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
한전은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중단하고
주민들의 피어린 한탄에 귀 기울여라!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이 할매는 욕심 없습니다. 오직 요대로 살다가 죽도록 해주십시오.”
한전이 작년 6월 밀양 주민들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을 때, 재판장에게 낸 탄원서에 밀양의 어느 할머니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여기에 송전탑 건설에 대한 어떤 반대의견보다도 핵심적인 것이 담겨져 있다. 황금이나 국익 같은 것들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있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누대로 우거진 자연 속에서 삶과 땀으로 살아온 공동체일 것이다. 그 투박한 손들을 잡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원적 토대라고 문학의 심장들은 지금껏 증언해 왔다.
다수의 편리가 항상 소수의 희생 위에서만 가능했었던 지난 시간은 쉼 없이 반성되어야 마땅하다. 우리 사회는 약자이자 주권자인 민중들을 배제한 채 법리와 행정 편리성의 이름으로 폭주와 절단을 일삼아 왔다. 지금 한전이 경찰력의 엄호 아래 일방적으로 벌이는 엄포와 부상당한 주민들은 참담한 표정은 이 화면의 연장이다.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의 배경에는 수도권 시민들에 대한 무한한 전력공급이라는 희대의 난센스가 도사리고 있다. 문명이 제공하는 편리는 유한성의 자원이며, 지불비용은 국가의 것이 아닌 시민의 것이다. 언젠가 소진되고 말 에너지를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대안을 궁리하는 것은 시민의 책무이기 이전에 에너지를 업으로 먹고 사는 공공기관, 기업들의 책임이 더 일차적이다.
산과 들을 파헤쳐 세워진 철탑의 풍경은 묵시록적인 풍경에 가깝다. 이것은 언젠가 사라지게 하거나 줄어들게 해야 할 풍경일 뿐이다. 전열기가 내품는 가상불빛과 가상온도는 계절을 무화시키며, 익숙한 편리함은 반대로 느리고 예민한 감각과 따뜻하고도 여린 감정을 무디거나 잃게 만든다. 대개 도시에 사는 우리 또한 이러한 편리의 수혜자로서 성찰적 인식 속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평온한 누군가를 배제하고 겁박하고 파괴해 얻는 찰라적 편리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들이 소수의 지역민이기 때문에 만만한 나이 든 농민이기 때문에 그들을 더 무시했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울분이 터진다. 그렇게 밀양은 제주 강정의 옆 마을이며 동병상련으로 앓는 폐허의 고향이다.
결론적으로 한전은 송전탑 건설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주민들이 직접 체감한 한전의 비인간적인 행태로 보자면 송전탑 건설의 절차적, 도덕적 명분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한전은 대대손손 살아 온 공동체를 파괴했으며, 그 땅을 닮은 주민들의 영혼에 구정물을 뿌렸으며, 핵발전소가 필연적으로 갖는 가공할 파괴력을 은폐해 왔다. 예견된 공포와 재앙을 등 뒤에 두고 누리는 편리는 진정한 편리가 아니다.
또한 현장에서 벌어지는 차고 넘치는 패륜적 상황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다. 어르신들을 욕하고 패대기치는 젊은 용역들의 광포함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이 패륜들은 자본과 국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고용된다는 점에서 이 사회의 ‘질서 수호’가 얼마나 질 낮은 폭력성에 의존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전은 송전탑 건설 강행을 멈추고 “오직 요대로 살다가 죽도록”해 달라는 할매, 할배들의 지혜 가득한 혼의 설법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국가적 공공이익의 첫째는 함께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 분노 대신 평화가, 미움 대신 사랑이, 불신 대신 신뢰가, 그리고 존중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분들을 본디 그 자리로 모시기 바란다. 이번 사태가 민주주의를 수행하는 인식과 방식이 전근대적임을 보여주었던 만큼 이를 성찰하는 계기이자 에너지 문제를 보다 진일보시켜 고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13년 5월24일
(사)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작가네트워크, 리얼리스트100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