람을 불던 해녀가 여자가 하는 양을 줄곧 지켜보다가 손을 내저었다. 여자는 방파제 길로 다시 올라온다.
길은 완만한 구릉의 능선을 타고 섬 정상으로 이어졌다. 손바닥만한 섬 전체가 동백나무숲이다. 막바지 동백꽃들이 통꽃 째로 떨어져 숲 그늘을 두드린다. 흡사 굵은 빗방울이 듣는 소리 같다.
등대가 보이는 정상까지 오르자 여자는 길 옆 그늘에 놓인 벤치로 가 앉았다. 꽃잎 한 장 시들지 않은 핏빛 꽃봉오리들이 여자의 머리 위로, 무릎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여자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꽃 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숲 그늘 너머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치마 위에 떨어진 꽃을 주워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맨발을 들어 발치에 떨어진 붉은 꽃들을 장난스레 짓이겼다.
이윽고, 숨을 고른 여자는 몸을 일으켰다. 길을 벗어난 여자는 망설임 없이 동백나무 숲을 헤치고 벼랑으로 향했다. 암벽 끝에 다다르자 여자는 수평선 너머 허공을 향해 흡족하다는 듯 곱게 웃어보였다. 여자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턱 끝에 맺혔다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막 청소를 마친 매표소 여직원은 창구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입장권 묶음에 순번을 매기던 여직원이 상춘객들을 싣고 온 첫 버스가 도착하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매표소 창 너머 섬 남녘 벼랑 끝자락에서 해홍화(海紅花) 한 떨기가 바다로 날아 내렸다.

*

1.

AK-47 소총을 어깨 뒤로 비끄러맨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소속 소년병 이스마코는 안간힘을 다해 호베이나무 덩굴줄기를 끌어당기며 버둥거렸다. 가파른 벼랑 사면(斜面)은 밤새 강이 뿜어낸 안개로 흙이고 나무덩굴이고 온통 미끈거렸다. 강을 건너기 전에 입은 총상으로 오른쪽 발목이 납덩이를 매단 것만 같다. 군용검으로 방금 붙든 덩굴줄기를 끊어낸 이스마코는 엎드린 채로 수액을 받아 마셨다. 순간, 총성이 다시 계곡을 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파묻으면서도 이스마코는 탄착점을 살폈다. 동이 터 오고 있었지만 강 건너 민병대는 절벽을 뒤덮은 울창한 셀바 그늘 탓에 그를 찾아내지 못한 게 분명했다. 짚더미를 쑤시듯 무작정 여기저기 쏴대고 있었다. 강 건너 밀림을 더듬던 이스마코는 눈가에 묻은 진흙을 훔쳐내고 벼랑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숲에 가려 불쑥 튀어나와 있을 암벽이 보이지 않는다. 반나마 올라왔지만 도달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발목의 출혈 탓에 기운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이스마코는 돌아누워 잠시 쉬었다. 코바리아강의 물안개와 여명을 걷으며 아침이 오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쏘아붙이던 총성이 멎고 정적이 좀 흘렀을까. 우림의 새들이 다시 울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 싶을 즈음 홀연 맑고 처량한 께나 가락이 계곡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스마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람의 정강이뼈로 만든 피리야. 틀림없어.”
신음을 내지른 끝에 겨우 몸을 뒤집은 이스마코는 허우적거리며 벼랑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소현이 잠들고 나면 나는 루리아가 준 께나를 꺼내 불어보곤 한다. 취구에 입술을 가져다 댈 때마다 섬뜩한 소름이 등골을 타고 내린다. 입김을 불어넣어보지만 어쩌다 생황 비슷한 쇳소리가 날 뿐 좀체 루리아처럼 선명한 음을 낼 수가 없다.
까르따헤나에 머무는 동안 밤이 깊고 거리 이곳저곳에서 들리던 총성이 멎고 나면 루리아는 께나를 쥐고 창가에 앉아 안데스의 민요를 들려주곤 했다. 께나 가락은 침대 위 어둠 속에 나란히 웅크리고 앉은 이스마코와 내 가슴을 찢어놓고 모텔 창을 타고 내려 카리브의 밤바다로 흘러갔다. 그것은 연주라기보다 흐느낌에 가까웠다. 피리는 어둠 속에서 새하얗게 인광을 발했다. 무엇으로 만든 피리냐고 손짓 시늉을 하자 루리아는 이스마코의 무릎을 싸안고 오래도록 정강이를 쓰다듬었다. 인디오들은 콘도르의 뼈나 앞서 세상을 떠난 연인의 경골을 깎아 피리를 만들었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며칠째, 소현은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 퇴근하고 돌아와 보면 소파에서 티비를 보고 있거나 리모콘을 쥔 채로 잠이 들어 있다. 어쩌면 병원에 나가지 않는지도 모른다. 조소현 소아과에서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내가 돌아오면 그녀는 부스스 일어나 저녁을 준비하고 말없이 밥을 먹는다. 조기 자반을 발라 내 수저 위에 얹어주고 젓가락을 빨며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내 품에서 잠이 든다. 한번은 그녀의 남편이 찾아왔었다. 내가 어찌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 그녀는 현관 앞에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남편을 돌려보냈다.
“카리브해는 어때?”
벽을 향해 돌아누운 소현이 물었다. 어둠 저편으로 유난히 희고 선이 고운 소현의 허리가 흰 뱀처럼 뒤틀리며 이불 속으로 숨고 있다. 나는 죽은 난희의 골분이 담긴 한 되들이 나무상자 옆에 께나를 내려놓는다. 까르따헤나로 떠나기 전, 그녀는 난희의 죽음을 들고 내 집으로 찾아왔다. 곽은 떠날 적 보았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여태도 소현은 그것을 어떻게 처분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창문을 닫고 그녀 옆에 눕는다. 오랫동안 간절히 소원해오던 여자를 안는다는 사실이 조금도 현실적이지 않다. 20년이 넘도록 그리워하던 것은 단지 그녀를 향한 정염이 빚어낸 허상이었는지 싶다. 어깨를 움직여 가늘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중얼거렸다.
“지금쯤은 너도 알 듯하지 않아? 사람들은 누구나 떠나고 싶어 하고 실제로 떠나보기도 하지만 결국 어디에도 가 닿을 수가 없어. 어디에도…….”
그런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내 방에는 바다로 향한 창이 하나 있었다. 창을 열면 심연을 알 수 없는 검은 바다가 덜컥 턱밑까지 차올라 있고, 펼쳐진 만(灣) 너머로 아득히 멀리 초승달처럼 휘어진 끄트머리에 작은 포구(浦口)가 보였다. 긴 항해에 지친 배들이 고단한 몸을 쉬면서 낡고 고장난 장기를 수리하는 정비항(整備港)이었다. 어쩌다 이름모를 국적을 가진 기선이 들어와 길게 몸을 누이고 축제를 준비하는 성채처럼 색색의 불빛들을 밝힐 때면 까닭 없이 설레어 두방망이질치는 내 작은 심장을 달래느라 나는 잠을 못 이루곤 했다. 나와 포구 사이에 놓인 여러 겹 대기의 주름 속에서 불빛들이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나를 손짓해 부르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은 사무치도록 고우면서도 한편으로 어린 나로서는 헤아리기 힘든 슬픔을 지니고 있었다. 사흘을 꼬박 걸어야 할지도 몰라. 나는 눈망울이 글썽해질 때까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부모 몰래 벽장 안에 숨겨둔 라면이 몇 봉지나 모였는지 셈해보곤 했다.
소현이 찾아와 난희의 주검을 내 앞에 내려놓았을 때 나는 살면서 까맣게 잊어버렸던 그 불빛들을 생각해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 불빛들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지도를 뒤져 이 나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항구를 찾아낸 다음 퇴직금을 당겨서 라면 대신 들고 떠났다.
태평양 너머 콜롬비아의 까르따헤나 항구에서 나는 그 불빛들을 다시 찾아내긴 했다. 내가 묵던 바리오스 포풀라레스 인근의 싸구려 모텔 창문을 통해서도 훤히 보였다. 불빛들은 20년 전 내 방 창문 앞에 서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조금도 늙지 않고 밤공기 속에서 차갑게 떨고 있었고 여전히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가 닿을 수는 없었다.
나는 허탈해서 좀 웃었던 것 같다. 그 불빛들이 어째서 그토록 슬퍼보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끝간 데 없이 펼쳐진 까르따헤나의 백사장에는 아무도 얼씬대지 않았다. 태양과 흰모래와 에메랄드빛으로 넘실대는 카리브해뿐이었다. 콜롬비아 정부군과, 무장반군과, 민병대에 마약조직까지 뒤얽혀서 30년이 넘도록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그곳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남미 여행객들은 브라질이나 페루로 넘어가기 위해 이 나라의 수도인 보고타 공항을 중간기착지로 사용할 따름이었다. 아침이면 나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콘티넨탈 식사를 루리아와 이스마코에게 넘겨주고 종일 해변에 나가있었다. 어쩌다 버스와 택시의 중간형처럼 생긴 꼴렉띠보를 잡아타고 옛 식민지 시절에 조성된 구시가지를 돌며 스페인 풍으로 축조된 인끼시씨온 궁전이나 항구의 성벽과 망루들을 구경하기도 했지만 두어 번 그러다가 시들해져서 그만두고 말았다. 대부분의 낮 시간을 나는 해변에서 물빛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해가 져서야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에는 윈도우에 쇠창살을 하고 벽을 뚫어 손님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가게 앞에 서서 어설픈 스페인어로 물건을 보여 달라고 말하거나 시장에 들러 아이들과 내가 먹을 것을 사왔다.
아이들의 식욕은 놀라울 정도였다. 루리아가 열여섯, 이스마코는 열넷. 한창 식욕이 왕성할 나이들이긴 했지만 좀 지나치다 싶었다. 아이들은 노점시장에서 사온 따코나 훈제닭요리를 냉장고에 남겨두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려들지 않았다. 낮에는 안전하니 해변에라도 가자고 권해보았지만 이스마코는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꿈결에 동박새 우는 소리를 듣다 잠에서 깬 어느 새벽, 아이들은 내 침대 발치 아래에서 서로의 입을 틀어막고 숨죽여 울며 섹스를 나누고 있었다.

2.

이스마코는 죽기살기로 벼랑을 기어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언젠가 한번 본 적이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백인들이 콜롬비아 정부군과 함께 나타나 어머니 아라우카의 가슴에 석유 시추공을 박아 넣던 날.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와족 마을 인디오들은 코바리아 강가에 모두 모였다. 훈련캠프에서 막 돌아온 이스마코는 운집한 마을사람들 사이를 비집으며 초경을 치렀다는 표식으로 머리 위에 파파야나무 떡잎을 얹어 쓴 소녀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살폈다. 루리아의 얼굴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족장 쿠와루의 부축을 받고 걸어 나온 부족의 마지막 주술사 월카야 할머니가 우와족의 역사를 기록한 바나나 잎을 강에 띄웠다. 어머니의 젖줄을 타고 흘러내리던 나뭇잎은 계곡 아래 여울로 들어서면서 방향을 틀고 말았다. 백발의 월카야 할머니가 얼굴을 감싸고 강가에 쓰러졌다. 모여선 군중들 여기저기서 오열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통곡의 도가니로 변하고 만 군중들 틈에서 가까스로 루리아를 찾아낸 이스마코는 다가가 손목을 잡아끌었다. 온몸을 떨며 울먹이면서도 루리아는 부족 주술사의 손녀답게 고개를 저었다.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자신의 미래를 그때 얼핏 루리아의 젖은 눈망울에서 일별했던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날 밤 아라우카를 떠나기 위해 월카야의 아도베로 찾아갔을 때에도 루리아는 아궁이 옆 흙바닥에 넋을 잃고 앉아 있다가 빈손에 께나만을 쥐고 일어섰다.
코바리아강을 따라 사흘밤낮을 말없이 이스마코의 뒤만 좇던 루리아는 나흘째 새벽 케추아계 인디오와 흑인들이 피를 섞고 사는 삼보마을 하나를 지나고서야 길가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때만큼은 이스마코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먼 옛날 백인들이 바다를 건너와 흙 속의 노란 꽃을 캐내기 위해 어머니의 허리에 광산을 파고 우와족을 노예로 부리던 시절 대대로 전쟁을 거부해온 선조들이 선택했던 마지막 저항의 모습 그대로, 그 새벽은 8백여 남짓한 아라우카의 우와족이 모두 죽음의 계곡에 올라 몸을 던지기로 정한 시각이었다. 소년과 소녀가 그 순간을 잊기 위해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루리아는 셔츠의 단추를 풀고 채 덜 여문 젖꼭지를 꺼내 이스마코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들은 길가 종려나무 등걸 뒤에 숨어 한데 부둥켜안고 그 시간을 떠밀어 보냈다. 동이 트고 루리아가 칸나꽃 이슬을 훔쳐 치마 속을 씻어낼 무렵 세상에 남은 우와족은 그들뿐이었다.

현관문을 따고 들어서기 무섭게 펑 펑, 총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변심한 애인을 쏘아죽인 임청하가 골목을 돌아 나오면서 금발머리 가발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잠든 소현이 떨어뜨린 리모콘을 주워들고 티비를 껐다.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화면은 골목 빗속을 구르는 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통들을 끌어당기는 장면에서 그대로 멎었다. 어젯밤 그녀가 밤늦도록 보고 있던 영화는 <미션>이었다.
“과라니족들이 저 영화를 본다면 뭐라고 말을 할까?”
잠들지 못하는 모습이 걱정스러워 거실로 나왔을 때 그녀는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글쎄, 그들이 뭐라고 말할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남아메리카의 인디오 과라니족은 이미 멸종되어 이 세상에 없다는 것뿐이다. 어째서 그녀가 철 지난 영화들만 빌려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방에서 이불을 가져다가 덮어주었다. 인기척에 눈을 뜬 소현이 말했다.
“세상의 진실을 보려고. 진실은… 메두사의 머리와도 같아. 우리는 저마다 진실을 갈구하는 듯 말하지만 인간은 실은 제 자신과 이 별의 진실을 감당해낼 만한 존재가 못 돼. 누구든 정면으로 그것을 마주보려고 들다간 온 몸이 얼어붙어 돌이 되고 말아…….”
그녀는 덮은 이불을 여미어주는 내 손을 힘주어 붙들었다.
“신화 속 페르세우스처럼 총명할 필요가 있는 거야. 자신의 청동방패를 윤이 나도록 잘 닦아서 거기 비친 진실의 모습을 보면서… 칼을 휘둘러야 해…….”
말을 마친 소현은 그제야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저녁은 혼자서 먹어야 할 것 같다. 소현은 아직도 난희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남녘 공업단지의 한 사택마을에서 어린시절을 함께 보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그 마을을 떠난 이후로 나는 한 번도 그곳에 다시 찾아가본 일이 없다. 보잘것없는 유년의 기억을 굳이 돌이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와 소현이 차례로 떠난 이후로도 난희만은 계속 그곳에서 살았다. 생전에 난희는 나를 세 번 찾아왔는데 그 가운데 두 번은 돈을 얻으러 왔었다.
중학교 때 처음 나를 찾아온 난희는 머뭇머뭇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말하면서 잘 채워진 셔츠 단추를 무의식적으로 자꾸 매만졌다. 한창 젖가슴이 부풀어 오를 나이에 남자셔츠를 입고 있으니 구멍이 헐거워져 단추가 풀리는 모양이었다. 난희가 요구한 돈은 중학생의 용돈으로 얼버무릴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 돈을 훔쳐내 난희에게 주어 보냈다. 난희의 할머니가 죽은 해였다.
두 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소현은 만나기로 한 자리에 불쑥 난희를 데리고 나타났다. 난희는 잃어버렸던 자식을 장성하고 재회한 생모의 눈길로 구석구석 내 모습을 뜯어보면서 웃음 지었다. 당시 군에서 갓 제대한 나는 필요이상으로 당황했던 듯하다. 그런 나와 난희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재미난 일이 어디 있겠냐는 눈빛으로 번갈아보던 소현은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일어섰다. 그날 나는 난희에게 좀 퉁명스럽게 굴었던 것 같다. 헤어질 무렵 난희는 잘못이라도 저질렀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내가 보고 싶다고 그랬어. 미안해…….”
그 이후로 난희는 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소현은 결혼을 했고, 여수역 부근 뱀골 사창가에서 난희와 비슷한 여자를 본 듯하다는 소문을 바람결에 흘려듣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세상에서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일 따위는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갈 즈음, 난희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세상에 진 빚을 갚으려고.”
이번엔 어디에 쓸 돈이냐고 묻는 내게 난희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쓸쓸하게 웃었다. 왜 소현에게는 돈을 빌리지 않아?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시울이 차츰 젖어갔다. 다른 사람 돈은, 싫어…….

3.

이스마코는 총상 입은 발목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오고 있음을 깨닫고 돌아누워 탄약대 주머니에 담아 둔 코카잎을 꺼냈다. 강물에 젖어 엉긴 노란 잎을 되는 대로 한 줌 덜어내 씹기 시작했다. 좀 지나자 한결 숨쉬기가 편해지고 발목의 고통이 잦아들었다. 잠시만 눈을 붙였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피로가 몰려들었다.
“우리가 더 이상 코카나무를 심지 않고 코카인을 밀수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 땅에서 떠날 게 아닌가요?”
케추아계 인디오였던 훈련캠프의 사격교관 카빌도는 피곤한 표정으로 시가꽁초를 자신의 오두막 기둥에 비벼 껐다. 카빌도는 일과가 끝나고 뭔가를 물으러오는 소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코카나무는 태양의 신 인띠의 선물이다 이스마코. 우리는 조상 대대로 코카나무를 심었고 그 잎으로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고 신을 만나왔다. 우리가 이 땅의 모든 코카나무를 커피나무로 바꾼다고 해도 그들은 물러가지 않아.”
이스마코는 고민에 빠졌다. 총을 쏘는 법을 배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러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왜 물러가지 않는 걸까요?”
카빌도는 챙이 짧은 중절모를 벗어 쥐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피라니아가 왜 사람을 물어뜯는지 쿠거가 왜 가축을 덮치는지 붙잡고 물어볼 필요는 없는 거야.”
“그들은 우리가 살아온 이 땅을 빼앗고 싶은 건가요?”
“아니. 코카인이건 땅이건 우리들의 내전이건 그런 것들은 그들이 이 땅에 온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해. 그들이 원하는 건 우리야. 바로 우리란다 이스마코. 이제 그만 가서 씻고 쉬거라.”
카빌도는 이스마코의 어깨를 툭툭 쳐서 돌려보내고 말았다. 막사의 소년들이 툭탁거리며 장난을 치다 하나둘 곯아떨어진 뒤에도 이스마코는 잠을 못 이루고 카빌도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자신의 부족인 치브차계 우와족은 어머니의 육신을 모질게 대하는 일이 없다. 옥수수와 감자를 심고 수확이 끝나면 어머니가 원기를 회복할 때까지 몇 년을 내버려둔다. 식량이 부족한 봄철이면 3개월간 부족 구성원 모두가 단식을 한다. 그런 우리에게서 빼앗을만한 게 뭐가 더 있다는 것일까.
막사 바깥에 달빛이 흩뿌려지고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는 가운데 루리아의 께나 가락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생선비린내 물씬한 항구의 하역창고. 세 명의 백인사내 중 하나가 아랫도리를 발가벗긴 채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는 루리아의 뒤통수를 나무궤짝 위에 찍어 누르고 있었다. 이지, 이지. 이글거리는 눈으로 소총의 조종간 잠금쇠를 푸는 이스마코를 향해 또 다른 하나가 진정하라는 듯 웃으며 한 손을 허리 뒤로 가져갔다.
아아 루리아. 가위에 눌려 고개를 가로젓던 이스마코는 소스라쳐 잠에서 깨었다. 그 서슬에 기대고 누웠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져나가며 강 건너 숲속에서 반짝 빛이 일었다. 마마니의 망원렌즈……. 이스마코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근처 고목을 향해 엎드려 기었다. 뒤이어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을 픽픽 떨어뜨리며 빗발치듯 탄환이 쏟아졌다.

난희는 경비원집 아이였다. 어린시절 내가 살던 사택마을의 아이들이나 서산 너머 초등학교가 있던 달내리 마을아이들이나 모두들 난희를 그렇게 불렀다. 그곳에서 자란 시절을 돌이켜볼라치면 발전소의 거대한 굴뚝과 잿빛으로 오염된 만(灣)이 늘 먼저 떠오른다. 낮이면 발전소 굴뚝에서 피어오른 굵은 석탄재가 널어놓은 빨래에 시커멓게 내려앉았고 밤이면 서녘의 산 너머 정유공장에서 스물네 시간 불순물을 태워 올리는 정유탑 굴뚝의 불빛이 불긋불긋 산의 윤곽을 비추었다. 언덕 중턱을 비스듬히 깎고 들여세운 사택마을에는 꼭대기의 발전소 소장네집부터 시작해서 60여 호의 직원가족들이 언덕을 내려오면서 가장의 직급순서대로 입주해 살았다. 우리집은 그 맨 아랫집이었다. 우리집 아래에는 사택 외곽을 빙 두른 철조망이 지나고 펼쳐진 갯벌 너머로 죽은 바다가 누워있을 뿐이었다. 꼭 그래서였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절 아버지는 걸핏하면 밥상을 차 엎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더는 못 살겠다면서 친정으로 가곤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감사해야했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철조망 안에서 살기 위해 발전소 소장의 서울집 앞에서 한겨울 새벽 네 시간을 들고 간 갈비짝만큼이나 얼면서 기다려야했던 모양이다. 그 덕에 나는 철조망 안에서 자랄 수 있었다.
난희는 철조망 바깥 아이였다. 내가 그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난희도 철조망 안에서 산 적이 있다고 한다. 사택경비원이었던 난희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고 그녀의 어머니는 야반도주를 놓은 이후로, 남겨진 난희와 그녀의 할머니는 그때부터 사택마을을 떠나지 않고 철조망 바깥 야산의 허물어진 외딴 농가에서 살았다. 떠나라고 한들 그들에겐 떠날 곳도 없었을 것이다.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되어 무슨 일인가로 아버지에게 실컷 얻어맞고 발가벗긴 채 집밖으로 내쫓기던 날 나는 난희를 처음 보았다. 낯선 아이가 발가벗고 쓰레기통 뒤에 숨어있는 모양을 구경하느라 사택마을 아이들이 사내애건 계집애건 너나할 것 없이 몰려들어 킥킥대다가 다 떠나고 난 뒤에도 여자아이 하나만은 시종 아카시아나무 그루터기에 몸을 숨기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리 가!”
나는 한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고 엉거주춤 돌을 주워 그 계집애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그 후로, 난희는 어디서나 자주 보였다. 맛난 것을 준다는 말에 성탄절 이브날 밤 사택마을 아이들과 함께 달내리 교회로 몰려갔던 날에도 난희는 있었다. 성탄절 연극이 끝나고 저마다 과자선물을 한 아름씩 받아 안고 교회를 나올 무렵 달내리 아이들은 신발장 앞에서 그 애의 넝마 같은 신발을 이리저리 걷어차면서 돌려주지 않았다. 난희는 교회에서 나눠준 제 몫의 과자선물을 부서져라 바짝 끌어안고서 아이들의 발길에 차이는 제 신발을 눈으로 좇으며 배시시 웃고 서있었다.
“내버려두고 그냥 가.”
함께 지켜보던 사택마을 아이들 중 하나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그날 난희는 맨발로 눈길을 걸어 집에 갔다.
난희는 학교에도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달내리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에 난희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달내리 쥐포공장에 가서 하루 종일 쥐치살점을 널어 붙였다. 난희의 할머니는 난희를 쥐포공장에 데려다놓고 나면 일이 끝날 때까지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모주를 얻어 마시곤 했다. 겨울이면 플라스틱 바가지에 뜨거운 물을 받아 가져다놓고서 쥐치살을 널다가 손가락이 곱으면 거기 담가 언 손을 잠시 녹이고 다시 살점을 이어붙이는 난희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학교선생님의 채근에 못 이겨 난희의 할머니가 난희를 학교에 보내주는 날이면 난희는 책도 노트도 없이 교실에 앉아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귀담아듣거나 시퍼렇게 부르튼 손등을 뒤로 감추고 고무줄을 노는 여자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데도 행복하게 웃었다.
발전소 직원의 가족이 아니면 사택마을 안으로 섣불리 들어올 수 없었지만 저녁을 지을 무렵이면 난희는 별 문제 없이 마을 입구의 경비초소를 통과해 사택마을을 돌며 밥이나 라면을 얻어가곤 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경비원들이 난희만은 들여보내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난희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나는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날따라 일찍 학교에서 돌아오던 나는 초소 앞을 지나면서 경비원이 난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경비원은 나를 보자 흠칫 놀라더니 컬컬하게 마른 목소리로 벌써 학교 끝났냐고 물었다. 난희는 초소 책상 위에 놓인 삼양라면 묶음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들어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검은 동공 안에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텅 빈 눈이었다. 경비원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치면서 흘끗 본 초소 시멘트 바닥에는 밟혀죽은 나비 형상을 한 여자아이의 팬티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4.

캠프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마마니의 사격솜씨는 단연 일품이었다. 마그달레나강 유역의 여러 부족에서 온 인디오 소년들은 저마다 마마니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했다. 잉카의 후예인 케추아계 순수혈통이라서 그렇다고들 수군거렸다. 카빌도도 마마니에 대해서만은 각별했다. 무언가를 물으면 열성을 가지고 그가 물은 것 이상을 일깨워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엿보였다. 이스마코는 마마니와의 달리기에서 한 번도 이겨본 일이 없다. 훈련기간 내내 카빌도의 오두막 난간에 걸린 망원렌즈는 소년들에게 관심거리였다. 총기에 부착시키도록 되어있는 그 렌즈는 들여다보면 가는 십자금이 그어져 있고 오백 걸음 떨어진 물총새의 모습도 훤히 보였다. 성적이 제일 뛰어난 소년에게 주어지기로 했던 그것은 결국 마마니에게 돌아갔다.
“민병대로 가겠다고? 정부군과 경찰에서 퇴역한 메스티소들이 모여 인디오 마을을 돌며 학살이나 일삼는 그곳에?”
“반군은 안 그래? 다 똑같아. 차라리 민병대가 나아. 거기선 보수도 준대. 난 이제 더는 굶주리며 살기 싫어.”
캠프를 떠나며, 마마니는 자신의 관물대에서 아끼던 시몬 볼리바르의 초상화를 떼어냈다.
“너 가질래?”
이스마코는 고개를 흔들었다. 남미를 스페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시킨 영웅의 초상화는 반으로 찢겨 흙바닥에 버려졌다.
“하지만 마마니…….”
“혁명은 끝났어 이스마코.”
마마니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젯밤 이스마코는 모닥불을 피워놓은 민병대원들 틈에서 자신을 뒤쫓는 백인들과 마주앉아 골똘히 지도를 들여다보는 마마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마마니의 소총에는 카빌도가 준 망원렌즈가 붙어있었다. 강을 건너기 전에 자신의 발목을 쏘아 맞춘 것은 마마니의 총알인지도 모른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죽음의 계곡 암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스마코는 마지막 힘을 짜내 팔꿈치를 끌어당겼다.

“우린 결국 실패하고 말았군요. 이제 어쩌면 좋죠 여소군 동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장만옥은 여명을 향한 애타는 눈빛을 거두지 못한다. 차내 룸미러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미키마우스 인형이 하,하,하 웃고 있었다. 등려군의 노래를 끝으로 자막이 다 오르고도 한동안 잠자코 말이 없던 소현이 입을 열었다.
“홍콩과 대만이 선사받은 파인애플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지난 거였어. 우린 어떨까?”
소현의 안색이 창백하다. 진실을 보려고 애쓰는 줄은 알겠지만 저러다 병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전소 소장집 딸 소현이는 사택마을 사내아이들에게 신비의 대상이었다. 달내리 초등학교의 부반장 여자애 따위는 비교도 안 되었다. 서울서 학교를 다니던 소현은 방학 때가 되면 제 어머니의 손목을 붙들고 사택마을에 나타났다. 소현이 왔다는 소문이 돌면 사택마을 사내아이들은 묘한 흥분에 휩싸여 술렁대곤 했다. 그것은 저도 모르게 후끈 달아오르는 볼의 열기를 닮아있었고 어떤 공동의 묵계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공터에서 공을 차다가 별것 아닌 일로 목소리를 높여 억지를 부렸고 달리 봐주는 사람 없이 우리들뿐인데도 제각기 제일 잘하는 재주를 피워보이고는 스스로 무안해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서로들 소현의 이름은 입에 담기를 꺼려했다. 또래들 중에 가장 촐싹대고 여자애들 흉보기 좋아하는 형진이조차 소현에 대해서만은 입을 닫았다. 어쩌다 우리들이 노는 곳으로 소현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저마다 벙어리가 되었고 공을 헛차고 넘어지고는 엉뚱한 애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아 씨발 왜 그러냐 너만 똑별나게!”
먼발치에 소현이 나타나 우리가 노는 모양을 지켜보던 어느 날. 어째 좀 무리한다싶게 공을 몰던 장부장네 장석호의 팔에 얼굴을 얻어맞은 길종이는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길종이는 우리 옆집 사는 전계장 아들내미였다. 평소 같으면 반칙이니 아니니 서로 나서서 재재거리며 소란을 피웠을 우리는 일순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 욕을 먹은 석호도 욕을 한 길종이도 마주서서 쏘아보기만 하다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날 길종이는 언덕배기 부장집 아이들 몇몇에게 심하게 얻어맞았다. 화가 난 길종이 엄마는 장부장네집에 올라갔다가 주제에 꼴값한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와 남편과 대판 싸움을 벌였다.
그러는 동안 어이없게도 소현은 몹시 외로웠던 모양이다. 심심해하는 소현이 마을아이들과 친해지게 만들 겸 해서 그녀의 어머니가 홍차장부인에게 청을 넣어 마을아이들 대여섯을 모아 과외공부를 시킨 적이 있다. 사택마을에 처음 생긴 학원이었던 셈이다. 과목은 요즘 들어선 잘 배우지도 않는 서예와 주산이었다. 주로 언덕배기 윗동네의 부소장네와 부장집 아이들로 성비를 맞춰 모은 그 틈에 영문을 모르게도 사택마을 맨 아랫집에 사는 내가 끼이게 된 적이 있다. 공부는 소장네집에서 했는데 나는 그 널따란 거실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타는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카레라는 것을 먹어보았다. 아이들 어깨너머로 훔쳐본 소현의 집 냉장고에는 이름도 모를 이국의 과일들이 그득했다. 내가 그 아이들 틈에 끼이게 된 걸 제일 기뻐한 사람은 우리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여수 시내에 나가 꽤나 비싼 돈을 치렀을 벼루와 붓, 주판을 사다주었다. 그리고 소장네집에 갈 적에는 꼭꼭 새 옷을 입게 했다. 나는 그런 대로 열심히 공부했던 듯하다. 홍차장부인이 내가 그린 난(蘭)에 대해 칭찬을 해준 소문이 어떻게 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갔던지 어느 날 한 잔 걸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만족스런 얼굴로 내 방 문을 열었다.
“우리 아들이 글도 솔찮이 똑똑헌 구석이 있응께 소장님댁에 가서 공부도 배우고 글제이. 거 봐라, 허문 되아. 열심히만 해. 넘다 잘 헐 필요까지는 없고이?”
어린 나는 신통하게도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던 듯하다. 저희들끼리 떠드는 윗동네 아이들 틈에서 깨끗한 새 옷에 먹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는 말 그대로 열심히 붓 가는 길을 배우고 주판을 놀았다. 과외를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나고 사택마을 유일한 평사원이었던 아버지는 승진을 해서 옆집 길종이 아빠처럼 계장이 되었다.
“넌 왜 그렇게 통 말이 없니? 원래도 말이 없는 편이니?”
소장네집에 가는 일이 점점 싫어지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먹을 갈고 있는 내게 다가온 소현은 무슨 대답이든 꼭 듣고야말겠다는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아 찬찬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숨이 막혀 어쩔 줄을 모르고 그 애가 얼른 떠나주기만 기다렸다.
“소현아, 먹은 다 갈았니?”
나를 구해준 건 소현의 어머니였다. 윤계장네는 아들을 참 얌전하게 키운 것 같아요. 그러게요. 홍차장부인과 소현의 어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뒤꼭지로 들으며 나는 그제서야 내가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란 걸 깨달았다. 소장네집에 갈 적마다 길종이가 내 새 옷에 대해 빈정거리는 이유도, 주먹이 센 백과장네 순철이가 그 즈음 내게 자꾸 시비를 거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잘 참았다. 소장네집에서는 윗동네아이들과 친해지려고 석호에게 아끼던 내 팽이를 주기도 했고 이사 와서 어렵게 사귄 아랫동네아이들이 날 쏙 빼놓고 노는 일이 있어도 모르는 척 같이 어울리려고 애를 썼다. 개학도 다가오고 조금만 더 참으면 되었는데, 그럼 소현은 서울로 돌아가고 소장네집에 안 가도 되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난희와의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난희는 사택마을 사람들이 점심이나 저녁밥을 먹고 난 시각쯤이면 마을을 돌며 식은 밥을 얻어가곤 했다. 그것도 아무 집이나 들르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순번을 정해놓고 하루에 한 집씩 차례로 들르는 것 같았다.
난희는 밥을 빌러 오면 그 집 부엌으로 난 문 앞에 바가지를 들고 말도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고는 밥을 내주면 인사를 꾸벅 하고 철조망 밖 그녀의 집으로 들고 가곤 했다. 돌아가는 길에 마주치는 마을사람들에게 난희는 수건으로 덮은 바가지를 조심스레 등 뒤로 감추고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경비실을 지나며 경비원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난희의 인사를 받은 마을사람들은 대개가 고개를 돌리고 외면을 하거나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지나쳤다. 난희와 난희 할머니는 사택마을 사람들에게 감추고 싶은 치부 같은 것이었다. 지워버리고 싶은 얼룩과도 같은 존재였다. 동네아주머니들은 밥을 얻어가는 난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희의 할멈이 어서 죽어야 저 꼴을 더는 안 볼 거라면서 혀를 차곤 했다.
난희가 어째서 사택마을 아이들 중에 하필이면 나를 선택했는지는 잘 모른다. 어머니 대신 밥을 내주던 어느 저녁, 난희는 밥을 담아들고도 가지 않았다.
“왜? 밥 부족해?”
방싯방싯 웃으며 몸을 꼬던 난희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다 떨어진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이었다. 이게 뭐? 영문을 몰라 물어도 난희는 그저 낡은 운동화 한 쪽을 고무줄놀이를 하듯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말도 않고 웃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난희에게 글을 가르쳐주게 되었다. 쓰레기통 옆 흙바닥에 기역 니은을 그려놓고 배우다가 우리 어머니에게 등짝을 두들겨 맞고 줄행랑을 놓은 다음부터는 내가 가끔 사택마을 철조망을 몰래 넘어서 난희네집에 놀러가곤 했다. 난희 할머니는 독살스런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친구가 없던 난희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 즈음 소장네집에서 하던 과외공부로 아랫동네 아이들이 나를 따돌리는 바람에 나는 더 자주 난희에게 놀러가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쩌다 쓰다 만 노트나 색연필을 들고 간 다음날이면 난희는 발전소 굴뚝과 철조망 안 사택마을을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때로 죽은 갯벌과 오염된 만과 외따로 떨어진 자신의 집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글놀이를 마치면 난희는 할머니의 단소를 꺼내와 불어주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피리보다 훨씬 형편없게 생긴 그 대막대기에서는 도레미파솔라시의 어느 음도 아닌 청승맞은 가락이 흘러나왔다. 노을 속 허물어져가는 농가 툇마루에 난희와 나란히 앉아 듣던 그 가락은 밤새 목을 놓아 우는 여인의 곡소리를 닮아 있었다. 듣다보면 까닭 없이 가슴이 북받쳐 시무룩해지면서도 나는 난희에게 한 곡만 더 해보라고 조르곤 했다. 난희 할머니는 딱 한 번, 들판에서 뜯은 쑥에 밀가루를 이겨 부친 맛대가리 없는 쑥전을 한 접시 내놓은 일이 있다.
사건이 있던 날 소현은 제 어머니를 따라 달내리 시장구경을 갔다가 새끼염소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과외공부가 끝나고 소장네집 뒤뜰로 몰려가서 본 까만 새끼염소는 내가 보기에도 귀여웠다. 껑충한 다리를 애써 가누며 비틀거리는 새끼염소를 구경하느라 아이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언제 왔는지 소장네집 뒤뜰을 두르고 지나는 철조망 바깥에 난희가 서있었다.
“아아, 귀엽다.”
난희는 철조망에 손가락을 끼워 새끼염소를 가리키면서 아이들 사이에 서있던 나를 향해 웃었다.
“쟤 봐, 널 보고 웃는다. 너 쟤랑 친하니?”
정부장네 미연이가 물었다. 새끼염소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던 소현이 문득 돌아보았다.
“아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목소리가 기어드는데 석호가 대뜸 내 말을 받았다.
“아니긴. 길종이가 그러는데 너 사람들 몰래 철조망 개구멍으로 빠져나가서 쟤랑 논다며?”
나는 그 길로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길 위에는 철조망을 따라 흐르는 개천에서 기어 올라온 개구리들이 까맣게 말라죽어 있었다. 그날따라 서녘으로 낀 구름장 때문에 노을이 몹시 붉었고 발전소 굴뚝에는 일찌감치 항공경계등이 깜박거렸다.
길종이 녀석,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다짐을 해두었는데도……. 혼자 방에 누워 동화책을 덮어쓰고 분을 삭이고 있는데 왁자한 아이들 함성이 공터 쪽에서 들려왔다. 나는 길종이가 있으면 한 마디 해주려고 옷을 챙겨 입고 공터로 나갔다.
공터에는 길종이 말고도, 아랫동네 사내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난희가 예의 그 어줍은 미소를 머금고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버드나무가지 하나씩을 꺾어들고 난희를 후려쳐서 공터 한쪽 구석으로 몰았다.
“밥이나 얻어가지, 밥이나 얻어가지, 니가 뭔데 소장님댁엘 얼씬거려.”
아이들은 노래까지 불러가며 회초리를 휘둘렀다. 그예 난희는 좀더 가까이서 새끼염소를 보고픈 마음에 사택마을로 들어와 소장네집에 갔던 모양이다. 내가 나타났을 때에 이미 난희의 종아리와 팔에는 붉은 줄이 죽죽 그어져 부어오르고 있었다. 한 녀석이 난희의 얼굴을 모질게 후려치고는 치마를 휙 들쳤다. 난희는 얻어맞을 적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얼굴을 감쌌다. 겁에 질려 입술을 바르르 떨고 있으면서도 난희는 아이들을 향해 이제 그만하라는 눈으로 안타깝게 웃었다. 난희 딴에는 어떻게든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회초리질은 매서워져갔다. 아이들은 기묘한 열기와 흥분에 도취되어 있었다.
“거지 애인 왔다!”
아이들 중 누군가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그제야 나를 알아본 난희는 안도한 듯 활짝 웃었다. 망연하게 서있는 내게 순철이가 다가와 쥐고 있던 버드나무 회초리를 건넸다.
“너도 때려.”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내 주위에 서있던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비켜섰다. 나는 순철이가 쥐어준 손가락 굵기 만한 버들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때려. 때려 임마. 안 그러면 넌 절대로 끼워주지 않을 줄 알어! 아이들 사이에서 재촉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야아……. 황망한 가운데 길종이가 내가 쥔 나뭇가지를 빼앗으려고 들었다. 그때 내가 왜 길종이의 손길을 뿌리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난희에게 다가간 나는 맥없이 회초리를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야 이 새끼야 제대로 안 때려! 독려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먹먹한 정적 속 난희의 눈빛밖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난희의 눈은 나를 바라보며 호소하듯 웃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 이럴 리가 없다는 말을 하며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나는 난희의 얼굴이고 다리고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회초리를 휘둘렀다. 그래, 가. 가버려. 가서 죽어버려. 다신 여기 밥 얻으러 오지 마. 내려치면 내려칠수록 보드라운 살집에 파고들어 회초리를 타고 전해지는 둔탁한 손맛의 쾌감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져갔다…….
정신이 돌아온 것은 난희가 쓰러지고 길종이가 내 손에서 강제로 회초리를 빼앗고 나서도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모여 섰던 아이들이 말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내 눈을 놓치지 않던 난희의 눈빛만이 잊혀지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언젠가 경비원의 무릎 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그때의 텅 빈, 그 눈빛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소장네집에 공부하러 가지 않았다. 내가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버지가 나를 불러놓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까불지 말고 가서 얌전히 공부하라는 엄포도 듣지 않았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벌컥 화를 냈을 때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 계장 아들이면 됐지 씨발.”
아버지는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못 이었다. 그러나 가만있을 아버지가 아니었다.
“주둥이에 밥 들어강께 부모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이 빌어먹을 새끼가!”
나는 또 발가벗겨져 내쫓기고 말았다.
그 이후로 일주일이 넘도록 난희는 사택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갯벌 너머 포구에 커다란 이국의 기선이 한 척 들어온 것을 보던 날. 나는 벽장 안에 모아둔 라면을 책가방에 담아들고 철조망 개구멍을 넘어가 난희의 집을 찾았다. 쓰러져가는 농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후 내내 농가 부근의 야산을 뒤져서야 달내리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난희를 찾아냈다. 남의 밭에 몰래 들어가 생고구마를 캐먹고 앉아있던 난희는 내가 다가가자 황급히 입가에 묻은 흙을 문지르고 호미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고 바들바들 떨면서 노려보다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난희가 간질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실신한 난희를 업고 농가로 돌아와 툇마루에 눕혀놓고서야 난희는 정신을 차렸다.
“우리, 갯벌 너머 저편 포구에 가볼래? 나 라면 있어.”
용서해달라는 말을 했어야 하는데, 그 말을 했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밖에 말 못 하고 가방 속에 든 라면을 꺼내 보여주었다. 난희는 힘없이 웃었던 것 같다. 툇마루에 누워 한참이나 내 얼굴을 올려다보던 난희는 문득 몸을 일으켜 팬티를 끌어내리고는 도로 누워 손짓을 했다.
“이리 와.”
바지를 내리고, 발기도 되지 않는 성기를 난희의 축축한 그곳에 맞대고 엎드려서 나는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지독히도 울었던 것 같다. 아프지 않아? 선홍의 상처와도 같은, 닿기만 해도 쓰리고 아플 것만 같은 그곳을 내게 맞대고도 난희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하나도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난희는 내 눈물을 훔쳐 주며 누나처럼 머리를 쓰다듬었다.
“포구엔 왜 가려고 해?”
“불빛들을 잡으려고. 거기 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가지 않을래?”
나중에. 우리 크면 나중에. 난희는 닦아봐야 속절없이 또 흘러내려 제 얼굴로 떨어지는 내 눈물을 자꾸자꾸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애써 웃었다. 나중에. 우리 크면 나중에…….
그 바닷가 공업단지의 사택마을에서 나는 초등학교를 마쳤다. 소현은 방학 때면 서울서 내려와 사내아이들 마음을 흔들어놓곤 했고 아이들은 석탄 낙진이 시커멓게 내려앉은 아카시아 꽃잎을 따먹으며 부쩍부쩍 키가 자랐다.
저녁 무렵이면 난희는 변함없이 마을을 돌며 밥을 얻어갔고 먼발치에서 나와 마주치면 사람들 모르게 살몃 웃고는 종종걸음으로 도망쳤다. 그곳을 떠나던 겨울, 이삿짐 트럭이 달내리를 지나칠 때 나는 트럭 유리창에 이마를 바투 붙이고 도로변에 면한 쥐포공장 마당을 살폈다. 방충망처럼 생긴 쥐치 건조대를 비스듬히 열을 맞춰 뉘어놓은 그곳 마당에 언제나 그렇듯 난희가 바가지에 더운물을 받아놓고 쪼그리고 앉아 시퍼렇게 부르튼 손으로 쥐치살을 널어 붙이고 있었다.
안녕……. 나는 내 귀에나 겨우 들릴만하게 말하고 흐려지는 유리창을 문질렀다. 뒤돌아 본 바닷가 썩은 갯벌로 을씨년스런 칼바람이 검은 파도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
“보내야겠지. 이젠 보내야만 하겠지.”
소현이 말을 했다. 거실 탁자 위에는 난희의 육신을 사르고 남은 상자가 놓여있다. 소현이 저 작은 곽을 움직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난희는 여수의 그 섬 공원을 참 좋아했어. 넌 이사 가서 몰랐겠지만 동백꽃이 피면 우린 함께 그곳에 놀러가곤 했어. 네 얘기를 나눈 적도 있지. 실은, 난희는… 네 얘기만 하는 거였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5.

가까스로 죽음의 계곡 꼭대기까지 기어오른 이스마코는 무릎걸음으로 바위를 건너가 반대편 언덕을 내려다보았다. 아라우카 땅의 우와족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을이 자리했던 어머니의 품에는 거대한 기계 팔들이 땅을 향해 용두질을 치고 있었다. 북미의 석유시추 기술자들과 그들 밑에서 일하게 될 인부들의 마을이 비스듬히 깎여나간 오른쪽 언덕을 타고 내리며 들어서는 중이었다. 짓고 있는 아도베의 양식으로 보아 뮬라토들의 마을로 보였다.
“저 돌아왔어요 아라우카.”
이스마코는 엎드린 채로 속삭였다. 해가 뜨고 있었다. 지평선 가까이 브라질 접경 너머로 오리노코강의 지류가 황금빛 실뱀처럼 반짝였다. 이스마코는 눈물을 씻어냈다. 마지막으로 고향의 모습을 한 번 더 내려다본 뒤 이스마코는 벼랑 끝으로 돌아왔다.
30발들이 탄창 여덟 개를 바위 턱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그 중 한 개를 들어 장전하자 이명(耳鳴)처럼 께나 가락이 그의 귓가를 울리기 시작했다. 루리아가 바로 곁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스마코는 이를 악물었다. 총구를 벼랑 아래로 겨누고 가늠자에 눈을 바짝 갖다댔다.

소현은 밤새 운전을 했다. 동이 터 전조등을 끌 무렵 우리는 어린시절 함께 자랐던 사택마을에 도착했다. 20여 년 만에 돌아와 본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석탄을 때는 발전소는 가동을 멈추었고 정유공장의 철제굴뚝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달내리 마을 입구의 표지석이 주춧돌 밑을 뒹굴고 있었다.
모두들 떠났어. 오염이 너무 심해져서. 달내리 마을을 지나치며 소현이 말했다. 나는 검게 죽은 바다를 돌아보았다. 처음엔 사람들이 떠났고 그 다음엔 공장들이 문을 닫았지. 이젠 마치 유령들만 사는 곳 같지 않아?
언덕 하나를 통째로 밀어 평평하게 다져버린 그곳은 매립지가 되어 있었다.
“이쯤이, 아마 이쯤이 우리집이었는데…….”
나는 흙더미 아래 묻혀있을 언덕 맨 아래쪽 어름의 우리집을 상상하며 발로 금을 그렸다. 여기가 우리집이었지. 소장집 딸 소현이 막대기를 주워들고 자신의 집이 있던 자리에 네모를 그렸다. 사택마을을 빙 두르던 철조망도 그렸다. 마을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이렇게 좁은 곳에 철조망을 두르고 집을 짓고 공을 차면서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소현은 자신의 집과 우리집 사이에 여러 겹의 금을 그었다.
“노예들에게 자신들이 노예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간단한 방법은 이렇게 철조망을 두르고 그들 사이에 계단을 만들어주는 거야.”
소현은 자신의 집이 있던 자리에 서서 막대기를 들고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흙더미 아래로 매설된 파이프에서 침출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너무 쓸쓸해. 차량 뒷좌석에 놓인 난희의 유골함을 바라보며 소현이 말했다. 굳이 여수의 섬 공원으로 가려는 소현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소현이 차를 모는 동안 나는 까르따헤나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항구의 노점시장, 양념을 채워 넣은 통돼지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고 있는 레쵸나 노점상 앞에 두 손을 꼭 붙들고 서있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다.
“까르네 뽀꼬.”
저녁거리를 사든 나는 사내아이에게 고기조각을 덜어 내밀었다. 이스마코는 움찔 물러서면서 루리아를 등뒤로 감싸고 도리질을 쳤다.
숙소로 돌아왔다가 마실 것을 사두려고 나와 보니 뒤를 밟은 듯 아이들이 모텔 앞 광장 분수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몹시 경계하면서 방으로 따라 들어온 아이들은 그 후로 함께 묵게 되었다. 나는 이스마코가 세수할 때면 뒷목까지 푸득거리며 요란하게 씻는 모양이나 루리아가 음식을 먹기 전이면 창 밖 비둘기 떼를 향해 고수레를 하는 광경을 재미나게 바라보곤 했다. 두 인디오 아이들은 그곳 메스티소들처럼 스페인어를 할 줄도 영어를 할 줄도 몰랐다. 그래도 별로 문제될 게 없었다. 그들의 이름, 내 이름이면 충분했다. 아이들은 나를 꼬레안이라 불렀다. 그게 내 이름이었다.
나는 두 아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그렇게 아귀처럼 먹어대는지 어째서 밤이면 소리 없이 울며 사랑을 나누는지 따위는 묻지 않았다. 어릴 적 나와 난희의 약속처럼 그들도 불빛들을 잡으려고 그곳까지 찾아왔으리라 생각할 따름이었다.
함께 묵은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해변에 나갔다 돌아오니 이스마코는 어디에 숨겨놨다 들고 온 것인지 모를 러시아제 자동소총 한 정을 분해해서 소제하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그 소년이 병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6.

이스마코는 강 건너 밀림을 내려다보며 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첫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부터 민병대 쪽에서 응사해온 탄환들이 바위에 맞고 튀며 매캐한 먼지를 피워 올렸다. 계속해서 탄창을 갈아 끼우는 이스마코의 먹먹해진 귓가로 루리아의 께나 가락이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이스마코는 요동치는 개머리판을 있는 힘을 다해 어깨에 끌어 붙이고 방아쇠를 당겼다.
“동백꽃이 아직 피어 있을까요?”
섬 공원 매표소 앞에서 소현은 창구를 향해 고개를 숙여 물었다. 진작 졌죠. 다 떨어진 지가 언젠데. 여직원이 표를 내밀며 말했다. 그래요, 졌겠죠. 아직까지 피어있을 리가 없겠죠. 난희의 골분이 든 상자를 안고 방파제 길을 걸으며 소현은 목소리를 낮춰 노래를 했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앞서 걷던 남녀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소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평선 너머 허공에 눈을 둔 채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튀어 오른 바위조각에 얼굴을 얻어맞고 이스마코는 사격을 멈췄다. 관자놀이 아래로 뜨끈한 피가 흘러내렸다. 루리아는 예감을 했던 걸까? 아끼던 께나를 꼬레안에게 선물하던 날, 루리아는 해변에 나가는 꼬레안의 손을 붙들고 함께 가겠노라 말했다. 하역창고에서 이스마코의 손에 사살당한 자의 동료들이 언제 그들을 찾아낼지 모른다고 말려도 듣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찾아 해변으로 나갔을 때쯤에는 루리아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바위 바닥을 더듬던 이스마코는 마지막 탄창을 찾아 쥐고 소총에 끼워 넣었다. 목덜미에 부드러운 손길이 얹혔다. 이스마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이스마코. 생전의 모습 그대로 루리아가 말했다. 이스마코는 울음을 터뜨렸다.
벼랑 끝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던 마마니는 소총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이스마코의 모습이 망원렌즈를 가득 채우는 광경을 응시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십자선 중앙에 이스마코의 가슴을 정조준하던 마마니는 흠칫 놀라 동작을 멈췄다. 일어선 이스마코가 자신을 향해 가냘프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렌즈에서 눈을 뗀 마마니는 심호흡을 했다. 엎드려있던 민병대 동료들이 뭐하느냐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마마니는 망설였다. 알 수 없는 힘이 방아쇠에 걸린 그의 손가락을 붙들고 있었다. 재차 렌즈에 눈을 모아보았지만 흐트러진 호흡은 좀처럼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갈피를 잃고 번민하던 마마니는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총을 내려놓고 말았다. 몸을 일으킨 그는 은폐된 숲을 헤치고 곧장 강가로 달려 나갔다.
“이스마코오!”
총성이 멎은 계곡에 마마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마마니……. 이스마코는 내려다보이는 마마니의 모습을 향해 웃었다. 어느덧 귓가를 울리던 께나 소리가 멎어 있었다. 이스마코는 동이 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루리아를 감싸 안은 채 모래밭에 떨어진 께나를 향해 피투성이가 된 팔을 내뻗고 있던 꼬레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쏘지 말아요!”
총성은 마마니의 비명과 동시에 계곡을 울렸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이스마코의 육신을 바라보며 마마니는 주저앉아 울먹였다. 쏘지 말아요. 내 친구란 말이에요…….
섬 언덕을 힘겹게 오른 소현은 등대가 보이는 정상에 도착하자 벼랑 쪽 벤치에 상자를 내려놓고 땀을 들였다. 벤치 그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던 여자가 오래 기다렸다는 얼굴로 일어섰다.
나중에. 우리 크면 나중에……. 난희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민병대 일곱이 파르티잔 하나를 못 잡아 쩔쩔매고 있으니.”
백인 사내가 마마니의 총을 내려놓으며 투덜댔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 나라를 로콤비아라고 부르죠. 미친 나라.”
메스티소 하나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

섬 공원 정상의 일주로변 벤치에 낯빛이 초췌한 여자가 앉아있다. 여자는 흰 보자기에 싼 작은 상자를 끌어안고 성긴 동백나무숲 그늘 너머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중이다. 수면에 은빛 물비늘로 부서지는 아침햇살이 눈부신지 여자는 이따금 눈을 깜박인다. 그때마다 여자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품에 안고 있는 상자 위로 떨어져 젖는다. 일주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여자의 옆모습을 흘끔거리며 지나친다.
여자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바다를 향해 가만가만 이야기를 했다.
“눈물이란 묘하게도 눈물의 진실을 알고 있어도 흐르거든. 아까부터 바다 저편 어디선가 맑고 구슬픈 피리 소리가 들려. 혹시 너희들에게도 들리니?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데, 불빛들을 잡으러 간 너희들은…… 돌아올 생각이 없구나.”







유형석1967년 전남 여수 출생. 2004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 <늪>으로 등단. 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