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라는 배(號)가 침몰하고 있다
-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중단에 대하여
지난 9월 5일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개봉 이틀만에 메가박스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상영이 중단되었다.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천안함과 더불어 ‘표현의 자유’가 심해로 침몰하는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침몰한 것은 비단 천안함만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힘과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보수 세력에 의해 침몰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부 보수 세력이 이 영화의 개봉을 저지하기 위해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법원은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 억제는 검열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에 따라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라도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보수 세력의 요청을 기각했다. 법원 결정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어선 안 된다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라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그 기본원칙이 벼랑 끝에 서 있다.
메가박스 측은 일부 단체와 개인들의 항의로 생길 수 있는 불상사로부터 관객을 보호하기 위해 상영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는 항의와 협박이 들어오면 그 단체와 개인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지만 메가박스 측의 행동은 달랐다. 심지어 메가박스 측은 오직 관객의 안전을 위한다는 말만을 되풀이할 뿐 극장에 압력을 행사한 단체와 개인의 정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침묵은 숱한 의혹과 시민들의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직면하여 영화계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은 이 문제가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동시에 모든 예술인들의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문제임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고 심지어 법원마저도 제지하지 않은 영화 상영을 정체도 알 수 없는 단체가 협박으로 중단시켰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영화의 역사에서 상영 중이던 영화가 일부 단체와 개인의 협박 때문에 상영이 중단되었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예술인의 이름으로 촉구한다. 메가박스 측은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단체의 정체를 밝히고, 경찰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협박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훼손한 해당 단체와 그 배후에 대한 수사에 즉시 착수하라. 일부 보수 이데올로그들은 이 영화가 정부와 관계당국의 발표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변 홍보물이 아니다. 영화가, 예술이 정부 당국의 공식입장과 다른 것이 왜 문제이며, 언제부터 예술이 정부의 시각이나 입장을 고려하면서 만들어졌나?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상영을 계기로 천안함 침몰 같은 민감한 사건들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는 것이고, 표현과 토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는 것이다. 메가박스 측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사태의 해결책은 명백하다. 경찰과 검찰은 무력으로 헌법적 권리와 가치를 짓밟은 단체를 철저하게 수사하고, 문화관광부를 포함한 문화․예술 담당 정부 부서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대선 때 작가들에게 적용되었던 경찰과 검찰의 잣대가 이번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예의주시할 것이다. 아울러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영화계와 힘을 모아 싸워나갈 것이다.
2013년 9월 12일
(사)한국작가회의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