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오수연의 두 번째 소설집 [황금 지붕]
(실천문학사, 2007년 6월 25일)


'200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파견작가,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 오수연 작가의 이력 중 일부이다. <황금 지붕>은 오랫동안 반전평화운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의 참담한 상황과 그곳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에 천착해온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낯선 형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미론적 차원에서는 사건과 관련된 화자 또는 작가의 대안적 성찰이 우리의 의식이나 감성과 충돌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다. 작가는 어느 한 장소나 시점에 국한되지 않는 사건의 보편성,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이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폭발적인 혼돈 상태 등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작가 오수연은 지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상태에 던져진 지역을 오가며, 왜 사람은 사는 곳에 따라 운명이 달라져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리하여 지구가 둥글지 않음을 실감한 이 작가는 발밑의 땅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모든 사람과 생명이 각자 발 아래의 땅 위에 편안히 깃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수연 1994년 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1997년 단편집 [빈집], 2001년 연작 소설집 [부엌] 출간.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2003년 3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라크 파견 작가이자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 일원으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다녀왔다. [아부 알리, 죽지 마-이라크 전쟁의 기록] 발표, 팔레스타인 현대산문선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기획.번역해 펴냈다. 후배작가들이 주는 상금 없는 상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고, 2007년 현재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책속에서

하늘은 기둥도 없이 땅 위에 서 있고, 해와 달은 떨어지지도 않고 튕겨나가지도 않고 제자리를 돈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이 절묘한 균형이 세상을 창조한 신의 의지이며, 중심점은 황금 지붕이다. 황금 지붕이 덮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 세상의 중심이다. 여러 다른 선지자들이 하필 거기서만 역사하여 두고두고 분쟁이 나게 만든 이유는, 거기 말고 다른 데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은 거기서 갈라졌고 심판의 날 거기서 맞붙는다. 그곳이 있기 때문에 과거는 의미 있고 현재는 지?되며, 비로소 미래가 도래한다. 황금 지붕 이십 킬로미터 위에 천국이 있다. 거기서 한 번 숨을 들이쉬면 한 번 천국의 공기를 마신 셈이다. 천국은 거기서 열릴 것이나 그들이나 저들만의 천국이지 모두의 천국은 아니다. 완충지대는 없다.

- '황금 지붕' 중에서


::작가의 말

오래전부터 나는 의문이었다. 왜 사람은 사는 곳에 따라 운명이 이리 다를까? 2003년에 미국에 침공당한 이라크와 이스라엘에 점령된 팔레스타인에 가서 보니, 지구가 둥글지가 않았다.

막강한 장력이 송용돌이치며 한쪽으로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토해냈다. 2004년 초 논란 끝에 국익을 위해 한국군이 미군의 연합군으로 이라크에 갔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이라크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구를 우그러뜨리는 장력의 원리는 실은 간단했다. 여기 잇는 우리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저기 있는 저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있다는 것. 여기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저기 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

... 나는 지구를 우그러뜨리는 장력과는 반대의 힘, 각기 무수한 꽃잎을 가진 무수한 꽃송이로 피어나려는 땅의 의지를 느꼈다. 그것은 모래폭풍, 먼지바람,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 같은 형태로 이 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작동하고 있다.

땅의 무수한 잎 중 하나에 나는 이미 깃들어 있다. 나는 나를 구하고자 했다. 모든 사람들, 모든 생명들, 자기 발밑의 땅 위에 편안히 깃드시기를. 이 소설은 기도다.

- 오수연


::추천글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에서 현실의 재현을 넘어서는 문학성을 일구어내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요즈음 작가들은 이러한 모험에 뛰어들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텔레비전 화면이나 동영상에 중독되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총알들을 불꽃놀이 정도로밖에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린 터에, 감각과 욕망만을 따라가며 스스로 '언어의 감옥'에 갇혀버린 문학이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수연은 지상에서 가장 참혹한 상태에 있는 지역들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감수성의 진경을 보여주었다. - 황광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