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싼 것이 편한 인생이 있다 팬티도 양말도 런닝구도
싼 것을 걸쳐야 맘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한번 산 운동화를 사골 고듯 신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보석처럼 지키는 한 가지가 있다
그렇게 산 것을 걸침으로써 그들에게
밸런스를 맞추고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무언가가 하나씩은 있다
지금 남루 속에
천금같이 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청노새 눈망울처럼 절실한 그리움의 보석은 무엔가
무엔가 말이다

어제는 분명 긴 봄밤이었는데
오늘 잠을 깨니 단풍 이는 가을 새벽이었다
짧은 꿈속에서 조용히 흔들리던 붉은 떨림-
일장춘몽 속에 나 진정 세상 모두를 사랑하였으므로
내겐 세상 하나가 반짝이는 옥빛 구슬이었다
한없이 걸어 들어가는 구슬문이었다
사랑은 덧없이 싼 가을 낙엽이었으나 나
오늘도 보석 같은 단 하나의 사랑을 따라간다

---박철 '보석' 전문

박철시인의 말대로 싼 것을 걸쳐야 맘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팬티도 양말도 런닝구도 싼 것을 걸쳐야 편한 사람들이 있다. 싼 것이 편해서 사 입는 것일 뿐 그들의 인생 자체가 싸구려인 것은 물론 아니다. 싼 것을 걸치면서 그들이 속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싼 것을 걸치면서 그들이 보석처럼 지키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소중한 무언가가 하나씩은 있다고만 말한다.

시의 뒷부분에 의하면 "사랑은 덧없이 싼 가을 낙엽이었으나" 그 사랑이 자기에게는 보석 같아서 그 사랑을 따라간다고 말한다. 남들이 낙엽처럼 여기저기 뒹굴어 다니는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도 그에게는 보석처럼 소중한 것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바로 그와 같다고 시인은 말한다. 모든 남자가 공주 같은 여자를 사랑하고, 모든 여자가 왕자 같은 남자를 사랑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 저 친구는 저런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지만 그 남자가 그녀에게는 보석 같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못 생긴 여자를 애인이라고 좋아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한 보석 같은 부분을 그 남자는 보았기 때문에 그녀를 선택했을 것이다.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세상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옥빛 구슬"이라는 것이다.

어제 피었던 봄꽃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낙엽이 마당을 덮는 가을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인생이다. 그런 인생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느 것이 진정으로 보석같이 소중한 것인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값싸고 하찮고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 중에 삶의 보석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보석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으면 싼 것을 걸쳐도 편한 것이다. 속에 보석을 지니고 있으므로 허름하고 싼 것을 걸쳐서 밸런스를 맞추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자존심의 표현인가.

<2009.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