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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뫼 하늘못
윤은경
태고에 하늘 내려와 만물을 길렀나니 그 처음 디딘 곳이 흰머리뫼 하늘못이라, 삭의천하 신시를 열어 하늘자손을 내리었으니 내 뼈와 살이 다 그로부터 생겼으리. 천길 뼝대로 솟은 묏봉 우러르며 달문으로 흘러내리는 물길의 낮은 울음, 고요히 손 끝을 타고 온몸을 돌아 다시 목울대를 넘는 비룡폭에 이르면 기어이 통곡은 폭발한다. 잊었으리, 아주 잊었으리, 천군만마의 고구려 사내들이 대협곡으로 송화강으로 압록강으로 두만강으로 드넓은 만주 벌판으로 수많은 길을 내달아 간 뒤, 그 길 거슬러 한없이 느린 절뚝걸음으로 돌아온 나는.
그러나 본다, 내 안에도 뜨겁게 흐르는 용암 한 줄기, 불꽃 숨긴 검은 흙의, 마침내 담자리이거나 두메양귀비이거나 어리곤달비 좀참으로 이글이글 스미며 번지며 백두대간 태백 준령 아무르 장백으로 흰 옷자락 뻗치며 마구 솟구쳐오르는 것을.
아, 침묵하시는 흰머리뫼 하늘못,
피와 눈물로 온몸 적시고도 푸르디 푸른 어머니여.
그 너른 품 안에 어린 백성인 나를 거두사 두 무릎 꺾어 사뢸 밖엔 없게 하신다.
- 부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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