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가




김도연







그는 집을 나왔다.
남쪽 하늘에 뜬 달은 밝았고 겨우내 녹지 않고 첩첩이 쌓인 눈은 멍이 든 것처럼 푸르게 빛났다. 왼쪽 어깨에 배낭을 맨 그는 대문 없는 대문을 나섰지만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좁은 눈길은 얼어붙은 개울을 끼고 외롭게 큰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눈보라를 몰고 오는 바람. 그는 어렵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외등만 켜진 집을 쳐다보았다. 개집에서 나온 늙은 개가 꼬리를 흔들어 그의 다리를 툭툭 쳤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웠지만 집은 변함없이 고요했다. 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은 깊은 잠에 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그는 배낭을 고쳐 매고 뒤돌아섰다. 떠남에는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사사로운 정을 단호하게 끊지 못해 결국 마흔 문턱까지 오지 않았는가. 예정일보다 결행 날짜를 앞당긴 것이 차라리 어떤 운명처럼 느껴졌다. 술기운이 다소 도움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뿌리도 없는 일에 즉흥적으로 매달린 게 아닌 이상 문제될 게 없었다. 술은 결행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을 뿐이다. 후일 누군가가 그의 결행을 놓고 평할 때, 술에 취해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노모와 다툰 뒤 결국 그리 되었다는 소리는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달빛에 드러난 눈길을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주변을 오가며 꼬리를 흔드는 늙은 개에게 출가 일성을 남겼다.
“집 잘 봐라!”
간간이 눈보라가 밀려왔다가 사라졌다.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신발 밑에서 얼었던 눈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문 채 좁은 눈길을 내려갔다. 바람소리를 뚫고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불 꺼진 방들에 일제히 불이 켜지고 왁자한 웃음소리가 피어나는 환상이 따스한 외투처럼 등에 달라붙었다. 곧 부러질 것 같은 마른 쑥대들이 눈밭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달밤이었다. 그는 이해했다. 풀도 그러한데 사람의 탈을 쓰고서 어찌 번민이 전혀 없다고 하겠는가. 한 걸음 멀어질 때마다 옷을 갈아입은 기억이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눈보라를 피하는 척 뒤돌아섰다.
“따라오지 마! 돌아가라, 응? 네게 개골산은 너무 멀어.”
늙은 개는 무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온갖 감정이 모두 들어 있는 듯한 개의 눈빛을 읽는 것을 포기하고 눈을 뭉쳐 개에게 던졌다. 벗어나기 힘든 외가닥 좁은 눈길은 집 아니면 집밖을 가리켰다. 눈 뭉치는 개의 앞과 옆에 떨어졌다. 개는 물끄러미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결심한 듯 꼬리를 내리고 뒤돌아섰다. 그는 돌아가는 개와 외등만 켜진 집을 한눈에 담았다. 모든 것을 짊어지고서 떠날 수는 없는 일. 더구나 늙은 개를 끌고 개골산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는 두어 걸음 옮길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그때마다 그는 어서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가 떠나온 집은 그 뒤편에서 녹지 않은 눈을 지붕에 올려놓은 채 굳은 침묵을 지켰다. 마당 왼편 헛간 지붕에 설치해놓은 낯선 위성방송 수신 접시는 여유작작한 자태로 밝은 달을 우러르고 있었다.
그래도 늙은 개한테 배웅이란 걸 받는구나. 그는 걸음을 빨리했다. 큰길로 나가야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 지난 여름 푸르렀던 당귀 밭을 뒤로하자 비로소 정류장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나타났다. 골짜기 그의 집만 잠든 게 아니라 마을 전체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술에 취해 길을 잃은 누군가가 눈 속에 파묻혀 죽어가도 해가 뜨기 전엔 아무도 모를 그런 깊은 잠에. 그가 부른 친구의 개인택시는 약속한 시간에 정류장에 도착해서 붉은 등을 깜박거렸다.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배낭을 추스른 그는 눈이 묻은 바지를 털며 집이 있는 골짜기를 돌아보았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에잇! 야, 돌아가라니까 그러네. 이 개새끼야! 돌아가라구…….”
먼길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처럼 늙은 개는 다리 위에서 달빛을 등에 지고 있었다. 당귀 밭을 건너온 눈보라가 온몸을 따갑게 때려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는 배낭을 눈 위에 던져놓고 시린 눈을 뭉쳐 계속해서 개에게 던졌지만 제대로 날아가는 것은 없었다. 그를 바라보는 늙은 개는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평소와 달리 그는 술잔을 잘 비우지 못했다. 다섯 병의 맥주를 사들고 여관방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중구난방 쏘다니는 마음을 뒤쫓느라 채 두 병을 비우지 못하고 계속해서 담배만 피웠다. 안주머니에서 꺼내 큼지막한 거울 귀퉁이에 꽂아놓은 십육절판 크기의 「금강전도」는 접힌 자리마다 보풀이 일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텔레비전과 옆방에서 들려오는 마귀들의 요사스런 소음을 견디며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눈을 부릅뜨고 그림에 몰두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암송하며. 세상의 다리 하나를 건너는 게 이처럼 어려운데 속세를 떠나는 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그림 맨 아랫부분의, 산문이라 할 수 있는 장안사 비홍교(飛虹橋)를 아직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는 그 위로 아득하게 치솟은 채 위용을 자랑했다. 「금강전도」를 그린 화가는 비홍교 아래의 속세를 냉정하게 잘라버렸다. 그는 독경을 잠시 멈추고 그가 떠나온 다리 아래편을 내려다보았다. 경대 위에는 스킨과 로션, 빗, 콘돔과 화장지가 가지런하게 놓였다. 전화기와 텔레비전은 창문 아래를 차지했다. 그가 화가였다 해도 당연히 지워버릴 만한 물품들이었다. 그는 텔레비전을 끄고 만폭동을 빠져나온 물이 저 아래로 흘러가는 다리를 미련없이 건넜다. 그림은 곳곳에 크고 작은 절을 숨겨놓았다. 그 절들의 이름과 내력을알아내려고 그동안 꽤 많은 시간을 바쳤다. 옛날 사진 속에서의 2층 대웅보전과 그림 속 건물의 일치로 장안사를 찾았고 표훈사는 조선족 동포가 그린 그림지도가 찾는 데 한몫 거들었다. 그림 속에 분명하게 표시된 구리 기둥은 절벽에 달라붙은 보덕암이 분명했고 그 위 바위를 쪼아 만든 불상과 작은 암자는 당연히 묘길상 아미타여래상과 묘길상암이었다. 마하연과 정양사는 만폭동을 경계로 갈라졌다. 그런데……아아, 이름을 찾지 못한 암자는 아직 많고 비로봉은 구름에 가려 모습을 감췄는데 내금강 깊은 속까지 따라와 오욕의 소음을 풀어놓는 저 마귀들을 대체 어찌할 것인가. 그는 발로 연거푸 벽을 걷어찼지만 잠깐의 침묵이 사라지기 무섭게 옆방 마귀들의 합창은 무수한 바퀴벌레처럼 벽을 비집고 고름처럼 흘러내렸다. 욱신거리는 발가락을 한 손으로 주무르며 미적지근한 맥주를 급하게 비웠다. 하지만 「금강전도」는 아랑곳없이 완곡하고 장대한 겹겹의 꽃잎으로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품은 듯 떠받쳤다. 골짜기 골짜기에서 쏟아져 내려온 물은 만폭동에서 만나 장안사 비홍교로 내리달렸고 그가 침대에 기대 있는 여관방으로 금방이라도 우당탕퉁탕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그는 그제야 전라의 여인으로 변신한 보살들이 부처를 유혹하려 했던 일화를 떠올렸고 옆방에서 들려오는 남녀의 사랑가에 빙긋이 미소지을 수 있었다. 졸음을 불러오는 온천수처럼 따스한 물이 여관방으로 차 오르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늙은 개는 여전히 외가닥 눈길 위에서 그를 배웅했다.
“스카이 라이프란 걸 달았는데 어째 아침부터 테레비가 하나도 안 나온다!”
“이거 언제 달았어요?”
초상집에 갔다가 삼 일 만에 쓰린 속을 달래며 돌아온 그에게 노모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파란 화면에는 ‘신호가 미약하여 수신이 불가능합니다’란 글만 떠 있었다.
“니 가던 날 달았는데, 잘 나오더니 갑자기 안 나온다.”
“이게 사용법이 얼마나 복잡한데 달았어요!”
“기사 말이, 젊은 사람들은 잘 다룬다고 하던데…….”
사십여 개의 버튼이 무슨 암호처럼 자잘하게 박혀 있는 리모콘이었다. 눈치를 살피던 노모는 사용법이 적힌 책자와 책받침을 밀어놓고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는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방에 앉아 리모컨 여기저기를 눌렀지만 화면은 처음 그대로였다. 안테나에 연결해서 보았던 기존의 세 채널도 아예 잡히지 않았다. 부엌에 있던 노모는 문 너머로 텔레비전과 그의 표정을 훔쳐보다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왔다.
“……고장났어?”
“내일 전화해서 기사 오라고 해요.”
그는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던져버리고 저녁상 앞에 앉았지만 한동안 수저를 잡지 않았다. 늘 들리던 텔레비전 소리가 사라진 골짜기 외딴 집의 고요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속마음까지 다 보일 것 같았다. 젓가락을 깨작거렸지만 밥알의 수는 눈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구운 김은 축 늘어졌고 된장국은 일주일 전과 다를 게 없었다. 꺼내놓은 지 오래된 김치는 바짝 말라 있었다. 어림잡아 열흘 가깝게 노모는 같은 종목의 반찬으로 달리기를 하는 중이었다.
“웬만하면 반찬에 신경 좀 써요.”
“나도 이젠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이란 걸 받고 싶다. 색신 언제 데려오냐?”
그는 쓰린 속을 손으로 주무르며 냉수를 마셨다.
“전에도 말했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시골로 오겠어요. 밖에 임대 아파트라도 하나 있어야지.”
“그건 널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집 보고 오는 거야. 그런 여잔 쉽게 오고 쉽게 떠난다!”
“됐어요. 관둬요.”
그는 반찬을 놓고 한 소리 한 걸 후회하는 얼굴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시위하듯 밥 한 숟가락에 술 한 잔을 쓰린 속으로 들여보냈다. 요동치는 뱃속으로 들어가 수위를 높여가는 소주는 당연히 평소보다 배나 빠른 속도로 불붙기 시작했다. 조금씩 상체를 흔들며 던져버렸던 리모컨을 다시 잡고 한 손으로 만지작거렸지만 파란 화면의 텔레비전은 신호가 미약해서 어쩔 수 없다는 완고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기사 말이, 젊은 사람이 전화하면 자기들이 안 와도 금방 고친다던데…….”
“고장난 걸 어떻게 고쳐요! 기사가 와야지!”
“다른 집들은 다 잘 나온다던데. 대낮에도 나오고. 큰댁 아연이한테 전화할까? 아연인 지 보고 싶은 거 다 본다고 하던데.”
“그냥 내일 낮에 전화해서 기사 오라고 해요. 그게 빨라요.”
그는 쓰린 배를 움켜쥔 채 밥상에서 물러나 건넌방으로 갔다. 알코올은 모두 한숨으로 변한 것 같았다. 바람조차 잠든 골짜기의 무거운 고요가 촘촘하고 끈적끈적한 거미줄처럼 집을 에워쌌다. 겨울이 긴 고장의 길고 깊은 밤을 술과 노름을 멀리하고 수월하게 건너가려면 텔레비전은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이다. 그는 눈 덮인 뒷마당으로 담배연기와 한숨을 함께 내뱉었다. 가수 전인권, 인순이, 그리고 마라톤 선수인 이봉주에 이어 산골짜기 외딴 집에도 위성방송 수신 접시가 달리다니. 그럼 나더러 평생 농사 지으며 사용하기 힘든 리모컨이나 작동하라는 뜻이렸다……. 무료한 겨울 날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단조롭고 단조로운 농촌을 뛰쳐나갈지도 모르니 사전에 백여 개의 다양한 채널로 붙잡아 보겠다는 의도렸다. 젊다니……. 그는 허물어지듯 이불 위로 쓰러졌다.
“승복만 입으면 누가 봐도 스님이라 믿겠습니다! 내가 오대산 중들 머리 배코 쳐봐서 아는데 머리 형태는 연꽃 봉오릴 닮은 게 최고죠.”
입 냄새를 풍기는 이발사는 면도날로 비누거품을 밀며 거울 속의 그에게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당연하게도 그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입을 열 수 없었다. 거울 속에 자리잡은 빡빡 머리는 이발사의 말 때문인지 정말 터지기 직전의 꽃봉오리를 닮았다. 예리한 면도날은 결 고운 나무를 깎듯 그의 목과 얼굴을 오르내렸다. 오른쪽 어깨에 놓인 손바닥만한 종이 위엔 면도날이 밀어온 거품과 짧은 머리카락이 두고 온 번뇌인 듯 한 획 한 획 자리를 넓혀갔다. 그는 눈을 감고 싸락눈을 밟듯 삭삭거리는 면도날 소리를 들었다.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절간을 뛰쳐나오거나 쌈질이나 하는 땡중들 중엔 결단코 이런 머리가 없죠. 대부분 네모꼴이거나 뒤집어놓은 삼각형이죠.”
그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눈도 뜨지 않았다. 감은 눈의 막막한 저편에 서 있는 늙은 개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켰다. 그의 콧구멍으로 뜨거운 숨이 빠져나왔다.
“테레비가 또 안 나온다! 저번처럼 퍼렇기만 하고 말도 화면도 아예 안 나와. 집엔 언제 들어와?”
집.
그는 쓰디쓴 인진(茵蔯) 환처럼 어금니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집’이란 낱말을 삼키거나 뱉으려고 애를 썼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스승을 만나러 가는 직행버스 안이었다. 집을 나온 지 겨우 이틀 지난, 저물어가는 오후였다. 그는 지난번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처방을 다른 승객들의 눈총을 받으며 십여 분에 걸쳐 화난 목소리로 반복해서 일러주었다. 노모가 한글을 읽을 줄 알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듯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몸을 눕혔다.
금강산은 먼 신기루로 아른거리는 산 같았다. 안주머니에서 「금강전도」를 꺼내 펼쳤지만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텔레비전이 고장난 집의 어두운 적막 속에 음화로 앉아 있는 노모의 모습만 떠다녔다. 윙윙거리는 버스의 소음에 한숨이 보태질 때마다 쑤군대는 승객들과 운전기사는 경멸의 눈빛을 감추지 않은 채 그의 동태를 곁눈질했다. 그는 치미는 분을 다독이며 털모자를 벗어제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갔다. 버스는 즉각 속도를 늦췄고 승객들은 표정을 바꾼 채 눈으로 그를 뒤쫓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노총각이 홀어머니가 해주는 반찬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스카이 라이프라는 위성방송의 복잡한 리모컨 사용법을 계기로 출가를 결행했다니 한마디로 우습고 어이없고 한심하다고. 객관적으로 보면 그 비웃음은 흠잡을 데 없이 타당합니다. 하지만……당신들의 기억을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그 기억 어디쯤에 자리한 당신들의 사랑, 이별에선 그러한 적이 없었던가를. 철없던 시절의 일이라고요? 그렇군요……철부지 적 일이군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터져버렸을 겁니다. 이해를 구하는 건 아닙니다.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볼펜을 강매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다만……당신들은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최소한 삶의 본질과 종교의 앞날, 나아가 조국의 미래를 위해 출가하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노모를 홀로 두고 도망치냐는 욕설을 시작으로 쓰레기를 담은 비닐 봉투가 연거푸 그에게 날아왔다. 개중엔 신발도 있었다. 버스를 되돌리라는 고함도 튀어나왔다. 출가해도 다를 게 없다는 한 중년 사내의 점잖은 충고는 곧 묻혀버렸다. 그는 심하게 흔들리는 통로에 우두커니 서서 낯익은 일가친척들의 얼굴로 변해가는 승객들이 내지르는 아우성에 고스란히 뭇매를 맞았다. 좁은 고갯길에서 반대로 방향을 바꾸려는 버스는 금방이라도 골짜기로 떨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그만 두라고 고함치다가 그는 의혹에 사로잡혔다. 노모는 나 하나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이들을 보냈단 말인가……. 그는 비틀거리며 운전석으로 다가가 기사가 움켜잡은 핸들을 반대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앞 유리창으로 눈 덮인 겨울 산과 하늘이 번갈아 자리잡기를 반복하다가 손쓸 여력도 없이 버스는 길을 벗어나 골짜기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 눈덩어리들이 앞다퉈 굴러가는 골짜기를 노려보았다.
“설마 금강산 어느 암자에 눌러앉아 중이 되려는 건 아니겠지?”
입을 다문 채 십여 분 가량 술잔만 만지작거리던 스승의 질문이었다. 그는 마른 웃음을 흘렸다.
“선생님, 내공으로 치자면 제가 스님보다 못할 게 없습니다. 아마 당장 화장을 해도 제 몸에서 더 많은 사리가 나올 겁니다.”
“사리? 그건 무슨 소린가?”
“스님들이야 애초에 세속의 욕망을 끊자고 결심한 채 절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분들 아닙니까? 하지만 저는 그러겠다고 한번도 마음먹은 적이 없을뿐더러 산 속도 아니라 저자거리에서 그렇게 살고 있으니 과연 누가 더 내공이 세겠습니까.”
인문학을 연구하는 스승은 제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공감하는 바가 많았는지 술자리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그에게 자신의 술잔을 건넸다. 얼굴에 내비치진 않았지만 그는 다소 참담한 심정으로 술잔을 받았다.
“자넬 보면 말이야. 아주 오래된 사람 같단 생각이 들어.”
“무슨 뜻입니까?”
“21세기에 말이야. 산골 마을에서 가난한 총각이 홀어머니 모시고 농사 지으며 살고 있잖아. 그 총각이 지금 농한기를 이용해 금강산 유람을 떠나려고 하잖아. 의미심장하지 않아?”
“박물관에 들어갈 이야기 속에 갇혀 사는 거죠.”
“아니야, 그렇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지 않다는 걸 자네도 알게 될 거야. 자, 우리 금강산을 위해 건배하지!”
그는 목젖까지 올라와 찰랑거리는 말들을 술에 섞어서 삼키고 또 삼켰다. 몸 속에다 사리를 만드는 일은 간단했다. 튀어나오려 기승을 부리는 말들을 일일이 되돌려보내는 수고만 하면 되었다. 힘이 부칠 때도 없진 않았지만 얼마간의 방황을 통과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그는 안주머니에 「금강전도」를 간직한 채 벽에 기대놓은 배낭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스승은 그런 그에게 자꾸만 빈 술잔을 내밀었다.
“선생님? 저……실은……금강산에 가서 돌아오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래? 그럼 앞으로 난 누구랑 술 마시지? 근데 말야. 아는지 모르겠다. 이제 금강산엔 선녀가 없다는 거. 게다가 아직 한겨울이야!”
“선녀 만나러 가는 거 아닙니다.”
“그럼 정말 중이 되려고?”
“선생님, 제가 중노릇은 잘할 것 같습니까?”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골목길의 술집들을 그와 스승은 늦게까지 순례하다가 헤어졌다.
그는 회색 반바지와 반팔 상의를 입고 주말의 북적거리는 찜질방 한증막 한쪽에 누웠지만 잠은 어디론가 달아난 지 오래였다. 집을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뜨거운 열기에 땀을 흘리는 사람들은 긴 겨울밤을 건너려는, 불 가마 속의 고행자들 같았다. 그는 모로 누워 한쪽 손으로 머리를 괸 채 안주머니에서 꺼내온 「금강전도」를 펼쳐놓았다. 금강산의 골짜기 골짜기를 빠져나온 물은 변함없이 만폭동에서 만나 장안사 비홍교를 향해 흘러갔다. 그림을 들여다보며 그는 스승이 하지 않은 말과 그가 묻지 못한 질문의 대답을 찾아 나섰다. 목과 명치께서 처음 샘솟기 시작한 땀은 서서히 온몸으로 번져갔다. 운동장 같은 찜질방은 묘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앉은 사람들은 그림 오른편의 무수한 기암괴석들을 닮았고 눕거나 벽에 기댄 사람들은 그림 왼편의 소나무가 자라는 토산(土山)을 연상시켰다. 그의 시선은 사람들 사이를 게으르게 쏘다니며 숨어 있는 암자를 찾거나 개울의 돌다리를 건너고 단숨에 봉우리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너……금강산 이화동이라고 들어봤어?”
어깨동무를 한 채 비틀거리며 스승의 아파트로 가는 도중에 건너온 질문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로등 아래서 걸음을 멈춘 스승은 어지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추스른 뒤 중요한 비밀을 전하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의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스승의 충혈된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배꽃이 필 때면 온 골짜기가 환하게 밝아져서 마치 눈이 온 날 아침 같다고 하는구나. 물론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겠지. 도피자들이 숨어 사는 마을이란 거야. 멋지지 않아?”
“……예, 선생님.”
“너 먼저 가서 터 잡고 있어. 쫓겨나면 나도 그곳에 갈 테니.”
어두컴컴한 아파트 숲으로 고개를 숙인 스승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왼편의 속세간과 오른편의 피안이 함께 들어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이화동을 제치고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두루마리 그림의 왼편 귀퉁이에 자리한 불안한 집을 찾아가는 스승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며 그는 택시를 기다렸다. 스승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학과가 없어질 거란 얘기는 소문의 옷을 벗고 사실의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매운 바람이 몰려다니는 겨울밤의 도로 변에서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느라 그는 자꾸만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온몸의 땀샘이 일제히 문을 열고 있었지만 그는 한증막을 나가지 않았다. 턱밑에 매달렸던 땀방울이 그림 위로 뚝뚝 떨어졌다. 스승이 말한 이화동(梨花洞)도 일만 이천 봉우리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배나무라고 고집할 만한 나무도 찾을 수 없었다. 차라리 「몽유도원도」의 오른편 복숭아나무 숲이 더 적당할 것 같았다. 금강산에 숨어 있는 여러 개의 현묘한 문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그림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그의 눈에는 모든 곳이 그곳 같았고 동시에 아니었다.
그는 반바지 주머니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들고 한증막을 나왔다. 집이었다. 새벽의 집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기를 노려보았지만 이내 다시 걸려온 전화는 울림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이 몇 신데 전화하고 그래요!”
“자고 있었냐?”
다급한 목소리의 노모는, 절실해야 보이거나 열린다고 일침을 놓는 것 같았다.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호흡을 한 뒤에야 그는 입을 열 수 있었다.
“……집에 무슨 일 있어요?”
“테레비에서 요상한 게 나온다! 벌거벗은 연놈들이 껴안고 돌아가느라 정신이 없어. 아무리 눌러도 케이비씨로 돌아가질 않아!”
“그냥 끄면 되잖아요!”
그의 목소리가 새벽의 찜질방을 울렸다. 마치 일만 이천 봉우리가 돌아보듯, 잠들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도망치듯 다시 한증막으로 들어갔다. 마음 속에서 피어났던 불안한 상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화가 치밀고 올라왔다. 끓어오르는 화의 색깔은 다양했다. 새벽잠이 없는 노모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습관대로 텔레비전을 틀었으리라. 정규방송이 나오지 않자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심야에 방영되는 낯뜨거운 성인 영화를 보고 놀란 것이다(볼륨은 또 얼마나 크게 해놓고 듣는가!). 그 놀란 마음이 시간도 잊고 아들을 찾은 것이리라. 그는 가부좌를 한 채 허리를 곧추세웠다. 반복해서 심호흡을 했다. 새벽에 집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무슨 큰일이 생긴 게 아니냐고 지레짐작하는 마음과 그 불안한 상상의 목록을 떨쳐버리지 않고선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단 한 발자국도 떼어놓지 못할 게 분명했다. 노모는 누구보다도 그의 착한 천성을 잘 알고 있었다. 외양간에서 도망치는 소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주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돈도 안 되는 농사일 하느라 고생했다며 잘 가라고 손 흔드는 주인은 또 어디 있겠는가. 얼굴에 매달려 있던 땀이 그의 긴 한숨에 후드득 떨어졌다. 결코 만만한 대결이 아님을 인정하는 한숨이었다. 곧추세운 허리에 통증이 몰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금강산 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려면 하루하고도 열두 시간을 더 견뎌야 했다. 눈을 감자 눈길에서 배웅하던 늙은 개가 돌연 자세를 바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사납게 짖으며 쫓아왔다. 허허. 그는 감은 눈을 뜨지 않고 전과 달라진 개를 노려보았다.
“흐흐……그러니까 그 나이에 가출을 했구나! 그럼 올해부턴 농산 어떻게 해?”
“농사 짓는 게 빚더미에 앉는 거니 차라리 도지 주는 게 낫다. 그 돈으로도 노인네 혼자 먹고살고 남아.”
“불효자구나.”
“야, 가만 보니 백사장이 아니라 백설장(百雪場)이네!”
남측 집결지인 금강산 콘도 해변의 백사장을 모두 덮은 눈을 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속초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친구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근심 어린 표정을 풀지 않았다.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눈을 파도가 모두 허물어뜨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바다 위에는 녹지 않은 눈 뭉치가 성엣장처럼 떠다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담배만 피우며 바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커피숍은 금강산으로 가려는 단체 여행객들이 들어오면서부터 부산스러워졌다. 그들을 보더니 친구는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새끼야, 넌 연로하신 어머닐 남겨놓고 도망치는 거야.”
그는 바다에 떠다니는 눈 뭉치는 처음 보았다. 물에 젖은 소금 덩어리가 생각났다.
“어떤 변명을 끌어 붙여도 용납이 안 돼.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 봐. 뭐라고 대답하나.”
전화를 받지 않자 노모는 그의 절친한 친구를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후 두 시로 이동하는 시계는 바다를 등진 채 벽에 걸려 있었다. 그는 일어나기 쉽게 친구의 시선을 피해 배낭 끈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고통 없는 출가는 없는 법이었다. 가출로 알고 있는 친구가 차라리 고마웠다.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니가 우리 집에 가서 농사 지으면 되겠다. 시간 많이 나잖아.”
“새끼, 말하는 거 하곤! 그 집 아들이 나냐? 니 답답한 거 아니까 지금 이 자리서 안 잡는 거야! 돌아다니다 봄 되기 전에 들어가라. 그때도 안 들어가면 내가 전국을 뒤져서라도 잡으러 다닐 테니까.”
“간다.”
그는 단체 여행객들의 끄트머리를 따라나섰다.
“내 말 명심해! 안 돌아오면 넌 인간도 아냐!”
그는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마지막으로 노모와 통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애써 참았다. 전원이 꺼지는 짧은 순간, 마음의 일시적인 정전이라고 할까, 그동안 관계했던 한 세계의 화면이 영원히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를 찾는 전파는 허공을 쏘다니다 휴전선 근처 남측 CIQ(세관․출입국 관리 및 검역)의 물품 보관소에서 발길을 돌릴 것이다. 홀가분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무겁지도 않았다.
어떻게 통행검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몽롱할 뿐이었다. 버스는 눈 덮인 비무장지대를 한 시간 가까이 달려 북측 CIQ에 도착했지만 떠오르는 풍경은 많지 않았다. 뒤편에서 무엇인가가 뭉턱뭉턱 떨어져 나가는 듯도 했고 또 무엇인가가 악착같이 쫓아오는 것 같아 자주 차창 밖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잠들었다. 북측에서 하는 통행검사 내내 하품을 쏟아냈고 졸음에 밀려 온천욕과 저녁식사도 생략한 채 숙소인 해금강 호텔에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버스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쉬지 않고 달려간 듯한 피로감이 몸과 마음을 빈틈없이 동여맨 듯한 기분이었다.
단잠에서 깨어났지만 그는 베개에 등을 기댄 채 침대 위에서 꼼짝 않았다. 함께 방을 쓰는 사내는 일찍 술에 취했는지 옆 침대에서 심하게 코를 골았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정리하고 잠시 쉰다고 했던가. 잠든 사이에 찾아온 두통이 사내의 코고는 소리와 박자를 맞춰 그의 머리 속에서 쿵닥거렸다. 스탠드 불빛 속으로 배낭을 끌어왔지만 이내 포기했다. 두통 약이 있을 리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냉장고로 가는 짧은 동안에도 무거운 쇠구슬을 닮은 두통은 제멋대로 요동을 쳤다. 그는 물 컵을 든 채 창문 앞에 서서 커튼을 조금 젖혔다.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맥박처럼 뛰는 두통을 견디며 검은 산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가 있는 온정리는 「금강전도」에 들어 있지 않았다. 「금강전도」는 금강산의 남쪽에서 북쪽을 내려다보는 형식으로 그린 그림이고 온정리는 동쪽에서 서쪽에 있는 금강산을 조망하는 곳이었다. 여행사에서 정한 관광 코스에도 「금강전도」의 중심을 이루는, 장안사 비홍교에서 만폭동으로 거슬러 오르는 코스는 없었다. 여행객들은 사실 그림의 바깥 부분만 관광하게 되어 있었다. 장안사, 유점사지가 휴전선 가까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침대 머리맡으로 탁자를 옮겨놓고 옆 침대의 사내가 사왔을 북한산 진달래술을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마셨다. 머리에 금이 갈 것 같은 두통을 다스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었다. 탁자 왼편에 놓인 「금강전도」의 무수한 기암과 소나무는 그의 두개골을 열어놓은 풍경인 듯 어지럽게 보였다. 그의 입으로 들어간 독한 진달래술은 그림 속의 골짜기 골짜기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휘돌아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두통의 돌기들을 진달래 향으로 적신단 말인가. 그것은 햇볕 쨍쨍한 여름날 달아오른 바위를 식히려고 작은 술잔으로 물을 떠서 붓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술잔을 포기하고 물 컵의 반쯤 술을 따라 한번에 마시고 불을 껐다. 왕복 네 시간이 소요되는 둘째 날의 구룡연 코스를 소화하려면 당연한 순서였다.
“……제발!”
스탠드 불빛은「금강전도」를 휘감는 여린 호박색으로 쏟아졌다. 불을 끈 지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서 사납게 흔들었다. 연결고리가 풀어진 기계처럼 머리 속이 덜컹거렸다. 술병을 잡았다가 갈등 끝에 포기했다. 옆 침대의 사내는 코골기를 멈추지 않았다. 천하 명산의 문턱까지 겨우 찾아왔는데 두통약이 없어 고전하다니. 그는 결국 전화기로 손을 뻗어 호텔 프런트를 찾았다. 노모가 받을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불안을 만지작거리며.
“이 오밤중에 니가 먼저 전화할 때도 다 있구나.”
그는 귀에 붙였던 수화기를 들여다보았다. 노모의 목소리였다. 젠장!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여보세요?”
“그래, 에미다.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냐?”
노모의 목소리는 의외로 따듯했다. 그의 마음 속에서 모래 산 하나가 가라앉았다.
“……관절염은 좀 괜찮아요?”
“그래. 술 조금 마시고. 옷은 든든하게 입고 나갔어?”
눈 녹듯 두통이 가라앉는 기미를 보이자 그는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간신히 견뎠다. 노모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몰라 그의 마음은 허둥거렸다.
“그만 주무세요. 끊을게요”
“여비는 충분해?”
침대를 비추던 불빛을 어둠의 입이 삼켜버렸다. 그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눈을 감았다. 허둥대던 마음이 조금씩 평온해지자 어둠 속으로 금강산 봉우리 봉우리가 점점 그 절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백 번도 더 펼쳐들었던 그림 속의 산이었다. 날아다니는 침대를 타고 다니며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눈 덮인 골짜기와 수직으로 얼어붙은 폭포, 검푸른 소나무 숲의 호위를 받고 솟아오른 총석(叢石)들이 한데 모여 연꽃처럼 피어 있었다. 그러나 토산 아래에 자리잡은 채 일만 이천 봉우리를 경배하던 그림 속의 절들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절이 없는 산에서 출가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만폭동 깊은 골짜기를 몇 번이나 오르내렸지만 그의 노력은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짐승들의 발자국만 어지럽게 찍혀 있는 눈의 골짜기에서 낙심하고 돌아서려던 그를 사로잡은 것은 다른 데에 있었다. 들어가는 길이 곧 나가는 길인 골짜기의 절벽턱밑에서 나무를 하는 사내를 발견한 그는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말 좀 묻겠습니다. 이 골짜기에 절이 없습니까?”
나무꾼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그의 행색을 살폈다. 그는 서둘러 담배를 권했다.
“절간은 왜 찾수?”
갓 잘라낸 나뭇등걸에 걸터앉은 그는 눈 위에 소복하게 쌓인 톱밥을 어루만졌다. 참나무로 만든 발구에는 나뭇단이 가득했다. 나무꾼은 그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중노릇이나 해볼까 하고요.”
나무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도 따라 웃었다.
“너무 늦게 왔소. 오십여 년 전에 왔더라면 모를까.”
“……그렇네요. 늦게 와도 한참 늦게 왔군요.“
“담배 보실 받았으니 답례로 술 한잔 드리리다.”
나무꾼은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배낭에서 술을 꺼냈다. 그는 맑고 독한 술을 몇 잔 받아 마셨다. 고라니 고기를 삶아 말렸다는 안주에선 노린내가 났다.
“이 산 속에서 혼자 삽니까?”
“아니오. 어머니와 함께 산다오.”
그는 나무꾼의 얼굴로 지나가는, 너무 익숙한 그늘을 놓치지 않았다. 동병상련을 느끼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의 색깔만 서로 조금 다를 뿐이었다. 눈 쌓인 골짜기의 절벽 아래서 아주 오래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취기가 오르고 짧은 해가 절벽의 그림자를 늘어뜨리자 나무꾼은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누군가가 대화를 엿들었다면 필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두 노총각의 넋두리라고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처녀들의 이기적인 결혼관에 대해 신랄하게 성토하자 나무꾼은 한술 더 떠서 맞받았다. 산림정책의 비현실성이 도마 위에 올랐고 늘어만가는 농가부채가 그 뒤를 따랐다.
격론이 휩쓸고 간 골짜기는 늘 쓸쓸한 법이었다. 토로할 대상은 얼마든지 더 있었지만 그와 나무꾼은 입을 다문 채 모닥불을 쬐며 까마득한 절벽만 바라보았다.
“혹시 이 산 어딘가에 있다는 이화동이라고 압니까?”
나무꾼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모닥불 위에 새 나뭇가지를 얹었다. 전설만 남았을 뿐 세상에 도피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컴컴한 아파트 숲으로 비틀거리며 사라지던 스승을 떠올렸다.
“옛날에……한 나무꾼이 이 산에 살고 있었소.”
담배에 불을 붙인 나무꾼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 속에서 가난하게 사는 착한 총각 나무꾼(좋지 않은 조건만 두루 갖추고 있다). 어느 날 변함없이 나무를 하는데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만난다. 나무꾼은 사슴을 숨겨준다(어느 날……불현듯 찾아올지도 모를 그 무엇을 기다리는 막막한 심정을 그가 왜 모르겠는가!). 하여튼 이쯤되면 사슴이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천상의 선녀들이 금강산으로 내려와 목욕을 한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다. 더구나 목숨을 구해준 답례로 떠꺼머리 총각을 선녀와 맺어주려고 비책을 일러주지 않는가. 그는 참을 수가 없어 나무꾼의 말을 잘랐다.
“그럼……지금 사슴을 기다린단 얘깁니까?”
나무꾼이 모닥불을 뒤적거리자 자잘한 불티들이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재가 되어 날아갔다.
“당신도 그 비슷한 걸 찾아 헤매는 거 아니오?”
자리에서 일어난 나무꾼은 장갑을 끼고 낫을 잡았다. 푸른 생솔의 가지들은 나무꾼의 낫질에 여지없이 잘려나갔다. 그도 나뭇등걸에서 엉덩이를 뗐다. 떠나야할 시간이었다. 나무꾼과 나누는 악수는 역시 쓸쓸했다. 그는 들어올 때 찍어놓은 발자국을 밟으며 골짜기를 내려갔다. 사슴이 일러준 대로 옛날 옛날의 한 나무꾼은 목욕하는 선녀의 깃옷을 감춘 뒤 선녀와 결혼했다. 아이 둘을 낳고 잘살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여곡절의 막이 다시 올랐다. 눈길을 내려가는 그의 다리가 자주 휘청거렸다. 나무꾼과 마신 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나무꾼도 낫질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쪽 손을 어정쩡하게 들어올렸다가 이내 내렸다. 옛날 이야기의 골짜기에서 나무를 하며 사슴을 기다리는 나무꾼도 장갑 낀 손을 흔들었다.
“낮에 점 봤다!”
떠돌이 점쟁이가 마을에 왔다는 얘기는 그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점괘가 어떻게 나왔냐고 묻지 않았다. 저녁상에만 몰두했다. 연초마다 되풀이되는 노모의 행사니 색다를 것도 없었다. 집 곳곳에 붙어 있던 낡은 부적이 새 부적으로 교체될 것이다.
“나는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서 니랑 산단다!”
맙소사! 그는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방금 넘긴 밥과 반찬이 목구멍으로 올라오려 하는 것도 간신히 진정시켰다. 잘났다는 형, 누이들은 대체 어떤 운명을 타고났기에 이렇게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단 말인가. 그는 냉수를 들이키고 점괘에 만족해하는 노모에게 미소를 보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나이 마흔이 되면 중이 될 거야. 장난삼아 하는 말이 아니라니까.”
노모는 그의 인생 설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점쟁이의 말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눈빛이었다. 그는 슬그머니 술병을 끌어당겼다. 도끼를 들고 점쟁이를 무찌르러 가려면 약간의 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북측 CIQ를 출발한 관광버스는 비상등을 깜박이며 천천히 비무장지대로 접어들었다. 남에서 발원해 북으로 가는 유일한 강이라는 남강은 얼음과 눈에 덮여 마치 비무장지대를 빠져나오는 거대한 백사 같았다. 나무꾼을 만났던 만폭동 어느 골짜기에서 졸졸거리던 물도 남강과 섞인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나무꾼은 사슴과 만나게 될까. 그는 차창 너머로 펼쳐진 남강 주변을 우울한 표정으로 훑었다. 스무 서너 살 무렵 남강의 남쪽에 자리한 건봉산 꼭대기에서 소총을 들고 질리도록 본 산이 금강산이었다.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휴전선을 넘은 어느 사병은 북풍에 실려온 삐라 속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금강산 표훈사에서 고운 한복을 입은 여자와 손을 잡은 채. 바람마저 잠든 새벽이면 월북을 권하는 그 사내의 목소리와 남쪽의 유행가가 어지럽게 뒤섞이곤 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금강전도」를 꺼내 펼쳤다. 몇 번만 더 접었다 펼치면 닳아서 조각조각 나뉘어질 것 같았다. 그는 접힌 선을 따라 그림을 찢었다. 모두 여섯 장으로 나뉘어진, 삐라 같은 그림은 의자의 등받이에 달린 그물 휴지통 속으로 들어갔다. 차창 밖의 금강산도 조금씩 뒤편으로 밀려났다. 그는 나무꾼에게 제대로 된 이별주 한잔 건네지 못한 게 아쉬웠다. 시간 속을 벗어나 길 위에서 둥둥 떠가는 것만 같던 버스도 마침내 남쪽 철조망 앞에 도착했다. 마치 다른 시공간을 여행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긴 한숨을 내뱉고 그는 피곤한 눈을 감았다. 기다렸다는 듯 나무꾼은 그의 옆에 앉은 것처럼 못다 한 이야기를 속삭였다. 다시 나타난 사슴의 도움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 처자와 만난 나무꾼의 이야기를. 그러나 지상에 남은 홀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달리다 아내가 주선해 준 용마를 타고 집으로 내려온 나무꾼.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팥죽을 쑤어 먹이다가 그만 뜨거운 죽을 말 등에 흘렸다는 묘한 이야기를. 놀란 말은 홀로 승천하고 늘 하늘만 쳐다보던 나무꾼은 죽어 수탉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봄눈이 내렸다. 어두운 하늘에서 퍼붓는 눈을 쳐다보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늙은 개는 솥뚜껑 같은 위성방송 수신 접시가 달려 있는 헛간 지붕의 그를 향해 마당에서 사납게 짖었다. 외등이 켜지고 얼마 있지 않아 허리가 몹시 굽은 노모가 밖으로 나와 개를 달랬다. 늙은 개는 노모의 어르는 소리에 꼬리를 흔들더니 다시 지붕을 향해 짖어댔다. 그제야 노모는 힘겹게 허리를 펴고 침침한 눈으로 헛간 지붕을 살피다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놈에 수탉의 새끼가 미쳤나! 오밤중에 지붕엔 왜 올라가 있어!”
그는 노모의 욕설에도 아랑곳없이 눈이 퍼붓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서럽게 울었다.
“꼬끼오오오-!”





김도연1966년 강원도 평창 출생.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 지은 책으로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음. 강원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