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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빨래터에 참 많이도 좇아다녔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물은 고향과 이름이 같은 산에서 흘러내린 것이었다.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가 흔했고 이따금 목이 마를 때면 그냥 떠서 먹기도 했던 개울이다. 제대로 된 빨래터는 아니었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곳에 모여 빨래를 했다. 넓적한 돌 위에 빨랫감을 올려놓고 빨랫방망이로 처덕처덕 두드리는 소리, 찰방찰방 헹구는 소리가 좋았고 누군가를 헐뜯는 흠구덕조차 그곳에서는 사납게 들리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 웃음꽃이 피었고 시시콜콜한 가정사가 여기저기서 풀려나왔다. 그러나 빨래는 또한 얼마나 고된 노동인가. 빨랫감이 가득 담긴 고무함지를 머리에 이고 개울까지 나가서 빨래를 한 뒤 젖어서 훨씬 무거워진 고무함지를 다시 머리에 이고 돌아와야 했다. 팔뚝이 붓고 팔목이 시큰거리고 빨랫방망이 쥔 손에는 물집도 잡힌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몰랐다. 그저 장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빨래터가 좋았을 뿐이다. 입은 옷이 더러워지거나 양말이 젖으면 어차피 빨래할 건데 무슨 상관이랴 싶어 더욱 함부로 다루었다. 어차피 한 번 타락했으니 이미 끝장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내가 나를 포기하면 할수록 어머니는 힘겨웠으리라. 더 많은 힘을 들여 빨래를 했을 테니.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금언이 있다. 이 말은 거짓이다. 진실은 이렇다. 물이 탁해지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대신 그곳에 괴물이 산다. 괴물이 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저 금언을 이용하는 것이다. 괴물이 되면 되돌아가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삶이라면, 최선은 괴물이 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하지 않아서 인간다워지는 게 아니라, 타락의 속도를 늦출 용기를 지녀서 인간다워지는 존재니까.
<2009. 9. 8 소설가 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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