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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 작가회의 회원이신 윤은경 선생님께서 사무처 메일로 보내온 시입니다.
흰머리뫼 하늘못
윤은경
1
송강하는 하늘못 가는 서쪽 문이다. 적송 우거진 산길에 들어서면 짐승의 거친 숨소리인 양 헐떡이며 건너온 천만리 꿈이 더욱 아프다. 즈믄 해를 다듬고 또 다듬어 몸피 흰 자작이며 꼿꼿한 가문비, 굼부리 깊은 숲을 오르는 서파, 세사만파에 쓸린 마음은 갈피없이 오늘따라 더 두근거리고, 발걸음 차마 못 내딛고 길을 놓칠 때, 홍진에 젖은 잎 다 버린 사스레 일제히 손들어 가리키는 곳. 비안개 자욱하다. 아바지의 아바지의 한아바님이신 흰머리 하늘님,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운무에 숨으시곤 예서부터는 무릎걸음으로, 피 어린 무릎걸음으로 오라 우레 호통치신다. 눈감아 굵은 눈물 뿌린 뒤에야 마침내 허연 서릿발 걷으시고 못 이긴 척 어린 백성을 허락하시나니, 천지개벽의 그 모습 그대로 오너라 어서 오너라, 내 너를 안을 수밖엔 없구나. 팔 벌려 천고의 하늘못 길 열어 주신다.
2
태고에 하늘 내려와 만물을 길렀나니 그 처음 디딘 곳이 흰머리뫼 하늘못이라, 삭의천하 신시를 열어 하늘자손을 내리었으니 내 뼈와 살이 다 그로부터 생겼으리. 천길 뼝대로 솟은 묏봉 우러르며 달문으로 흘러내리는 물길의 낮은 울음, 고요히 손 끝을 타고 온몸을 돌아 다시 목울대를 넘는 비룡폭에 이르면 기어이 통곡은 폭발한다. 잊었으리, 아주 잊었으리, 천군만마의 고구려 사내들이 대협곡으로 송화강으로 압록강으로 두만강으로 드넓은 만주 벌판으로 수많은 길을 내달아 간 뒤, 그 길 거슬러 한없이 느린 절뚝걸음으로 돌아온 나는.
그러나 본다, 내 안에도 뜨겁게 흐르는 용암 한 줄기, 불꽃 숨긴 검은 흙의, 마침내 담자리이거나 두메양귀비이거나 어리곤달비 좀참으로 이글이글 스미며 번지며 백두대간 태백 준령 아무르 장백으로 흰 옷자락 뻗치며 마구 솟구쳐오르는 것을.
아, 침묵하시는 흰머리뫼 하늘못,
피와 눈물로 온몸 적시고도 푸르디 푸른 어머니여.
그 너른 품 안에 어린 백성인 나를 거두사 두 무릎 꺾어 사뢸 밖엔 없게 하신다.
* 松江河 : 백두산 서쪽에 있는 마을, 기차역이 있음.
** 西坡 : 백두산 서쪽 능선
*** 數意天下 : 「단군신화」에 환웅께서는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 싶어 하셨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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