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팽나무 잎이 떨어져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가을이 단풍든 나뭇잎과 함께 깊어 가고 있습니다. 나뭇잎의 붉고 노란 색은 푸른색이 변하면서 그렇게 물들어가는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풍의 붉은 색은 본래 나뭇잎 속에 들어 있던 것이라고 합니다. 날이 추워지고 기온이 낮아지는 걸 알아챈 나무들이 잎 안에 들어 있던 붉은 색소를 꺼내 놓는 것이라고 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과학자들은 그런 걸 들여다보는 신통한 눈을 가졌습니다.

나는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나무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이지요. 예술가들 중에는 무슨 악기소리든 한번 들으면 금방 연주해 내는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의 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경탄해마지 않습니다. 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것도 참 대단한 능력입니다. 역학을 하는 분들은 사람들의 전생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꿰뚫어보는 눈이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이승의 삶을 예측해서 알려주기도 합니다. 모두 다 신통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들을 사람들은 존경하고 놀라워하며 그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듣고자 합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신통력을 천안통(天眼通), 귀로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듣는 신통력을 천이통(天耳通),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신통력을 타심통(他心通), 지나간 세상의 생사를 자재하게 아는 능력을 숙명통(宿命通)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경계를 변하여 몸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음대로 날아다니기도 하는 신통력을 신족통(神足通)이라고 합니다. 이중에 어느 한 가지만을 가지고 있어도 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왕 파순은 이중에 다섯 가지 능력, 즉 오신통(五神通)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육신통(六神通)을 하셨으니까 한 가지 신통력을 빼고는 부처님과 거의 같은 능력을 가졌던 것이지요. 마왕 파순도 선정을 닦은 힘으로 이런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법스님은 부처님과 마왕 파순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한 인물은 중생을 살리고, 한 인물은 중생을 죽입니다. 한 인물은 희망의 길을 열고, 한 인물은 절망의 길로 우리를 몰고 갑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요? (……) 싯다르타는 사적인 이기심이 전혀 없는, 대비 원력의 문제 의식으로 선정을 닦았기 때문에 탐진치의 불꽃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마왕 파순은 이기적인 욕망에 따라 선정을 닦았기 때문에 탐진치의 불길을 끌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이기심이 앞선 마왕 파순은 아무리 선정을 닦아도, 다른 것은 다 가능했지만, 하늘을 날고, 과거를 꿰뚫어보고, 미래를 꿰뚫어보고, 아픈 사람을 병 낫게 하는 등 별의별 신통력을 다 부릴 수 있었지만, 미혹과 번뇌의 불길을 소멸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오랜 선정수행의 결과 뛰어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기적인 욕망이 앞서면 결국 마왕의 길로 갈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것이 삿된 수행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옳은 것도 아니며 참된 것이라 할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공부를 하지 않은 채 지니게 된 뛰어난 능력은 얼마든지 그를 마왕의 길로 인도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우리 같은 속인은 앞으로도 부처님처럼 자유자재하게 번뇌를 끊는 누진통(漏盡通)을 지니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이 아침 내가 가진 능력이 나를 마왕의 길로 인도하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무릎 꿇고 기원합니다.

<2009.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