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를 기억하지 못해 유감이지만, 나는 ‘명예란 국가가 군인을 공짜로 부려먹기 위해 만들어낸 관념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이런 기지 넘치는 문장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문학에서도 풍자는 쉬운 기술이 아니다. 풍자를 노골적이고 단순한 기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풍자는 정련된 고도의 학습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문학적 기법 가운데 하나다. 흔히 우리가 풍자라고 일컫는 것들도 대개는 단순한 해학이거나 말장난일 경우가 많다. 풍자(諷刺)는 말 그대로 변죽을 두드려 중심을 찔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풍자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수준 높은 풍자문학은 우리문학에서도 드물다. 기껏해야 채만식과 남정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풍자의 어려움은 그것이 이뤄지는 방식에 있다. 풍자의 대상에 내재한 모순이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풍자일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공격하는 대신 공격의 대상이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게끔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풍자의 어려움이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풍자의 매력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무척 매력적인 광경을 목격하는 중이다. 국가정보원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이유를 들어 국가의 이름으로 한 국민을 고소했다. 국가가 국민을 고소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법리적인 문제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명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명예는 스스로 주장하는 게 아니다. 명예는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인정받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명예는 훼손될 수도 박탈당할 수도 없다. 국민들 속에 깊이 뿌리 내린 명예는 한 사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명예가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이런 게 풍자다.
<2009. 9. 22 소설가 손홍규>
|
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