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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년 저쪽의 일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산등성이에 있었다. 한참 시골이다. 고향 말로 꼭대기를 뜻하는 ‘꼭다우’라는 마을이 있는 곳이니 말 다했다. 그 시절에 영어경시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아마도 학교 당국은 일정 학생수를 배당받았을 테고, 머릿수를 맞추느라 어찌어찌하여 나도 끼워줬을 게다. 수업을 빼먹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 기분이란! 무엇보다 우리를 흥분시킨 건, 시험을 치르고 나면 우리를 인솔하는 교감선생님이 반드시 짜장면 한 그릇씩을 먹인다는 사실이었다. 시험은 애초에 파장이었다. 그 시절에도 장원이나 우수상은 외국유학을 다녀온 몇 몇 시내의 부잣집 아이들 독차지였다. 외국말 쓰는 사람을 텔레비전에서 말고는 본 적이 없는 우리였다. 관심사는 오로지 일년에 두어번 볼까 말까한 짜장면이었다. 한데 슬슬 걱정이 되었다. 체면치레는커녕 그 흔한 장려상 하나 없었다. 우리는 송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짜장면이 참새떼처럼 날아 도망가는 환영마저 보였다. 하지만 교감선생님은 피리를 불어 참새떼를 불러들였다. 중국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 짜장면을 사주신 거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제자들인데도 말이다. 쥐어박아도 시원찮을 텐데 천천히 먹으라며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었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어느 지역명이 정답인 퀴즈를 들었다. 힌트 가운데 하나가 성적조작 파문이었다. 일선에 계신 선생님들이 성적조작으로 한 100억원쯤 벌었다면 두 말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선생님들을 양심의 시험대에 올린 괴물의 정체를 우선 묻는 게, 또한 자신의 고향과 학교가 퀴즈가 될 때마다 상처받을 학생들을 맨 처음 떠올려야 하는 게 순서에 맞지 않을까. 성적이 좋든 나쁘든 짜장면 한 그릇 먹이고 싶어하던 선생님의 마음이 지금이라고 다를까.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아이들이라고 모를까.
<2009. 2. 24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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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