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주말에 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고장 시인의 문학관에서 출발하여 그에게 시를 가르쳐준 스승의 생가와 문학관, 그리고 이십대 문학청년시절 함께 문학을 시작한 둘도 없는 친구였으나 역사 속에서 완전히 상반된 길을 간 두 시인의 문학행로를 따라 멀리 전라북도 고창까지 다녀왔습니다.

가을 들길은 아름다웠습니다. 벼가 참 잘 익어가고 있어서 들판의 빛깔도 보기 좋았습니다. 가을볕을 받아 더욱 흰 빛으로 빛나는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도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출발을 예정보다 15분 정도 늦게 했지만 오전프로그램은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나는 준비된 자료를 가지고 열심히 한 시인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설명을 했고 사제지간에 주고받은 문학적 영향에 대해서도 구체적 증거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였습니다.

고창에서 문학관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돌아오려고 할 때까지도 문학기행은 여행 일정표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기 직전 누군가 제게 "저 앞에 보이는 바다좀 들렀다 가면 안 될까요?" 하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다에 들렀다 가면 한 시간 이상 늦어질 수 있거든요. 바다를 보고 가자는 의견에 찬성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그랬더니 대부분이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정된 대로 지금 돌아가자는 사람은 저하고 둘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바다로 갔습니다. 갯내음이 막혔던 코를 뻥하고 뚫고 들어오는 갯가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파도보다 더 출렁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바다는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는 갯바닥에 손을 넣어 게를 꺼내 올리기도 하고 누구는 바다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작은 포구였지만 바다라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았는지 이왕이면 횟집에 한 시간만 앉았다 가자고 꼬드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장어구이집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바다는 바알갛게 노을에 물들다가 어둠에 잠기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나는 낮에 다 설명하지 못한 것을 열심히 설명했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예정보다 늦어져 돌아오는 동안 피곤이 어둠처럼 몸을 덮어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임어당은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참된 여행자에게는 언제나 방랑의 기쁨과 유혹과 모험심이 있다. 여행이란 곧 방랑이다. 방랑이 아닌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의 참뜻은 아무런 의무감 없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훌훌 털고 떠나가는 목적 없는 길 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는 "아무것도 보려하지 말고,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고 떠나야 한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신선한 감동과 만나야 그게 진짜 여행이다." 라고 말합니다. 정신적인 발전을 위해서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잘못된 목적의 하나라는 것이지요. 더구나 진정으로 느끼려 하지 않고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해 많은 장소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여행이야말로 잘못된 여행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임어당이 말하는 대로 하면 나는 잘못된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게 됩니다. 나는 그저 하루 동안 여행안내자 역할만 하다 온 것이지요. 나도 보통 사람이 되어 마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보고 오는 길이었어야 하는데 일을 하다온 것뿐이지요. 그날도 예정에 없던 바다를 다녀온 게 가장 잘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그냥 보내기 아까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다 가기 전에, 도망치는 것이라도 좋고,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좋은, 훌훌 털고 떠나는 가을여행을 한 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2009.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