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시국에 대한 문학인 849인 성명
김영삼정권은 눈먼 질주를 멈춰라!
지금 공주교도소에서는 작가 황석영이 현 시국에 대한 항의의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그가 병든 몸으로 단식을 시작한 것은 지난 13일이다. 오늘로서 닷새째. 랜 영어생활을 해온 탓인지 벌써 혈압이 내려가고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위험하다고 한다. 그는 왜 그러는가?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을 비롯한 849인이 서명을 이미 마쳤고, 점점 더 많은 작가들이 동참을 표시해오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작가들이 집필활동을 밀쳐두고 현시국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가?
우리는 지금 우리가 맞서 있는 이 현실이 작가로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상황임을 말하고자 한다.
지난해 12월 26일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새벽 6시 신한국당은 단독으로 안기부법 개정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단 7분만에 날치기 통과시켰다. 일정한 저항을 예상하면서도 대선에 유리 하기 때문에, 또 언론 검찰 경찰 등의 기구를 움직여 무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강행한 것이다. 여당의원들만 모여 섰다 앉았다 세 번만에 통과시킨 이들 법안의 내용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최근 우리 사회 경제불황의 원인을 노동자측에 전가하여 재벌의 이익을 보장해 주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과 불고지죄 수사권을 다시 안기부에게 주어 연말에 있을 대선에서 권력을 재창출하려는 야욕에 있다. 이로써 파생된 제반사태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이른바 문민대통령이고 민주투사라고 자칭하는 김영삼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오만에 있다.
그 경과와 내용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첫째, 개악된 법안들은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
이 법안들은 충분한 토의와 토의와 합의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정당한 법은 일방의 주장과 독선적 논리에 의해 어둡고 밀폐된 곳에서 음모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스스로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비민주적 성격을 분명히했다.
우선 개악된 노동관계법은 그동안 노사개혁위원회의 진행과정에서 합의했던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마저 무시하는 비민주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법은 경영자측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했다.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 대치근로 허용, 법정퇴직금제, 폐지 등이 그것이다. 만일 이 법이 시행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노동자들과 봉급생활자들의 생활은 훨씬 열악해질 게 뻔하다.
우리의 정신문화적 상황과 관련하여 더욱 심각한 것은 안기부법인다. 국가안보는 어떤 국가에서도 중요한 책무이다. 안보 능력이 없는 정부는 공동체 전부의 안전을 위해 퇴진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체제가 지켜애 할 가치와 목쵸, 이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규정이 정권을 쥐고 유지하기 위한 각도에서 자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 핵심이 안기부의 수사권에 있다. 그간 위기에 처한 체제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민주인사 처벌을 불가피한 선택인 것처럼 정당화시켜 왔다. 이를 개선하기는커녕 문민정부 이전 수준으로 개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 노동계 야권 시민단체들의 저항은 정당하다.
지금 정부가 날치기 통과시킨 이 악법들은 처음부터 국민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은 법적으로도 정당하다. 헌법에서 단체행동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지도부는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파업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으며 매번 신고된 집회를 해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우려는 악법 강행으로 발생하는 사회정치적 손실의 계산을 무시한 단견일 수밖에 없다.
노동관계법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안기부법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 및 불고지죄 사건에 대한 안기부 수사권을 부활시킨 이 법은 사상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다고 비판 받아 1993년 김영삼정부의 출범과 함께 삭제한 것을 고스란히 되살린 것이다.
셋째, 최근 투쟁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오만하고 비열하다.
전국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줄곧 반민주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를 일관했다. 특히 최근들어서는 국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희석시키기 위해 얼토당토않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위장된 좌익세력의 움직임이 있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경과를 지켜본 우리는 현정권에게 경고한다. 지난 역사 속에서 악법을 창출한 사례는 많았다. 그러나 그 성공은 언제나 파멸의 시작이었다. 분단체제를 이용하여 권력을 지탱하려는 술수는 단기적으로는 정권 유지에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저항을 피할 수 없었다. 이를 상기시키면서 우리 작가들은 국민여러분에게도 당부드리고자 한다.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켜나가는 법이 아닌 것은 당연히 사멸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법이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않은가/'/라는 실정법위주의 사고는 늘 악을 용납해왔다. 여기에서 진정한 의미의 법의 정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법의 정신을 파괴하는 실정법은 민주주의 사회를 방어하기 위해서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황석영 이하 옥에 갇힌 다섯명의 동료문인들을 생각하며, 미국 흑인 인권투쟁의 아버지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말을 돼새기고자 한다.
"요구하지 않으면 권력은 아무것도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전제 정치의 한계는 그 정치로 억압받고 있는 자들의 인내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 번 그것을 실험당하고 있다. 이 사태를 결코 좌시하지 말자.
김영삼 정권은 눈먼 질주를 멈춰라!
1997. 1. 17
문학인 849인 일동
|
문서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