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평론가 이현식의 첫 번째 평론집 [곤혹한 비평]
(도서출판 작가들, 2007년 7월 2일)

이 책은 한국근대문학 연구자이자 문화정책 연구자인 저자가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지 10년 만의 출간하는 첫 평론집이다. 저자는 386세대의 비평가로서 ‘1980년대’적 사유와 모색을 바탕으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한국 근대문학에 관심을 갖고 프로문학을 중심으로 한 국문학을 연구를 전개해오다가 소위 ‘신세대문학론’이 뜨겁던 1997년에 등단하여 비평 활동을 전개해오면서 어느덧 ‘문학의 죽음’ 혹은 ‘근대문학의 종언’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2007년의 시점에 이르러 우리 문학이 급격한 위기에 뒤이은 주류성의 상실을 목도한다.

비록 치열하게 비평 활동을 전개하지는 못했지만 객관적인 거리감을 갖고 우리 문학의 그와 같은 위상변화를 목도한 저자는 새삼 ‘비평의 직무유기’와 더불어 ‘비평의 비평다움’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하고, 그러한 문제의식을 이 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 책의 제목이 ‘곤혹한 비평’인 이유는 그래서이다.

이현식
1966년생. 연세대 영문과,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7년 <문학과사회> 평론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재)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문화정책)을 거쳐 현재 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으로 재직하면서 인하대에 출강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문화도시로 가는 길], [제도사로서의 한국 근대문학], [일제 파시즘 체제하의 한국 근대문학비평] 등이 있다.

::책속에서

얼마 전부터 그런 의문을 갖고 있었다. 내가 왜 아등바등 하면서도 비평이라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가, 비평을 한다고 해서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되는 것도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저런 바쁜 와중에서도 그래도 작품을 찾아 읽고 틈틈이 뭔가 쓰려고 노력하는 건 무슨 까닭인가. (···) 비평을 한다는 행위가 하나의 삶의 형식이 되어버린 이 마당에 내가 왜 비평을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은 비평가로서의 자의식이나 비평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정체성이 그만큼 위태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건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더 이상 문학은 우리 시대 문화의 총아가 아니다. 보아야 할 것도, 읽어야 할 것도, 아니 가만히 있어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우리는 왜 골방에 앉아 책과 씨름하는 것일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비평가라면 당신은 왜 비평을 하는가. (······)

비평은 문학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인간의 삶과 사회, 역사를 고민하도록 만드는 장르이다. 문학 작품을 읽고 숙고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해 총체적으로 고민하려는 노력을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혹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무엇이 선한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이 비평이다.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비판하는 그 행위는 매우 고통스럽지만 비평이란 그런 가운데에 스스로의 존재를 세계에 드러낸다. 그렇지 못하다면 비평은 그 존재 가치를 의심받게 된다. 더구나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가치로 획일화시키는 자본주의, 단자화되고 분절화된 일상이 지배하는 현대사회, 디지털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거짓 이미지가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서 비평의 역할은 그대로 더욱 소중한 것이다.

- ｢우리는 왜 비평을 하는가｣ 중에서

::저자의 말

등단하고 꼭 10년 만에 첫 평론집을 묶어낸다. 평론가라는 말이 궁색할 만큼 게을렀던 셈이다. 그동안 썼던 글들 중에 그래도 내보일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가려 묶었는데도 다시 읽어 보니 부끄럼이 앞선다. (···) 마흔을 넘으면서 보잘것없지만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이 이렇게 평론집까지 묶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문학, 혹은 한국의 문학평론이 당면한 현실을 생각해 보면 평론집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적이 의심스러웠다. 문학 작품을 읽고 문학책을 사는 행위가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닌 것이 요즈음의 세태인 것이다. 팔리지도 않을 책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벌어놓은 것 없이 아이만 낳는 가난한 부부의 두려움처럼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책 제목을 ‘곤혹한 비평’으로 이름 붙인 것도 그래서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