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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에는 전철이 없다. 전철을 이용하려면 우선 버스를 타야 한다. 나는 주로 당산역이 종점이자 반환점인 버스를 탄다. 그 버스는 노선 중간에서 내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당산역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버스 안이 분주해진다. 출입문 쪽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이고 하차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미리 교통카드를 찍느라 손놀림도 바빠진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남들처럼 분초를 다툴 일이 없는 나조차 조바심이 생긴다는 거다. 엉덩이가 절로 들썩이고 출입문 쪽의 무리에 뒤섞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이런 분주함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느긋하게 차창 밖을 바라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싶을 정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선택한 건 버스가 당산역에 닿는 순간 최대한 빨리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 선택을 매번 후회하면서도 반복한다. 어차피 출입문을 선점하지 못한다면, 일종의 병목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내린 뒤에 움직이는 거나 매한가지니 말이다. 그러다 한번은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만큼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문 가까이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내 앞에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비로소 나도 일찍 하차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흐뭇했다. 그러니 출입문이 열렸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앞사람 때문에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게다. 그 틈을 타고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 앞 사람을 제치면서 우루루 내렸다. 문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그이가 원수 같았다. 결국 나는 꼴찌였다. 그러고서야 알았다. 그이는 다리를 절었다. 남들처럼 재빠르지 못한 그이는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얌전히 기다려야만 했을까. 그이의 체념과 포기가, 마치 내가 강요한 것만 같았다. 아니, 정말 나는 강요하며 살아왔던 것이리라. 강요된 체념과 포기가 서글프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2009. 2. 17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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