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의 세 번째 시집 [그후, 일테면 후일담]
(천년의시작, 2005년 8월 10일)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실천문학> 대표인 김영현이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펴냈다. 소설가로 활동하던 1988년에 내놓은 첫 시집 '겨울바다'에서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80년대를 헤쳐 나가는 젊은 정신을 보여줬고,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시집 '남해엽서'에서는 지나간 삶에 대한 성찰을 들려줬다.

나이 50줄에 막 올라선 시인은 10여 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시집에서 그동안 팽팽한 줄처럼 살짝 건드리면 '툭'하고 끊어질 것만 같았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허망함을 노래한다.

"어쩌면 그는 무의미, 그것이야말로 생이다. 고 /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생의 무의미함이 때때로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가랑비 내리는 십일 월의 午後' 중)

미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았고, 그 결과가 시라는 시인은 서문에서 "아직 남은 분노와 열정이 도처에 옹이처럼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인생에 무슨 왕도가 있고 정답이 있담. 그저 자기 목청대로 노래를 해볼 따름"이라며 스스로에게 위안의 말을 건넨다.

김영현 1955년 경남 창녕 출생. 1984년 창작과비평사 '14인신작소설집'에 단편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1990년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지은 책으로 <겨울바다>, <포도나무집 풍경>,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흐른다> 등이 있다.

::시인의 말

버리고 남은 것이 또 한 권의 시집이 되었다. 한 소식 들었나 했더니, 그게 그 자리다. 인생에 무슨 왕도가 있고 정답이 있담. 그저 자기 목청대로 노래를 해볼 따름이다. 생각하면 나의 시대도 질풍노도처럼 지나갔다. 첫 시집인 『겨울바다』에 날 선 눈을 지닌 한 청년이 보인다. 두 번째 시집인 『남해엽서』에서는 이마 약간 벗겨진 한 사내가 웃고 서 있다. 그리고나서 다시 십 년…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김영현


::추천글

많은 것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의 속도, 자본의 속도를 통과하고 난 뒤의 적료함 속에서 그의 시는 허허로운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허허로운 말투 속에는 변화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눈이 숨어 있고, 고요함의 저변에는 더 낮아지고 순해진 모습으로 다시 기다리고 있는 정신의 깊이가 있다. 그 풍경 위로 또 많은 것들이 지나가리라. -도종환(시인)

김영현의 시편들은, 질풍노도의 시대를 건너온 자가 그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하여, 아니 이제는 다시 건널 수 없는 그 시간의 심연에 대하여 부르는 “언더그라운드”의 노래이다. 그는 “보상 없는 젊은 날의 열정과/부질없었던 사랑, 목적 없는 분노에 대해/목이 쉬도록 떠들”었던 시간들을 자신의 시 안쪽으로 되부르면서도 “거대한 강은 상처투성이의 모순을 안은 채/용서하며, 사랑하며 흐르는 법”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눈부신 순간들을 보여줌으로써, 이제는 그 시간들이 결코 재현될 수 없음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열정과 헌신의 연대가 자신의 양도할 수 없는 숭고한 생의 형식이었음을 우리에게 아프게 들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시편들 안에서, 그의 소설과는 또 다른, 깊은 강이 비로소 멀리 흐르는 소리를 새삼 듣게 되는 것이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국교원대 교수)